차이나別曲 223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43] 바람 피하는 항구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하는 우리 예전 가요가 있다. 1954년 나온 '홍콩(香港) 아가씨'다.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홍콩을 그렸다. 홍콩의 역사·문화적 지칭은 '바람 피하는 항구'다. 중국인들은 피풍당(避風塘)으로 적는다. 그곳은 본래 중국 대륙에서 빠져나온 이민자들의 도피처였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중국 건국 뒤의 문화대혁명 등 극심한 혼란기에 대륙을 탈출한 사람들이 모여든 사회였다. 따라서 중국 현대사에 번졌던 여러 얼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초기 이민자들의 삶은 보통 바다를 떠나기 힘들었다. 형편이 여의치가 않아 방파제 안의 선상(船上)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배들이 모여 이룬 독특한 정경(情景)을 '피풍당'으로 적었다. 지금도 홍콩을 상징하는 요..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42] 長江의 앞 물결과 뒷물결

우리는 곧잘 조국의 영토를 강산(江山)이라는 말로 쓰기도 한다. '삼천리금수강산(三千里錦繡江山)'이 좋은 예다. 이 말은 국토 전체를 지배하는 권력을 가리킬 때도 있다. 중국에서는 타강산(打江山)이라고 적으면 '국가 권력을 손에 넣다'는 뜻이다. 현대 중국에 견줘 보면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등의 역할이다. 붉은 공산주의 이념으로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1세대다. 따라서 보통은 '홍일(紅一)'로 줄여 적는다. 이들과 혈연으로 이어져 다음 세대를 형성한 사람들은 '홍이(紅二)'로 부른다. 혁명 세대인 시중쉰(習仲勳)의 아들로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習近平), 그에 앞서 권력 정상에 올랐던 장쩌민(江澤民) 등이 다 그렇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모진 싸움에 나섰던 앞 세대에 비해 누릴 게..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41] 중국의 持久戰 전략

중국은 6·25전쟁을 대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지원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뒤에 구호 하나가 더 붙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적다. 보가위국(保家衛國)이다. 집과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다. 당시 전쟁에 뛰어든 중공군 병력은 240만명 이상이다. 이들의 명칭은 중국 군대의 공식 이름인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이 아니라 인민지원군(人民志願軍)이다. 미국의 한반도 '침략'에 맞서려 인민들이 자원해 참전했음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물론 군대 건제(建制)는 해방군 그대로였고, 전력 추진과 보급 및 운송 등은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대외적으로 명분을 그럴싸하게 내세우고자 이름을 거짓으로 포장했던 것이다. 그 수많은 참전 중공군에게 '왜 우리가 싸우느냐'를 일..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40] 中華에 못 미치는 중국

'중국'은 본래 성벽으로 싸인 타운을 지칭했던 단어다. 처음에는 국중(國中)으로 적었다. 한자 국(國)에는 네모가 두 개 있다. 안의 네모는 작은 성(城), 밖의 네모는 더 큰 성인 곽(郭)이다. 성을 두 개나 두를 정도면 옛사람들 생활 수준으로 따질 때 아주 큰 정치적 주체다. 따라서 '국중'은 주(周)나라 천자(天子)가 있는 도성이라는 뜻이다. 그러다가 차츰 '중국'으로 적었다. 중국의 옛 명칭은 다양하다. 북부 중국의 일부를 점유했던 주나라는 적현(赤縣)으로도 불렀다. 빨강을 숭상하는 전통 때문이다. 전역을 아홉으로 나눴다고 해서 얻은 이름은 구주(九州)다. 인도가 중국을 불렀던 호칭 중 하나는 치니(Chini)다. 여기서 나온 명칭이 지나(支那)다. 중국 전역을 최초로 통일했던 진(秦)나라를 가리..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9] 전통의 지혜로부터 멀어진 공산당

사람 됨됨이를 따질 때 중국인들은 일정한 잣대가 있다. 남보다 먼저 제 밑천을 드러내는 사람에겐 결코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 의중을 드러내지 않고 셈에 셈을 거듭하며 신중하게 처신해야 중국에서는 '된 사람' 취급받는다. 우리말 사전에도 올라 있는 성부(城府)라는 한자 단어가 있다. 중국에서는 '속이 깊은 사람'의 의미다. 이 말은 원래 도시의 성벽, 큰 저택의 담을 가리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담을 쌓아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새김을 얻는다. 마음속에 이런 담을 쌓아 좀체 속내를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는 이가 중국인에게는 '괜찮은 사람'이다. 가슴에 그런 속성을 지녔다는 흉유성부(胸有城府)라는 성어도 나왔다. 그에 비해 자신이 지닌 칼끝을 훤히 드러내면 어리석은 ..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8] 중국 공산당의 呪文

유명 고전소설 '서유기(西遊記)'에 등장하는 주문이 있다. 철없이 날뛰는 원숭이 손오공(孫悟空)을 제압하려 현장법사(玄奘法師)가 외는 '긴고주(緊箍呪)'다. 손오공 이마에 채운 쇠고리는 이 주문이 나오면 마구 조여져 심한 고통을 준다. '불안정성'을 상징하는 캐릭터 손오공은 그로써 길들여진다. '긴고주'에 해당하는 현대 중국 공산당의 주문이 있다면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穩定壓倒一切)'는 말일 것이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의 유훈과도 같다.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 지도자들은 이를 주문처럼 외우다시피 했다. 다양한 문화적 갈래를 지닌 중국을 이끌기 위해서는 안정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잦은 전란 속에서 늘 태평(太平)을 갈구했던 중국 전통 사유의 공산당식 연역이다. 요즘 표현은 ..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7] 전통을 誤讀하는 중국 지도층

'칠월류화(七月流火)'라는 성어가 있다. 지독한 더위를 이르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무더위를 상징하는 대화(大火)라는 별이 서쪽으로 흐르면서 여름이 가을에 자리를 비킨다는 뜻이다. 중국의 대학 중문과 1학년 학생이 배우는 성어다. 유명 학부인 인민대학(人民大學) 총장이 이 말을 잘못 썼다. 대만의 고위 정치인이 2005년 여름에 학교를 방문하자 이 성어를 사용하면서 "환영의 열기가 어디 날씨뿐이겠느냐"고 했다. 더 큰 사달도 났다. 지난해 명문 베이징(北京)대학 개교 120주년 기념식이었다. 린젠화(林建華) 총장은 학생들에게 커다란 뜻을 지칭하는 '홍곡(鴻鵠)'의 포부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홍곡'을 '홍호(鴻浩)'로 발음했다. 중국을 상징하는 최고 학부의 총장이 ..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6] 부패가 번지기 쉬운 사회

남을 높이 우러른다는 뜻의 경(敬)이라는 글자는 중국에서 이상하게 쓰일 때가 있다. 효경(孝敬)이나 빙경(氷敬), 탄경(炭敬), 별경(別敬) 등의 조어와 함께다. '효경'은 본래 부모를 잘 모시며 공경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뇌물의 동의어다. 윗사람에게 상납하는 금전이나 재화다. 여름철 무더위를 이기라고 건네는 그것은 '빙경', 겨울철 추위를 잘 견디라는 뜻에서 주는 것은 '탄경'이다. 헤어질 때 바치는 것은 '별경'이라고 했단다. 관직도 부수입이 좋으냐 안 좋으냐에 따라 크게 나뉜다. 두둑하게 챙기는 자리는 살이 찐다는 의미의 비결(肥缺), 그러지 못하는 곳은 수척해진다는 맥락의 수결(瘦缺)이다. 덤으로 흐뭇하게 챙기는 수익 자체는 외쾌(外快)다. 몇 년 전 관영 인민일보가 관료의 부패 유형을..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5] 중국엔 왜 暗器가 많을까

기계적인 장치를 이용해 멀리 쏘는 활이 쇠뇌(弩)다. 인류의 무기(武器) 발전사에서 한 획을 그을 만한 발명이다. 이 쇠뇌가 처음 만들어진 곳은 중국이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인 춘추시대 전에 이미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살상 무기다. 원거리에서 상대를 공격하니 매우 효율적이다. 그러나 당당한 싸움법과는 거리가 멀다. 우직하게 정면에서 곧장 달려들어 승부를 내는 결전 방식은 결코 아니다. 중국의 전통적인 싸움 방식은 일정한 패턴을 지니며 발전했다. 바둑의 예에서 드러나듯 보이지 않게, 조용히,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우회해 싸움을 벌인다. 서로 마주 서 있다가 순간적으로 총을 꺼내 쏘는 서양식 카우보이들의 결투를 보면 '꼭 저래야 할까?'라며 답답하게 여기는 중국인들이다. 그래서 ..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4] 예절 뒤에 숨긴 칼

술을 마셔도 혼자 마시는 독작(獨酌)보다는 상대와 어울리는 대작(對酌)이 낫다. 술자리에서 흔히 쓰는 말 '권커니 잣거니'의 뜻, 수작(酬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 말은 요즘 '웬 수작이냐'고 눈 부라릴 때의 쓰임으로 전락했지만…. 잔을 적당히 채우면 짐작(斟酌)이다. 앞뒤를 잘 헤아려 술잔을 채우면 참작(參酌)이다. 마침내 알맞게 잔을 채우면 작정(酌定)이다. 누군가 내게 잔을 권했으면 돌려서 따라줘야 한다. 보수(報酬)와 응수(應酬)다. 제사를 올리거나 남과 교제하는 예법(禮法)에서 나온 조어(造語) 행렬이다. 음주 예절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낱말을 만들어 낸 곳이 중국이다. 그 점에서 중국은 세계적이다. '의례(儀禮)' '주례(周禮)' '예기(禮記)' 등 서적이 쏟아졌고, 예를 정치의 ..

차이나別曲 2020.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