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別曲 223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3] 城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정서

성(城)은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는 장치였다. 안에는 정사를 논의하는 조정(朝廷)이 있고, 일반인 동네 여염(閭閻)이 있었다. 성이 외부와 이어지는 곳은 교(郊)다. 따라서 성 주변은 교외(郊外)다.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은 야(野)다. 때로는 비(鄙)로도 적었다. 둘을 합치면 야비(野鄙)다. 우리도 잘 쓰는 '야비하다'의 그 단어다. 퍽 나쁜 뜻이어서 성 안팎의 아주 다른 위상을 실감케 한다. 요즘도 도시 외곽에 사는 중국인은 자신의 경우를 '성외(城外)'라고 부른다. 도시인은 제 처지를 '성리(城裡)'라고 한다. 성의 안과 밖을 집요하게 구별하는 시선이다. 중국 도시의 성은 거의 없어졌다. 1949년 중국의 건국과 함께 벌어진 현상이다. 그러나 요즘도 여전히 도시에 적(籍)을 뒀느..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2] 좋은 황제 콤플렉스

역대 중국인 모두는 땅 위 최고의 권력자 황제(皇帝)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삶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황제와 순민(順民)'의 구도는 그래서 중국 땅에서 살았던 사람 대부분의 생활 형태였다. 제 힘이 없어 권력의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모든 사람은 그저 황제의 발아래 노예처럼 엎드려 살아야 했다는 얘기다. 그래도 기왕이면 훌륭한 황제 밑에서 살기를 원했을 테다. 이른바 '좋은 황제 콤플렉스(好皇帝情結)'라는 말이 중국에서 나오는 이유다. 중국인이 요즘에도 많이 다루는 궁중 드라마의 큰 줄거리를 이루는 흐름이다. 한(漢)을 세운 유방(劉邦), 당(唐) 태종 이세민(李世民), 명(明)의 주원장(朱元璋) 등 역대 군주가 화려하게 부활한다. 특히 청(淸)의 옹정제(雍正帝)는 탐관오리를 없앤 ..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1] 중국의 요즘 '아줌마'

중국뿐 아니다. 가끔씩 세계의 토픽 한가운데 서는 중국 여성들이 있다. 이른바 '다마(大媽)'다. 우리식으로 풀면 '아줌마'가 적격이다. 조용하며 다소곳한 전통적 중국 여성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2013년 중국 언론 등에 '다마'라는 이름이 오르면서 이제는 세계적인 관찰 대상으로 변했다. 이들의 모습은 우선 중국의 모든 도시 광장에서 볼 수 있다.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전통 무용이나 서양식 댄스로 몸을 단련한다. 때로는 시간을 불문하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둔 채 춤을 춰서 주변 사람들이 몸서리를 칠 정도다. 이들의 춤은 대마무(大媽舞)라고 적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金門橋) 주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 광장 등에도 벌써 진출했다. 1970년대 우리 '복부인'의 역할도 수행한다..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0] 제갈량 신드롬의 속내

"주유가 있는데 왜 제갈량을 세상에 나오게 했습니까(旣生瑜, 何生亮)…."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조조(曹操) 군대에 맞서 적벽(赤壁) 싸움을 치른 주유(周瑜)가 동맹군이었던 제갈량(諸葛亮)을 시기하며 내뱉은 유명한 탄식이다. 그러나 새빨간 거짓이다. 둘은 생전에 만난 적이 없다. 제갈량은 이 전투에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중국 역사에서 퍽 유명한 이 싸움의 진정한 주역은 주유다. 제갈량이 싸움을 잘했다는 말도 거짓이다. 그는 유비가 죽은 뒤 벌인 여러 차례의 북벌에서 사마의(司馬懿) 등에게 우롱만 당했다. 바람과 비를 부른다는 호풍환우(呼風喚雨)의 경지에 닿았다는 제갈량의 실제 전쟁 지휘 능력은 꽝이다. 그럼에도 유비의 촉한(蜀漢)을 정통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치는 소설에서 제갈량은 끊임없이..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9] 江湖라는 중국의 민간 세계

묘당(廟堂)이라는 단어가 있다. 왕실 제사를 벌였던 종묘(宗廟)와 정치를 논했던 명당(明堂)을 합성한 말이다. 나중에는 나랏일을 집행하는 조정(朝廷)의 뜻으로 발전했다. 이 묘당의 대척점이 지금도 실재하는 '강호(江湖)'다. 유래에는 여러 풀이가 있다. 그러나 큰 흐름으로 보면 나라 행정과 정치가 벌어지는 곳으로부터 떨어진 일반인 삶의 터전이다. 형식과 절차에 구애받지 않는다. 정치적 구속력이 약해 자유롭다. 그러나 나름대로 고단하다. 치열한 생존의 경쟁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수준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때로는 매우 험악하다. 언어도 공식적인 말과 사뭇 다르다. 은어(隱語)가 풍성하다. 강호에서 쓰였던 말은 달리 순전(唇典)이라고 했다. 그와 발음이 유사해서 보기 좋게 춘점(春點)으로 ..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8] 권모와 술수의 바다

제왕(帝王)이 머무는 곳을 궁(宮)이라고 한다. 깊고 넓어 보통은 구중궁궐(九重宮闕), 구중심처(九重深處) 등으로도 적는다. 그러나 어딘가 음습한 분위기도 풍긴다. 깊고 넓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그악한 다툼 때문이다. 땅 위의 최고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이 벌이는 경쟁이니 지독하기 짝이 없다. 황후와 비빈, 관료와 제왕의 인척(姻戚), 궁녀와 내시(內侍) 등 다양한 그룹 사이에서 벌어진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끔찍한 방법이 다 펼쳐진다. 독을 타서 상대를 죽이는 독살(毒殺)은 외려 평범하다. 반역의 틀에 가둬 멸문멸족(滅門滅族)을 이끌어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추잡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간계(奸計)가 온갖 형태로 펼쳐진다. 그 토대는 '권모(權謀)와 술수(術數)'라고 하는 중국의 오랜 사고 패턴이..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7] '말발' 약해진 중국 공산당

지도를 보면 길이 800㎞, 폭 200여 ㎞의 커다란 산줄기가 중국의 복판을 흐른다. 친링(秦嶺)이라는 산맥이다. 옛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이 있던 산시(陝西)가 무대다. 큰 관심을 받는 곳이다. 지상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의 기운이 흐른다고 하는 풍수상의 용맥(龍脈) 관념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산맥의 한 줄기도 개혁·개방 이후 거센 개발 붐에 싸인 적이 있다. 산맥의 북쪽 한 자락이 옛 장안, 지금의 시안(西安)으로 흘러내리는 곳에 호화 별장이 많이 들어섰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자리에 오른 시진핑(習近平)은 2년 뒤 이 별장들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 총서기의 명령은 그러나 잘 먹히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시진핑은 ..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6] 달빛에서도 '간첩' 떠올리는 중국

문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이 있다면 먼저 시정(詩情)이라도 품을 만하다. 그러나 갈라진 틈에 싸움 또는 전쟁을 잇는 사고(思考)가 일찍이 중국에서 나왔다. 한자 간(間)을 두고서다. 이 글자는 본래 한(閒)으로 적었다. 문(門)에 달빛을 가리키는 월(月)이 붙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이다. 나중에 달빛을 햇빛[日]으로 대체한 글자가 간(間)이다. 모두 문의 '틈', '사이'에 주목한다. 중국의 사유 체계는 이를 상대의 빈틈으로 파고드는 간첩(間諜)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간첩'이라는 조어는 '육도(六韜)'라는 병법서에 일찌감치 등장한다. 이를 본격적으로 개념화해 사용한 사람은 병법의 대가 손자(孫子)다. 그는 간첩의 효용성을 강조하며 다섯 종류의 스파이를 거론했다. 상대 국가의 일반인을 쓰는 ..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5] 한국의 친구, 중국의 朋友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로 시작하는 조용필의 '친구여'라는 노래가 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우리 대중가요다. 노래는 세상을 떠난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모습은 어디 갔나, 그리운 친구여"로 맺고 있다. 중국과 대만, 홍콩에서 친구 노래로 가장 유명한 저우화젠(周華健)의 '펑유(朋友)' 가사 일부는 이렇다. "친구야 평생을 함께 가자…한마디 말에 인생을 걸고, 한 잔 술에 한평생의 정을 담고(朋友一生一起走…一句話一輩子, 一生情一杯酒)." 대중에게 잘 알려진 한국과 중국의 두 노래는 모두 '친구'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정서는 사뭇 다르다. 한국의 노래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데 비해 중국의 그것은 비장하다. 벗끼리의 유대를 강하게 표현하는 우리말 속의 성어나 단어는 대개 중국에서 만들어진 한자..

차이나別曲 2020.08.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4] 체스와 바둑의 '美·中 결투'

'메이드 인 차이나'의 오랜 명품 중 하나는 바둑이다. 이기고 지는 승부(勝負)를 다루는 전쟁 게임이다. 적어도 2500년 전에 지금의 중국 땅에서 출현했다. 복잡한 싸움 방식이 특징이다. 백병전(白兵戰)처럼 직접 달라붙어 혈전을 벌이는 게임이 아니라 공간을 먼저 차지하는 '포석'과 상대를 부지불식간에 무력화시키는 '포위'를 통해 국면을 이끌어 승부를 가린다. 여기서 '세(勢)'라고 하는 추상의 개념이 등장한다. 이는 맞붙어 힘을 직접 겨루는 '전술'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영역을 먼저 차지하려는 '전략'이다. 그래서 바둑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고차원의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에 비해 서양의 체스는 직접적이다. 등급에 따라 나뉜 각 구성 요소들이 제 역할을 수행하며 상대와 ..

차이나別曲 2020.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