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99

[차현진의 돈과 세상] [89] 요한계시록

[차현진의 돈과 세상] [89] 요한계시록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9.21 00:00 예수의 제자 요한은 특별하다.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주의 사랑하는 제자”라는 영예로운 찬사를 들었고, 최후의 만찬 때 예수 바로 옆에 앉았다. 계시록도 남겼다. 그래서 교황 이름으로 가장 인기가 높다. 지금까지 교황 23명이 ‘요한’이라는 이름을 썼다. 기독교 세계에서 ‘요한’은 왕 이름으로도 인기가 높다. 영국만 예외다. 지독하게 무능했던 존 왕 때문에 왕의 이름으로 ‘존(요한의 영어 표현)’은 절대 금기어다. 며칠 전 왕위에 오른 찰스 3세의 후손도 그 이름을 쓰지 않을 것이다. 존의 가장 큰 과오는 도버해협 건너 유럽 대륙의 노르망디 지역을 프랑스에 빼앗긴 것이다. 그때까지는 영국이 섬나라가 아..

[차현진의 돈과 세상] [88] 석유수출국기구(OPEC)

[차현진의 돈과 세상] [88] 석유수출국기구(OPEC)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9.14 00:00 “석유가 나왔다.” 1976년 초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밝혔다. 포항 영일만에서 질 좋은 원유를 시추했다는 대통령의 고백에 국민이 열광했다. 시원하게 원유 터지는 소리로 시작하는, ‘제7광구’라는 대중가요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비슷한 해프닝이 1949년 이탈리아에서도 있었다. 하원의원 앙리코 마테이가 “알프스 산맥 밑에 엄청난 양의 원유가 묻혀 있다”는 낭설을 퍼뜨렸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석유공사(ENI) 회장으로 취임하여 석유 시추를 직접 지휘했다. 물론 결과는 변변치 않았다. 그러자 마테이는 목표를 외국으로 돌렸다. 당시 국제 원유 시장은 ..

[차현진의 돈과 세상] [87] 조세 저항

[차현진의 돈과 세상] [87] 조세 저항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9.07 00:30 옛날 통치자들은 세금 걷는 기술이 형편없었다. 토지, 집, 창문, 굴뚝 등에 재산세를 부과하거나 인두세를 걷는 것이 전부였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세금을 매겼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아 포착이 어려운 소득은 세금 부과를 거의 포기했다. 소득세는 1799년 프랑스와 전쟁을 앞두고 윌리엄 피트 영국 총리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그나마 부자들에게만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적용했다. 그 밖에 관세가 있었으나 성격이 달랐다. 재정 수입보다는 수출입 억제가 목적이라서 벌금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러니 1764년 영국 정부가 북미 식민지를 향해 설탕 관세를 신설할 때 식민지 주민들은 단 것을 밝힌다고 벌 받는 기분이..

[차현진의 돈과 세상] [86] 탕평책

[차현진의 돈과 세상] [86] 탕평책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8.31 00:00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 불우했다고 하지만, 사실 인복은 많았다. 그는 커피를 끓이기 전에 매번 커피 알 60개를 셀 정도로 편집증이 심하고 알코올중독기까지 있었다. 굶어 죽기 십상이었던 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괴팍한 성격을 잘 참아준 후원가들 덕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수원은 인복이 없었지만, 청력을 잃고 주변의 도움을 받은 것까지는 베토벤과 비슷했다. 24세에 과거시험에 급제할 만큼 명석했으나 역적 집안 출신인 데다가 소론(少論)에 속해서 지방을 떠돌았다. 풍토병에 걸려 청력까지 잃었다. 스스로 농객(聾客) 즉, 귀머거리라 부르며 좌절했다. 유수원이 처량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쓴 우서(迂書..

[차현진의 돈과 세상] [84] 비주류가 이끈 산업혁명

[차현진의 돈과 세상] [84] 비주류가 이끈 산업혁명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8.17 00:00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 우연이냐 필연이냐에 관해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청교도혁명을 계기로 입헌군주제로 일찍 돌아선 덕에 재산권 보호가 훌륭했던 점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어야 할 필연적 이유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중요한 조건은 충분한 노동력인데, 하필 그때 영국의 초혼 연령이 낮아지고 출산율이 상승한 것은 우연이다. 기계를 만들려면 철이 필요하고 철을 만들려면 석탄이 필요한데, 영국의 석탄 매장량이 엄청나게 풍부했다는 것도 우연이다.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은 독일, 프랑스, 벨기에, 미국의 석탄 채굴량을 합한 것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석탄을 생산했다. 우연과 필연의 중간쯤..

[차현진의 돈과 세상] [83] 어떤 광복절

[차현진의 돈과 세상] [83] 어떤 광복절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8.10 00:00 8월은 한일 관계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한쪽에선 영화 ‘한산’을 보면서 과거를 상기하고, 다른 한쪽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가 미래 지향적이기를 기대한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고통과 분노의 시간이었다. 친일파 후손들도 그때의 기억이 편치는 않다. 생물학자 우장춘이 그랬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범 우범선과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1950년 귀국할 때 주변에서 그의 안녕을 염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라며 고집스럽게 배를 탔다. 그리고 아버지의 업보를 씻는 마음으로 부산에서 여생을 보냈다. 1953년 일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차현진의 돈과 세상] [82] 시심(詩心)을 가진 수학자

[차현진의 돈과 세상] [82] 시심(詩心)을 가진 수학자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8.03 00:00 올해 필즈상을 받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허준이 교수는 한국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큰 상을 받은 것이 우리에게도 기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한때 시인이 되기를 꿈꿨다는 것이다. 자랄 때는 기형도의 시집에 심취했고, 지금은 아일랜드 시인 데이비드 화이트의 작품을 사랑한다. 오직 종이와 펜만 의존해서 상상을 펼친다는 점에서 수학과 시는 통한다는 것이 허 교수의 생각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수학자가 또 있다. 19세기 러시아 수학자 소피야 코발렙스카야는 “시인의 영혼이 없으면 수학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녀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여자라는 ..

[차현진의 돈과 세상] [81] 영국의 중앙은행

[차현진의 돈과 세상] [81] 영국의 중앙은행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7.27 00:00 “능력이 벽에 막히면, 그때부터 분노가 시를 쓴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가 인간의 시기심을 꿰뚫어 보면서 뱉은 말이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한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심정이 그랬으리라. 국가는 인간의 집합이니, 국가 사이에도 시기심이 작동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의 거의 절반을 네덜란드 경제에 대한 찬사로 채웠지만, 영국은 부자 나라 네덜란드를 질투했다. ‘더치 엉클(잔소리꾼)’ ‘더치 커리지(술김에 부리는 호기)’ ‘더치 리브(무단 이탈)’처럼 네덜란드를 조롱하는 말을 쏟아냈다. 무역상들이 네덜란드 배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1651년 항해법). 그렇게 네덜란드를 질투했던 영..

[차현진의 돈과 세상] [80] 미 재무장관의 방한

[차현진의 돈과 세상] [80] 미 재무장관의 방한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7.20 00:00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한국에 왔다. 한미 경제협력을 위해서다. 미국의 대통령은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이 연이어 한국을 찾았지만, 재무장관의 방한은 드물었다. 이번 방한은 2016년 제이컵 루 장관 이후 6년 만이다. 미국 장관 중에서는 국방장관과 국무장관이 한국을 빈번하게 찾았다. 양국의 최대 관심사가 한반도 안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과 세계의 금융시장을 살피는 재무장관은 한국에 올 이유가 별로 없었다. 차관급 이하가 아주 가끔 한국에 들렀다. 재무부보다는 상무부와 농무부 장관이 찾아와 통상과 원조 문제를 협의할 때가 많았다. 아니면 대외활동처(FOA)나 국제개발처(AID) 대표들이 ..

[차현진의 돈과 세상] [79] 흥청망청

[차현진의 돈과 세상] [79] 흥청망청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7.13 00:00 지난 5월 타계한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은 현실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비판한 작품이다. 그것 때문에 시인과 동료들이 고문을 당하고 출판사가 폐간되었다. 우리 현대사의 큰 상처다. 물론 왕조시대에는 훨씬 심했다. 풍자와 비판은 곧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불렀다. 1453년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김종직이라는 선비가 이를 비판했다. 세조의 하극상을 항우가 초나라의 왕 의제를 시해한 일에 빗댄 글을 썼다. 그 글을 조의제문(弔義帝文)이라고 하는데, 워낙 폭발성이 커서 함부로 밝힐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그의 제자들인 사림파가 조정에 진출하자 스승의 글을 공식 역사 기록인 실록에 남기려고 시도했다. 라이벌인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