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99

[차현진의 돈과 세상] [78] 이름뿐인 허구

[차현진의 돈과 세상] [78] 이름뿐인 허구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7.06 00:00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는 허구를 좇는 비극을 다룬다. 주인공이 친구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파티에 갔다가 그만 잃어버렸다. 10년 넘게 그것을 변상하느라고 행복을 잃었다. 알고 보니 잃어버린 것은 모조품이었다. 허구를 좇다가 인생을 낭비했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그런 낭패가 벌어진다. 물질의 연소 현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과학자들은 그것을 물리적으로 접근했다. 즉 나무가 불에 타서 숯덩이가 되면,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라는 물질이 나무에서 빠져나간 때문으로 추측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것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프랑스의 라부아지에가 “연소는 물질이 산소와 작용하는 화학적 현..

[차현진의 돈과 세상] [77] 러시아 디폴트

[차현진의 돈과 세상] [77] 러시아 디폴트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6.29 00:00 1971년 8월 1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금 1온스=35 미 달러화”의 약속을 깰 때 어느 나라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미국이 설계했던 브레튼우즈 체제의 해체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국제사회에서 그런 뻔뻔함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볼셰비키 혁명 직후인 1918년 2월 소련 정부는 34억파운드에 이르는 제정러시아의 부채를 일방적으로 무효화했다. 러시아는 80년 뒤인 1998년에도 외채 상환 불능(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한 뒤 당선된 초대 대통령 옐친은 시장 개방과 국영기업 민영화를 약속하면서 많은 외채를 들여왔다. 하지만 관료들이 부패한 데다가 대통령의 건강도 좋지 않..

[차현진의 돈과 세상] [76] 오즈의 마법사

[차현진의 돈과 세상] [76] 오즈의 마법사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6.22 00:00 도량형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진시황이다. 도(度)는 길이, 량(量)은 부피, 형(衡)은 무게를 말한다. 진시황은 금형(金衡) 즉, 돈의 무게에 관한 규칙을 만들 때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을 1대10으로 정했다. 서양은 달랐다. 은광이 없었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금과 은을 1대 1로 교환했다. 구약성경에서 “은과 금”이 60회, “금과 은”은 32회 등장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금이 아닌 은이 귀금속을 대표했다는 증거다. 그런데 4세기를 지나면서 서양에서도 금이 은을 추월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과 은의 비율이 1대13 정도로 굳어졌다. 금광을 잔뜩 기대하고 신대륙에 도착한 스페인은 포토시(현재..

[차현진의 돈과 세상] [75] 지도자의 콤플렉스

[차현진의 돈과 세상] [75] 지도자의 콤플렉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6.15 00:00 어떤 역사에서든 몰락한 왕조의 마지막 인물은 애잔하게 평가된다. 금강산으로 숨어 들어간 신라의 마의태자나 평생 한·미·일을 떠돌았던 대한제국의 영친왕이 그러하다. 볼셰비키 혁명의 와중에 시신조차 사라져서 전설로 남아버린 러시아의 아나스타시야 공주도 마찬가지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프로이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주동자라는 낙인 때문에 독일인들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한다. 그는 황태자 시절부터 땅 욕심이 대단했다. 외할머니인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편지를 써서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생일 선물로 받아낼 정도였다. 덕분에 가수 조용필이 노래한 ‘킬리만자로의 ..

[차현진의 돈과 세상] [74] 종교와 투기

[차현진의 돈과 세상] [74] 종교와 투기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6.08 00:00 투기와 버블은 어느 정도 종교와 관련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이루고서도 이렇다 할 투기가 없었다. 둘 다 가톨릭 국가다. 그런데 가톨릭에서 이탈한 네덜란드와 영국에서는 투기와 버블 붕괴가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1637년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버블이, 1720년 영국에서는 주식 버블이 터졌다. 그 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이 이어지면서 한동안 투기도 잠잠했다. 하지만 7년 전쟁이 끝나기 무섭게 위기가 또 터졌다. 1763년 네덜란드에서 드 뉴필이라는 작은 은행이 파산했다. 그 은행이 집중 투자했던 식민지 수리남의 대농장에서 폭동이 일어난 탓이다. 드 ..

[차현진의 돈과 세상] [73] ‘털사 인종 학살’

[차현진의 돈과 세상] [73] ‘털사 인종 학살’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6.01 00:30 100년 전 미국의 외교정책을 고립주의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때 미국은 영국과 일본의 해군력 팽창을 중단시키는 합의(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를 이끌어 냈고, 독일에 받아낼 제1차 세계대전의 배상금을 대폭 삭감(1924년 도스 플랜)토록 프랑스와 영국을 설득했다. 니카라과와 파나마 등 라틴아메리카 투자는 두 배 이상 늘렸다. 그러니 1920년대 미국이 고립을 추구했다는 것은 오해다. 이렇게 나라 밖에서 분주했던 미국이 나라 안에서는 무기력했다. 백인우월주의를 앞세운 비밀단체(KKK)가 공공연히 흑인들을 향해 테러를 저지르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오클라호마주가 인종 갈등의 중심이었다. 그곳은, ..

[차현진의 돈과 세상] [72]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72]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5.25 00:00 예수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되도다”라고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눈으로 봐야 믿는다. 아무리 오랜 믿음도 증거 앞에서는 흔들린다. 교회의 거듭된 설교에도 천동설을 의심케 하는 증거가 쌓여가자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교회 옥상에서 별 보기를 좋아했던 신부 코페르니쿠스가 고민에 빠졌다. 모든 별이 계절에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데, 수성과 금성은 가끔 그 반대로 움직이는 사실은 천동설로 도저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천동설을 버리고 지동설로 돌아섰다. 하지만 교황청과 맞서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발표는 최대한 늦췄다. 임종하는 자리에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자기 책을..

[차현진의 돈과 세상] [71] 100일 계획

[차현진의 돈과 세상] [71] 100일 계획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5.18 00:00 윤석열 대통령은 첫 100일 동안의 계획을 따로 발표하지 않았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은 ‘신경제 100일 계획’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설비투자 촉진과 금융 개혁에서 노사 관계 개선에 이르기까지 망라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거창했다. 미국의 오바마와 트럼프 대통령도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100일 계획의 시작은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그는 취임한 지 채 이틀이 되지 않은 1933년 3월 6일 새벽 1시 모든 은행의 영업정지를 명령했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던 예금 인출 사태와 은행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일주일 뒤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하여 그간의 불편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현진의 돈과 세상] [70] 용산시대

[차현진의 돈과 세상] [70] 용산시대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5.11 00:00 궁궐을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런 이유에서 정도전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은 조선 건국 이후에도 개성의 수창궁을 계속 왕궁으로 쓰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태조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오늘날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통해 태조가 신하들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왕과 신하의 줄다리기 속에서 건국한 지 2년이 지나서야 경복궁 신축이 확정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세워진 경복궁이 3년 만에 버림을 받았다. 1398년 왕자의 난으로 피바람이 분 뒤 정종이 개성의 수창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2년 뒤 그곳에서 왕자의 난이 또 터졌다. 개성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새로운 왕 태종은 수창궁에 머물기가 거북했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69] 정치인의 변신

[차현진의 돈과 세상] [69] 정치인의 변신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5.04 00:00 정책은 정치와 다르다지만, 모든 정책에는 정치색이 묻어있다. 통화정책은 예외다. 재정정책에 비해서 정치 중립적이라서 전문성이 강조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차기 정부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거꾸로 생각했다. 통화정책에서는 당파성을 감추지 않았다. 금리가 낮아야 자신이 재선된다고 믿고, 자신의 경제보좌관 아서 번즈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저금리를 요구했다.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게 패한 이유가 연준의 금리 인상 때문이었음을 상기시켰다. 재정정책에서는 그 반대로 탕평책을 썼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될 때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