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99

[차현진의 돈과 세상] [68] ‘넘사벽’ 비어트리스

[차현진의 돈과 세상] [68] ‘넘사벽’ 비어트리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4.27 00:00 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은 찾기 어렵다. 아무리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도 무언가 하나쯤은 아쉬운 것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단테가 평생 짝사랑한 베아트리체는 감히 넘볼 수 없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24세에 요절했다. 영국에도 같은 이름의 비어트리스가 있었다. 그녀는 집안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사교적이며 거기에 교양과 지식까지 넘쳤다. 그녀를 만나 본 총각들은 절망감에 빠졌다. 대화 도중에 뿜어져 나오는 그녀의 우아함과 총명함 앞에서 ‘넘사벽’, 그러니까 감히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을 느꼈다. 그녀는 웬만한 남자들이 눈에 차지 않았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67] 마음 부자가 진짜 부자

[차현진의 돈과 세상] [67] 마음 부자가 진짜 부자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4.20 00:00 금문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공학적으로도 대단하다. 바람과 물살이 엄청 빠르고, 지진이 잦다는 불리한 자연환경을 다 극복했다. 태평양을 오가는 거대한 상선과 군함을 모두 통과시켜야 한다는 제약 조건도 만족시켰다. 착공한 지 4년 만에 완공한 것은 더욱 대단하다. 공사보다도 자금을 구하는 것이 훨씬 힘들었다. 대공황이 한창일 때라 정부도, 민간도 나서지 않았다. 사업이 거의 결렬될 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나섰다. 3500만달러의 채권 발행 전액을 인수한 덕분에 간신히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때 채권 전액을 인수한 아마데오 지아니니는 이탈리아 이민 2세다. 그는, 모..

[차현진의 돈과 세상] [66] 영원한 우방은 없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66] 영원한 우방은 없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4.13 00:00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우방은 없다. ‘깐부’가 되어 이익을 나누는 것은 잠깐이고, 상황이 달라지면 갈라선다. 19세기 말 소련과 일본이 그랬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요동반도를 차지하자 러시아가 훼방을 놓았다.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와 편을 먹고 일본을 향해 요동반도를 반환하라고 압박했다(3국 간섭). 이를 갈면서 땅을 돌려준 일본은 10년 뒤인 1904년 러시아와 전쟁으로 치달았다. 5년 뒤 갑자기 사이가 좋아졌다. 일본이 꼬리를 낮춘 것이다.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일본의 독주를 막으려고 자기 땅 연해주에 미국을 불러들이려고 했다. 그것은 일본의 만주 진출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

[차현진의 돈과 세상] [65] 은행원의 뚝심

[차현진의 돈과 세상] [65] 은행원의 뚝심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4.06 00:00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는 풍운아 중 풍운아다. 사생아로 태어나 남의 집에서 자랐으며, 10대 초반에는 남에게 속아 미국에서 노예 생활까지 했다. 간신히 탈출한 다카하시는 일본으로 귀국해 당시 대장성 고문이던 영국인 알렉산더 샨드의 통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를 도와 일본은행법을 만들었다. 자기가 만든 법률에 따라 일본은행 지점장이 된 뒤 나중에 총재가 되었다. 나중에는 재무장관과 총리까지 올랐다.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도 비슷하다. 그는 카리브해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나 술집 점원으로 자랐다. 이후 미국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헌법에 따라 초대 재무장..

[차현진의 돈과 세상] [64] 화폐의 기본은 신뢰

[차현진의 돈과 세상] [64] 화폐의 기본은 신뢰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3.30 00:00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도 자기가 피해자인 듯 억지를 부린다. 일본도 그랬다. 동학농민운동의 진압을 위해 조선이 청나라에게 지원병을 요청하자 일본이 펄펄 뛰었다. 톈진조약이 묵살되었다면서 조선이 원치 않는데도 파병했다. 청일전쟁(1894년)이 시작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37년 베이징 외곽의 일본 관동군 부대에서 병사가 실종되자 일본은 그것을 중국의 도발로 단정했다. 그리고 베이징 시내를 향해 진격했다.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이다. 하지만 그 병사는 멀쩡했다. 이쯤 되자 중국이 각성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중단하고 손을 잡았다. 마오쩌둥이 이끌던 공산당 홍군이 국민당 휘하의..

[차현진의 돈과 세상] [63] 런던보다 8.5시간 빠른 ‘서울시(時)’

[차현진의 돈과 세상] [63] 런던보다 8.5시간 빠른 ‘서울시(時)’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3.23 00:00 말이 제아무리 빨리 달려봐야 해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말을 타던 시절에는 여행 중에 시차증(jet lag)이 없었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몽골제국은 아시아가 낮일 때 유럽이 밤이라는 사실을 꿈도 꾸지 못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알려진 뒤에도 한동안은 지역별 시간 차를 느끼지 못했다.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은 1804년 증기기관차가 등장한 뒤다. 열차 운행을 위해서 모든 기차역의 시곗바늘을 일치시키자니 같은 시각에 지역마다 태양 위치가 달랐다. 결국 기차 회사들이 앞장서서 지역별로 시각 차를 두었다. 특별한 원칙은 없었다. 뉴욕과 워싱턴DC..

[차현진의 돈과 세상] [62] 공산혁명과 맞바꾼 철도 건설

[차현진의 돈과 세상] [62] 공산혁명과 맞바꾼 철도 건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3.16 00:00 냉탕과 온탕에 몸 담그기를 반복하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국가도 그렇다. 19세기의 제정 러시아는 공포정치와 자유주의를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공산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나폴레옹이 뿌려놓은 법치주의와 시민 평등사상이 러시아에도 밀어닥쳤다. 니콜라이 1세는 러시아의 군주제도가 붕괴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구체제를 수호하는 ‘유럽의 헌병’임을 자처하고 공포정치로 일관했다. 그 아들 알렉산드르 2세는 정반대였다. 병역 부담을 줄이고 검열을 폐지했으며 러시아의 근대화를 위해서 농노까지 해방했다. 미국보다 빨랐다. 그러자 기득권을 빼앗긴 귀족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런데 자유주의자들까지 ..

[차현진의 돈과 세상] [61] 방향타의 중요성

[차현진의 돈과 세상] [61] 방향타의 중요성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3.09 00:00 전기차의 장점 중 하나는 회전 반경이 작다는 것이다. 엔진의 폭발력을 전달하는 구동축이 없어도 되기 때문에 배터리에서 흘러나온 전기가 네 바퀴에 곧장 전달된다. 유턴과 주차가 쉬운 이유다. 운송 수단은 회전 반경이 작을수록 유리하다. 노예들이 노를 젓던 로마 시대의 갤리선은 회전 반경이 아주 컸다. 맞바람이 불면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15세기 후반 ‘방향타’가 발명되었다. 방향타, 즉 배꼬리에 붙은 널빤지를 움직이면 큰 배도 쉽게 방향을 튼다. 적도 밑에서 불어오는 강한 무역풍도 쉽게 뚫을 수 있다. 방향타를 단 포르투갈의 배가 아프리카 대륙 남쪽까지 단숨에 내려갔다. 대항해..

[차현진의 돈과 세상] [60] 아령과 요령

[차현진의 돈과 세상] [60] 아령과 요령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3.02 00:00 당나라와 송나라 때 뛰어난 문장가 여덟 명을 당송팔대가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소순·소식·소철 삼부자를 삼소(三蘇)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삼소에게 맞먹는 사람을 찾는다면, 단연 변씨삼절(卞氏三絶)이다. 수원 출신인 변영만, 변영태, 변영로 세 형제다. 막내인 변영로는 시조 ‘논개’를 쓴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기자였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 “세계를 제패한 두 다리”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일장기가 붙은 상반신을 없앴다. 다리만 찍힌 사진을 본 조선총독부는 사상이 불순하다며 그를 해고시켰다. 맏형 변영만의 항일 활동은 더 적극적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변호하려다가 제지..

[차현진의 돈과 세상] [59] 대통령과 자문 기구

[차현진의 돈과 세상] [59] 대통령과 자문 기구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2.02.23 00:00 보름 뒤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3월에 대통령을 뽑는 것은 62년 만이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이 3·15 부정선거다. 야당의 조병옥 후보가 선거 직전 갑자기 타계한 가운데 온갖 부정까지 더해져서 이승만 후보가 득표율 100%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4·19 혁명과 함께 무효화되고 그해 8월 재선거를 치렀다. 새로운 헌법에 따라 윤보선 후보가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간접선거였다. 2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 적도 있다.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것 역시 간접선거라서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1981년 치른 제12대 대통령 선거였다. 유신헌법에 따라 이미 대통령직에 있던 전두환 후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