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334

정월 대보름 달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인간에게 달만큼 친근하고 푸근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달만큼 변함없이 꾸준하게 인간에게 호감을 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이처럼 달은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때는 세상 무엇보다도 실용적인 개념으로 인간에게 접근한다. 사람들은 달을 보고 한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하고 설계하였던 것이다. 특히 한해의 첫 달인 정월하고도 보름에 뜨는 달을 특별히 대보름이라 부르며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곤 하였다. 이 대보름을 보며 모든 재앙이 물러나고, 풍년이 들 것을 기원하였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정월 대보름달을 보며 바랐던 것도 별 다를 게 없었다. ◈ 정월 대보름달(正月十五日夜月) 歲熟人心樂(세숙인심낙) : 한해가 익으니..

이른 봄 풍광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 중 2월에 있는 절기(節氣)는 입춘(立春)과 우수(雨水)다. 이 두 절기(節氣)는 계절로는 겨울에 속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봄의 시작이라고 칭하면서 사실상 봄으로 간주하곤 한다. 이는 삭막한 겨울이 하루 빨리 가고 화사한 봄이 조금이라도 더 이르게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듯 이른 봄 2월은 겨울과의 작별은 서둘러 끝내고 새봄맞이에 들뜬 설렘의 시간이다. 설레는 마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서 솟아나는 것이니. 갓 돋아난 파란 새싹을 보고 곧 펼쳐질 꽃 잔치를 떠올리는 것이야말로 이른 봄 설렘의 진수가 아니겠는가? 당(唐)의 시인 양거원(楊巨源)의 눈에도 이른 봄의 풍광은 다를 바 없었다. ◈ 장안성 동쪽 교외의 이른 봄(城東早春..

봄의 감각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사람들은 봄이 왔음을 어떻게 감지할까? 달력을 보고 안다고 하는 것은 너무 멋이 없다. 파란 풀이나 붉은 꽃을 보고 알거나, 얼음과 눈이 녹아 흐르는 소리를 듣고 알거나 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가 아니라 감성적으로 봄의 도래를 알아채는 것이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봄에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 잡시삼수3(雜詩三首3) 已見寒梅發(이견한매발) : 겨울매화 핀 모습 보이기도 하고 復聞啼鳥聲(복문제조성) :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기도 하네 愁心視春草(수심시춘초) : 시름 잠긴 마음으로 봄풀을 바라보노라니 畏向玉階生(외향옥계생) : 옥 같은 섬돌 향해 자라날까 두렵다네 ※ 시인에게 봄은 우선 눈으로 왔다. 겨울 매화가 활짝 핀 ..

봄밤의 피리소리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누구나 봄을 기다리는 것은 따뜻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광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봄도 함께 할 님이 없거나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고통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화창하게 맑은 봄날,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님 생각이 절로 나게 되어 있다. 봄의 낮이 꽃이라면, 밤은 향기거나 노랫소리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님 생각을 간절하게 하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봄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타향에서 봄밤의 피리 소리를 듣고 고향을 떠올리는 나그네의 심사(心思)를 운치 있게 그려내고 있다. ◈ 봄날 밤에 낙양에서 피리소리를 들으며(春夜洛城聞笛) 誰家玉笛暗飛聲(수가옥적암비성) : 어느 집에선가 은은히 날아드는 옥피리 소리 散入..

봄비 오는 날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봄은 그 자체로 감각의 보고(寶庫)이다. 보이는 것은 눈을 황홀하게 하고, 들리는 것은 귀를 즐겁게 하고, 닿는 것은 살을 전율케 한다. 화창한 날은 화창한 대로 좋고, 비오는 날은 비오는 대로 좋다. 상화(賞花)니 답청(踏靑)이니 하는 봄의 의식은 화창한 날의 몫이지만, 춘사(春思)는 아무래도 비 오는 날의 몫이다. 화사함에 촉촉함을 더하는 것이 봄비요, 새싹을 틔고 꽃을 피워 봄을 성숙하게 하는 것도 봄비요, 꽃잎을 떨구어 봄을 보내는 것도 봄비 아니던가 그래서 봄비는 외양의 감각을 자극하기보다는 내면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봄의 연주자인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은 그 비운(悲運)의 운명만큼이나 아련한, 봄비 오는 날의 춘사(春思)를 감각적으로 읊..

어머니의 봄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봄은 소생의 계절이요, 젊음의 계절이다. 그런 만큼 봄은 젊은이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는 봄을 타는 것조차도 젊은이들의 몫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봄을 노래한 시들 대부분은 젊은이들의 사랑과 외로움에 관한 것들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들을 다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애틋한 모정(母情)을 읊은 시들은 봄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당(唐)의 시인 맹교(孟郊)가 봄과 모정(母情)을 연계시킨 시를 쓴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 나그네의 노래(游子吟) 慈母手中線(자모수중선) ; 인자한 어머니 손안의 실은 游子身上衣(유자신상의) ; 떠도는 신세가 될 자식의 몸에 걸칠 옷이 된다네 臨行..

춘사(春思)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세상에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것 중에 봄만한 것이 또 있을까? 사연이야 제각각일 수 있지만 기다리는 마음만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만큼 사연도 많고 걱정도 많은 것이 봄이다. 기다리던 봄이 왔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봄 자체야 싫을 리 없지만 문제는 춘사(春思)이다. 그 대상이 고향이건 친구건 님이건간에 춘사(春思)는 화창한 봄날이면 여지없이 도지곤 하는 것이다. 당(唐)의 시인 가지(賈至)에게 춘사(春思)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춘사(春思) 草色靑靑柳色黃(초색청청유색황) : 풀빛 파랗고 버들잎 노랗고 桃花歷亂李花香(도화역란이화향) : 복숭아꽃 어지러이 피고 오얏꽃 향기로워라 東風不爲吹愁去(동풍불위취수거) : 봄바람은 시름을 불어 날리지 못하고 ..

술과 꽃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봄의 주인공은 뭐니뭐니 해도 꽃이다. 들이고 산이고 봄은 온통 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봄꽃들을 보면서 무척 아름답다고 여긴다. 아름다움이란 사람들이 느끼는 주관적 느낌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느낌의 메카니즘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도대체 봄꽃의 무엇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일까? 생김새, 빛깔, 냄새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지고, 여기에 봄이라는 기후적, 문화적 특성이 가미되어서 봄꽃의 아름다움은 형성된다고 말한다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 아마도 이유는 자연스러움이 빠져서일 것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봄꽃만큼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바로 이 점이 봄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진짜 이유일 지도..

봄 계수나무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봄이 무르익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은 세상의 어떤 화가도 흉내 내지 못할 한 폭의 그림이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의 진수를 선사하는 봄꽃이지만, 막상 지고 나면 그 허탈감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그리 쉽게 질 거면 차라리 피지나 말라고 푸념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그런데 이러한 봄꽃에 대한 푸념은 사람들의 몫만은 아닌 듯하다. 봄에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은 계수나무는 봄꽃에 대해, 사람들과는 다른 푸념을 재치 있게 늘어놓았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의 시이다. ◈ 춘계문답(春桂問答 2) 問春桂(문춘계) : 봄 계수나무에게 묻기를 桃李正芳華(도리정방화) : 복숭아와 오얏나무 이제 막 향기로운 꽃 피워 年光隨處滿(연광수처만) : 봄꽃이 곳곳에 가..

봄을 보내며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고통도 흐르는 세월에게는 그저 무게가 전혀 다르지 않은 승객일 뿐이다. 아름답고 온화한 봄은 사람들에게는 축복이지만 세월에게는 그저 하나의 손님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기실 무심한 세월에 대한 원망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초목의 이파리가 연록에서 진초록으로 바뀌고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봄이 가는 것을 느낀다. 버드나무는 여니 초목과는 달리 꽃 아닌 솜을 피우고 이 솜은 땅에 떨어지는 대신 하늘을 날아다닌다. 물론 꽃을 피우고 꽃이 지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버들 솜이 날리는 것을 보고 봄이 감을 느끼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버들 솜이 날리는 것을 보고 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