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334

설니홍조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는 것은 생명체의 숙명이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자신은 죽음과 무관한 듯이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가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知人)들이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운명에 대해, 또 인생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곤 한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사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삶은 삶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의미가 있다고 위안을 하지만, 아무래도 인생의 허무함을 완전히 달랠 수는 없다. 이러한 인생무상(人生無常)은 자고로 시의 주된 테마였었고, 송(宋)의 대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남긴 시에도 나타난다. 아우 소철(蘇轍)의 시..

춘설 (春雪)

김태봉교수의 김태봉 신춘(新春)이나 신년(新年)이란 말에는 새로운 시작이나 출발의 뜻이 내포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새로운 시작이나 출발이 있을 수 있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 것일까? 모든 사물은 존재하는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해간다. 그러나 시간 자체는 그저 흐를 뿐 시작이니 출발이니 하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시간에 ‘새롭다(新)’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처럼 새해니 새봄이니 하는 말은 그저 사람이 오랜 관습 속에서 편의상 하는 말버릇에 불과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고 그렇게 느낀다면, 이 또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唐)의 시인 한유(韓愈)가 새해를 맞이하여 느낀 소회는 참으로 감각적이다. ◈ 봄눈..

산중설야(山中雪夜)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적막강산(寂寞江山)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아마도 눈 덮인 겨울 산일 것이다. 도회지에 조밀하게 모여 사는 요즘 사람들이 적막함을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 밀폐된 공간에서 방음(防音)으로 조용한 것은 적막(寂寞)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적막(寂寞)함에는 개방된 공간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 외에 인간의 번다한 모습도 보이지 않아야 된다. 자연조차도 평소에 분주해 보이던 모습이 감춰지면 적막감(寂寞感)은 절정에 이르는데 눈 덮인 겨울 산이 바로 그 모습이다. 고려 말의 시인 이제현(李齊賢)은 이러한 적막(寂寞)을 제대로 맛보는 복을 누렸다. ◈ 산속 눈 내리는 밤(山中雪夜) 紙被生寒佛燈暗(지피생한불등암) 종이 이불에 한기 돌고, 불등은..

세모에 그리운 사람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이중과세(二重過歲) 논란에도 불구하고 음력과 양력으로 해를 보내고 맞이하기 때문에 세모(歲暮)가 두 달 남짓 되기도 한다. 자신의 나이가 많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양력으로 새해가 되었음에도 음력 핑계를 대며 아직 나이를 먹지 않았다고 임시방편의 위안을 갖기도 한다. 양력으로 1월 하순이지만 음력으로는 여전히 세모(歲暮)이다. 해(歲)라는 것은 사람이 정한 세월의 단위에 불과하지만, 한 해가 바뀌는 연말연시(年末年始)에는 유독 세월의 흐름이 눈에 보이는 듯하고, 환승역에서 열차를 갈아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젊어서는 느끼지 못하던 세월의 무게가 새삼 실감으로 다가오면서,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지인(知人)들이 문득 그리워지곤 한다. 조선 초기의 정치가였던 삼봉(三峰) 정도전(鄭..

한겨울에 봄을 묻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연일 강추위가 맹위(猛威)를 떨친다. 잦은 폭설에 산이고 들이고 온통 눈을 뒤집어썼다.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겨울에 끝이 있기는 한 것일까? 봄은 도대체 언제나 올까? 오기는 오는 것일까? 그러나 절망할 일이 아니다. 세월이 약이라서가 아니다.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눈 속에 묻힌 채로 피어난 꽃 한 송이 때문이다. 송(宋)의 시인 왕안석(王安石)은 한 겨울 담장 모퉁이에서 뜻하지 않은 만남을 하고서, 그에게 봄을 물었다 ◈ 매화(梅花) 墻角數枝梅(장각수지매) : 담장 모퉁이에 핀 몇 가지 매화꽃이여 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피었구나 遙知不是雪(요지불시설) : 먼 곳에서도 눈이 아님을 알겠으니 爲有暗香來(위유암향래) : 그윽한 매화 향기..

자존심(自尊心) 네 가지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모든 사물은 존재하는 순간부터 본연의 모습에 대한 훼손을 당하기 시작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있는 대로, 없는 것은 없는 대로 자신의 본 모습을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것이 외적인 것이든 내적인 것이든 상관없다. 과연 나의 본 모습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있다면 나의 의지로 그것을 지킬 수 있을까?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인류 역사에 등장한 많은 가르침들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마음먹기 나름이요 가치관의 문제이겠지만, 자신의 본 모습을 스스로 설정하고 이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을 존재의 이유로 여기는 삶들이, 멋있고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오동은 ..

입춘우성(立春偶成)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계절은 어김이 없다. 좀처럼 사그라질 것 같지 않은, 혹한(酷寒)과 폭설(暴雪)로 무장한 동장군(冬將軍)의 위세도 절기(節氣)가 바뀌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야 한다. 양력으로 2월 초에 맞는 24절기(節氣)의 첫 절기(節氣)인 입춘(立春)이야말로 동장군(冬將軍)에게는 숙명적인 천적(天敵)인 셈이다. 대지의 전장(戰場)을 거침없이 내닫던 동장군(冬將軍)은 조물주(造物主)가 춘(春) 자(字)가 새겨진 표지(標識)를 집어 세운(立) 순간부터는 퇴각(退却)을 시작하여야 한다. 이처럼 입춘(立春)은 봄(春)의 표지(標識)를 세운다(立)는 뜻이다. 조물주(造物主)의 지시에 따라 대지는 새로운 주인공을 맞아들인다. 눈과 추위가 겨울 대지의 주인공이었다면, 봄의 주인공은 풀과 꽃이다...

이월의 버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음력 2월은 춘삼월(春三月)의 한 가운데에 해당한다. 이때쯤이면 봄은 초입을 지나 정점으로 내닫는다. 물을 잔뜩 머금은 버들가지는 더 이상 봄을 견디지 못하고 강아지 털처럼 보송보송한 버들개지를 피운다. 버드나무는 흔히 물가에서 자라는데, 그 덕에 봄의 혜택을 가장 먼저 맛보는 특전(特典)을 누린다. 꽁꽁 얼었던 강물이 녹아 다시 흐름을 시작하면, 그 물은 강 언덕으로 스며들어 언덕에 대기하고 있던 버드나무의 뿌리와 반갑게 해후(邂逅)한다. 이렇게 피어난 버들개지는 겨울의 메마른 버드나무 가지에 봄의 촉촉함과 따스함을 머금고 사람 앞에 나타난다. 당(唐)의 여류시인(女流詩人) 설도(薛濤)가 그리고 있는 버들개지도 이러한 것이었다. ◈ 버들개지를 읊다 二月楊花輕復微(이월양화경..

봄은 왔건만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날짜로는 분명 봄이다. 그러나 느낌으로는 봄이 아니다. 날이 여전히 추워서도 그렇고, 뒷산 눈이 녹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사람의 관념상 도무지 봄 같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꽃이며, 풀이며, 새 같은 것들이 없다면, 사람들은 봄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초목이 무성한 땅에 살다가 졸지에 풀 한포기가 아쉬운 삭막한 곳으로 가서 살게 된 사람에게 봄이 과연 느껴질까 그런 사람에게는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것이 초당(初唐)의 시인 동방규의 외침이다. ◈ 왕소군의 원망(昭君怨)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흉노 땅엔 꽃과 풀이 없어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

강물보다 긴 것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세상 강(江) 이름 중에 싱겁기로는 아마도 중국의 장강(長江)이 으뜸일 것이다. 나일 강, 아마존 강에 이어 세계 3위의 길이를 자랑하는 이 강은 6,300킬로미터의 여정을 거쳐 바다에 이르니, 과연 길기는 길다. 그렇기로서니 이름까지 긴 강(長江)이라고 할 것까지야 있을까 이렇게 싱거운 이름을 가진 장강(長江)보다도 더 긴 것이 있으니, 사람 마음속의 정이다. 하고 많은 정 중에서도 애틋한 이별의 정이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이별의 정이 얼마나 긴 지를 강에 비유해 말하고 있다. ◈ 금릉 술집에서 헤어지다(金陵酒肆留別) 風吹柳花滿店香(풍취류화만점향)봄바람 불어와 버들 꽃향기 객사에 가득하고 吳姬壓酒喚客嘗(오희압주환객상)이곳 오 땅의 아가씨들 술 걸러 손님에게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