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334

세상살이의 지혜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사람은 태어난 이상 나름의 생각대로 살아 나가야 한다.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고, 인간 세상의 질서를 추구하는 삶도 하나의 인생이며, 세속을 떠나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천수를 누리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다. 어느 것이 옳다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인 것이다. 크게 보면 현실에 대한 거리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현실참여형과 자연순응형으로 나뉘겠지만, 이 둘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하다.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자기가 처한 상황이라든가 나이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기도 하는데, 현실적으로 실의(失意)에 빠지거나 나이가 들면, 자연순응형으로 옮겨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唐) 초기의 은사(隱士)였던 왕적(王績)은 세상살이의 두 모습을 비교적으로 보여준다. ◈ ..

기러기 울어예는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기러기는 가을의 풍광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기러기는 보통은 가을 하늘을 떼지어 날아가는 시각적 풍광으로 다가오지만, 가끔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서 울음을 우는 청각적 이미지로도 각인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청각은 예민해지기 마련이고, 이것이 사람들의 감수성을 더욱 자극하기도 한다. 당(唐)의 시인 위응물(韋應物)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타향에서 기러기 소리를 듣고 고향 생각에 젖었다. ◈ 기러기 울음(聞雁) 故園渺何處(고원묘하처) 고향은 아득하여 어디인지 가물가물 歸思方悠哉(귀사방유재) 돌아가고 싶은 생각 바야흐로 끝이 없네 淮南秋雨夜(회남추우야) 회남 가을 비 내리는 밤 高齊聞雁來(고재문안래) 높은 저택에 기러기 날아오는 소리 들리네 ※ 사람들은 왜..

나만 홀로 어디에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음력으로 홀수 달에, 그달의 수와 겹친 날들은 모두 명절로 되어 있다. 1월1일은 설날, 3월3일은 삼짇날, 5월5일은 단오(端午), 7월7일은 칠석(七夕), 9월9일은 중양(重陽)이라 부른다. 이 중 가을에 속한 날은 중양(重陽) 하나뿐이다. 음력 9월은 가을 석 달 중 한가운데에 있는 중추(仲秋)라서 보통 이 무렵은 가을이 한창 무르익는 시기이다. 가을의 꽃인 국화가 활짝 피는 것도 이 때이고, 산수유(山茱萸)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것도 이 무렵이다. 그리고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에 의해 양(陽)이 겹치는 날을 길일(吉日)로 간주하여 명절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음력 9월9일 중양(重陽)에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높은 곳에 올라 시(詩)를 짓기도 하고, 산수유(山..

가을밤의 향연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사람들은 대부분 가을은 쓸쓸하다고 느낀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때문이든, 또 한 해가 저물어가기 때문이든, 이유를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쓸쓸한 느낌만은 어쩔 수 없다. 사실 쓸쓸한 것은 가을의 풍광일 것이다. 스산한 바람과, 뒹구는 낙엽, 부쩍 차가워진 날씨 등 가을의 풍광들이 쓸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풍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따라서 쓸쓸해지곤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눈을 돌려보면, 가을만이 가지고 있는 운치 있는 풍광들 또한 적지 않다. 당(唐)의 시인 이의(李義)는 가을밤 산속에서 가을 풍광의 진수(眞髓)를 만끽하였는데, 여기에 쓸쓸함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 가을 밤 동산에서(秋夜東山) 林臥避殘暑(임와피잔서) : 숲에 누워 늦더위..

낙엽과 비타민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가을은 풍성한 계절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것이야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이것보다도 더 풍성한 것은 사실 낙엽(落葉)이다. 산이고, 들이고, 강이고, 심지어는 집안 마당이고, 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낙엽은 수북이 쌓인다. 이처럼 차고 넘치는 낙엽을 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운치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물론 낙엽이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조선의 시인 김시습(金時習)에게 낙엽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 낙엽은 지고(葉落) 落葉不可掃(낙엽불가소)떨어지는 나뭇잎은 쓸어내면 안 되리 偏宜淸夜聞(편의청야문)오로지 맑은 밤에는 그 소리를 들어야만 하네 風來聲摵摵(풍래성색색)바람 불면 우수수 이리저리 날리고 月上影紛紛(월상영..

가을의 흥취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가을은 어쩔 수 없이 타향과 연계되곤 한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은 쓸쓸해지기 쉬운데, 타향에서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있다 보면, 쓸쓸함은 곱절로 커진다. 이 때 타향은 고향에서 멀수록 그리고 그곳이 험하고 외질수록 그 이질감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 역시 그의 고향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장강(長江)의 무산(巫山)에서 가을을 맞으면서 쓸쓸한 느낌을 주체할 수 없었다. ◈ 가을의 흥취(秋興) 玉露凋傷楓樹林(옥로조상풍수림) : 옥 같은 이슬 맞아 단풍나무 숲 시들어 상하고 巫山巫峽氣蕭森(무산무협기소삼) : 무산 무협에 기운이 쓸쓸하네 江間波浪兼天湧(강간파랑겸천용) : 강 사이 물결은 하늘에 닿도록 치솟고 塞上風雲接地陰(새상풍운접지..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죽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가난하지만 구차하지 않고(貧而不諂) 부자지만 교만하지 않다(富而不驕). 굳이 공자(孔子)의 말이 아니더라도, 참으로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사람이 가난하면 아무래도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다. 가난에 구애받지 않고 당당하고 나아가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는 삶의 태도는 훌륭하지만, 견지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부자가 되면, 돈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기 쉽고, 자신이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돈 많고 교만하지 않기 또한 보통 사람이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거나 모두가 돈에 구속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특히 가난하면서도 돈에 구애받지 않기가..

백발은 아름다워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모든 생명들은 나이가 들수록 생기를 차츰 잃어가는데, 그것이 어쩔 수 없이 겉모습에도 그대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주름이 늘어가고 백발이 되고 허리가 굽고 하는 것 등이 그런 것들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외형적 노화에 대해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화장이나 성형 등으로 그것을 가려보려 안달이지만, 결국 이런 노력들은 임시방편일 뿐 궁극적인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는 말이 이 경우처럼 절실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나이 들며 늙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늙는 모습을 미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그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지혜이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초겨울과 서리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비록 짧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봄 가을이 엄연히 있다. 봄이 왔다 싶었는데 이미 여름이고, 가을인가 싶었는데 이미 겨울이다. 세월의 덧없음은 늘 느끼는 것이지만, 봄 여름이 바뀌는 초여름과 가을 겨울이 바뀌는 초겨울에 특히 그 느낌이 절실하다. 초여름과 초겨울을 비교하면, 초겨울이 더 심할 듯한데, 이유는 한해가 지나가는 느낌이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초겨울에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이렇게 초겨울을 읊고 있다. ◈ 초겨울, 술은 익어가는데(冬初酒熟) 霜繁脆庭柳(상번취정류) : 서리는 자주 내려 뜰의 버들 잎 무르게 하고 風利剪池荷(풍리전지하) : 바람은 날카로와 연못의 연꽃을 잘라내네 月色曉彌苦(월색효미고) : 달빛은 새벽..

첫눈 내린 겨울 저녁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늦가을과 초겨울을 결정적으로 가르는 것은 아마도 눈일 것이다. 아침 들판 초목마다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를 보았을 때만해도, 사람들은 아직 겨울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러다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히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인정하고 만다. 사람들이 눈이 와야 겨울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지각이 이성보다는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눈이 오는 겨울이 오면, 사실상 한해는 마감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무렵에 사람들이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며 상념(想念)에 잠기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 또한 겨울 저녁 눈 오는 모습을 보며 상념(想念)에 잠기었다. ◈ 겨울 저녁 눈을 보며 호거사의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