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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즉석 덥혀지는 밥

[이규태 코너] 즉석 덥혀지는 밥 조선일보 입력 2005.05.12 18:49 중종 때 청백리 김정국(金正國)은 다섯 가지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실은 세 가지 찬만으로 밥을 먹었다. 누군가가 두 가지 반찬은 어디다 숨겨놓고 먹습니까 하고 언행이 일치하지 않음을 넌지시 물었다. “숨겨놓은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을 따름이지. 시장할 때 찾아 먹으니 시장이 한 반찬이요 반드시 식기 전에 먹으니 따뜻함이 다른 한 반찬일세” 했다. 이처럼 밥을 따뜻하게 먹는 온식(溫食)은 한국 식문화의 특색 가운데 하나로 한국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고 있다. 찬밥 신세라는 말도 있듯이 김이 오르는 밥,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뜨거운 국, 그리고 지글지글 끓는 찌개를 후후 불어 가며 먹어야 충족감이 드는 식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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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이규태코너]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조선일보 입력 2005.05.15 21:50 임진왜란 때 가토(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은 파죽지세로 함경도 연안을 타고 북진하고 있었다. 북으로 피란가던 왕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이 회령(會寧)에 가 있는데 그곳에서 귀양살이하던 아전 국경인(鞠景仁) 국세필(鞠世弼) 숙질이 흑심을 품고 반란, 두 왕자를 묶어 가토에게 넘겨주고 그 대가로 일본의 병사(兵使) 벼슬을 얻어 회령(會寧)과 경성(鏡城) 고을을 다스리고 있었다. 이에 분개한 평사(評事) 벼슬의 정문부(鄭文孚)는 의병의 깃발을 올려 100여명이 피를 나누어 마시고 이 숙질을 비롯, 일본측에 붙은 육진(六鎭) 반역자들을 모조리 잡아 처형했다. 이에 민심이 결집되어 의병수가 7000으로 불어났고 게을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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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성인식 유감

[이규태코너] 성인식 유감 조선일보 입력 2005.05.17 18:51 미국 샌타페이에 있는 뉴멕시코 박물관은 인디언 관계 문화재로 유명하다. 그중 인디언 풍속화의 대가 샤프가 그린 인디언의 성인식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한 나체의 젊은이가 등살을 꿰뚫은 막대에 새끼를 걸어 통나무를 끌고 비탈길을 오르는 모습이었다. 등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지옥에서의 죄업을 연상시키는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19세기 인디언 세계를 8년 동안 돌아다녔던 캐트린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만단족의 성인식에서도 등의 근육을 뚫고 가죽끈을 꿰어 그로 통나무를 끄는 고행이 관찰되고 있다. 등살을 꿰뚫는 인디언 성인식에 눈이 끌리는 것은, 삼한(三韓)시대의 성인식의 모습을 써 남긴 '위서(魏書)'와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東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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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두꺼비의 대이동

[이규태코너] 두꺼비의 대이동 조선일보 입력 2005.05.19 18:46 두꺼비 이미지는 동서양이 상반되고 있다. 유럽에서 두꺼비는 마녀의 상징으로 왼쪽 어깨나 유방에 매달고 다니기도 한다. 온몸이 독의 응어리로 그 두꺼비 독이 눈에 들어가면 눈이 머는 것으로 알았다. 마녀가 두꺼비로 둔갑하여 성안에 든다 하여 중세 유럽의 성주들은 '두꺼비 부대'라 하여 성 둘레에 두꺼비 잡아 죽이는 특전대를 배치하기도 했다. 중국 신화에서 10개의 태양 가운데 9개를 쏴 떨어뜨린 예(?)가 천벌을 받아 승천하지 못하자 서왕모(西王母)에게 빌어 승천 불사약(不死藥)을 구했는데 그의 아내 항아(姮娥)가 이를 훔쳐 먹고 달로 도망쳤다. 달에서 항아가 두꺼비로 변신해 양(陽)세계에 대치되는 음(陰)세계를 지배, 지상의 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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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동백꽃 나라

[이규태코너] 동백꽃 나라 조선일보 입력 2005.05.22 22:04 염병이 돌면 동백나무로 망치를 만들어 허리춤에 차고다니면 병귀(病鬼)가 보고 놀라 도망치는 것으로 알았다.그만큼 동백나무는 야물다. 동백나무 방망이로 나물 캐는 '가시내들' 엉덩이 치고 도망치곤 했는데 열매 많이 여는 동백나무로 치면 다산(多産)한다 해서 생겨난 놀이다. 바람기가 들면 은밀히 동백꽃잎 우려 마시고 동백기름 머리에 바르며 동백나무 빗으로 머리를 빗는다는 민요도 채집되고 있다. 한반도 남서해안에서 눈 속에도 핀다하여 동백은 속명(俗名)이요 원명은 산다(山茶)고 춘(椿)은 일본 호칭이며 중국에서는 산다 또는 바닷가에서 붉게 핀다 하여 해홍화(海紅花), 매화와 더불어 핀다하여 다매(茶梅)라고도 한다. 이 동백을 서양에서는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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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김옥균의 무덤

[이규태코너] 김옥균의 무덤 조선일보 입력 2005.05.24 18:44 한국사에서 개혁은 점진 개혁과 급진 개혁으로 대별되는데 급진 개혁의 경우 그 선각자의 말로들은 처참했다. 중종에게 사랑을 받았던 조광조(趙光祖)가 사약을 마셔야 했고 고종에게 사랑을 받았던 김옥균은 육시 효수(梟首)를 당했던 것이다. 상하이 일본인 경영의 동화양행에서 사살당한 김옥균의 시신은 잽싸게 활동한 일본인 오카모도(岡本柳之助)에 의해 일본으로의 송환이 준비되고 있었다. 오카모도는 한국침략의 첫발인 운양호(雲揚號) 포격사건때 구로다(黑田) 전권특사를 수행 공작했고 민황후(閔皇后) 시해때 직접 뛰어든 자다. 한데 갑신정변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청나라 정부의 입김으로 시신은 청국 군함 위정(威靖)호에 실려 인천 외해에서 한국배에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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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대마도의 날

[이규태코너] 대마도의 날 조선일보 입력 2005.05.26 18:40 일본 시마네현(島根縣)에서 다케시마(竹島=獨島)의 날을 제정 공포한 데 대응하여 마산시 의회는 대마도(對馬島)의 날을 제정 공포하기로 했다 한다. 세종 1년 마산포에서 출발, 한 달 남짓 지배했던 대마도 정벌의 발대일인 6월 17일을 공포일로 잡은 것이다. 일본 문헌 '조야군재(朝野群載)'에 보면 일본 땅 하카타(博多)에서 이키(壹岐)섬까지 하루가 걸리고 이키 섬에서 다시 하루 걸려야 대마도에 이르며 그나마도 강풍이 아니고는 이를 수 없다 했는데, 대마도에서 한국 땅 김해의 들판에 말들 노는 것이 보이고 부산포 앞바다의 돛배가 눈에 든다고 했다. 대마도(對馬島)의 섬이름도 삼한시대의 마한(馬韓)과 맞대하고 있다 해서 얻은 이름이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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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민다나오의 옛일병(日兵)

[이규태코너] 민다나오의 옛일병(日兵) 조선일보 입력 2005.05.29 21:15 십수 년 전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밀림에서 석기시대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종족이 발견되어 화제가 됐었다. 다사데족으로 불리는 이들은 토기나 소금을 모르고 지어 먹는 작물(作物)을 모르며 야생의 감자와 짐승 고기를 돌칼로 잘라 구워 먹으며 살았다. 수백 년 전 천재(天災)나 전쟁에서 고립돼 당시로는 25명이 한 동굴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던 이들은 동식물 등 자연과의 친화력이 별나 개구리보다 큰 동물은 잡아먹지 않고, 캔 감자도 작으면 다시 묻어 두고 자란 다음에 캐먹었다. 이처럼 자연을 낭비하지 않고 또 욕심 많게 채집하여 저장하는 버릇도 없이 자연의 일부로 동화해서 평온하게 살고 있었다고 당시 이들을 탐방한 '렉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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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마오리족의 코인사

[이규태 코너] 마오리족의 코인사 조선일보 입력 2005.05.31 18:34 | 수정 2005.05.31 21:07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 대만을 돌아보고 쓴 ‘대해사차록(臺海使?錄)’에 보면, 그 원주민들은 “아는 사람끼리 만나면 붙들고 콧등을 비비는 것으로 애경(愛敬)을 나타낸다”고 했다. 이어 대만 전사(戰士)들은 상관을 보면 콧등을 쳐들어 콧구멍을 보이는 것으로 복종을 나타낸다고도 했다. 이 같은 코인사(Nasengruss)는 멀리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남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 원주민들 간에 널리 번져 있는 인사법이다. 북방 에스키모나 아이누족들이 콧등을 손가락으로 비비는 인사도 이 코인사의 변형으로 보고 있다.이를 두고, 개들이 만나면 서로 코를 맞대고 냄새로 동질성을 확인하는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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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베델과 헐버트

[이규태 코너] 베델과 헐버트 조선일보 입력 2005.06.02 18:51 지난 100여년 동안 고국의 운명처럼 떠돌고 버림받아왔던 국보 경천사(敬天寺) 13층탑이 용산 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그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비원을 금판(金板)에 새겨 진공 상태로 보존한다 하니 눈물겹다. 이 석탑은 일본 입김이 거세었던 1907년 당시 세자이던 순종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여한 일본 궁내(宮內) 대신 다나카(田中光顯)가 욕심을 내어 밤중에 뜯어 일본으로 옮겨갔던 것을 한국을 사랑하는 두 외국인 언론인의 투쟁으로 일본이 되돌려 놓은 문화재다. 곧 문화재 외적(外的)인 정신가치가 부가된 석탑으로 그것을 되뇔 필요를 절감케 한다. 개성 인근 폐사에 서 있던 이 석탑은, 이 탑에 빌면 만병이 통치된다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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