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 고층 흙집

[이규태코너] 고층 흙집 조선일보 입력 2005.04.19 18:24 개화기 한국에 들른 서양사람들이 초가집들을 보고 '지하 토굴생활을 고스란히 지상에 올려놓고 풀숲으로 덮은 집'으로 표현, 원시성을 못 벗어난 주거생활을 비꼬았다. 지적한 대로 벽도 흙이요 방바닥도 흙이며 천장도 흙인지라 토굴을 올려놓은 집이라해도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벽돌을 만들 줄 몰라서 흙으로 건재를 삼은 것은 아니다. 삼국시대 경주의 집들은 벽돌 벽에 기와지붕들이었으며 거리에는 벽돌 보도가 깔려있었을 만큼 벽돌문화가 발달해 있었음은 당시 기록들이나 출토품들이 증명하고 있다. 한 시대의 문화가 영속되지 않은 데는 기후풍토에 알맞지 않기에 도태되었기 때문이며 한국의 벽돌도 그렇게 도태된 것일 뿐이다. 조선조 세종께 경복궁 경회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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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코끼리 소동

[이규태 코너] 코끼리 소동 조선일보 입력 2005.04.21 20:30 부처님이 수도하러 코끼리 타고 오르내렸다던 부다가야 정각산(正覺山)에는 지금도 순례자를 태우고 오르내리는 코끼리가 있었다. 부처님이 탔던 바로 그 백상(白象)의 모계로 핏줄을 이어내린 성스러운 코끼리라 하여 오가는 행인이 이 성상(聖象)을 만나면 땅에 엎드려 합장하던 것이 기억난다. 부처님을 잉태할 때 마야부인의 태몽이 백상(白象)인지라 불교국가들에서는 부처님을 상왕(象王)으로 호칭하기도 한다. 십수년 전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서 행사때마다 성체인 불치(佛齒)를 나르던 코끼리가 죽자 정부에서는 국장(國葬)을 치렀다. 동서고금에 전무후무한 동물 국장이 아닐 수 없다. 인도에서 이렇게 종교에 수용됐다면 중국에서는 인륜과 영합되었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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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이름만의 우주여행

[이규태코너] 이름만의 우주여행 조선일보 입력 2005.04.25 08:57 흥선대원군과 앙숙이던 민 황후의 단골무당으로 정동에 당집을 차린 이 당주(李堂主)라는 이가 있었다. 궁궐을 출입하는 어용무당에게만 당주라는 존칭이 붙게 마련인데 이 이 당주가 대원군을 저주하는 당굿을 한다는 말을 듣고 문인(門人) 한석진(韓奭鎭)으로 하여금 염탐을 시켰다. 당집에 숨어들어가 보니 정면에 '대원 대감 이하응(李昰應)'이라 이름자를 쓴 종이를 붙여놓고 왼손으로 활을 49번씩 쏘는데 쏠 때마다 "이하응을 이레 안에 아비지옥으로 끌어가시옵소서" 하고 주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물론 이당주는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 버렸지만 이름을 써붙이고 저주의 화살을 쏘면 그 이름의 주인공에게 유감(類感)하여 죽게 된다는 유감주술(類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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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서양인의 사후관(死後觀)

[이규태코너] 서양인의 사후관(死後觀) 조선일보 입력 2005.04.26 18:34 한국전에 참전했던 한 영국병사의 유회(遺灰)가 유언에 따라 영국군 격전지인 휴전선 인근 설마령에 뿌려졌다. 이역에서 죽은 많은 한국인이 고향땅에 묻어달라고 유언하는 것과 대조되어 동서 간 사고방식의 차이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사안이 아닐 수 없다. 헌종(憲宗) 정미년(1847) 프랑스의 배 한 척이 조난, 서해 고군산열도의 신지도(薪智島)에 표착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죽었는데 섬 둔덕 아무 데나 묻고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 지 수십년 후 그 묻힌 이의 후손인 한 프랑스인이 서해 섬들을 누빈 끝에 신지도에 구전돼 내린 양총(洋塚), 곧 서양인 무덤의 유골을 파 들고 갔다. 한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인지라 섬사람이 무덤을 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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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콩기름 자동차

[이규태코너] 콩기름 자동차 조선일보 입력 2005.04.28 18:54 기하학의 원조 피타고라스가 암살객에게 쫓겨 도망치는데 콩밭을 가로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콩을 보기만 해도 고함을 지르는ㅡ병적으로 싫어하는 콩인지라 콩밭에 드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했다. 대체로 서양사람들은 콩을 싫어한다. 콩깍지가 지옥의 문처럼 절로 열려 싫어한다느니, 콩은 원한 때문에 죽지 못한 응어리인지라 여인이 먹으면 그 원령(怨靈)을 잉태한다기도 하고, 마녀들이 타고 다니는 빗자루를 콩줄기를 엮어 만들었으며 유령을 그릴 때 콩나물처럼 일족(一足)으로 그리는 등 콩에 대한 인식이 극히 부정적이었다. 이 세상 어느 지역이건 기후 풍토와 지질에 알맞은 곡물이 있게 마련인데, 옛 고구려 영토를 포함한 한반도에 알맞은 곡물이 바로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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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산 낙지

[이규태코너] 산 낙지 조선일보 입력 2005.05.01 22:00 미국에서 상영 중인 한국영화 속의 산 낙지 먹는 장면이 '초폭력적'이라느니 '신잔혹주의', '낙지를 몰고 미국에 상륙했다'는 등 미국인의 괴기(怪奇)취미를 자극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영어권에서는 낙지나 문어를 지옥어(地獄魚)라 하여 이승의 고기로 보지 않았고, 화성에 사람이 산다면 그 모습으로 낙지를 연상했으리만큼 괴물시했다. 거기에 탐욕의 상징으로 등장시키는 것이 낙지였다. 2차대전 초 독일에 나붙은, 대영제국의 침략을 호소하는 포스터에 낙지가 등장했었다. 당시 영국 총리 처칠이 험상궂은 낙지가 되어 여덟 개의 낙지발을 유럽에서 멀리 아프리카, 인도 등 동양에까지 뻗치고 있는 그림이었다. 2차대전 발발과 더불어 일본이 동남아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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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학생의 교사평가제

[이규태 코너] 학생의 교사평가제 조선일보 입력 2005.05.03 18:34 김종서(金宗瑞)는 약관의 나이로 형조판서에 임명받았다. 16세에 등과(登科)한 그는 재기가 넘치고 기개가 칼날 같아 모두가 우러러보는 등 장래가 촉망되었다. 한데 영의정이던 황희(黃喜)만은 적당히 묵과할 작은 실수나 착오라도 드러나기만 하면 김종서를 불러들여 호되게 나무랐다. 때론 그의 몸종을 불러들여 대태(代笞), 곧 상전 대신 매를 맞게 하는가 하면 비서관이랄 구사(丘史)를 대신 옥에 가두기도 했다. 매사에 관용하기로 소문난 황 정승인지라 김종서도 무슨 저의가 있다고 아니꼽게 생각했고 다른 대신들도 젊은 대신의 기를 꺾으려 드는 노추(老醜)라 하여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루는 우의정이던 맹사성(孟思誠)이 "당대의 명대신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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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어린이 인성교육

[이규태 코너] 어린이 인성교육 조선일보 입력 2005.05.05 18:58 혼사를 중매하는 중신아비가 마을에 들르면 그 마을 서당 훈장을 찾아가 예비 신랑의 떡거리 행실을 은밀히 묻게 마련이다. 서당에서 ‘천자문’이나 ‘동몽선습’ 등 책을 한 권 떼면 책씻이 또는 책거리라하여 자모들이 떡을 빚어 나눠 먹게 했는데 이를 떡거리라했다. 이때 훈장은 떡 함지를 들여놓고 ‘나 지금 일이 있어 나갔다가 늦게 돌어올 텐데 당장 떡이 먹고 싶으면 먹되 하나 이상 가져가서는 안 되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참았다 먹으면 두 개씩 먹어도 된다’하고 나간다. 하고 싶은 일일수록 참는 인성 교육이 내포된 떡거리다. 참았다 두 개 먹는 아이는 소수요 앞날을 촉망하는 관행이 있었다. 옛 서당에서는 셈을 가르치면서도 인성과 연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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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아! 우리 어머니

[이규태코너] 아! 우리 어머니 조선일보 입력 2005.05.08 21:40 감탄 희열의 극치나 공포·위기 일촉즉발에 처했을 때 나도 모르게 부르짖는 절규를 '이머전시 크라이'라고 한다. 이 절규가 나라나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회교도들은 알라를 찾고 불교도들은 관세음보살을 찾는다. 찰스 다윈이 아프리카 원시림에 들어가면서 그 신비함에 어리둥절하여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소리가 오 마이 갓ㅡ곧 오 하느님이라고 하였듯 기독교도들의 이머전시 크라이는 하느님이다. 육당 최남선이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접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나온 첫소리가 '애고머니!'였다고 기행문에 적고 있다. 한국인은 남녀노소 없이 놀라고 반가울 때도 '어머' '어마나'를 외치는ㅡ이 세상 유일한 어머니 절규의 나라다. 곧 최후의 귀의와 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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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전주 전동성당

[이규태코너] 전주 전동성당 조선일보 입력 2005.05.10 18:37 전주(全州)의 상징인 풍남문(豊南門) 동남쪽에 '동양에서 아담하면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전동(殿洞) 성당을 근 100년 만에 보수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곳은 전라감영(全羅監營)의 감옥터로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탄생했던 현장이다. 한국천주교는 세계에 유례없이 전도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자생함으로써 세계 전도사(傳道史)에 이례(異例)를 남겼으며 이 소식을 들은 당시 교황 비오 6세는 감탄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초기 한국천주교는 양반 지식층에서 탄생했으며 양반을 구성하는 절대 조건인 조상의 제사를 두고 교리와의 갈등이 필연이었다. 천주교 교리와 제사가 위배되는지 여부를 두 차례나 물었으나 구베어 베이징 주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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