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 한산 세모시

[이규태코너] 한산 세모시 조선일보 입력 2005.06.28 19:14 손으로 짠 베 가운데 동서고금 통틀어 가장 가벼운 베가 한산 세모시일 것이다. 중국사에서 가장 몸이 여윈 미인으로 설요영(薛瑤英)을 치는데, '전증시주(全曾詩註)'에 보면 어찌나 나약한지 여느 옷감으로 지은 옷을 입고는 지탱할 수 없어 세상 안팎에 수소문하여 가벼운 옷감을 구했는데 선택된 것이 신라 옷감이었다. 당시 당나라는 서역과 교역, 동서 문물이 집산하고 있던 때였기에 신라에서 구했다는 옷감은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옷감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당나라 귀족 상류사회에선 신라 직물인 조하주(朝霞紬)와 어아주(魚牙紬)도 고급 옷감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침노을 같다 하여 조하주요, 빛깔이 뽀얗기에 어아주란 이름이 붙었을 것인데..

이규태 코너 2022.10.06

[이규태코너] 웃음 학회

[이규태코너] 웃음 학회 조선일보 입력 2005.06.30 18:56 옛 어른들은 집을 나가는 자녀에게 "그저 구불구불하여라"고 이르게 마련이었다. 여기 첫 구불은 사람들 만나면 눈높이를 낮추라는 굴신(屈身)의 구불이요 뒷구불은 웃음의 별칭인 구불약(九不藥)의 구불이다. 얼굴에 웃음을 띠면 사라진다는 아홉 가지 부정적 요인인 구불(九不)이란 불안(不安)-불신(不信)-불화(不和)-불손(不遜)-불편(不便)-불초(不肖)-불쾌(不快)-불경(不敬)-불공(不恭)으로, 대인관계에서 이 구불을 극소화해 주는 약이라 하여 구불약이다. 희비애로(喜悲哀怒) 감정의 표출을 부덕시했던 전통사회에서 웃음은 인격 손상의 요인이긴 했으나 그 긍정적 측면은 구불약처럼 은연중에 부추겨져 왔다. 법도 있는 집안에서 시집갈 딸 날받이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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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6618>점자(點字) 관광

[이규태코너]점자(點字) 관광 발행일 : 2005.07.04 / 여론/독자 A30 면 ▲ 종이신문보기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선입관을 가진 여느 사람들에게 점자 관광 하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한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방대한 점자 관광 안내서를 써낸 이가 있다. 수요가 있기에 써냈을 것이다. 감동을 받은 책 가운데 하나인 헬렌 켈러의 자서전 가운데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가 나이애가라 폭포에 갔을 때의 감동한 대목이 생각난다. 소용돌이 치는 물살이나 지축을 흔드는 폭음을 들을 수 없는데 어떻게 감동이 생기는가 하고 누군가가 물었다. 이에 “미국측 벼랑에 서서 공기가 진동하고 딛고 서 있는 대지가 동요하는 것을 느꼈을 때 심한 감동을 느꼈으며, 그것을 어떻게 문자로 표현해야 ..

이규태 코너 2022.10.06

[ 이규태코너 ]<6619>等身大 불상

[ 이규태코너 ]等身大 불상 발행일 : 2005.07.06 / 여론/독자 A34 면 ▲ 종이신문보기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대관식으로 유명하지만 역대 국왕의 묘소로도 알려져 있다. 이 사원에 안치된 관(棺) 뚜껑들에는 위를 보고 누워 있는 묻힌 이의 등신대 조각이 있으며 이를 미술용어로 지잔이라 한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기독교 문화권에서 이 관(棺) 조각은 관행으로, 각종 책에 실린 국왕이나 위인들의 초상은 바로 이 관 조각에서 따온 것이다. 프랑스 혁명 때 성난 민중이 교회에 난입, 역대 국왕의 묘들을 파괴하면서 이 관 위의 등신대 조각은 사라져 갔고 대신 교회에서 광장(廣場)으로, 와상(臥像)에서 등신대 입상(立像)이나 기마상(騎馬像)으로 변신하기에 이른다.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유럽의 국왕이나 위..

이규태 코너 2022.10.05

[ 이규태코너 ]<6620>한솥밥 정신

[ 이규태코너 ]한솥밥 정신 발행일 : 2005.07.08 / 여론/독자 A34 면 ▲ 종이신문보기 우리나라 혼례에 있어 하이라이트는 표주박잔에 신랑신부가 입을 번갈아대며 한 잔술 더불어 마시는 합근례(合근禮)다. 쿠데타를 음모했던 수양대군은 허리춤에 표주박잔 끼고 다니며 뜻을 같이하고 결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한 잔에 술을 부어 더불어 마심으로써 모사를 성사시켜 유명하다. 옛 관공서나 향촌마다 말(斗)들이 대포(大匏), 곧 큰 술잔이 있어 돌려 마심으로써 결속을 다지는 향음례(鄕飮禮)를 정기적으로 베풀었었다. 의리가 굳건한 사이를 대포지교(大匏之交)라 했음은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헌부의 대폿잔을 아란배(鵝卵杯), 예문관의 대폿잔을 장미배(薔薇杯)라 했듯이 미명이 붙어 있었고 그 관청의 대명사로도..

이규태 코너 2022.10.05

[이규태코너]<6621>사이비 푸아그라

[이규태코너]사이비 푸아그라 발행일 : 2005.07.11 / 여론/독자 A30 면 ▲ 종이신문보기 프랑스를 상징하는 고급요리 푸아그라는 서양문명을 대변하는 소재로 곧잘 거론돼온 요리외적(料理外的) 존재다. 거위 간에 튜브를 삽입하여 분무기로 옥수수가루를 강제 주입, 30그램의 간을 1000그램으로 부풀려 요리를 한다 해서 유럽사람의 잠재된 잔인성의 잔재로 거론돼 왔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한국의 개고기에 대해 비인도적인 잔학성을 고발했을 때 푸아그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침묵했다던 바로 그 요리다. 지금 프랑스에서 요리돼 소비되고 있는 푸아그라의 소재가 거위 간이 아니라 거의가 오리 간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거위냐 오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푸아그라를 즐기는 것이 맛 이전에 그들 잠재..

이규태 코너 2022.10.05

[이규태코너]<6622>成佛 로맨스

[이규태코너]成佛 로맨스 발행일 : 2005.07.13 / 여론/독자 A34 면 ▲ 종이신문보기 해인사 법보전의 불상(비로자나불)이 그 뱃속 기록으로 통일신라 말기 한 정승과 그의 연인의 성불(成佛)을 기원해 만들어진 사실을 알고 그 반쪽의 불상을 찾아냈다. 심지어 콧방울 너비까지 똑같은 쌍둥이 비로자나불을 같은 해인사에서 찾아내어, 저승에 가서까지 성불하여 사랑을 이으려는 신라 로맨스가 천 수백 년 만에 드러난 것이다.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대적 공간적 배경으로 미루어 진성여왕(眞聖女王)과 각간(角干) 벼슬의 위홍(魏弘)일 것이 확실하다. 윈저공(公)이 대영제국의 왕위를 버리고 서민과의 사랑을 선택해 세기의 사랑으로 기억된다면, 신라 진성여왕은 죽고 없는 연인을 위해 왕위를 버린, ..

이규태 코너 2022.10.05

[이규태코너]<6623>錦江수원 뜸봉샘

[이규태코너]錦江수원 뜸봉샘 발행일 : 2005.07.15 / 여론/독자 A38 면 ▲ 종이신문보기 1800년 들어 30년 단위로 신유(辛酉)·기해(己亥)·병인(丙寅) 세 차례의 천주교 대박해가 있었다. 팔도를 휩쓴 검거망을 피해 신도들은 남부여대하고 산속을 찾아들었다. 신도 가족 다섯 가구를 이끌고 소백산맥을 헤맸던 베드로 신대보(申大輔)의 경우를 본다. 눈이 내려 양식은 구할 수도, 품을 팔아 끼니를 이을 수도 없어 40여 식구와 말 한 마리는 고스란히 굶을 수밖에 없었다. ‘말은 나무밥통 바닥을 긁어 구멍을 내고 죽었다. 어린것들은 눈동자 돌릴 기운마저도 없어 멍하니 한곳만 노려보고들 있다. 어른들은 이토록 빠져나갈 길을 주지 않는 천주님이 너무 가혹하시다고 원망했다. ’ 당시 산속을 헤맸던 많은 ..

이규태 코너 2022.10.05

[ 이규태코너 ]<6624>유목민의 약속

[ 이규태코너 ]유목민의 약속 발행일 : 2005.07.18 / 여론/독자 A30 면 ▲ 종이신문보기 이란 중부도시 이스파한에 이르는 수만 리 길은 사막 복판으로 난 외길이다. 현지 고용의 기사가 졸음을 이기지 못 하는 것 같아 일행이 대신 운전하는 사이에 휘발유가 다하는 것을 몰랐다. ‘사막에서의 엔코는 죽음으로의 지름길’이라는 주유소의 간판 글이 생각난다. 기온이 급강하해 실제로 죽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드물게 오가는 차를 세워 기름을 얻었다. 떠나보내고 시동을 걸려고 하니 기름 얻느라 바쁘게 오가는 바람에 시동키를 떠나가버린 차에 놓아둔 것이다. 키 없이 시동이 가능하다 하여 지나가는 차들을 세워 손을 빌렸지만 전선을 난마처럼 흩어놓았을 뿐이었다. 공포 속에 밤을 새울 셈으로 웅크리고 있는데 누군..

이규태 코너 2022.10.05

[이규태코너]<6625>한복 입은 마리아

[이규태코너]한복 입은 마리아 발행일 : 2005.07.20 / 여론/독자 A34 면 ▲ 종이신문보기 예수 살았을 때 이스라엘 여성들의 옷차림은 어떠했을까. 다니엘 로브스의 ‘예수시대의 일상생활’에 보면 자루처럼 생긴 속옷 차림으로 살다가 외출하거나 예배를 볼 때 가운 같은 겉옷을 입는다. 그 가운 위에 띠를 두르고 면사포를 어깨까지 늘이고 나다녔다. 라파엘로의 성모상이나 마르티니의 ‘수태고지(受胎告知)’, 프란체스카의 ‘자비의 마리아’ 등을 보면 붉은 속옷에 푸른 겉옷을 걸치고 있는데 후세에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상징색으로 선택된 옷색이요, 예수 시절에는 물들이지 않은 양털이나 아마(亞麻)의 원색이었다. 마리아 신앙이 토착화하면서 나라에 따라 그 지역의 옷이나 체형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이..

이규태 코너 2022.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