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233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06> 신라 때 혜초 스님이 천축국에서 고향을 그리며 읊은 시

가는 편에 편지를 부치고자 하나 - 緘書參去便·함서참거편 달 밝은 밤에 고향 길 쳐다보니(月夜瞻鄕路·월야첨향로)/ 구름만 떠 나부끼며 돌아가네.(浮雲颯颯歸·부운립립귀)/ 가는 편에 편지를 부치고자 하나(緘書參去便·함서참거편)/ 바람은 듣지도 않고 급히 가네.(風急不聽廻·풍급불청회)/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는데(我國天岸北·아국천애북)/ 남의 나라 땅 서쪽 모퉁이에 와 있네.(他邦地角西·타방지각서)/ 남쪽은 따뜻하여 기러기 오지 않으니(日南無有雁·일남무유안)/ 누가 계림(고향)으로 날아가 소식 전해주리오.(誰爲向林飛·수위향림비) 위 시는 신라 때 혜초(慧超·704~787) 스님이 인도(천축국)에서 고향을 그리며 쓴 시 ‘月夜浮雲’(월야부운·달밤에 뜬 구름을 보며)’으로, 그의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05> 지리·관등이 나올 때 그 내용을 알아야 끊어 읽을 수 있다

태산은 왼쪽에 솟아 있어 용과 같고(泰山聳左爲龍·태산용좌위룡) 태산은 왼쪽에 솟아 있어 용과 같고, 화산은 오른쪽에 솟아 있어 호랑이 같고, 숭산은 앞에 솟아 있고, 회남의 여러 산은 (보다 앞에서) 두 번째 겹으로 솟아 있다. 泰山聳左爲龍, 華山聳右爲虎, 嵩爲前案, 淮南諸山爲第二重案.(태산용좌위룡, 화산용우위호, 숭위전안, 회남제산위제이중안.) 위 문장은 중국 태산과 화산, 숭산 위치를 알려주는 글로, 1959년 중국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펴낸 ‘廳雨叢談(청우총담)’을 참조했다. 태산은 중국 산동성 중부 태산 산맥의 주봉으로 높이 1532m이다. 중국의 5대 명산(五岳·오악)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며, 기원전 219년 진시황제를 시작으로 한나라 무제 등 많은 황제가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치렀다. 위 글..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04> 세상 풍파 생각하며 시 읊조린 고려 말 이집(李集)

지는 해에 기러기 울고 강 마을은 저무는데(雁聲落日江村晩·안성락일강촌만) 세상의 풍파는 가라앉았다 싶으면 다시 뜨는데(人世風波沒復浮·인세풍파몰부부)/ 이미 쉰 두 번의 봄가을을 보아왔다네.(已看五十二春秋·이간오십이춘추)/ 지는 해에 기러기 울고 강 마을은 저무는데(雁聲落日江村晩·안성락일강촌만)/ 한가롭게 새 시를 읊조리며 홀로 누각에 기대누나.(閒詠新詩獨倚樓·한영신시독기루) 고려 말 시인이자 학자인 둔촌(遁村) 이집(李集·1314~1387)의 시 ‘次牧隱先生見奇詩韻’(차목은선생견기시운·목은 선생 견기시의 운을 차운하여)로, 그의 문집 ‘둔촌유고(遁村遺稿)’에 있다. 목은 이색의 뛰어난 시를 보고 그 운자를 차운해 읊었다. 운자는 ‘尤(우)’ 운목(韻目)의 浮·秋·樓이다. 시인이 밝혔듯 52세에 위 시를 ..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03> 추석 밥상에 “세금 많다” 말 올리게 한 야족당 어숙권의 글

수탈이 동고(童고)보다도 가혹하구나 - 政又酷於童羖·정우혹어동고 잠부(潛夫·어무적의 자)는 김해에서 살았는데 농부가 매화나무를 도끼로 자르는 것을 보고 부(賦)를 지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세상에 아름다운 군자는 찾을 수가 없고/ 시대는 뱀·호랑이보다 무서운 가정(苛政)을 일삼는구나./ 알을 품고 있는 닭에까지 손을 뻗치니/ 수탈이 동고(童羖)보다도 가혹하구나. 魚潛夫家于金海, 見斫梅者, 乃作賦, 有曰: “世乏馨香之君子, 時務蛇虎之苛法. 慘已到於伏雌, 政又酷於童羖.(어잠부가우김해, 견작매자, 내작부, 유왈: ”세핍형향지군자, 시무사호지가법. 참이도어복자, 정우혹어동고) 위 글은 야족당(也足堂) 어숙권(魚叔權·?~?)의 글 ‘시인(詩人) 어무적(魚無迹)’으로 그의 수필집인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수록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02> 비가 쏟아지는 바닷가 풍경을 시로 읊은 이산해

소낙비가 배에 가득해 노 젓기 바빠지고(白雨滿船歸棹急·백우만선귀도급) 저녁 만조 밀려들어 모래사장은 잠겼는데(晩潮初長沒汀洲·만조초장몰정주)/ 섬들은 안개 속에 숨어 희미하네.(島嶼微茫霧未收·도서미망무미수)/ 소낙비가 배에 가득해 노 젓기 급하고(白雨滿船歸棹急·백우만선귀도급)/ 마을마다 문 닫은 콩 꽃이 핀 가을이네.(數村門掩豆花秋·수촌문엄두화추) 이산해(李山海·1538~1609)의 시 ‘卽事’(즉사·눈앞의 일)로 그의 문집인 ‘아계집(鵝溪集)’에 수록돼 있다. 본관이 한산(韓山·지금의 충청남도 서천)인 이산해는 조선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냈으며 북인(北人)의 영수였다.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李之菡)이 그의 작은아버지이다. 이산해는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워 24세 때인 15..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01> 중국 송나라 때 장강이 시어사가 된 이야기

높은 성적으로 시어사가 되었다(以高弟爲侍御史·이고제위시어사) (장강이) 어려서 삼공의 아들로서 경명행수로 효렴에 천거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고, 사도가 부르자 높은 성적으로 시어사가 되었다. (張綱)少以三公子經明行修擧孝廉, 不就; 司徒辟, 以高弟爲侍御史.((장강)소이삼공자경명행수거효렴, 불취; 사도벽, 이고제위시어사.) ‘후한서(後漢書)’에 위 문장이 수록돼 있다. 중국 송(宋)나라 때 관리이자 문학가인 장강(1083~1166)에 대한 언급이다. 장강은 태학(太學)에서 공부했으며, 장원급제자로 알려져 있다. 당시 장강의 아버지는 ‘三公’, 즉 송나라 3개의 최고위 직급인 태위(太尉)·사도(司徒)·사공(司空) 중 한 직급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 문장의 ‘經明行修’는 효렴(孝廉)의 과목이다. 한대(漢代)..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00>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한문소설 ‘강도몽유록(江都夢遊錄)’

- 啄之有鳥·탁지유오 시체를 쪼아 먹는 까마귀만 있고… 이런 와중에 江都의 참상은 더욱 심해 개울에 흐르는 것은 피요, 산에 쌓인 것은 백골이었다. 시체를 쪼아 먹는 까마귀만 있고 장사 지내줄 사람은 없었다. 而惟彼江都 魚肉尤甚 川流者血 山積者骨 啄之有烏 葬之無人 이유피강도 어육우심 천류자혈 산적자골 탁지유오 장지무인 위 문장은 작자 미상의 고전 한문소설로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강도몽유록(江都夢遊錄)’ 앞 부분이다. ‘강도몽유록’은 필사본 1책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사들에 의해 강도(江都·강화도)에서 죽은 여인의 원령(怨靈)들이 주인공의 꿈에 나타나, 조정 대신과 관리들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병자호란은 대청제국을 선포한 청 태종 홍타이지가 조선 정벌을 목표로 친정(親..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99> 수리산에 은거하며 처사로 생을 마감한 조선 중기 시인 이응희

무엇하러 높은 벼슬 원하겠는가? 초가집은 시내 물가에 있고(草屋臨溪水·초옥임계수)/ 사립문은 푸른 산과 마주했네.(柴門對翠微·시문대취미)/ 손님 오니 놀란 학 소리 들리고(客來聞鶴警·객래문학경)/ 장사꾼 오니 닭 나는 것 볼 수 있네.(商到看鷄飛·상도간계비)/ 국화 키우며 긴 여름 보내고(養菊消長夏·양국소장하)/ 호미로 채소밭 매며 저물녘 기다리네.(鋤葵待夕暉·서규대석휘)/ 자연에는 즐거운 일 많은데(林泉多樂事·임천다락사)/ 무엇하러 높은 벼슬 원하겠는가.(何必願金緋·하필원금비) 위 시는 조선 중기 시인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1579~1651)의 ‘閑情’(한정·한가한 마음)으로 그의 문집 ‘옥담시집’(玉潭詩集)에 있다. 그는 광해군 때 이이첨이 인목대비를 폐위하고자 꾀할 때 이를 만류하는 ‘백의항소..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98> 19세기 강 아무개 선비가 쓴 금강산 여행 일기

이윽고 올라가 멀리 조망하였지만 - 旣登遠臨憑眺·기등원임빙조 위에 팔담(八潭)이 있다고 하여 붙잡고 위로 오르는데 바위에 붙은 칡덩굴을 뚫고 가는 어려움과 위험은 비로봉에 오를 때보다 못하지 않았다. 이윽고 올라가 멀리 조망하였지만 자세하게 볼 수 없었던 것은 한스러운 일이었다. 또 비가 올 기색이 자못 긴박하여 급한 걸음으로 아래로 내려와 옥류동에 이르렀다. 上有八潭云, 故攀躋而上, 越巖穿藤其艱險, 不下於毘盧也. 旣登遠臨憑眺, 恨不能仔細領得也. 又雨色頗緊, 故急步下至玉流洞(상유팔담운, 고반제이상, 월암천등기간험, 불하어비로야. 기등원임빙조, 한불능자세령득야. 우우색파긴, 고급보하지옥류동) 위 문장은 호가 월와(月窩)로, 진주 강 씨로만 알려진 선비가 1841년 마흔여섯 나이로 금강산을 여행하면서 쓴 음..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97> 달밤에 홀로 차를 달여 마시며 시를 읊은 심상규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달밤에 홀로 차를 달여 마시며 시를 읊은 심상규 손에 든 한 잔 차는 죽어도 내려놓지 않는다네(到手旗槍死不降·도수기창사불강)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 입력 : 2022-08-21 18:52:20 … 배를 채울 문자는 사는 데 소용없고(撑腸文字生無用·탱장문자생무용)/ 손에 든 한 잔 차는 죽어도 내려놓지 않는다네.(到手旗槍死不降·도수기창사불강)/ 가득가득 채워 일곱 잔 마시니 한밤중인데(七椀盈盈當半夜·칠완영영당반야)/ 높은 밝은 달빛에 가을 강물 일렁이구나.(高攀明月湧秋江·고반명월용추강) 위 시는 심상규(沈象奎·1766~1838)의 시 ‘夜坐煎茶’(야좌전다·밤에 앉아 차를 달이네)로, 그의 문집인 ‘두실존고(斗室存稿)’ 권2에 수록돼 있다. 달밤에 홀로 앉아 차를 달여 마시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