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別曲 223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03] 飮食男女

"먹고 마시는 일, 그리고 남녀 관계는 사람의 큰 욕망이 머무는 곳(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이라는 말은 유가의 경전 '예기(禮記)'에 일찌감치 나온다. 이를 모티브로 만든 홍콩 영화 '음식남녀(飮食男女)'도 사람의 식욕(食慾)을 진지하게 다뤘다. 청동기 시대 중국에서는 도철(饕餮)이라는 문양이 크게 유행했다. 발이 세 개 달린 솥 정(鼎) 등에 고루 등장하는 이 문양의 괴물은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 이 괴물 이름은 식탐(食貪)의 대명사로 굳어진다. 요즘의 '총리'에 해당하는 옛 관직 명칭인 재상(宰相)의 유래도 제사 때 잡는 소와 양 등 제물(祭物)을 다루는 직책[宰]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먹는 음식에 관한 옛 중국의 관심과 주목은 매우 크고 깊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사..

차이나別曲 2020.08.2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02] 동맹(同盟)

사랑도 그렇고, 충성도 마찬가지다. 대개 굳은 맹세가 따른다. '맹세'는 맹서(盟誓)라는 한자 단어가 본딧말이다. 앞의 글자 맹(盟)이 흥미를 끈다. 본래 글자꼴은 그릇[皿]에 피가 담겨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이는 고대 제의(祭儀)와 관련이 있다. 옛 인류는 무엇인가를 숭배하거나 그로부터 계시를 얻기 위해 제사를 올렸다. 보통은 희생(犧牲)을 필요로 했다. 제물(祭物)로 올리는 소나 양, 돼지 등이다. '맹'은 그 희생의 피가 그릇에 담긴 형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또는 집단과 집단 사이의 약속에도 이런 이벤트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가장 일반적이었던 경우가 회맹(會盟)이다. 중국 춘추(春秋)시대 이후 여러 나라가 좀 더 크거나 강한 나라의 진영으로 합치고자 벌였던 모임이다. 보통은 삽혈(歃血)을 했..

차이나別曲 2020.08.14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01] 미국과 중국의 전운(戰雲)

"먹구름이 짓눌러 성은 곧 무너질 듯하고, 갑옷은 해가 나오자 번쩍거린다(黑雲壓城城欲摧, 甲光向日金鱗開)"는 시구가 있다. 당(唐)의 유명 시인 이하(李賀)의 작품이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전쟁터 분위기가 아주 생생하다. 전쟁터는 한자어로 보통 전장(戰場)이라 잘 적는다. 때로는 흙이 널리 깔린 개활지라는 뜻에서 사장(沙場)으로도 곧잘 표기한다. 변방에서 싸움이 자주 벌어져 강장(疆場)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현대 중국에서는 전지(戰地)라는 표현이 흔하다. 전쟁터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가장 그악한 싸움의 내용, 그 안에 담긴 다양한 곡절 때문에 숱한 회고(回顧)가 따른다. 중국의 옛 전쟁터는 아주 많다. 참담한 전쟁이 빗발 닥치듯 벌어졌기 때문이다. '홍구(鴻溝)'라는 단어도 그 하나다. 중국에서 유래..

차이나別曲 2020.08.07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00] 요령(要領)과 장궤(掌櫃)

요령(要領)과 협박(脅迫), 겸제(箝制)와 관건(關鍵), 요충(要衝)과 추기(樞機)….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뭘까. 우선 '요령'은 어원을 따지자면 허리[腰]와 목[領]이다. 사람을 공격할 때 치명적 결과를 빚는 이른바 급소(急所)다. '협박'은 겨드랑이나 갈빗대를 윽박지르는 행동이다. 역시 급소를 겨눈다. '겸제'는 입에 재갈 등을 물려 상대를 제어하는 행위다. '관건'은 문의 빗장에 해당하는 장치다. '요충'은 돌아가기 어려운 중요한 길목, '추기'는 문을 여닫는 데 꼭 필요한 문지도리다. 따라서 위 단어들에는 사물의 핵심이라는 뜻, 나아가 그로써 대상을 컨트롤하려는 의도까지 담겨 있다. 매우 전투적인 시선이다. 그렇듯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한자어에는 '싸움의 기술'이라는 맥락이 만만찮게 살아 숨 쉰..

차이나別曲 2020.08.02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9] 광란(狂瀾)

"발 바깥에서는 비가 추적추적(簾外雨潺潺)…"으로 시작하는 사(詞)가 있다. 남당(南唐)의 마지막 군주 이욱(李煜·937~978)의 작품이다. 쳐놓은 발 밖으로 들리는 빗소리를 적었다. 우리말 '잔잔하다'의 어원을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잔잔(潺潺)'은 물결이 조용한 모습, 비가 조용하게 내리는 소리 등의 새김이다. 순 우리말이라고 여겨지는 '천천히'도 한자 세계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천천(川川)'이다. 양웅(揚雄·BC53~AD18)의 문장에 등장한다. "큰 수레가 천천히 나아가네(大車川川)"라는 글귀다. 큰 하천이 유유히 흘러가는 데서 착안한 조어(造語)로 보인다. 이를 주석한 글은 '천천'을 "크고 둔중한 것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모양"이라고 풀었다. 따라서 '잔잔'과 '천천'은 모두..

차이나別曲 2020.08.02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8] 매우(梅雨)

매실 익는 계절에 내리는 비를 중국인들은 매우(梅雨)라고 적는다. 보통은 장강(長江) 중하류 지역에 6~7월경 내린다. 오랜 기간 짙은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려 일종의 장마로 간주한다. 줄곧 내리는 비 때문에 곰팡이가 핀다. 그래서 '곰팡이 비', 즉 매우(霉雨)로 칭할 때도 있다. 옛 중국인들이 적었던 비의 종류는 제법 풍부하다. 달콤한 이슬, 감로(甘露)에 비를 비유한 경우가 우선 눈에 띈다. 보배로운 이슬, 보로(寶露)도 그렇다. 그러나 마냥 좋지만은 않다. 벌판을 거세게 달리는 말처럼 땅을 뒤흔들 듯 내리는 소낙비는 취우(驟雨)다. 분우(盆雨)라고 적는 비도 있다. 물동이를 쏟아붓듯 내린다는 '경분대우(傾盆大雨)'의 준말이다. 방타(滂沱)는 비가 마구 쏟아지는 모양을 형용한 말이다. 역시 아주 큰비..

차이나別曲 2020.08.02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7] 관문(關門)

"그대에게 권하노니 술 한 잔 더 드시게, 서쪽으로 양관을 나가면 아는 이 없으리니(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라는 명구가 있다. 당나라 문인 왕유(王維·701~761)의 작품이다. 먼 곳으로 떠나는 지인에게 술 한 잔 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구 가운데에서는 절창(絶唱)으로 꼽힌다. 여기 나오는 양관(陽關)은 지금 중국 둔황(敦煌)에 있던 당나라의 서남쪽 경계다. 그 북쪽에 있던 옥문관(玉門關)과 함께 서역(西域)을 향해 나갔던 마지막 국경 관문(關門)이라 아주 유명하다. 이별의 정서를 다루는 문학작품에 곧잘 등장한다. 중국에는 관문이 참 많다. 유비(劉備)가 죽은 뒤 북벌에 나서는 제갈량(諸葛亮)이 자주 넘었던 검문관(劍門關), 북방 유목민의 침입 루트에 있던 안문관(雁門關), 만리장성의 동서쪽 ..

차이나別曲 2020.08.02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6] 동류

북송(北宋·960~1127) 때의 문인 소식(蘇軾)이 삼국(三國·220~280) 시절의 적벽(赤壁)을 회고한 문구가 있다. 시작이 이렇다. "큰 강이 동쪽으로 흘러, 물결이 천고의 영웅을 다 휩쓸고 지나갔다(大江東去, 浪淘盡, 千古風流人物)." 중국의 대부분 하천은 동쪽으로 흐른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지세(地勢) 때문이다. 이른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이다. 가장 서쪽에는 매우 높은 고원, 다음 단계는 산지(山地)가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진입하면서 드넓은 평원(平原)을 보인다. 세 단계의 사다리꼴 지형이 중국 땅의 특성이다. 따라서 물은 동류(東流)하기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인 남쪽의 장강(長江)과 북쪽의 황하(黃河)를 비롯해 대개의 하천 흐름이 그렇다. 따라서 '동류'라는 단어에는 중국인의 각..

차이나別曲 2020.08.02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5] 대륙의 홍수

중국에서 '옛날'을 지칭하는 한자 석(昔)의 본래 글꼴이 흥미롭다. 이 글자의 초기 모습에는 해와 물이 등장한다. 물에 잠긴 해, 또는 해가 떠있는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물의 모습이다. 나중 이 글자의 새김은 '옛날' '이전' 등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다. '옛날'을 지칭하며 중국인들이 잠재의식 속에 떠올렸던 이 해와 물은 뭘까. 해석이 조금 갈리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큰물, 즉 대규모 홍수(洪水)에 관한 기억이리라는 추정이다. 이 풀이가 맞는다면, 중국인의 '옛날'은 큰물로 인한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다. 실제 중국이라는 땅에는 아주 많은 재난이 닥쳤다. 그중에서 홍수는 가뭄에 못지않게 매우 빈번했던 자연재해다. 유력한 통계에 따르면, 홍수 피해는 기원전 1766년부터 기원후 1937년까지 3703..

차이나別曲 2020.08.02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4] '짐(朕)'이 부른 외로움

텔레비전 사극 등에서 왕조의 최고 권력자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짐(朕)이다. 이 글자의 유래를 찾다 보면 조짐(兆朕)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본래는 어떤 '틈새' 등을 가리키는 글자였기 때문에 '조짐'이라는 말로 발전했을 듯하다. 처음 쓰임은 그랬지만 이 글자는 옛 중국에서 대개 1인칭 대명사, '우리'라는 뜻의 호칭으로 잘 쓰이다가 중국 판도를 최초 통일로 이끈 진시황(秦始皇) 때 이르러 제왕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고대 동양의 군왕을 모시는 일은 아주 두려웠다. 반군여호(伴君如虎)라는 성어가 나온 이유다. 임금 모시기가 호랑이 대하듯 어렵다는 얘기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왕은 구중궁궐(九重宮闕)의 깊은 곳에 몸을 사리고 있어 외롭기 마련이..

차이나別曲 2020.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