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週 漢字 758

[漢字, 세상을 말하다] 悚懼〈송구〉

신경진 기자 한자세상 10/17 상(商)나라 승상이 하인에게 시장을 둘러보라 한 뒤 물었다. “시장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무언가는 보았을 것이다.” “시장 남문밖에 소가 끄는 수레가 많아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그래, 지금 물은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 승상은 시장 관리인(市吏)을 불러 야단쳤다. “시장 문밖에 쇠똥이 왜 그렇게 많은가?” 시장 관리인은 승상의 통찰에 놀랐다. 이에 자기 직무를 두려워했다(乃悚懼其所也). 전국시대 법가 사상을 정리한 『한비자(韓非子)』에 실린 ‘송구(悚懼)’의 용례다. 암행 용인술을 말했다. 두려워할 송(悚)은 마음(忄)이 묶인 듯(束) 결박(結縛)당해 두렵다는 뜻이다. 죄를 지으면 두려워 죄송(罪悚)하고, 분에 넘치도록 고마우면 황..

한 週 漢字 2020.10.17

[漢字, 세상을 말하다] 所望<소망>

한자세상 9/26 “우리의 所願(소원)은 통일, 꿈에도 所願은 통일.” 지금은 거의 들을 수 없지만 1960~70년대 행사에서 자주 불렸던 ‘우리의 所願’이란 노래 가사다. 所願이, 간절하지만 이루기 힘든 목표를 상정하는 느낌이라면 所望은, 달성 가능한 목표를 바라보면서 온 힘을 다하는, 실천적 의미가 짙은 단어다. 所望이 실천적인 만큼 환난은 필연이다. 『신약성경』 27편 가운데 절반 정도를 집필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환난은 忍耐(인내)를, 忍耐는 연단을, 연단은 所望을 이룬다”고 썼다. 결국 忍耐라는 실천적 고난을 통해 所望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忍耐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부처의 수행기를 적은 入菩薩行論(입보살행론)은 “성냄과 불만보다 더한 죄가 없고, 忍耐만큼 실천하..

한 週 漢字 2020.09.26

[漢字, 세상을 말하다] 十思疏<십사소>

신경진 기자 한자세상 9/12 “미자하(彌子瑕)의 행적은 후세 사람에게 ‘아첨해 총애를 받는다(佞幸·영행)’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기 족하다. 비록 백 세대 이후도 마찬가질 터다.” 사마천(司馬遷)이 아첨배의 행적을 모아 기록한 『사기(史記)』 ‘영행(佞幸)열전’의 총평이다. 아첨배를 일컫는 ‘영행’의 영(佞)은 아첨, 행(幸)은 권력자가 가까이 둔다는 의미다. 미자하는 위 영공(衛靈公)을 모셨다. 위나라 법은 임금의 수레를 허락 없이 타면 발뒤꿈치를 잘랐다. 미자하가 어머니의 병 소식을 들었다. 왕의 명령이라 속이고 1호 차를 탔다. 영공은 “효자다. 어머니를 위해 발목을 내걸다니”라 칭찬했다. 미자하가 영공과 과수원에 갔다. 복숭아가 달았다. 먹던 반쪽을 바쳤다. 영공이 “제 입 대신 나를 생각했구나”..

한 週 漢字 2020.09.12

玉璽 (옥새)

옥새(玉璽)는 황제가 쓰는 도장이다. 신하의 도장은 ‘印(인)’이라 했다. BC 228년 진시황(秦始皇)은 조(趙)나라를 멸망시킨 후 전설의 옥(玉)인 화씨벽(和氏璧)을 손에 넣는다. 그는 승상 이사(李斯)에게 화씨벽으로 황제의 도장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옥새다. 옥새에는 ‘하늘의 명을 받았으니, 영원히 창성하리’라는 뜻의 ‘受命于天 旣壽永昌(수명우천 기수영창)’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옥새는 정통성의 상징이었다. 옥새를 갖고 있는 황제라면 하늘의 명(天命)을 받은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명운이 다한 것(氣數己盡)으로 봤다. 반란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감추려 한 것이 옥새요, 반란군이 가장 먼저 손에 넣으려 한 것 역시 옥새였다.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

한 週 漢字 2020.09.05

[漢字, 세상을 말하다] 蝼蟻之穴<루의지혈>

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法家)를 완성한 한비자(韓非子·BC280~BC233년)가 지금 메르스 혼란상을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내 분명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로부터 이뤄지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天下之難事必作于易,天下之大事必作于细)’고 했거늘…”하고 혀를 찼을 일이다. 초동 단계에 철저히 대처하고, 미연에 방지했어야 한다는 충고다. 그는 우리에게 이 우화를 들려줬을 듯 싶다. “명의 편작(扁鵲)이 채(蔡)나라 환공(桓公)을 만났다. 얼굴을 보니 환공에 병기가 있었다. 편작이 말하길 ‘공께서는 피부에 질병이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심해질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환공은 ‘나는 병이 없소이다’고 잘라 말했다. 10여일이 지난 후 편작이 다시 환공을 만났다..

한 週 漢字 2020.09.03

[漢字, 세상을 말하다] 瑕疵<하자>

한자세상 8/29 玉(옥)은 티끌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玉에 티’라는 격언은 玉의 완벽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瑕疵(하자)는 옥에 있는 欠缺(흠결)을 가리킨다. 지금은 결점, 고질병이란 의미로 두루 쓰인다. 唐(당)대 王勃(왕발)과 南宋(남송) 文天祥(문천상)은 탁월한 소년 천재다. 하나 두 사람의 인생은 달랐다. 天祥은 장기 천재였다. 6세 때 연못 위에서 장기 두는, 이른바 水面行馬(수면행마)를 즐겼다. 그 후 虛空(허공)行馬로 발전한다. 20세에 장원급제하자 황제 이종(理宗)은 송서(宋瑞)라는 자(字)를 내렸다. ‘송나라의 상서로운 기운’이라는 뜻이다. 대단한 영예다. 元(원) 군사에 잡혔으나 전향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다. 天祥은 평생을 瑕疵 없는 선비로 살았다. 王勃은 6세 때 시를 썼다. ..

한 週 漢字 2020.08.29

[漢字, 세상을 말하다] 白起肉<백기육>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의 사직서가 화제다. “천하에 인재는 강물처럼 차고 넘치듯이 검찰에도 바른 인재들은 많다”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인사를 탓했다. “전국시대 조(趙)나라가 인재가 없어서 장평전투에서 대패하고 40만 대군이 산 채로 구덩이에 묻힌 것입니까? 옹졸하고 무능한 군주가 무능한 장수를 등용한 그릇된 용인술 때문이었다”라고 부연했다. 문 검사장이 꺼낸 조나라의 용군(庸君)은 효성왕(孝成王) 조단(趙丹, 재위 기원전 265~245)이다. 당시 진(秦) 범저(范雎)는 반간계(反間計)로 조를 노렸다. 노장 염파(廉頗)를 애송이 조괄(趙括)로 바꾸려 돈을 써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귀가 얇은 효성왕은 조괄 어머니의 만류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진의 공세는 거침없었다. 범저는 지휘관을 왕흘(王齕)에서 전..

한 週 漢字 2020.08.23

[漢字, 세상을 말하다] 白蟻·蚍蜉<백의·비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의 일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시솽반나(西雙版納)의 식물연구소를 시찰했다. 연구소 간부가 아름드리 나무를 툭 밀었다. 겉보기와 달리 힘없이 쓰러졌다. 저우 총리가 이유를 물었다. 간부는 “흰개미가 나무 속까지 좀먹었다. 겉보기는 멀쩡하다”고 답했다. 저우 총리는 “방안까지 잘 침투해야 한다. 홍콩에 흰개미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홍콩 각계에 특무(特務)를 보낸 이른바 ‘흰개미(白蟻·백의) 정책’의 시작이다. 홍콩의 한 방송사가 2014년 방영한 역사 다큐멘터리 도입부에 나온 전직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의 증언이다. 인민해방군의 반월간지 ‘국방참고’는 “색깔 혁명의 흰개미 전술 책동을 경계하라(2015년 2월)”는 글을 싣고 “적은 용맹한 호랑이가 아닌 흰개미를 인..

한 週 漢字 2020.08.23

[漢字, 세상을 말하다] 言約<언약>

言約(언약)은 말로 하는 약속이다. 말로 한다고 소홀히 여기면 큰코다친다. 사람 사이의 언약은 법률적 계약 못지않은 구속력을 지닌다. 언약은 戀人(연인) 사이에서 흔하다. 사랑의 불변과 영원한 同行(동행)을 손가락 걸며 약속한다. 90년대 말, 『슬픈 언약식』이란 노래는 많은 연인의 사랑을 받았다. 성경은 言約 덩어리다. 舊約(구약)은 옛 약속이요, 新約(신약)은 예수 이후에 주어진 새 약속이다. 그러니 성경 전체가 言約이다. 성경 내 언약 가운데 가장 부러움을 받는 언약은 ‘다윗의 언약’이다.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약속이다. ▶왕으로 삼고 ▶원수를 멸하며 ▶이름을 위대하게 하고 ▶집을 지어 주며 ▶후손을 계속 왕으로 삼고 ▶후손이 죄를 범해도 은총을 빼앗지 않겠다는 등의 황홀한 공약이다. 중국도 言約이..

한 週 漢字 2020.08.23

상하이는 미인계의 발상지

중국 역사상 절세의 용모로 이름을 떨친 미인은 800명쯤 된다. 그중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4대 미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겐 ‘침어낙안 폐월수화(沈魚落雁 閉月羞花)’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침어(沈魚)의 주인공은 춘추시대 말기 월(越)나라의 서시(西施). 그의 미소에 연못 속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잊고 가라앉았다. 낙안(落雁)은 한(漢)나라 왕소군(王昭君)을 일컫는다. 그가 뜯는 처량한 비파 음색에 기러기마저 시름에 잠겨 내려앉았다. 폐월(閉月)은 후한의 초선(貂蟬)을 가리킨다. 밤하늘의 달조차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수화(羞花)는 당(唐) 현종(玄宗)을 녹인 양귀비(楊貴妃)가 주인공. 꽃 또한 그가 내미는 손을 잡기가 수줍어 고개를 떨궜다는 ..

한 週 漢字 2020.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