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91

표상은 본체가 아니다

숭고한 정신은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요, 나타난 것은 일체의 의복이며 표상에 불과하다. 표상을 본체인 것처럼 망상할 때, 인류는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1795∼1881)의 ‘의복철학’에서 만날 수 있는 글귀다. 서른여섯 살 되던 어느 여름날, 그는 특별한 체험을 경험한 뒤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게 물었다. 도대체 네가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 왜 비겁하게 줄곧 울고 콧물을 흘리고 벌벌 떨면서 걷느냐, 덜된 인생아. 네 앞에 놓인 최악의 경우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이냐? 그렇다고 하자. 지옥의 고통이나 악마의 고문이 네게 할 수 있는 전부겠지. 그런데 너는 그게 무엇이기에 이겨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쫓기고 있단 말인가. 생각해 보라. 네가 비록 쫓겨났다고는 하..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

형제들이여. 내 너희에게 이르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너희에게 천상의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삶을 경멸하는 자들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같이 말한다. ‘천상의 희망’을 믿지 말고 지금 발밑의 대지에 충실하라는 언명이다. 그는 의지철학을 정립하고 유럽의 근대를 형이상학적 도덕적 가치들이 탈가치화하는 허무주의 시대로 진단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유럽인을 지배해온 기독교가 가치의 자리를 피안(천국)으로 가져감으로써 인간의 현세적 삶을 부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극단화함으로써, 피안의 가치에 종속돼 있던 차안(현재)의 삶을 그 자체로 긍정하고자 했다. 온몸으로 앓으면서도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만족한다고 했다. 필연적..

행복한 왕자

어느 도시에 하늘 높이 솟은 받침대에 ‘행복한 왕자’ 동상이 있었다. 동상은 반짝거리는 금박으로 아름답게 장식돼 있었다. 눈에는 사파이어가, 칼자루에는 큼직한 루비가 붉은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극작가,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동화집 두 권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대표적인 동화 ‘행복한 왕자’의 서두다. 젊은 나이에 죽은 왕자는 도시에 금빛 동상으로 세워졌다. 친구를 따라 이집트로 가지 못한 작은 제비 한 마리가 행복한 왕자의 두 발 사이에 내려앉았다. 잠을 청하려던 순간, 큰 물방울 하나가 제비의 머리 위로 뚝 떨어졌다. 세 번째 물방울이 떨어졌다. “당신은 누구시죠?” “나는 행복한 왕자란다. 나를 돌보는 궁중의 신하들은 나를 ‘행복한 왕자..

맥베스

꺼져라, 꺼져. 이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 잠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대 위에서 뽐내고 으스대지만, 그때가 지나면 영영 사라져버리는 가련한 광대. 그것은 바보가 들려주는 이야기, 소리 높여 흥분하고 지껄이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맥베스’ 5막 5장) 자진했다는 아내의 부음에 맥베스의 독백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녀는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었다. 이 소식은 언젠가는 올 것이었다. 내일, 또 내일-시간은 총총걸음으로 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 어제라는 날들은 어리석은 자들이 티끌로 돌아가는 죽음의 길을 비춰왔구나.” (다시 앞으로 가서) “꺼져라, 꺼져. 이 덧없는 ∼”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셰익스피어의 메시지다. 스코틀랜드의 ..

재후두(在後頭)

일파청산경색유(一派靑山景色幽)요 전인전토후인수(前人田土後人收)라 후인수득막환희(後人收得莫歡喜)하라 갱유수인재후두(更有收人在後頭)니라 한 줄기 청산의 경치 그윽하도다. 앞사람이 가꾸던 밭을 뒷사람이 거두는구나. 뒷사람아! 얻었다고 기뻐하지 말라. 다시 차지할 사람, (바로) 네 머리 뒤에 있느니라. ‘명심보감’에 실린 작자 미상의 이 시구는 ‘在後頭’로 언제나 나를 명심시킨다. “바로 네 뒤에 있느니라”. 이 죽비가 이따금씩 내 안에서 발동하면 손에 든 것들을 슬그머니 내려놓게 된다. 눈앞에 펼쳐진 유구한 청산은 그대로요, 우리는 무대의 등장 인물처럼 그냥 지나갈 뿐이다. 소유권이 있더라도 청산을 떠메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때에 맞게 물러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령에 들어 지체하는 이 몸도 폐스럽게 ..

인생

그는 늘 자던 매디슨스퀘어공원의 벤치에 앉아 불안스럽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미국 작가 오 헨리(1862∼1910)의 소설 ‘순경과 찬송가’의 첫 구절이다. 소피(작중인물)의 무릎에 낙엽이 한 장 떨어졌다. 그건 겨울을 알리는 신호다. 그는 지난밤에도 세 장의 일요신문을 윗도리 안쪽에 접어 넣고, 발목에 두르고 무릎에 덮고 했지만, 그것으로는 이 오래된 공원 벤치에서 잠자는 동안의 추위를 물리칠 수 없었다. 그러자 소피는 지난 몇 년 동안, 겨울나기 좋은 숙소가 됐던 블랙웰 형무소를 떠올린다. 식사와 침대와 마음에 맞는 친구가 보장되고, 북풍과 푸른 상의(경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 3개월이 소피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법률’이 ‘자선’보다 훨씬 더 자비롭게 생각..

노을

여행길에 병드니 /황량한 들녘 저편을 /꿈은 헤매는 도다 일본의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1644∼1694)가 임종 나흘 전에 지은 마지막 하이쿠다. ‘여즉인생(旅卽人生)’이라던 그는 인생을 시간여행에 비유하곤 했다. 1689년 제자 소라(曾長)와 함께 에도(江戶·현 도쿄)를 떠나 동북지방인 ‘오쿠(奧)’로 떠나면서 ‘먼 변경의 하늘 아래서 백발이 될 만큼 고생하더라도, 직접 본 적이 없는 명소와 유적지를 돌아본 다음, 살아 돌아온다면 뭘 더 바랄 게 있으리’라는 각오로 나그넷길에 올랐다. 그는 여러 지방에서 만난 문인들과 하이쿠 문학의 장을 마련하고 자신이 지향하는 하이쿠의 시적 세계를 전파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가 ‘오쿠로 가는 작은 길’(奧の細道)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밝힌다. ..

말 탄 자여! 지나가라

Death and Life were not. 죽음과 삶은 본래 존재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의 시집 ‘탑’ 속 문장이다. “이 시집은 내가 쓴 최고의 책”이라고 했던 시집으로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겨줬다. 책에 수록된 시 36편 중에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탑’ ‘학동들 사이에서’ 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탑’에서 그는 60세가 지나 병든 육신을 바라보며 젊은 시신(詩神) 뮤즈와 대조시켜 글을 풀어 나간다. 시의 제3연에 주목한다. ‘이 어리석음을 내 어찌하리- / 오, 마음이여, 괴로운 마음이여- 이 풍자만화 개 꼬리에 매달린 듯이, 나에게 매달린 늙어빠진 나이를? (생략) 나는 나의 신념을 선언한다. / 나는 플로티노스 사상을 조소하고 플라톤을 반대..

차별 없는 죽음

유일하게 불멸의 것인 죽음은 우리를 차별 없이 대해준다. 죽음이 주는 평온과 위로는 만인의 것이다. 깨끗한 사람이나 때 많이 묻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뱅이나(…) 마크 트웨인(1835∼1910)이 죽음을 앞두고 쓴 글이다. 어려서 부친을 잃은 그는 인쇄공을 거쳐 미시시피강에서 키잡이 생활을 했다. 증기선 폭발로 동생을 잃고 어린 아들과 아내, 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 덩그러니 혼자 남아 죽음을 사색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내 인생의 전환점’ 같은 책을 썼다. 75세 때 쓴 글이다. 죽음의 위로가 필요했을까? 1910년 4월 20일, 밤하늘에 핼리혜성이 나타났다. 트웨인은 이 별과 함께 떠나고 싶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는 이 별을 보지는 못하고 그 이튿날(21일) 유명을 달리했다. 뉴욕주 끝에 있는 엘..

두 마음

평소 ‘죽음이 삶보다 고귀하다’고 믿고 있던 나의 희망과 조언은, 결국 이 불유쾌로 가득 찬 삶이라는 것을 초월할 수 없었다. (…) 나는 지금도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물끄러미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수필집 ‘유리문 안에서’의 글이다. 연하 청년과 연애에 빠져 그를 자살케 한 과거를 가진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는 자살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고백했다. 평소 죽음을 삶보다 더 편안한 것이라고 믿던 소세키가 그녀에게 불쑥 던진 말은 “죽지 말고 살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결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그런 두 마음을 생각하고 있다.”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고 양쪽 다 고려해보는 신중한 그의 태도가 침착한 용모에 겹쳐서 떠올랐다. 고령의 양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