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91

노인과 바다

“네가 날 죽이고 있구나, 고기야, 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넌 나를 죽일 권리가 있어. 난 여태까지 너처럼 거대하고 아름답고 태연하고 고결한 존재를 보지 못했단다. 내 형제야, 이리 와서 날 죽이렴. 누가 죽이고 누가 죽든 난 상관하지 않으마!”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의 한 대목이다. 어부 산티아고 노인은 멕시코만에 배를 띄우고 혼자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84일 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처음 40일은 한 소년과 함께 지냈으나 소년의 양친이 노인의 운이 끊어진 것이라며 소년을 다른 배에 태웠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다른 날보다 더 멀리 나갔다. 한낮에 큰놈이 물렸다. 믿기지 않을 만큼 무거웠다. 거대한 돛새치는 배를 더욱 먼 바다로 끌고 나간다...

神性의 원형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다

Vocautus atque non vocatus deus aderit.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神)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묘비명이다. 또한 그의 집 현관문에서도 만날 수 있는 글귀다. 이 글귀는 심리학자인 융을 이해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융은 신앙이 있었지만 어떤 종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융의 수제자인 폰 프란츠는 자기 스승을 가리켜 ‘큰 샤먼’이라고 불렀다. 샤먼은 저승의 신들을 불러 환자의 병에 대해 묻는다. 이런 입무(入巫)의 과정은 융의 ‘개성화 과정’의 원초적인 유형이다. 그는 자기 연구의 주요 관심사는 노이로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누미노제(numinose) 즉 신뢰와 함께 두려움을 자아내는 ‘신적인 것’에 대한 접근이라고 밝혔다. 누미노제를 체..

변화의 주재자가 신(神)이다

지변화지도자(知變化之道者)는 기시신지소위호(其知神之所爲乎)인저! 변화의 도를 아는 사람은 그 신(神)의 하시고자 하는 바를 아는구나! ‘계사전’ 제9장에서 공자가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논어’ 술이 편에서 그는 “나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 ‘神’이란 대체 무엇인가?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공자의 초상화를 집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렸는데 공자가 신비함이나 기적을 말한 바 없이 최고 덕목을 인(仁)에 두고 인간을 교화한 그의 인간성에 감격한 나머지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자가 ‘계사전’에서 언급한 신은 신비한 예언자로서의 초월적인 신(god)이 아니라 변화의 주재자를 신으로 봤던 것이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오듯이 ..

선비정신

몸에 재능을 지니고 나라에 쓰이기를 기다리는 자는 선비다. 선비란 뜻을 고상하게 가지며, 배움을 돈독하게 하며, 예절을 밝히며, 의리를 지니며, 청렴을 긍지로 여기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자이나, 세상에 흔치 않다. (생략)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의 문집에 있는 글이다. “선비로서 선비의 행실을 가진 자를 ‘유(儒)’라 하는데 공자께서 말한 ‘유행(儒行)’이 그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조선 중기(명종 21년∼인조 6년) 문신으로 도승지·이조판서·대제학·삼정승의 요직을 거쳤으며 문장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을 몸소 겪으며 나라가 어려울 때, 요구되는 선비정신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시대는 달라도 사람 속성은 다르지 않은 모..

列子, 도를 말하다

관윤희왈(關尹喜曰) 재기무거(在己無居) 형물기저(形物其著) 기동약수(其動若水) 기정약경(其靜若鏡) 기응약향(其應若響) 고기도(故其道) 약물자야(若物者也). ‘열자’는 ‘노자’ ‘장자’와 함께 도가삼서(道家三書)로 꼽힌다. 전국시대 정나라에 살았던 열자(列子)는 성이 열(列)이고 이름은 어구(禦寇)로 주로 노자의 사상을 계승했다. ‘도(道)’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도 윤희를 끌어온다. 함곡관을 지키던 관리 관윤희가 말한다. “자기에게 일정한 지위가 없다 해도 밖의 일을 접촉하는 것을 통해 그 자신이 드러난다. 그 움직임은 물과 같고, 고요함은 거울과 같으며, 응답은 울림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란 밖의 일을 따르는 것이다.” 도를 잘 따르는 사람은 귀도 쓰지 않고, 눈도 쓰지 않고, 힘도 ..

곡신불사(谷神不死)

곡신(谷神)은 불사(不死)하니 시위현빈(是謂玄牝)이오. 현빈지문(玄牝之門)은 시위천지근(是謂天地根)이니 면면약존(綿綿若存)하야 용지불근(用之不勤)이니라. 노자는 ‘도덕경’ 제6장에서 죽지 않는 골짜기의 신(谷神)을 가믈한 암컷(玄牝)이라 일컫고 그것이 천지의 뿌리라고 한다. 면면히 존재하는 듯 약존(若存)하며 이를 쓸지라도 마르지 않는다고 도의 작용을 세 마디로 압축한다. 곡신과 현빈. 이들은 모두 비어(虛) 있기 때문에 신묘한 도의 작용이 가능한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봉우리는 양(陽)이요 골짜기는 마르지 않는 샘, 음(陰)이다. 남자의 심벌보다 여자의 그것이 직접적인 생성의 모체이기 때문에 ‘암컷’이 천지의 뿌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이 만물로서 존재하려면 음양의 두 기운을 교화(交和)케..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

역왈(易曰) 동동왕래(憧憧往來)면 붕종이사(朋從爾思)라 하니 자왈(子曰) 천하(天下)에 하사하려(何思何慮)리오. 천하는 동귀이수도(同歸而殊塗)하며 일치이백려(一致而百慮)이니 천하에 하사하려리오. ‘주역’ 계사하전 제5장의 말씀이다. 주역 택산함(咸)괘에 “마음이 뒤숭숭하니 온갖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는 구절에 대해 공자는 “천하에 골똘히 생각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천하의 만 가지 상이한 길은 하나로 통한다. 온갖 생각이 하나로 통하니 천하에 골똘히 생각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반문한다. 천하가 돌아가는 곳은 같으나 그 길이 다를 뿐, 결국 도달하는 곳은 하나라는 것이다. 별안간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가 한 지점으로 가는 여러 가지 길인 셈..

도(道)는 하나(一)를 낳는다

도생일(道生一)하고 일생이(一生二)하고 이생삼(二生三)하고 삼생만물(三生萬物)하나니 만물은 부음이포양(負陰而抱陽)하야 충기이위화(沖氣以爲和)하니라. 만물 생성의 원리를 노자는 ‘도덕경’ 42장에서 이같이 말한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으니 만물은 음(陰)을 짊어지고 양(陽)을 안아서 빈 기운(沖氣)으로 조화를 이룬다”고 했다. 이 ‘하나’는 도에서 나온 생명의 원기로 ‘주역’ 원리로 보면 태극(太極)을 지칭한다. 하나가 둘을 낳는 것은 마치 ‘태극’이 양의(兩儀) 즉 음과 양을 낳는 것과 같다. 우주 만물은 태극과 음양(陰陽) 기운을 근원으로 해 나온다. 태극과 음양을 합하면 셋이 되니, 이 셋이 만물을 낳는다고 하는 것이다. 음을 지고 양을 안는 음양..

무(無)로부터의 우주

팽창하는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만물은 무(無)에서 시작됐다. 시간과 공간은 완전한 무에서 탄생했다. 미국의 우주론학자인 로렌스 크라우스가 저서 ‘무(無)로부터의 우주’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책에서 ‘무’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로 이로부터 유(有)가 필연적으로 탄생했다는 것과 신의 손을 거치지 않고 우주가 완전한 무로부터 물리적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고 있다. 138억 년 전, 눈에 보이지 않는 점보다 작은 상태에서 갑자기 폭발한 뒤, 엄청난 속도로 팽창해 지금의 우주가 된 것이라 한다.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무(nothing)에서 나왔다. 현대물리학은 우주가 진공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사람은 ‘빅뱅 직전의 우주’를 쓴 영국 물리학자 프랭크 클..

존재와 시간은 서로 인대(因待)한다

인물고유시(因物故有時) 이물하유시(離物何有時) 물상무소유(物尙無所有) 하황당유시(何況當有時) 존재로 말미암아 시간이 만일 있다면, 존재를 떠나서 시간은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런데 어떠한 존재도 (실체로서는)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 시간이 있을 것인가. 인도 학승 나가르주나(150∼250)의 저서 ‘중론(中論)’ 중 ‘시간의 고찰’에서 뽑은 글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의 광맥을 캐는 광부’라고 자칭했던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는 고찰 끝에 이런 답안을 내놓는다. “시간은 지속입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이 되는 것이며 우리들이 바로 시간”이라며 “시간은 나를 이루는 본질이다.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를 휩쓸어가지만, 내가 곧 강”이라고 밝혔다. 내가 왜 강인지를 생각해본다. 그건 내가 태어난 시간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