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 보이고 / 속도 보이며 / 떨어지는 단풍이여 일본의 와카(和歌) 시인이며 조동종 승려였던 료칸(大愚良寬·1758∼1831) 선사의 사세구(辭世句)다. 길을 나서니 플라타너스 잎사귀 한 장이 발등에 떨어진다. 내 손바닥보다 큰 잎의 무게가 인기척처럼 느껴진다. ‘가을이네요’ 어깨를 스치는 눈인사 같다. 장중한 낙하(落下). 어김없이 내 입에서는 이 시구가 맴돈다. “겉도 보이고/ 속도 보이며/ 떨어지는 단풍이여.” 료칸 선사는 국상(國上)산에 오합암(五合庵)을 지어놓고 청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이 칠십 무렵, 그는 정심니라는 젊은 비구니의 방문을 받는다. 그녀는 무사(武士)의 딸로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의사에게 출가했으나 살림보다는 문학을 더 좋아했다. 이혼 후 불교에 입문한 그녀는 료칸 선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