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139

5도2촌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tvN 나영석 PD의 대표작 ‘삼시세끼’(사진) 시리즈를 보면서 인기 요인이 뭘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일단,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배우 이서진과 차승원이 편의시설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깡촌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재밌었고, 반(半)자연인 유해진의 시시껄렁한 아재개그가 재밌었다. 그런데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삼시세끼’가 인기를 얻었던 진짜 이유는 이런 연예인들의 재발견이 아니라, 도시인의 바람을 영리하게 뽑아낸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촌에서 살아보고픈 ‘5도2촌’ 라이프를 완벽하게 재현해냈기 때문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가마솥에 밥을 짓고, 침대도 없이 딱딱한 온돌 바닥에서 잠을 자고, 집 앞 텃밭에 각종 채소를..

오히려 좋아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대생에게 50일 동안 “예쁘다”라고 말하자 벌어진 일’이라는 글이 화제였다. 한 일본 방송에서 진행한 실험으로, 자신을 통통하고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21세 여대생에게 50일간 매일 1~2시간씩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했는데, 실제로는 잘 생긴 남자 모델이었던 어학 선생이 매일 그녀에게 “예쁘다”는 말을 건넨 것. 50일 후 여대생은 실제로 몰라보게 예뻐졌다고 한다. 사람을 피하던 습관을 바꾸고 항상 밝게 웃으며 외모와 이미지를 바꾸는 데 노력했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칭찬이라는 긍정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인스타그램 'banzza_toon' 계정 게시물 캡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긍정의 힘을 부르는 주문처럼 ‘오..

외간 깻잎

외간 깻잎 중앙일보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외간 깻잎’은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갑론을박 논쟁의 주제다.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 노사연이 남편 이무송, 자신의 여자 후배까지 셋이 함께 식사했을 때 벌어진 일화를 소개하면서 논쟁은 시작됐다. 이날 식당 반찬으로 나온 깻잎지가 겹겹이 너무 착 달라붙어 있어 여자 후배가 잘 떼어내지 못하자 남편 이무송이 젓가락으로 깻잎지를 눌러서 그녀를 도와줬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노사연은 “내가 보는 앞에서 ‘외간 여성’의 깻잎을 잡아줬다”며 화를 냈고, 이무송은 “그저 매너였을 뿐인데 왜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맞받아쳤단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패널들조차 “화내는 게 당연하다” “그게 왜 화낼 일이냐” 의견이 팽팽히 갈렸고, 이후 ‘..

데동

데동 중앙일보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데동’은 ‘죄송’을 귀엽게 표현한 말이다. 아직 말을 잘 못 하는 아기처럼 혀 짧은소리를 낸 것인데, 요즘 20대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런 식의 애교 말투로 가장 화제가 됐던 건 “나 꿍꼬또 기싱 꿍꼬또 무또오또”가 아닐까 싶다. 2015년 크게 인기를 끌었던 5살짜리 아이의 애교 동영상 속 말인데, 번역(?)하자면 “나 꿈꿨어 귀신 꿈꿨어 무서웠어”다. 아이의 어머니가 자신의 페이스북(현 메타)에 영상을 올린 후 폭발적으로 퍼져나갔고, 더불어 ‘귀신이 잘못했네’라는 댓글도 인기를 얻었다. 2015년 유행했던 애교말투. 사진 인터넷 캡처 이후 방송에 출연한 모든 젊은 연예인이라면 남녀를 떠나 한 번쯤 따라 한 것 같은데, 인터넷..

낭또

낭또 중앙일보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가수 최백호의 사투리 섞이고, 낮게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에 ‘낭만 가객’이라는 수식어보다 좋은 표현이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투박한 아저씨 목소리지만, 누군가에게는 쓸쓸한 정서 그 자체인 목소리. 만약 그가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그 수식어는 달라졌을까. 아무튼 ‘낭만’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색감이 있다. 사연 있어 보이고, 의미 있어 보이고,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객기 쩌는 ‘낭또(낭만 또라이)’라면 어떨까. ‘낭또’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극강의 ‘짠내’ 나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차서원의 별명이다. 데뷔 9년 차 배우인 그는 용산 남영동에 위치한 좁은 상가건물 2~3층을 얻어 사는데 집에 보일러가 없어 한..

혈관미남

혈관미남 중앙일보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남자 스타를 수식하는 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꽃처럼 예쁜 ‘꽃미남’, 조명을 쓰지 않아도 자체 발광하는 ‘피부미남’, 외모는 물론 마음씨까지 좋은 ‘훈남’. 그리고 요즘 뜨는 말로는 ‘혈관미남’이 있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울타리까지 예쁘다’는 속담이 있다. 한 가지가 좋으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인다는 말인데, 얼마나 좋고 예쁘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세혈관까지 예쁘게 보일까. 그런데 ‘혈관미남’은 진짜 몸속 혈관이 예쁜 건강한 남자 스타에게 하는 말이다. 아마도 첫 시작은 BTS의 정국이 아니었을까. 2019년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BTS 막내 정국의 사진인데 “나 현직 간호사인데, 저 정도면 1..

잼민이

잼민이 중앙일보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지난해 7월 교육방송 EBS가 적절치 못한 단어를 사용했다며 사과한 일이 있다. EBS 공식 SNS에 만화 ‘포텐독’의 삽입곡 ‘똥밟았네’ 홍보영상을 게시하면서 해시태그(#)에 ‘잼민’이라는 단어를 붙이자 아동·청소년 비하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당시 SNS 담당자는 “재미있는 어린아이를 부르는 유행어라고 짐작했다”며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거기에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 몰랐다”며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했다. EBS 공식 트위터. 사진 SNS 캡처 ‘잼민이’는 온라인상에서 미성숙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는 초등학생을 일컫는 말이다. 한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2019년부터 사용된 이 단어는 ‘재민’이라는 이름의 어린 남자아이 목소리에서 유래됐..

드르륵 탁

드르륵 탁 중앙일보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사랑으론 안 돼, 날 추앙해요.” JTBC 화제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여주인공의 대사다. 추앙(推仰)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이라는 뜻이다. 그저 그런 평범하고 가벼운 사랑으론 안 되니 나를 높이 받들라…당황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여운이 남는다. 요즘 SNS에선 이렇게 ‘심쿵’한 대사나 장면, 또는 하고 싶은 말을 게시할 때 ‘드르륵 탁’이라는 신조어를 무한반복한다. “사랑으론 안 돼, 날 추앙해요. 드르륵 탁. 사랑으론 안 돼, 날 추앙해요. 드르륵 탁. 사랑으론 안 돼, 날 추앙해요. 드르륵 탁.” 이런 식이다. 빈티지 오디오 카세트. 사진 인터넷 캡처. ‘드르륵 탁’은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인데, 과연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놀..

고나리자

고나리자 중앙일보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재택근무가 종료되고 사무실로 출근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더불어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선 벌써 ‘직장갑질’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른바 ‘고나리자’들의 횡포 때문이다. ‘고나리자’란 컴퓨터 자판에서 ‘관리자’를 칠 때 생기는 오타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자기 고집만 피우며 다른 사람의 언행에 간섭하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로 ‘꼰대’ 직장 상사를 일컫는다. 재택근무 기간에도 ‘고나리자’들의 지적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무실에서 대면하며 느끼는 위압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회식이 늘면서 고통받는 직장인들의 사례를 공개했다.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