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歷史 138

[박종인의 땅의 歷史] "나 양반이야, 상놈들은 집 내놓고 나가"

[220] 조선왕조 권력층의 부동산 폭력… 여가탈입(閭家奪入)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작자 미상 '평생도(平生圖)'. 돌부터 죽음까지 사람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과거에 급제해 마을을 도는 그림 옆에 과거시험장 그림이 그려져 있다(오른쪽 사진).영조 때 열린 과거에는 자그마치 11만 명이 넘는 응시생이 서울로 몰려들었다. 그때 서울 인구는 20만~30만 정도였다. 그럴 때면 정부는 민가를 철거해 과거시험장을 만들어야 했고, 과거에 급제해 벼슬아치가 된 선비들은 서울 여염집을 마음대로 빼앗는 '여가탈입' 작태를 수시로 벌였다. 흑백 사진은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연산군은 재위 동안 900채가 넘는 궁궐 주변 민가를 강제로 철거시켰다. 서기 1392년 음력 7월 17일 원나라 다루가치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가..

[박종인의 땅의 歷史] “신하는 임금이 아니라 의를 따르는 것이다”

[221] 폭정에 대처한 네 가지 자세 ①시인 어무적과 대사간 류헌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7.22 03:13 | 수정 2020.07.22 10:22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은 임진왜란에 불에 탈 때까지 조선 왕국의 법궁으로 사용되던 궁궐이다. 연산군은 이 궁궐에서 사치와 방탕과 여색을 누리며 살았다. 그 폭정으로 인해 백성 삶은 도탄에 빠졌다. 왕권을 감시해야 할 삼사(三司: 홍문관·사헌부·사간원)는 연산군에 의해 일찌감치 입이 닫힌 상태였다. 시인 어무적은 그 암울한 시대를 날카로운 언어로 고발했고, 곧은 사내 류헌은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다가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다. 사진은 코로나19 역병 창궐 전인 올해 봄에 촬영했다. 1494년부터 1506년까지 연산군 재위 기간을 겪었던 네 사내에 관..

[박종인의 땅의 歷史] “판서 임사홍을 격살하고 부관참시하였다”

[222] 폭군에 대처한 네 가지 자세 ②/끝 - 판서 임사홍과 내시 김처선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7.29 03:13 | 수정 2020.07.29 11:29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산 25-5번지 일대는 풍천 임씨 선산이다. 고종 왕비 민씨 생가 부근이다. 성종~연산군 때 관료 임사홍도 여기에 묻혀 있다. 총명하고 정의로웠던 젊은 관료 임사홍은 길고 긴 재야 생활 끝에 폭군 연산군의 혀처럼 행동하는 간신으로 변신했다. 중종반정이 벌어진 1506년 9월 2일 임사홍은 몽둥이로 격살됐다. 그달 26일 반정 세력은 임사홍 관을 부수고 또 한번 그 목을 베어버렸다. 파괴를 면한 묘 앞에 1997년 그 후손들이 비석을 세웠다. 젊은 그는 문장에 능하고 총명하고 강직하여 직언을 곧잘 하다가 뭇사람들..

[박종인의 땅의 歷史] 몸을 두루 인두로 지졌으나, 박태보는 의연하였다

[224] 조선형벌잔혹사 ②온갖 고문 다 당하고도 의연했던 의인 박태보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8.12 03:12 | 수정 2020.08.14 23:20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박태보 묘. 긴 장마 속에 무덤 앞에는 분홍색 무릇꽃 몇 줄기가 솟아올라 있다. 묘는 아버지 서계 박세당 고택 안에 있다. 박태보는 1689년 숙종이 희빈 장씨 아들을 적장자로 삼고 왕비 민씨를 폐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대표집필했다. 이에 숙종은 상소를 올린 서인들을 친국하며 박태보에게 심한 고문을 가했다. 압슬형과 낙형과 장형으로 만신창이가 됐지만 박태보는 오히려 "망국적인 일을 하지 마시라"며 질책했다. 사형을 면하고 유배를 떠난 박태보는 사육신묘가 있는 노량진에서 죽었다. 영조 시대에 많은 고문과 형벌이 금지..

[박종인의 땅의 歷史] “역적 김옥균 시신을 즉시 능지처사하라”

[225] 조선형벌잔혹사 ③/끝 최후의 능지처사 - 김옥균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8.19 03:14 | 수정 2020.08.19 11:13 영조의 경고와 김옥균 재위 35년째인 1759년 한가위 나흘 뒤, 온갖 잔혹 형벌을 총동원해 정적을 다 처리한 영조가 명을 내렸다. 일체의 잔혹 형벌과 고문을 금한다는 하명이다. 아주 근엄하다. 그 가운데 역률(逆律) 추시(追施) 금지령이 들어 있었다. '추시'는 법을 소급 적용하는 조치다. 은전(恩典)이든 형벌이든 죽은 사람에게 적용하는 법적 조치가 추시다. 충남 아산에 있는 김옥균 유허. 1894년 양력 4월 서울 양화진에서 부관참시와 능지처사 당한 뒤 김옥균 시신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부는 일본으로 가 묘 두 군데에 안장됐다. 아산에는 김옥균의 옷가..

[박종인의 땅의 歷史] 민란에서 식민지까지… 거친 역사가 형제의 삶에 녹아 있다

[226] 다사다난했던 지운영-석영 형제의 일생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8.26 03:12 경기도 안양 삼성산에 있는 삼막사는 677년 통일신라 때 원효가 만든 절이다. 삼성산은 관악산이다. 원효 이후 1234년이 지난 1911년 백련거사 지운영이 삼막사에 백련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은둔했다. 김옥균 암살 미수범 지운영은 식민시대에 화가가 되었다. 근대 조선 사진술의 선구자이기도 했던 그는 백련암 큰 바위에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 귀 자 세 개를 새겨놓고 세상을 초월해 살았다. 그의 동생 지석영은 종두법을 도입하고, 동학의 원인 제공자인 민영휘 처단을 주장하고, 동학을 토벌하고, 독립협회 활동을 하고, 근대 의학교를 운영하며 그 모진 세월을 살았다. 형제는 1935년 넉 달을 사이에 두고 하늘로 갔..

[박종인의 땅의 歷史] “저 험한 내포(內浦) 가야산에는 예부터 사연이 많았느니라”

[227] 충남 내포 이야기① 남연군묘의 비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9.02 19:26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남연군묘. 가야산 자락이 날개처럼 무덤자리(가운데)를 에워싸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자기 선친 남연군을 연천에서 이장한 자리다. 목적은 '천자 2명을 낳을 명당을 찾아서.' 아들 고종과 손자 순종이 왕과 황제가 되면서 목적은 이뤘다. 대원군은 어떻게 이 '촌구석'에 명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강화도 유배지를 땅굴을 파고 탈출하던 광해군의 아들에서 동학농민혁명까지 가야산에서 벌어진 역사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충남 예산 가야산 주변에 있는 열 고을을 내포(內浦)라고 한다. 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 같은 마을이 그 내포다. 큰 ..

“공부하는 선비가 드물어 안타깝구나, 성균관을 보수하여라”

[박종인의 땅의 歷史] 282. 평양 풍경궁③/끝 망국까지 성리학에 집착한 고종 조선왕조의 법궁인 경복궁.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 월대에서 정전인 근정전 지붕이 힐끗 보인다. 해거름에 서쪽에 해가 진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경복궁을 버리고 경운궁(덕수궁)을 황궁으로 삼았고, 경운궁에 기거하며 평양에 또 다른 궁궐 풍경궁을 건설했다. 그가 입에 달고 살았던 단어는 ‘도리(道理)’였고, 을사조약 이듬해인 1906년에도 그는 “성균관에서 도리를 교육하라”고 명했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 유튜브 https://youtu.be/pBHbecmKWNE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06년 4월 15일 대한제국 황제 광무제가 조령(詔令·천자의 명령)을 내렸다. “듣자니 태학(성균관)이 황폐하여 책을 끼고 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노론을 떨게한 정조의 한마디 “난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

283. 금등지서의 비밀과 융건릉 사도세자 무덤인 경기도 화성 융릉은 홍살문-정자각-봉분 배치가 일직선이 아니다. 봉분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방향도 다르다. 아버지 사도세자 복권을 필생의 업으로 삼은 정조가 ‘천 년 만에 있을 길지’를 고른 끝에 내린 풍수학적인 배치다. 정조는 세자를 죽인 영조가 적어내린 한(恨)을 품은 문서 ‘금등지서’를 17년 동안 숨겨놓고 노론 눈을 피해 아버지 복권 작업을 벌였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12.08 03:00 * 유튜브 https://youtu.be/JRL4Lvz1SsY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가위를 7일 앞둔 1793년 8월 8일 왕위에 오른 지 17년이 된 노련한 국왕 정조가 문서 한 장을 꺼내 읽는다. 듣는 사람은 전·현직 대신..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석탑에서 나온 700년 명차를 추사에게 선물했다네”

[228] 충남 내포이야기② 세한도를 그린 암행어사 김정희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한 ‘세한도’(부분). 오른쪽 위 제목 옆에는 ‘藕船是賞(우선시상)’, ‘우선, 보시게나’라고 적혀 있다. ‘우선’은 이상적의 호다. /국립중앙박물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09.09 03:00 충남 보령 남포면 남포읍성에 있는 비석군. 왼쪽에서 두번째 비석은 남포현감 성달영 영세불망비다. 두 영세불망비 이야기 청나라 연호로 도광 6년 7월 어느 날 충청우도(지금 충남과 얼추 비슷하다) 보령군 남포현 주민들이 현감을 위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세웠다. ‘도광 6년’은 순조 26년인 1826년이다. 1826년 ‘7월’ 날짜를 기억해둔다. 현감 이름은 성달영(成達榮)이다. 영세불망비는 ‘은덕을 영원토록 잊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