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歷史 138

[전문기자 칼럼] 공포정치와 대한민국

[전문기자 칼럼] 공포정치와 대한민국 佛대혁명이 낳은 공포정치 혁명재판과 법에 의한 보복 혁명정신 스스로 짓밟은 그들 한국은 혁명인가 공포정인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1.27 03:00 망명 귀족의 처형 프랑스대혁명은 민중을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1789년 7월 14일 횃불을 든 파리 민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해방시켰다. 수감된 죄수는 7명이었다. 좀도둑 4명, 가족에 의해 수감된 변태성욕자 2명, 그리고 20년 전에 수감된 반(半)미치광이 루이 16세 암살 미수범. 정치범은 없었다. 당황한 군중은 수염을 근사하게 기른 ‘지성인 풍모의’ 변태성욕 귀족을 앞세워 파리에 입성했다. 가는 곳마다 귀족들을 참수해 목을 매달았다. 1793년 9월 5일 파리 국민공회에 참가한 혁명파 변호사 클로드..

[박종인의 땅의 歷史] 여기가 조선왕조의 시작이며 끝이었다

[239] 전주 이씨 시조 묘 조경단 조선 왕조의 시작, 전주 조경단.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2.09 03:00 전북 전주 덕진동 전북대학교와 덕진체련공원 사이에 제사 때를 빼고는 늘 닫혀 있는 문이 있다. 문 너머 공간 이름은 조경단(肇慶壇)이다. ‘경사가 시작된 제단’이라는 뜻이다. 또 있다. 옛 전주부성 남문 이름은 풍남문(豐南門)이고 서문 이름은 패서문(沛西門)이다. 풍(豐)과 패(沛)는 한나라 유방이 군사를 일으킨 강소성 패군 풍현을 가리킨다. 즉 제왕의 땅이라는 말이다. 이쯤이면 조경단이 무엇이고 풍남문과 패서문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리라. 조선 왕실에 전주는 풍패지향(豊沛之鄕), 새 왕조를 일으킨 제왕의 고향이라는 말이다. 조경단은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李翰)을 기리는 제단이다. ..

[박종인의 땅의 歷史] “흙으로 만든 국과 종이로 만든 떡을 누가 먹으랴!”

[240] 실용주의 관리 서유구가 난세에 대처한 자세 ① 전주성 풍남문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2.16 03:00 “내 인생은 낭비” 관찰사 서유구 올해 복원된 전라감영 동헌 앞에는 낯선 돌이 두 개 서 있다. 하나는 가석(嘉石)이고 하나는 폐석(肺石)이다. 가석은 경범죄를 저지른 자를 그 위에 앉혀서 죄를 뉘우치게 하는 돌이다. 폐석은 억울한 백성이 그 옆에 서 있으면 관리들이 자초지종을 물어 사연을 풀어주는 돌이다. 행정과 사법을 동시에 담당했던 조선시대 지방관 통치 율법을 상징한다. 19세기 초 이 전라감영에서 만 19개월 근무했던 행정가가 있다. 1833년 4월 부임했을 때 나이는 만 69세, 고희(古稀)였다. 이 늙은 관찰사는 임기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이름하여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세상 보탬 되지 않는 자 가운데 글 쓰는 선비가 으뜸이다”

[241] 실용주의 관리 서유구가 난세에 대처한 자세 ②/끝 전북 고창 청보리밭. 농민의 지혜가 담긴 땅이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2.23 03:00 정도전과 서유구, 그리고 선비 고려 말기인 1375년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 정도전이 전라도 나주 소재동으로 유배됐다. 유학자가 왔다는 소식에 노인 하나가 정도전을 찾았다. 마중 나온 종에게 유학자가 하는 일이 뭔가 묻자 종이 답했다. “음양과 오행, 초목의 크고 시듦, 삶과 죽음의 이치까지 통달해 아는 사람이외다.” 그러자 노인이 이리 답하곤 돌아가 버렸다. “실상이 없으면서 이름만 있으면 귀신도 미워한다고 했고, 스스로 어질다 하고 남을 대하면 남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알 만하구나.”(정도전 ‘삼봉집’4, ‘금남야인·錦南野人’..

[박종인의 땅의 歷史] 남양만 격랑 위로 여전히 태양은 빛나고…

[242] 2020년 세밑에 가본화성 남양만 남양만의 빛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2.30 03:00 경기도 화성 궁평리와 매향리 사이에 있는 바다를 남양만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굉장히 넓었는데 세월에 걸친 간척사업 끝에 상당 부분 땅으로 변했다. 그래서 남양만에 있던 가장 큰 포구 마산포는 뭍이 되었다. 마산포 앞 어섬[어도·魚島] 또한 언덕으로 변했고, 어도마을 앞에는 어도 버스 종점 이정표가 서 있다. 땅이 채 되지 못한 물은 화성호와 시화호라고 한다. 땅으로 변한 바다, 남양만 위로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이야기. 물 위에 떠 있는 버스 종점, 섬이었던 어도. /박종인 [242] 2020년 세밑에 가본 화성 남양만 흥선대원군 납치되던 날 임오군란 와중인 1882년 7월 고종 아버지 흥선대원군..

[박종인의 땅의 歷史] “적은 토벌하지 않고 장수를 죽여 성을 무너뜨렸구나”

243. 포수 의병장 김백선의 허무한 죽음 의병장 김백선의 애마 묘, '천비마의 묘'.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1.06 03:00 사람이 세상을 만들고 세상은 사람을 만든다. 사람이 만들었으되 세상은 사람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으니, 100년 전에도 지금도 그러하다. 절충장군 김백선의 변신 김백선은 경기도 지평(砥平·현 양평 소속)에 사는 사내였다. 1894년 동학혁명이 터졌을 때, 김백선은 지평 유림 맹영재를 도와 동학을 소탕한 공으로 정3품 절충장군 봉작을 받았다.(1894년 음력 11월 7일 ‘승정원일기’) 이듬해 8월 왕비 민씨가 일본인에게 살해되고 11월 갑오정부 김홍집 내각이 단발령을 내리자 김백선은 의병장으로 변신했다. ‘을미의병’이라 불리는 이 의병들은 유림이 주도했다. 김백선 부대..

[박종인의 땅의 歷史] “부친 3년상을 위해 의병 사령관직을 사퇴하노라”

[244] 1908년 서울 진공 작전과 의병총사령관 이인영의 귀향 공동체를 사수한 의병(1907)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1.13 03:00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를 연결하는 대로(大路) 이름은 왕산로(旺山路)다. 왕산은 허위(許蔿·1855~1908)가 썼던 호(號)다. 대한제국 때 의병장 허위는 1908년 경성감옥에서 죽었다. 허위는 경상도 선산 사람이다. 이제 서울 종로통에 경상도 사람 호가 붙은 길이 생긴 연유를 알아보자. 제목은 ‘서울진공작전’이고 공동 주연은 의병장 이인영(李麟榮)과 모든 의병들이다. 매켄지의 ‘The tragedy of Korea(조선의 비극)’에 실린 양근 의병./F. 매켄지 244. 1908년 서울 진공 작전과 13도 총사령관 이인영의 귀향 대한제국 군대해산과 정미..

[박종인의 땅의 역사] “소용돌이처럼 산하를 들쑤셔 南道를 소탕하였다”

245. 남한 폭도 대토벌 작전과 시덥잖은 친일파 신응희 1909년 일본군에 체포된 호남 의병들(남한폭도대토벌기념사진첩)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1.20 03:00 ‘제천은 지도에서 사라졌다(Chee-chong had been wiped off the map). 한 달 전만 해도 분주하고 영화로웠을 도시에는 잿더미와 덜 꺼진 잉걸불만 보였다. 나는 잿더미를 뒤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가족들은 어디 있소?” 그들이 답했다. “(시신들은) 언덕 위에 눕혀 놓았소.”’(F. 매켄지, ‘Korea’s Fight for Freedom’, Fleming H. Revell Company, 1920, p195) 그랬다. 망가진 대한제국 백성에게 닥친 것은 철저한 파괴였다. 1907년 8월 제국 군대가 ..

8개월 새 與 정치인만 세 차례 수상? 광복회 ‘최재형賞’의 정체

8개월 새 與 정치인만 세 차례 수상? 광복회 ‘최재형賞’의 정체 [전문기자 칼럼]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1.26 03:00 김원웅씨가 회장으로 있는 광복회가 어제 추미애 법무부장관에게 ‘최재형상’을 줬다. 공적은 ‘친일파 재산의 국가 귀속 노력 인정’이란다. 고구마 삼킨 듯 속이 답답해 몇 가지 짚는다. 최재형은 함경도 머슴집 아들이었다. 1860년대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한 뒤 성공한 거부(巨富)였다. 그 돈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안중근 의사가 쓴 권총도, 사격 연습장도 그가 제공했다. 안중근 신분증도 최재형이 만든 ‘대동공보’ 기자증이었다. 최재형은 1920년 4월 4일 일본군이 우수리스크 한인촌을 습격한 ‘4월 참변’ 때 노변 총살됐다. 무덤도 없다. 그 거인(巨人)을 기리는 상을..

[박종인의 땅의 역사]망국 대한제국에는 훈장이 발에 걸리도록 많았다

[246] 대한제국 망국기 훈장 남발 전말기 1918년 덕수궁 석조전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1.27 03:00 망국과 훈장 이야기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황제가 된 고종은 제국 선포 2년 6개월 뒤인 1900년 4월 19일 ‘훈장조례’를 발표하고 근대 훈장 제도를 실시했다. 대한제국 훈장은 크게 일곱 등급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훈장은 금척대훈장(金尺大勳章)이었다. 두 황제 광무제 고종과 융희제 순종은 모두 이 금척대훈장을 받았다. 황제들을 제외한 인물로 첫 번째 금척대훈장을 받은 사람은 1904년 대한제국을 방문한 독일 헨리 친왕이다.(1904년 3월 20일) 헨리 친왕 서훈 나흘 뒤 또 다른 외국 인사가 금척대훈장을 받았는데, 신분은 일본 후작(侯爵)에 일본 추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