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歷史 138

최익현 유해가 돌아오자 ‘餓死殉國(아사순국)’ 신화가 만들어졌다

247. 위정척사파의 태두 최익현의 파란만장한 일생 충남 예산 면암 최익현 묘소 '춘추대의비'.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2.03 02:26 면암 최익현은 1834년 1월 14일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1907년 1월 1일 일본 대마도에서 죽었다. 그 사이에 최익현은 상소를 통해 대원군을 끌어내리고 고종 친정을 이끌었다. 각종 위정척사 상소를 통해 나라 문을 닫고 일본의 침략 야욕을 경계하라고 주장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됐을 때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의병을 일으켰다가 일본군에 체포돼 대마도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죽었다. 그 공로로 해방 후 최익현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최익현은 지금 충남 예산에 잠들어 있다. 많은 인물들이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경로와 명분은 ..

[전문기자 칼럼] 司法'府' 아닌 司法'部'

[전문기자 칼럼] 司法'府' 아닌 司法'部'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2.08 03:00 동학농민운동 혹은 혁명은 1894년 초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민란이었다. 조병갑은 동진강에 만석보라는 보(洑)를 만들고 물세를 받았고 아비 조규순의 선정비 비각을 만들겠다며 부자, 가난한 자 가리지 않고 백성에게 돈을 거뒀다. 이를 항의하는 백성을 잡아 족치고 죽였다. 고종 정권이 민란에 대처한 방식은 진압이었다. 왜 백성이 풀 베는 낫으로 관리들 목을 자르겠다고 일어섰는지는 알려하지 않았다. 대신 청나라 군사를 불러들여 진압을 시도했다. 이에 일본군도 따라 들어와 조선 관군과 함께 농민들을 토벌했다. 고종 정권은 진상조사를 통해 주요 탐관오리를 처벌했다. 조병갑 또한 당연히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창자가 바뀌고 사상이 바뀌어 전날의 내가 아닙니다”

248. 불꽃처럼 살아간 혁신유림① 류인식과 협동학교(協東學校) 백하구려의 바윗돌.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2.10 03:00 의성 김씨 집성촌인 경북 안동 내앞마을에 ‘백하구려(白下舊廬)’라는 집이 있다. 백하(白下) 김대락이 살던 집이다. 사랑채 앞 화단에 바윗돌이 하나 있다. 김대락 종증손 김시중(84)은 “귀신 나오는 바위”라고 했다. 그것도 의병한테 총 맞고 칼 맞아 죽은 귀신. 이 귀신 이야기 주인공은 청나라 사람 양계초(梁啓超)와 단재 신채호와 동산 류인식과 집주인 김대락과 김동삼과 석주 이상룡이다. 20세기 초 아수라장이 된 나라를 위해 생명과 재산을 바친 안동 혁신유림(革新儒林) 이야기. 안동 '협동학교' 교직원. 윗줄 왼쪽 끝이 일송 김동삼이고 가운데 왼쪽 끝이 동산 류인식이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목숨과 재산을 던져 나라를 회복하겠노라”

249. 불꽃처럼 살아간 혁신유림② 노비 해방과 간도 집단망명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임청각 군자정. 노비와 땅을 포함해 전재산을 내놓고 만주로 떠난 석주 이상룡의 옛집이다. 벽에는 대한민국정부로부터 받은 가족들 훈장이 걸려 있다. 망국의 시대 ‘혁신유림’들은 공동체 부활을 꿈꾸며 만주 땅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했다. 고루한 구시대 질서에 안주했으면 부귀영화를 누렸을 권세가들이었지만, 이들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였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2.24 03:42 경상북도 안동에 있는 임청각 군자정. 노비를 해방하고 전 재산을 내놓고 만주로 떠난 석주 이상룡의 옛집이다. 벽에는 대한민국정부로부터 받은 가족들 훈장이 걸려 있다. 망국의 시대 ‘혁신유림’들은 공동체 부활을 꿈꾸며 ..

[박종인의 땅의 歷史] “김성근이는 참찬 시켰고, 흉도들에게는 토벌대 보냈다”

250. 국정을 좌지우지한 왕비 민씨의 편지들 고종 왕비 민씨가 조카 민영소에게 보낸 편지들. 왼쪽부터 “나에게 존호 불가라 한 이용원 상소가 절절히 통분하다”(1883년 7월) “청황실 서태후 생일에는 우리 민씨네가 인사하여라”(1894년) “동학(東學)으로 번지기 전 토벌대를 보냈다”(1894년 이전) “조병갑은 그 자리 외에는 할 길이 없다”(1892년) “김성근이는 참찬(장관) 시켰다.”(1892년 4월 4일) /국립고궁박물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3.03 03:00 진살제민(盡殺諸閔), 민씨는 다 죽인다 충청도에 살던 백락관은 골수 위정척사파 선비였다. 그가 1882년 음력 5월 4일 상소를 한다. 승정원에서 상소를 고종에게 전달하지 않았는지, 백락관은 남산에 봉화를 피우며 그 원통함..

[박종인의 땅의 歷史]사람들은 “왜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 탄식하였다

251. 선정비에 은폐된 구한말 부패 시대 전국 팔도 곳곳에 선정비들이 서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충남 공주 공산성에 있는 도순찰사 민치상 영세불망비, 강원도 삼척에 있는 관찰사 민영위 유혜불망비와 남한산성에 있는 광주유수 민영소 영세불망비 그리고 공주 공산성에 있는 판관 민두호 영세불망비다. 공덕비가 꼭 진실하지는 않다. 진실한 선정을 베푼 목민관 비석도 있고 강압에 의해 만든 악정비도 있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3.17 03:00 조선 팔도 두루 퍼진 민씨 선정비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초입 비림(碑林)에는 역대 광주 유수 선정비가 즐비하다. 그 가운데 민영소(閔泳韶) 영세불망비가 보인다. 충청남도 공주 공산성 입구에도 비림이 있다. 여기에는 민씨 선정비가 두 개다. 하나는 도순찰..

[박종인의 땅의 歷史] 아들을 인질로 보내라 하자 판서들이 앞 다퉈 사직하였다

252. 병자호란과 위선의 계보 ①도덕주의 권력의 위선 17세기 조선왕국 백성은 전쟁 구렁텅이 정권은 일신 안녕 추구 1627년 정묘호란 때 인조, 진짜 동생 대신 가짜 왕제(王弟) 보내서 위기 모면 병자호란 때도 가짜 동생 보냈다가 국가 존폐 위기 맞아 백성은 인질로 끌려가는데 고관대작들은 아들 인질 피하려 줄줄이 사표 대행진 ’더러운 왕' 못 섬기겠다는 ’더러운 신하들'의 위선 ’빗자루 쓸 듯 사라진 기강' 병자호란 때 조선군 200명이 전멸한 남한산성 '전승문'./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3.24 03:00 ‘나라는 중국에 의해 난장판이다. 국제 정세는 위기다. 국민은 도탄에 빠졌다. 권력자들은 국가 생존 대신 일신 안녕을 걱정하며 산다. 나라와 국가를 입에 달고 살지만 다 가짜다.’..

‘의정부 천보산 기슭에는 버림받은 공주님이 잠들어 있지’

[박종인의 땅의 歷史] 253. 병자호란과 위선의 계보 ②위선의 희생, 의순공주 경기도 의정부 금오동에 있는 '족두리 산소'.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3.31 03:00 온 백성이 오랑캐에게 끌려간 사이 많은 권력자들은 자기 가족 안위를 챙겼다. 자식을 보내지 않기 위해 삼공육경(三公六卿:현직 정승과 판서)은 앞 다퉈 사표를 냈다.(2021년 3월 24일 ‘박종인의 땅의 역사: 병자호란과 위선의 계보 ①도덕주의 권력의 위선’ 참조) 난세에 가장 먼저 희생되는 사람은 약자다. 가난하고 권세 없는 백성이 그 첫째다. 그리고 17세기 또 다른 희생자가 있으니, 여자(女子)였다. 오랑캐에게 한 번, 가짜 도덕군자들에게 한 번. 경기도 의정부 금오동 산45-21번지 ‘족두리 산소’. 금오동 사람들은 무덤..

“여행에세이, 닷새 만에 10쇄 2만 권 찍었습니다”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 펴낸 직업여행가 김옥선·김수인씨 출간 일주일 만에 2만권 팔려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4.03 03:46 더티(Dirty)와 그래쓰(Grass). 김옥선(26)과 김수인(27)은 그렇게 불린다. 두 사람은 ‘직업여행가’다. 여행이 직업이다. 여행으로 돈을 번다. 기업 협찬으로 유튜브 영상에 PPL(제품 협찬)을 노출해 여행경비는 물론 수익까지 올리는 여행가들이다. 직업여행가 더티(Dirty) 김옥선(왼쪽)씨와 그래쓰(Grass) 김수인씨. 작가인 김옥선씨가 지난주 출간한 여행에세이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는 인터넷서점 배포 2분 만에 초판 4000권이 매진됐다. 책에는 여행을 통해 얻은 20대 여자들의 아픈 삶과 미래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박종인 지난달 2..

[박종인의 땅의 歷史] 매국노 하나가 나라를 뒤흔든 시대가 있었다

254. 병자호란과 위선의 계보 ③고양 벽제관과 매국노 정명수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 있는 옛 중국 사신 숙소 벽제관지. 명과 청 사신들은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 한성으로 향했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4.07 03:00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 있는 벽제관지(碧蹄館址)는 조선시대 명‧청 사신이 한성으로 들어오기 전 묵었던 객사다. 이들이 서대문 바깥 모화관에 이르면 국왕이 나아가 사신을 영접하곤 했다. 임진왜란 동안 반파된 벽제관은 쓰레기로 덮여 있었다.(1593년 윤11월 21일 ‘선조실록’) 인조 3년인 1625년 조선 정부는 고양군 관아를 5리 북쪽으로 이전하고 벽제관도 함께 이전했다. 6‧25 때 불탄 뒤 주춧돌만 남은 폐허가 지금 벽제관지다. 그 사이 대륙은 청(淸)으로 넘어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