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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나무가 살아있는집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나무가 살아있는집 입력 2004.03.04 18:08:18 | 수정 2004.03.04 18:08:18 진(秦)나라 때 측백나무 숲에서 측백나무 잎만 먹고 200년 살았다는 역사 인물을 둔 현대의학의 입증이 한때 화제가 됐었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정신이나 호흡기 질환이 생기면 크레타섬의 삼나무 숲을 찾아가는 것이 관례다. 화가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에 그린 명작 ‘프로방스의 삼나무’도 그의 예술감각을 연장시킨 바로 그 나무다. 우리 조상들은 질병에 저항하는 나무 방사능을 일상에 활용하는 데 천재적이었다. 개화기에 서양사람들이 한국집에 들러 보고 집 기둥이나 대들보 서까래 등 목재가 다듬어지지 않은 채 껍질만 벗겨 노출시킨 것을 두고 정제미(整齊美)나 장식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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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氣와 鐵

[이규태코너] 氣와 鐵 조선일보 입력 2004.03.05 18:02 이 세상은 과학과 주술(呪術)이 지배하는 이원구조로 돼 있는데 주술이 지배하는 세상을 학술적으로 집대성한 것이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다. 거기에 한국의 역사에 있었던 주술사례 몇 가지가 인용돼 있다. 철종대왕이 돌아가실 때 등창으로 고통받았지만 신성한 임금님의 몸에 철물을 대는 것은 금기(禁忌)였기에 침을 놓으면 살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쇠는 임금의 초월적인 기(氣)를 죽이는 물건이라 몸에 대는 것은 대역(大逆)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손도 못 보고 승하했다. 또 헌종(憲宗)은 입술에 종기가 났는데 칼로 종기를 째면 나았을 것을 철물 금기로 대지 못하고, 시의(侍醫)가 광대를 불러 임금으로 하여금 파안대소케 하여 종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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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중국유학 고금

[이규태코너] 중국유학 고금 조선일보 입력 2004.03.07 18:18 18세에 당나라에 유학, 반역자 황소(黃巢)를 규탄하는 격문을 비롯해 중국사에 남는 명문장을 남긴 최치원(崔致遠), 중국 도교에서 굴지의 신선으로 기억되는 김가기(金可紀), 지장보살로 중국 민중 깊숙이 좌정하고 있는 김교각(金喬覺)이 신라 유학생들이었다면 중국사람들 깜짝깜짝 놀란다. ‘당회요(唐會要)’에 보면 당태종이 태학(太學)에 가 고구려 백제 신라 유학생의 폭증을 보고 학사(學舍) 1200칸을 증축시켰다는 것이며, 통일신라시대인 당 문종 때에는 신라 유학생 216명 몫의 양식과 옷감을 내리고 있다. 신라 신무왕 국상(國喪)에는 105명의 유학생들에게 문상 방학을 허락하는 것 등으로 미루어 신라 유학생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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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남원 판소리 대학

[이규태코너] 남원 판소리 대학 조선일보 입력 2004.03.08 17:26 풍토학에서 푸른 산에 싸여 살아온 청산형(靑山型) 인간과 사막에 싸여 살아온 비청산형(非靑山型) 인간을 구분하고, 다시 청산형 인간을 지질이 노쇠하여 바위가 들쑥날쑥 드러난 골산형(骨山型) 인간과 기름진 흙으로 뒤덮인 육산형(肉山型) 인간으로 갈라본다. 곧 비청산형이나 골산형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종적(縱的)으로 성장시키는 권력지향을 하는 성향이 있는데, 청산형·육산형 인간은 인생을 횡적(橫的)으로 풍요하고 살찌게 하려는 예능지향을 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육산이 지리산임은 알려져 있으며 그 청산의 기를 아끼기라도 하듯 감싸 지리산 남쪽으로 펼쳐진 땅이 남원평야다. 조선조의 문헌들에 팔도에서 단위면적당 소출이 가장 많은 옥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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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왼손잡이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왼손잡이 입력 2004.03.09 18:21:33 | 수정 2004.03.09 18:21:33 찰리 채플린은 왼손잡이었다. 소년 적에 하루 8시간 피나는 레슨을 계속했지만 현(絃)을 괴는 받침대가 오른손잡이로 돼 있었기에 한계를 느끼고 바이얼린을 짓밟아 부수고 그 줄로 목을 매려 든 적도 있었다. 그의 희극이 반체제로 일관된 것도 오른손잡이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포드 미국대통령이 대중 앞에 나섰을 때 곧잘 비틀거렸던 것은 왼손잡이인 그에게 오른손잡이와 똑같은 행동을 요구한 때문이다. 부시 전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도 왼손잡이었다. 공식통계가 없었던 우리나라 왼손잡이수가 200만명으로 전체 성인 인구의 4%라는 보도가 있었다. 미국과 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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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이방인'

[이규태코너] '이방인' 조선일보 입력 2004.03.10 17:19 “오늘 어머니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카뮈의 「이방인(異邦人)」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양로원으로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통고받고 가선 어머니의 얼굴을 보려 하지도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상을 입지도 않고 이튿날 희극영화를 보고는 여자친구와 러브호텔에 든다. 젊었을 때 이 「이방인」의 첫머리만을 읽고도 들고 있던 그 책을 반사적으로 이불 속에 감추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방인데도 나의 마음 깊은 구석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본심을 발각당한 데 대한 조건반사였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는 사회가 요구하는 관례, 연기, 가면, 거짓으로 살아온 겉의 나, 그 나와는 다른 이방인을 내 속에서 발견한다는 것은 여간한 충격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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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가축 복지학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가축 복지학 입력 2004.03.11 17:14:39 | 수정 2004.03.11 17:14:39 온 세상을 공포의 회오리 속에 몰아넣고 있는 조류독감이나 돼지 콜레라가 밀집사육에 의한 스트레스의 부산물이라는 학술적 연구가 대두된 지는 오래며, 조류독감의 공포 속에서 미국 시사잡지는 동물 심리를 연구하는 가축복지학이 각광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주 서울에서도 동물복지에 관한 심포지엄이 있어 도살 전 48시간 동안 그 가축이 어떤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가로 그 육질이 어떻게 달라졌는가가 발표되기도 했다. 곧 조류 독감은 인간의 동물학대에 대한 문명사적 반동이라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늦가을 뜰에 서 있는 시든 해바라기를 치우던 할머니는 베어 없애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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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자살과 명예

[이규태코너] 자살과 명예 조선일보 입력 2004.03.12 18:12 클레오파트라 집권시절의 알렉산드리아에 자살의 명분을 가르치는 자살학교가 있었다. 그 명분은 사회의 공인으로서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을 때, 자신의 소신이나 약속을 죽음으로 지킬 필요가 있을 때로 돼 있다. 로마제국에서도 영웅적인 행위로서의 자살, 씻을 수 없는 명예훼손을 당했을 때의 자살이 있었으며,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이 집행 대신 목숨을 끊겠다고 할 때는 독약을 무료로 제공했다. 이처럼 명예를 둔 명분 자살이 허용되었던 유럽에서 자살이 죄악시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살은 타살보다 죄가 무겁다는 해석을 체계화한 이후부터다. 단테의 ‘신곡(神曲)’에서 자살자가 지옥에서 받는 책고(責苦)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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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뚝섬 무상

[이규태코너] 뚝섬 무상 조선일보 입력 2004.03.14 17:38 | 수정 2004.03.14 17:38 뚝섬을 한자로 독도(纛島)로 쓰는데 독은 장군기(將軍旗)에 꽂는 꿩꼬리로, 지휘권을 상징한다. 바로 이 뚝섬 벌판이 조선조 이태조 때부터 임금님이 열무(閱武)하던 연병장이었기에 얻은 이름이다. 뚝섬에서는 극히 근년까지 경칩과 상강 날에 독제(纛祭)를 지내는데 장군기를 복판에 모셔 놓고 궁시무(弓矢舞) 창검무(槍劍舞)로 진행했다. 그후 억무(抑武)정책으로 연병장이 말을 기르는 목장으로 변해갔다. 이 뚝섬 목장에 연산군의 엽색(獵色)행각이 잦았다던데 그 행차에 역군으로 수행했던 이의 추억담이 이덕형(李德炯)의 「죽창한화」에 적혀 있다. 임금이 자리를 잡으면 곁에 데리고 온 기생들만 남기고 둘레를 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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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남산 개구리

[이규태코너] 남산 개구리 조선일보 입력 2004.03.15 17:14 논 농사를 짓는 미작(米作)문화권과 밀 농사를 짓는 맥작(麥作)문화권의 개구리 이미지는 판이하게 다르다. 콩쥐와 팥쥐 이야기의 원형인 신데렐라형 설화는 세계적으로 분포돼 있는데 미작문화권이 아닌 지역에서는 계모의 딸이 죽어 개구리가 된다. 그만큼 부정적이다. 70년대 미국의 맹렬 여성들은 개구리 마스코트나 브로치를 하고 다녔는데 개구리가 공처가를 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수놈 개구리 볼때기에 달린 바람주머니 속에서 올챙이를 기른다 하여 공처가가 된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단편소설 ‘개구리’는 주책없고 미련한 주인공의 싱징이다. 이에 비해 논농사를 지어온 우리나라에서 개구리는 지엄한 존재다. 고구려의 시조 금와왕(金蛙王)이 개구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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