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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孝不孝主義

[이규태코너] 孝不孝主義 조선일보 입력 2004.02.09 17:59 어느 문명권이건 인간이 욕망대로 사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쾌락주의와 욕망을 억제하는 데 가치를 부여하는 금욕주의가 대립해 왔다. 희랍에는 쾌락과 행복을 동일시한 에피쿠로스의 쾌락철학이 풍미했었고, 로마 멸망시기에는 에피쿠로스 동산을 만들어 육체적 향락으로 지새우다 그곳에서 죽기까지 했다. 제 명대로 살아야 60인데 사로병고(死老病苦)와 근심걱정 없는 날은 한 달에 사나흘이 고작이라 하고 욕망추구를 부추긴 것은 장자(莊子)요 그의 뜻을 양주(楊朱)가 승계했다. 하지만 기독교의 모태가 된 히브리즘이 헬레니즘을 압도하고 유교사상이 장주(莊朱)사상을 압도했듯이 금욕문화가 우위를 유지해온 것이 세상에 공통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쾌락주의가 행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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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남자 치마

[이규태코너] 남자 치마 조선일보 입력 2004.02.10 18:12 성을 둔 차별철폐 운동이 드디어 옷차림에까지 비화,엊그제 뉴욕에서 하이힐에 길고 짧은 치마 차림의 사나이들이 도심을 누비는 행진을 했다. 변태 성욕자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이들은 여자들은 남자옷 입고 다니는데 왜 남자는 여자옷 못 입고 다니느냐는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라고 했다. 고대에 있어 치마와 바지는 성을 가르는 옷이 아니라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후로 정착성 농경을 생업으로 삼아온 민족일수록 치마를 선호했으며, 한랭 건조한 대륙성 기후로 이동성 생활을 해온 민족일수록 활동성의 바지를 선호했다. 따라서 해양성·대륙성 문화가 완충하는 한반도에선 남자가 치마를 입었던 기록이 없지 않다. ‘삼국유사’에 보면 김유신이 김춘추와 축국(蹴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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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원숭이 생존설

[이규태코너] 원숭이 생존설 조선일보 입력 2004.02.11 16:01 고려 때 시인 이인로(李仁老)의 지리산 시에 「죽장 짚고 청학동 찾아드니/수풀 건너 백원숭이 우는 소리―」 하는 대목이 나오고,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 유방선(柳方善)의 지리산 시에도 「개닭 소리 들리지 않는 깊은 산중에/해 떨어지자 원숭이 우는 소리 들린다」 했다. 송강 정철도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로 시작되는 시조에서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파람불제 뉘우친들 어떠리」 했다. 짐승 우는 소리를 원숭이 울음으로 시적인 표현을 할 수 있겠으나 행여 야생 원숭이가 한반도 남방에 살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조선조 초에 편찬한 한국 지지(地誌)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보면 원숭이 원(猿)자가 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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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한·일 줄다리기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한·일 줄다리기 입력 2004.02.12 17:57:06 | 수정 2004.02.12 17:57:06 줄다리기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와 동남아 벼농사지역에 주로 퍼져 있고 북아프리카 유럽의 농경지대에서도 줄을 당긴다. 그래서 2회에서 7회까지 올림픽 종목이 돼 있었을 만큼 국제적인 민속행사다. 하늘인 아버지가 땅인 어머니에게 ‘비’라는 정액으로 잉태시켜 그해의 풍년을 들게 한다는 고대문명의 천부지모성혼설(天父地母聖婚說)에 뿌리를 둔… 풍년을 빌고 비가 내리기를 비는 행사로 고대에는 남녀가 편을 갈라 겨루기 마련이었다. 이 성혼설의 원형을 가장 성실하게 유지해온 한국의 줄다리기는 이미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의 전통 줄다리기는 암줄과 수줄을 따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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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씨름과 스모

[이규태코너] 씨름과 스모 조선일보 입력 2004.02.13 18:11 알몸으로 서로 붙들고 겨루는 씨름은 격식이 다를 뿐, 없는 나라 없이 퍼져 있다. 나일강 상류에 있는 4200년 전의 임금무덤 벽화에 220수의 씨름모습이 새겨져 있어 이집트를 씨름의 발상지로 치고 있으나, 불경인 ‘법화경’에 씨름이 나오고 부처가 씨름하는 모습을 그린 인도의 암벽화도 출토되고 있다. 고대 이라크에서는 씨름의 승자가 여신관(女神官)과 결혼하는 신성의례이기도 했다. 다만, 유럽 기독교문화권에서 도외시해온 것은 씨름할 때 노출시키는 엉덩이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농경문화에서 엉덩이 노출은 풍년 다산의 상징으로 씨름의 뿌리가 이 풍년기원에서 비롯됐다는 설까지 있지만 기독교에서 엉덩이는 악마의 얼굴로, 노출시켜서는 안 되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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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생체실험

[이규태코너] 생체실험 조선일보 입력 2004.02.15 16:47 유대인 정신의학자 빅토르 프랑클은 닷하우 강제수용소에서 나치의 생체실험을 목격했었다. 수용자 수백명을 차가운 빙수 속에 넣어 죽어가게 하는 실험이 있었는데 대개는 체온 25~26도에서 사망하고 최저기록이 19도였다. 이렇게 많은 살상을 수반한 생체실험으로 수용소의 연료를 아꼈다는 것이다.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일본 관동군 731세균부대의 만주 생체실험장은 지금 고스란히 보존되어 인간이 얼마만큼 잔혹해질 수 있는가의 한계를 말해주는 현장이 되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을 원심분리기에 걸어 생혈을 짜는 착혈(搾血) 실험장치가 있고 진공실에 집어넣고서 입이나 항문, 눈이나 귀가 파열되고 내장이 돌출하는 과정을 16㎜ 기록영화로 찍어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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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주술 작전

[이규태코너] 주술 작전 조선일보 입력 2004.02.16 17:48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던 아기가 곶감에 울음 그치는 걸 보고 호랑이가 도망쳤듯이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은 폭탄 실은 차를 몰고 돌진하는 자살테러 앞에 속수무책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이미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에 노출된 이스라엘 정착촌에서는 마을 둘레에 돼지떼를 방목함으로써 이슬람 공격을 차단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곧 돈병(豚兵) 경비망이 미사일 경비망보다 효력을 더 보고 있는 셈이다. 그 돈병 경비대에 재미를 보았던지 돼지 기름통이 대자살테러 요격 무기로 등장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살테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버스정류장, 쇼핑센터, 학교, 공공건물에 자살 차량이 돌진하면 와닿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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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이라크의 신체언어

[이규태코너] 이라크의 신체언어 조선일보 입력 2004.02.17 17:47 아랍의 오지를 여행하면서 식당에 들렀을 때 곁에서 양갈비를 뜯던 아랍 사람이 느닷없이 뜯던 갈비를 내밀어 당황한 적이 있다. 수식(手食)하는 이들은 부정을 탄 왼손을 써서는 안되며 오른 손만으로 뜯어먹을 수 없을 때 옆사람의 오른손을 빌리며,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응해주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리하여 그 넓은 식당에서 오른손만의 식사 하모니가 기가 막히게 영위되는 것을 보았다. 아랍국가들의 수뇌가 만나면 으레 끌어안고 볼 대기를 하는데 반드시 오른쪽 볼을 먼저 댄다. 물건 주고받을 때도 오른손이 도맡고 ‘오른손에 코란 왼손에 칼’은 아랍 사람들이 왼손잡이라서가 아니라 코란이 싱위 개념에 있기 때문이다. 파병 결정에 즈음하여 우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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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생명공학과 한국인

[이규태코너] 생명공학과 한국인 조선일보 입력 2004.02.18 18:00 ‘조선 바늘에 되(胡) 실 꿰기’라는 속담이 있다. 거의 되지 않을 일을 되풀이하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거꾸로 ‘되(胡) 바늘에 조선 실 꿰기’ 하면 수월함을 빗대는 말이 되고 있다. 그만큼 조선 바늘이나 조선 실에 비겨 중국 바늘과 실은 굵고 거칠고 섬세하질 못하다. 손이 거칠기에 기구도 조악하고, 그로써 지어놓은 옷가지의 뜸뜸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황우석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난자를 이용한 인간 배아줄기 세포 개발에 성공한 것을 두고 외국학자는 ‘조선 바늘에 되 실 꿰기’인데 한국학자에게는 ‘되 바늘에 조선 실 꿰기’였다는 뒷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손이 무딘 미국사람이면 난자에서 핵을 빼내는 데 1시간이 더 걸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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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오대산의 산새들

[이규태코너] 오대산의 산새들 조선일보 입력 2004.02.19 17:46 혜초 스님 이래 한국의 고승들은 중국 불교성지인 오대산에 유학했고 스님이라면 오대산에 한 번 순례하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었다. 강원도 오대산도 그 지형이 중국 오대산을 축소해 놓은 듯하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그 중국 오대산 산새들은 사람을 보면 어깨 위에 내려앉고 손을 뻗으면 손바닥 위에 앉아 고개를 넘곤 한다는 기록들을 남겼다. 성지를 거룩하게 하고자 하는 과장이려니 했지만 법과 도를 구하여 몇 천리 몇 만리 밖에서 찾아온 사람들만이 사는 생명애의 성지에서 산새와 사람과의 친화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눈에 덮인 강원도 오대산 이름 모를 산새들이 관광객의 머리, 어깨, 손 위에 내려앉는 광경이 보도되었는데 중국과 한국 오대산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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