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 岳麓 書院

[이규태코너] 岳麓 書院 조선일보 입력 2004.03.28 18:18 조선시대의 유생들이 성지로 여겨온 곳이 취푸(曲阜)에 있는 공부(孔府)와 주자가 가르친 장사의 악록서원이다. 천년 역사의 그 서원에서 유구한 전통 교육방식을 현대에 접목해 10명 안팎의 박사학위 과정을 전 세계에서 모집키로 하여 국내외에서 지망생이 쇄도하고 있다 한다. 서원의 중심 건물인 강당의 좌우 벽면에 절(節) 효(孝) 충(忠) 염(廉)이라는 주자사상을 집약시킨 등신대의 붓글씨가 붙어 있는데, 주자의 친필이다. 그 강당에 들면 복판에 나무의자 두 개가 놓여 있는데, 하나에는 주자가 앉고 다른 하나에는 악록서원 원장인 호남학파 거두 장식(張?)이 앉아 그 유명한 ‘주장회강(朱張會講)’이라는 세미나를 주재했던 현장을 보존하고 있었다...

이규태 코너 2022.10.24

[이규태코너] 소년 자살특공대

[이규태코너] 소년 자살특공대 조선일보 입력 2004.03.29 17:32 일제 강점 말기 10대 전반의 한국 소년들에게 요카렌(豫科練)이라는 소년병 지원을 강요했었다. 이 소년병이 되면 여느 군복 단추가 다섯 개인 데 비해 일곱 개나 달아주고 여느 단추는 벚꽃모양인데 벚꽃에 닻이 더 들어있다는 등 차별화로 선망을 유도했었다. 지원입대를 하면 여학생들이 무운(武運)을 빈다는 바늘 땀으로 수놓은 천인침(千人針)의 어깨띠를 둘러주어 우쭐하게 한다. 그렇게 끌려간 소년은 자살특공훈련을 받고 죽어갔고 그의 집에는 ‘영예로운 집’이라는 문패가 붙어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묵념하도록 신격화하기까지 했었다. 독재 말기에는 이처럼 철없는 소년들을 속임수로 유인, 자살무기로 써먹어온 것은 역사의 상식이었다. 2차대전 말..

이규태 코너 2022.10.24

[이규태코너] 女風 政局

[이규태코너] 女風 政局 조선일보 입력 2004.03.30 17:15 열이 심한 감기가 들면 미국에서는 차가운 콜라나 주스를 먹이고 냉탕에 목욕시키는 이냉치열(以冷治熱)을 한다. 한방에서 열에 냉을 대결시켜 다스린다 하여 이를 대치(對治)라 한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감기가 들면 불 지핀 아랫목에 이불을 씌워 땀을 흘리게 하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을 한다. 열을 열로 다스린다 하여 동치(同治)라 한다. 이 세상의 많은 대립 개념인 선악, 적과 나, 신과 악마, 여야, 네편과 내편 등을 해소시키는 수단으로 서양사람은 대치를 선호하고 한국사람은 동치를 선호한다. 또한 대치에 실패하면 동치를 택하는 끝바꿈도 역사의 관행이다.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은 대치 전쟁이었고 부시에 도전한 켈리가 동치를 부르짖고 나선 ..

이규태 코너 2022.10.23

[이규태코너] 고속철과 費長房

[이규태코너] 고속철과 費長房 조선일보 입력 2004.03.31 17:23 중국의 고위급 인사가 국빈으로 영국에 들렀을 때 명문학교인 이튼에 들렀던 것 같다. 운동장을 내다보니 한 학생이 시종 트럭을 돌며 달리고 있어 그를 보고 뭣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이에 장거리 기록에 도전, 훈련 중이라고 하자 이 중국국빈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렇게 빨리 가서 남은 시간을 어디다 쓰려고 하느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4월 1일 개통된 고속철의 속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게 빨리 가서 시간을 남길 필요가 없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기존의 완행열차를 줄이고, 없앤것에 불만을 품고 삯을 올려받으려는 약은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보도되었다. 100여년 전 경인철도가 개통되었을 때도 삯을 타산, 기차를..

이규태 코너 2022.10.23

[이규태코너] 卵生神話와 고구려

[이규태코너] 卵生神話와 고구려 조선일보 입력 2004.04.01 18:06 백마가 하늘에서 내려와 경주 나정(蘿井) 가에 낳아놓은 자색 알에서 신라시조 박혁거세는 태어났다. 그 난생신화의 현장에서 신당 규모의 주추 자리들을 발굴함으로써 역사의 갈등을 빚고 있는 현안에 대해 실타래를 풀 단초가 될 것 같다. 건국신화에서 시조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문화권은 신라뿐이 아니다. 가야의 김수로왕도 황금알에서 태어났고 고구려의 주몽도 햇볕을 받고 밴 알에서 태어난 난생 임금이다. 곧 난생은 한국의 동질성이며, ‘한국=난생’이라는 역사등식이 형성된 것이다. 건국신화의 난생문화권은 대만·미얀마·필리핀·베트남·피지와 파라오로 알려진 이집트 및 수마트라·보르네오 등 남방국가나 민족들로, 고구려는 난생신화 문화권의 북한..

이규태 코너 2022.10.23

[이규태코너] 水門의 엽전꾸러미

[이규태코너] 水門의 엽전꾸러미 조선일보 입력 2004.04.02 18:20 도성 복판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물이 빠져나가는 다섯 칸 오간수문(五間水門)은 죄인들이 빠져나가고 문세(門稅)를 물지 않고도 드나드는 범칙 출입문이었다. 그 수문 교각 후미진 곳에서 200여년 전의 엽전 꾸러미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왜 그곳에 그 큰돈이 버려져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우리 한국인의 금전문화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무위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한국인에게 체질화돼 있던 척전문화(擲錢文化)의 소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조상들 복을 부르고 재앙을 소멸시키는 초복소재(招福消災)의 수단으로 샘이나 미륵 암석 고목 다리에서 돈을 던지는 관행이 있었다. 대보름날 밤 한양의 남녀노소 다리를 밟는데 마음속의 소원을 빌거..

이규태 코너 2022.10.23

[이규태코너] 시체 모독

[이규태코너] 시체 모독 조선일보 입력 2004.04.04 18:16 이라크에서 매복공격을 받은 미국 병사들의 시신을 불태우고 갈기갈기 찢어 티그리스강 철교에 매닮으로써 반미감정을 극악으로 표출했다. 중동에서 이 시신 모독은 이단자에게 가하는 민중형으로, 사람이 많이 집산하는 광장이나 다리목 시장에 거꾸로 매달아 두게 마련인데 매달린 양쪽에 사나운 개를 매어 놓아 이 시신에 달라붙어 물어뜯게 하기도 했다. 자살을 죄악시했던 영국에선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자살을 하면 그 시체를 마차에 매어 달고 도시를 한 바퀴 도는 모욕을 가했다. 지베트라 하여 템스강변에 죄인의 시신을 10m 높이로 매달아 행인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대역죄인의 목을 목가(木架)에 걸어 공개하던 효수(梟首)와 같은 것이었다...

이규태 코너 2022.10.23

[이규태코너] 棄老國

[이규태코너] 棄老國 조선일보 입력 2004.04.05 17:46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 양식만 축내는 노인을 죽게 하거나 버리는 문화는 보편적이었다. 웨스트고드랜드의 국경지방에 에테르니스 스타피라는 천길 벼랑이 있는데 늙어 수입가계(收入家計)에 도움이 안 되면 이 벼랑에 모셔가 떼밀었던 현장으로, 에테르니스 스타피ㅡ하면 노인을 떼밀어죽인 노사(老捨)문화를 일컫게 됐다. 고대 로마에서는 벼랑이 아니라 다리에서 떼밀었다. 노인을 데폰타니라 불렀다는데, 다리에서 떼밀리는 사람이란 뜻이라 한다. 탐험가 헌트가 피지섬에 상륙했을 때 살아있는 어머니의 장례라는 이상한 의식에 초대받아 갔었다. 노모의 생매장 의식으로 헌트가 놀라 살인행위라하여 말렸지만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새끼줄로 목을 졸라 살..

이규태 코너 2022.10.23

[이규태코너] 교육비 古今조선일보

[이규태코너] 교육비 古今 조선일보 입력 2004.04.06 17:38 요즈음은 사치품에 명품이 있지만 옛날에는 생필품에 명품이 있었으니 그중 하나가 서당비다. 서당에서 나온 빗자루로, 여느 비보다 두 배나 오래 쓸 수 있다 하여 명품으로 인정된 것이다. 그 서당비의 내력은 이렇다. 서당에 아이를 맡긴 부모는 회초릿감으로 좋은 싸리나 물푸레나무를 한 아름 꺾어 서당훈장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관례였다. 명분은 우리 자식 이 회초리 모두 닳도록 종아리를 쳐 사람 되게 해달라는 것이지만 실속은 달랐다. 훈장은 수시로 한 아름씩 가져다주는 그 많은 싸리로 빗자루를 엮어 장날 내다 팔아 양식과 시탄(柴炭)을 장만하곤 했다. 부모들에게는 교육비요, 훈장에게는 급료인 셈이다. 천시한 금전거래를 훈육의 상징인 회초리로 ..

이규태 코너 2022.10.23

[이규태코너] 복숭아형 CEO

[이규태코너] 복숭아형 CEO 조선일보 입력 2004.04.07 17:30 국내 대기업 직원들이 선호하는 최고경영자상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복숭아형으로 외강내유(外剛內柔)의 호두형보다 곱절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랫사람 상처입히지 않고 신경을 쓰며 융통성 있게 배려하는 전통적 리더십을 여전히 선호한다는 것이 된다. 한국사람의 마음을 외국인의 그것과 갈라보는 기준으로 바자르형이냐 오일장형이냐는 것이 있다. 중동지방의 시장인 바자르에 가보면 각기 다른 나라 사람과 다른 종족들이 모여들어 말도 통하지 않고 눈곱만한 이해에 양보가 없다. 이민족 이국어 간의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통로요 코드는 논리뿐인 것이다. 그 논리의 하드웨어에 쇠소리나 내며 흥정을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오일장은 사고 파는 사람이..

이규태 코너 2022.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