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198

선비의 지조[이준식의 한시 한 수]〈108〉

古意 / 梅堯臣 月缺不改光 劍折不改剛 月缺魄易滿 劍折鑄復良 勢利壓山岳 難屈志士腸 男兒自有守 可殺不可苟 달은 이지러져도 그 빛 변함이 없고 보검은 부러져도 그 강함이 그대로지 기운 달은 빛이 쉽게 차오르고 부러진 보검은 주조하면 다시 좋아지지 권세가 산을 압도할 듯 막강해도 지사의 마음을 굴복시키긴 어려운 법 대장부는 원래 지조가 있으니 죽을지언정 구차하게 살지는 않는다네 ```````````````````````````````````````````````````````````` 달이 이지러지면 잠시 시야에서 사라지는 듯해도 빛을 발산하는 본질은 둥글게 차 있을 때나 다름없다. 끊임없이 쇠를 달구고 담금질하고 두드리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탄생하는 보검도 마찬가지다. 모진 단련을 다 극복하고 벼려냈기에 부..

지는 봄을 바라보며[이준식의 한시 한 수]〈107〉

曲江 / 杜甫 一片花飛減却春 일편화비감각춘 風飄萬點正愁人 풍표만점정수인 且看欲盡花經眼 차간욕진화경안 莫厭傷多酒入脣 막염상다주입진 江上小堂巢翡翠 강상소당소비취 苑邊高塚臥麒麟 원변고총와기린 細推物理須行樂 세추물리수행락 何用浮名絆此身 하용부명반차신 꽃잎 하나 날려도 봄빛이 줄어들거늘 무수히 휘날리니 울적해지는 내 마음 눈앞을 스치는 떨어지는 꽃잎 보며 몸 상하는 건 개의치 않고 술 마구 들이킨다 강가 작은 집엔 물총새가 둥지 틀고 동산 옆 높은 무덤엔 기린 석상이 나뒹군다 세상 이치 따지고 보면 즐기는 게 당연하니 헛된 명성에 이 몸을 얽맬 순 없지 꽃잎 날리는 강변에서 가는 봄을 바라보며 술로 시름을 달래는 시인. 꽃잎 하나 떨어져도 봄기운이 퇴색하려나 싶은 터에 수만 조각이 바람에 흩날린다. 꽃비의 향연은..

학을 좋아한 선비[이준식의 한시 한 수]〈106〉

池鶴 高竹籠前無伴侶 亂鷄群裏有風標 低頭乍恐丹砂落 쇄翅常疑白雪消. 轉覺(노,로)毛色下 苦嫌鸚鵡語聲嬌 臨風一려思何事 창望靑田雲水遙 ―연못의 학(池鶴)제1수·백거이(白居易·772∼846) 높다란 대울타리 속 친한 짝은 없지만 시끌벅적 닭 무리에서 저 홀로 빼어나다 머리 숙이면 붉은 볏이 떨어질까 두렵고 햇살 쬐면 하얀 깃털 녹아날까 걱정일세 가마우지는 털 빛깔이 천박한 듯싶고 앵무새는 목소리가 교태스러워 싫어한다 바람결에 울음 울며 무엇을 생각할까 아득히 푸른 들, 구름과 강을 바라보는 슬픈 눈망울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학에 시인은 자신의 처지와 심사를 투영한다. 짝도 없이 높다란 울타리 저편에 갇혀 있지만 학은 뭇 닭들과는 풍모가 완연히 다르다. 그가 꼿꼿이 머리를 세우는 건 단사(丹砂)처럼 붉은 볏을 지키..

어떤 작별[이준식의 한시 한 수]〈105〉

送梓州李使君 / 王維 재주로 이 사군을 보내며 萬壑樹參天 만학수삼천 千山響杜鵑 천산향두견 山中一夜雨 산중일야우 樹杪百重泉 수초백중천 漢女輸橦布 한녀수동포 巴人訟芋田 파인송우전 文翁翻敎授 문옹번교수 不敢倚先賢 부감의선현 골짜기마다 나무들 하늘을 찌르고 뭇 산엔 두견새 소리 울려 퍼지리 산중 밤새도록 비가 내리면 나뭇가지 끝에선 좌르르 샘물이 쏟아지리 그곳 여자들 무명베 짜서 세금 바치고 남자들은 토란밭 때문에 다툼이 잦을걸세 옛날 문옹이 그곳을 교화했다지만 선현의 업적에만 마냥 기대진 마시게 ―‘이 자사의 재주 부임에 부쳐(送梓州李使君)’ 왕유(王維·701∼761) 자사(刺史)로 부임하는 친구에게 바치는 송별의 노래 시인은 친구가 도착할 부임지의 풍경을 상상한다 거목들이 우뚝한 첩첩산중, 두견새 울음이 메..

감춰진 그리움[이준식의 한시 한 수]〈104〉

贈隣女 羞日遮羅袖 수일차라수 愁春懶起妝 수춘라기장 易求無價寶 역구무가보 難得有心郎 난득유심랑 枕上潛垂淚 침상잠수루 花間暗斷腸 화간암단장 自能窺宋玉 자능규송옥 何必恨王昌 하필한왕창 해님 부끄러워 소매로 얼굴 가리고 봄날 시름겨워 화장도 마다하네 진귀한 보물은 쉽게 구해도 낭군 마음 얻기는 너무 어려워 베갯머리 가만히 눈물 흘리고 꽃밭에서 남몰래 애를 태우네. 송옥같이 멋진 남자도 넘볼 수 있는 그대 떠나버린 왕창을 원망할 건 없잖아 ―‘이웃 여자에게(증인녀·贈隣女)’ 어현기(魚玄機·약 844∼871) 무엇이 부끄러워 얼굴 가리며 왜 화장조차 게을리하면서 자신을 학대하는가. 종잡을 수 없는 낭군의 마음은 원래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란다. 그저 무심할 뿐인 보물을 구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지. 그러니 그대여..

인생은 기러기 발자국[이준식의 한시 한 수]〈103〉

人生到處知何似 人生到處知何似 인생도처지하사 應似飛鴻踏雪泥 응사비홍답설니 泥上偶然留指爪 니상우연유지조 飛鴻那復計東西 비홍나부계동서 老僧已死成新塔 노승이사성신탑 壞壁無由見舊題 괴벽무유견구제 往日崎嶇還記否 왕일기구환기부 路長人困蹇驢嘶 로장인곤건려시 인생 도달하는 곳 무엇과 같을까 기러기가 질척거리는 눈밭을 밟는 것과 같으리 진흙 위에 어쩌다 발자국 남긴대도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동서쪽을 가늠하랴 노승은 이미 죽어 탑 속에 들었고 벽은 허물어져 우리가 남긴 시는 찾을 길 없구나 지난날 험한 산길 아직 기억하는지? 길은 멀고 지친 데다 나귀마저 절름대며 울부짖었지 ―‘면지를 회상하며 시를 보낸 아우 자유에게 화답하다 (和子由승池懷舊)’ 소식(蘇軾·1037∼1101) 젊은 시절 소식이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과거..

버들솜[이준식의 한시 한 수]〈102〉

亂條猶未變初黃 亂條猶未變初黃 난조유미변초황 依得東風勢更狂 의득동풍세경광 解把飛花蒙日月 해파비화몽일월 不知天地有淸霜 부지천지유청상 어지러이 늘어진 버들가지 누레지기도 전에 따스한 봄바람 덕에 기세 한껏 떨치고 있다 버들솜 날리며 해와 달 덮을 줄만 알았지 세상에 차가운 서리가 있다는 건 알지 못하네 버들을 읊다(영류·詠柳)’ 증공(曾鞏·1019∼1083) 버들잎 야들야들한 촉감과 반들거리는 윤기는 봄의 길목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가운 손님. 이른 봄 노르스레 움튼 버들눈은 살랑살랑 바람결에 푸르름을 더해간다. 연푸른 잎이 완숙의 짙푸름으로 향하면서 천지는 생기와 생명력으로 넘실댄다. 버들은 이렇듯 경쾌하고 활기차고 몽글몽글한 느낌으로 다가서는 봄의 전령이다. 버들을 노래한 시인들이 하나같이 그 곱고 유연한..

연가[이준식의 한시 한 수]〈101〉

春思 / 李白 燕草如碧絲 연초여벽사 秦桑低綠枝 진상저록지 當君懷歸日 당군회귀일 是妾斷腸時 시첩단장시 春風不相識 춘풍부상식 何事入羅幃 하사입나위 燕草如碧絲 연초여벽사 연(燕)나라 땅의 풀은 푸른 실과 같고 진(秦)나라 땅의 뽕나무는 푸른 가지 드리웠네 그대가 돌아오고 싶어 하던 날은 바로 제가 애간장이 끊어지던 때이지요 봄바람과 서로 알지도 못하였는데 어인 일로 비단 휘장 안으로 들어오는가 ```````````````````````````````````````````````````` 연 지방엔 풀들이 푸른 실처럼 가늘겠지만 이곳 진 지방 뽕나무는 초록가지를 낮게 드리웠네요. 당신이 간절하게 집 생각하실 때 저 역시 애간장이 다 녹아나요. 알지도 못하는 봄바람이여, 무슨 일로 비단 휘장으로 들어오는지? ―‘..

봄비에 젖다[이준식의 한시 한 수]〈100〉

반가운 봄밤의 비(春夜喜雨) 두보(杜甫·712∼770)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江船火燭明 강선화촉명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좋은 비 때를 아는 듯 봄 되자 천지에 생기를 주네 바람 타고 몰래 밤에 찾아와 부슬부슬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신다 들길은 온통 구름으로 캄캄하고 강에 뜬 고깃배 불빛만 환하다 새벽이면 붉게 젖은 곳 보게 되리니, 꽃들이 금관성에 흐드러져 있을 테지. 여름비는 지루한 장마를 연상케 하고 가을비는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우니 비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봄비가 제격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는 봄비에 젖으며 비로소 긴 잠에서 깨어나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마침맞게 내려와 만물에 생기를 불..

바위에 꽂힌 화살[이준식의 한시 한수]〈99〉

塞下曲 / 제2수·노륜(盧綸·739∼799) 林暗草驚風 림암초경풍 將軍夜引弓 장군야인궁 平明尋白羽 평명심백우 沒在石稜中 몰재석릉중 캄캄한 숲 풀들이 놀란 듯 흔들대자 장군은 한밤중에 활시위를 당겼지 날 밝아 흰 화살 깃 찾아봤더니 바윗돌 모서리에 박혀 있었네. 이광(李廣)이란 한나라 장수가 있었다. 중원 땅을 노리던 북방 흉노족이 飛장군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던 용장이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기록된 일화. ‘이광이 사냥을 나갔다가 풀숲의 바위를 보고 호랑이라 여겨 활을 쏘았다. 화살이 돌에 적중하여 그 가운데 박혔다. 자세히 보니 돌이었다. 다시 한 번 쏘았더니 더 이상 바위에 박히지 않았다. 역사가가 담담하게 장군의 궁술과 위력을 기술한 데 비해 시인은 그 영웅적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