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198

동족상잔[이준식의 한시 한 수]〈78〉觀鬪鷄偶作

觀鬪鷄偶作 / 한악(약 842∼923) 何曾解報稻粱恩 金距花冠氣알雲 白日梟鳴無意問 唯將芥羽害同群 투계를 보며 우연히 짓다 곡식 먹인 은혜를 갚을 줄 알기나 할까 쇳조각 찬 발톱과 화사한 볏 기세는 구름마저 가로막을 듯 대낮 올빼미가 울어댈 땐 나 몰라라 하면서도 겨잣가루 묻힌 깃털로 자기 무리를 해치려 하네 투계는 기원전부터 유행했던 전통 놀이이자 오락. 도박꾼들에겐 투기 수단으로도 이용되었고 승부욕이 강한 귀족 사이에서는 자존심 대결로 비화하기도 했다. 황궁에 쌈닭 사육장을 설치하고 조련을 전담하는 관리를 둘 정도로 극성스러운 황제도 있었다. 발톱에 쇳조각을 장착하고 상대의 시야를 흩뜨리기 위해 날개에 겨잣가루까지 발랐으니 이번 싸움은 이판사판의 혈투로 이어질 분위기다. 중무장한 채비도 그러려니와 기선..

고뇌의 시인[이준식의 한시 한 수]〈77〉

題詩後 / 賈島 二句三年得 이구삼년득 一吟雙淚流 일음쌍누류 知音如不賞 지음여부상 歸臥高山秋 귀와고산추 시를 짓고 나서 / 가도 시 두 구절 3년 만에 얻고 나서 한 번 읊조려 보니 눈물이 주르륵 친한 벗이 만약 이걸 몰라준다면 쓸쓸한 고향 산으로 돌아가 누우리 어떤 이는 세 걸음 혹은 일곱 걸음 만에도 시 한 수를 술술 뱉어냈건만 시인은 괴팍하다 싶을 정도로 시 짓기에 고심했다. 시 2구를 짓는 데 무려 3년이 걸리고 그걸 읊으면서 눈물까지 쏟아냈다니 과연 유별나긴 유별나다. 그것도 모자라 친구가 자기 시를 이해해 주지 않으면 아예 고향 땅에 숨어 살겠다고까지 선언한다. 그가 3년 걸려 얻었다고 말한 시구는 어떤 것일까. 시인이 승려인 사촌동생 無可를 송별하면서 지었다는 구절, 연못 속 그림자 따라 홀로..

꽃과 잎의 조화[이준식의 한시 한 수]〈76〉

贈荷花 / 李商隱 世間花葉不相倫 세간화엽불상륜 花入金盆葉作塵 화입금분엽작진 惟有綠荷紅菡萏 유우록하홍함담 卷舒開合任天眞 권서재합임천진 此花此葉長相映 차화차엽장상영 翠減紅衰愁煞人 취감홍쇠수살인 세간에선 꽃과 잎을 다르게 취급하니 꽃은 예쁜 화분에 심고 잎은 그저 진흙이 될 뿐 연꽃만은 푸른 잎과 붉은 꽃망울이 말고 펴고 열리고 닫히는 게 마냥 자연스럽지 늘 이렇게 잎과 꽃이 서로를 받쳐주거늘 잎 지고 꽃 시들면 정말 마음 아프리니 연꽃에 바치는 노래(贈荷花) / 李相隱 꽃은 잎을 배경으로 더 화사하게 빛난다. 목련이나 복사꽃처럼 저 혼자 일찌감치 피었다가 꽃잎이 질 즈음에야 잎이 무성해지는 바람에 서로의 인연이 짧은 경우도 더러 있지만 한 뿌리에서 나온 만큼 둘의 운명은 각별하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은 온통..

안분지족[이준식의 한시 한 수]〈75〉

感興 / 白居易 吉凶禍福有來由 길흉화복유래유 但要深知不要憂 단요심지불요우 只見火光燒潤屋 지견화광소윤옥 不聞風浪覆虛舟 불문풍랑복허주 名為公器無多取 명위공기무다취 利是身災合少求 이시신재합소구 雖異匏瓜難不食 수리포과난불식 大都食足早宜休 대도식족조의휴 마음속 깊이 감동받아 일어나는 흥취 길흉화복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걸 잘 알고는 있으되 걱정할 건 없지 불길이 고대광실을 태우는 건 봤지 풍랑이 빈 배를 뒤엎는단 소린 듣지 못했네 명예는 모두의 것이니 많이 가지려 말고 이익은 몸의 재앙이니 조금만 가져야지 내걸린 표주박과 달리 안 먹을 순 없지만 대충 배부르면 멈추는 게 마땅하지 ‘길흉화복의 근원을 깊이 성찰하되 걱정하진 말라.’ 용렬한 욕망에 허덕이기 쉬운 匹夫匹婦를 향한 시인의 일갈이 마치 話頭처럼 다가온다..

미녀의 섬뜩한 호소[이준식의 한시 한 수]〈74〉

王昭君 / 崔國輔(당 현종 시기에 활동) 一回望月一回悲 일회망뤌일회비 望月月移人不移 망월월이인불이 何時得見漢朝使 하시득현한조사 爲妾傳書斬畫師 위첩전서참화사 달을 쳐다볼 때마다 서글퍼지는 이 마음 저 달은 움직여도 나는 꼼짝 못하네 어느 때면 한나라 사신을 만나 날 위해 화공((화,획)工)을 참수해달라는 서신을 보낼거나 북방 흉노의 잦은 침략에 한나라는 강온 양면책을 구사했다. 대표적인 회유책은 흉노의 왕 선우(單于)에게 황실 공주를 출가시켜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공주로 신분을 위장한 황실 친인척이나 후궁을 보내는 경우도 흔했다. 元帝는 워낙 후궁이 많아 일일이 만날 수 없게 되자 평소 화공이 그려둔 후궁들의 초상화를 통해서 자신이 총애할 후궁을 지목하곤 했다. 그러자 후궁들은 화공의 환심을 사려고..

꽃잎에 날리는 그리움[이준식의 한시 한 수]〈73〉

春望詞 / 薛濤(봄날의 기다림) 風花日將老 풍화일장로 佳期猶渺渺 가기유묘묘 不結同心人 불결동심인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 那堪花滿枝 나감화만지 飜作兩相思 번작량상사 玉箸垂朝鏡 옥저수조경 春風知不知 춘풍지불지 바람에 꽃잎 지며 세월은 저무는데 만날 기약 여전히 아득하기만 내 님과는 한마음으로 맺지 못한 채 부질없이 풀매듭만 하나로 묶어보네 가지마다 가득 핀 꽃 어찌할거나 둘 사이 그리움만 되살아나는걸 아침 거울에 떨어지는 옥구슬 눈물 봄바람은 이 마음을 알기나 할까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가곡 ‘동심초’의 모태가 된 설도의 ‘춘망사’. 4수로 된 연작시인데 金億은 그중 제3수를 이렇게 번역했다. 사그라져가는 청춘의..

경이로운 자연 풍광[이준식의 한시 한 수]〈72〉

新晴野望 / 王維(비 갠 후 들판을 바라보며) 新晴原野曠 신청원야광 極目無氛垢 극목무분구 郭門臨渡頭 광문림도두 村樹連溪口 촌수연계구 白水明田外 백수명전외 碧峰出山後 벽봉출산후 農月無閒人 농월무한인 傾家事南畝 경가사남무 비 개자 들판은 아득히 넓고 눈길 닿는 끝까지 티끌 하나 없다 성곽 대문은 나루터에 닿아 있고 마을 나무들은 시냇가까지 펼쳐졌다 흰빛 물은 논밭 저 밖에서 반짝이고 푸른 봉우리 산 너머로 삐죽이 솟았다 농사철이라 한가한 이 없이 온 집안이 나서서 남쪽 논밭을 가꾼다 비 갠 직후 더없이 명징한 들녘. 흔하게 맞닥뜨리기도 할 것 같은 풍경이련만 도시 생활의 오탁(汚濁)에 찌든 이들의 시야에서는 한참 멀어진 풍경이기도 하다. 미세먼지나 황사 따위의 위험 수치에 예민해진 탓에 청정한 자연의 기운을..

매미의 한[이준식의 한시 한 수]〈71〉

蟬 / 李商隱(매미) 本以高難飽 본이고난포 徒勞恨費聲 도로한비성 五更疏欲斷 오경소욕단 一樹碧無情 일수벽무정 薄宦梗猶泛 박환경유범 故園蕪已平 고원무이평 煩君最相警 번군최상경 我亦擧家淸 아역거가청 원래 높은 곳에 살기에 배불리 먹지 못하고 부질없이 울음으로 한을 달랜다 새벽에야 끊어질 듯 잦아드는 울음 나무는 무심하게 저 홀로 푸르구나 낮은 벼슬 탓에 나무 인형처럼 물 위를 떠돌았으니 고향의 전원은 온통 잡초 무성하리니 수고롭게 그대만이 날 일깨워준다만 집안이 청빈하기는 마찬가지라네 옛사람은 매미가 이슬만 먹고 사는 孤高한 존재로 보아 청빈한 선비에 견주었다. 자신의 안식처이자 버팀목이 되어줄 나무에 붙어 새벽녘까지 울어대지만 나무는 무심한 채 저 홀로 푸르다. 높은 곳에 사느라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밤새 ..

까마귀의 하소연[이준식의 한시 한 수]〈70〉

詠烏 / 李義府(까마귀를 노래하다) 日裏颺朝彩 일리양조채 琴中伴夜啼 금중반야제 上林如許樹 상림여허수 不借一枝棲 불석일지루 햇살 받아 찬란한 깃털 나부끼고 밤이면 거문고 가락에 맞춰 울음 운다 황궁 상림원엔 나무들 하고많건만 내 머물 가지 하나 내주질 않네 시문은 당대 과거시험의 필수과목, 관리로 등용되려면 예외 없이 이 관문을 거쳐야 했다. 시재 하나로 벼락출세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특히 시문을 애호한 황제나 고관대작 앞에서 자신의 재주를 펼침으로써 깜짝 발탁되거나 이름을 알려 탄탄대로의 관운을 누린 사례도 흔했다. 이백이 그랬고 백거이, 왕유가 그랬다. 이의부의 출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보잘것없는 가문 출신이었지만 시재 하나만은 특출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에 태종이 그를 불러 즉흥시를 한 ..

평정심[이준식의 한시 한 수]〈69〉

定風波 / 蘇軾 莫聽穿林打葉聲 막청천림타엽성 何妨吟嘯且徐行 하방음소차서행 竹杖芒鞋輕勝馬 죽장망혜경승마 誰怕 一蓑煙雨任平生 수파 일사연우임평생 料峭春風醉酒醒 요초춘풍취주성 微冷 山頭斜照却相迎 미랭 산두사조각상영 回首向來蕭瑟處 회수향래소슬처 歸去 也無風雨也無晴 귀거 야무풍우야무청 숲을 뚫고 나뭇잎 때리는 빗소릴랑 괘념치 말게 시 흥얼대며 느긋하게 걸은들 무슨 상관이랴 대지팡이 짚고 짚신 신으니 말 탄 것보다 가볍다네 무엇이 두려우랴 안개비 속 도롱이 걸친 채 평생을 맡길진저 산득한 봄바람에 취기가 사라져 살짝 찬 기운이 감돌긴 해도 산마루에 비낀 낙조가 외려 반가이 맞아주네 돌아보니 지나온 곳 쓸쓸한 그곳 돌아가리라 비바람 불든 맑게 개든 개의치 않고 비바람이 몰아치든 환하게 갠 날씨든 일비일희하지 않고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