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198

아들의 귀향[이준식의 한시 한 수]〈88〉

세모의 귀향(歲暮到家) / 蔣士銓 愛子心無盡 歸來喜及辰 寒衣針線密 家信墨痕新 見面憐淸瘦 呼兒問苦辛 低徊愧人子 不敢歎風塵 애자심무진 귀래희급진 한의침선밀 가신묵흔신 견면련청수 호아문고신 저회괴인자 불감탄풍진 어머니의 자식 사랑 끝이 없어서 아들이 때맞춰 돌아오자 너무 기뻐하시네 겨울옷은 촘촘하게 바느질하셨고 보내준 편지엔 아직도 먹물 자국 선명하네 만나자마자 야위었다 걱정하시고 날 불러 고생한 걸 물어보시네 송구한 마음에 우물쭈물 얼버무리며 풍진 세상의 고생살이 차마 말씀 못 드렸지 歲暮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 출발을 준비하는 시점. 삶의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고 또 맞아들이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지점이요, 금년과 내년이 잠시 소란스레 해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하루 ..

아내를 위한 연가[이준식의 한시 한 수]〈87〉

夜雨寄北 / 李商隱 밤비 속에 북으로 부치는 시 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何當共剪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 군문귀기미유기 파산야우창추지 하당공전서창촉 각화파산야우시 당신은 내게 돌아올 날을 묻지만 아직은 기약이 없다오 이 가을 파산에는 밤비가 내려 연못물 그득 넘쳐나네요 어느 때면 서창에 앉아 오순도순 촛불 심지 다듬어가며 비 내리는 파산의 이 밤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런지 비 내리는 가을밤, 시인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를 향해 연가(戀歌) 한 가락을 뽑는다. 오늘 비 내리는 이 파산(巴山)의 밤을 내가 어떻게 외로움을 달래며 보내고 있는지, 가을비에 넘쳐흐르는 못물처럼 그대를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애틋한지, 우리 나란히 창가에 앉아 촛불을 밝히는 날 도란도란 회포를 나눌 수 있으리. ‘춘풍 이불 아래 서..

작별의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86〉

送別 / 王維 下馬飮君酒 하마음군주 問君何所之 문군하소지 君言不得意 군언불득의 歸臥南山陲 귀와남산수 但去莫復聞 단거막복문 白雲無盡時 백운무진시 이심전심으로 서로 통하는 게 있어서인가. 끝없이 흐르는 구름처럼 자유와 여유를 누린다는 건 인생 축복의 또 다른 한 측면, 그러니 ‘뜻을 못 이룬’ 이의 낙향을 어쭙잖게 위로하거나 격려한다는 건 자칫 蛇足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하여 시인은 세상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해 좌절한 인생을 향해 실망하거나 불평할 건 없다는 충고 대신 흰 구름의 비유로 위로를 전한다. 끊이지 않는 흰 구름, 그것은 또 일장춘몽처럼 짧디짧은 세속의 부귀공명과 대비되는 무한한 생명력의 표상이기도 할 터다. 시에 등장하는 지인은 누구일까. 당시 시명을 떨치던 孟浩然으로 추정할 수 있는 흥미로..

그저 웃을 뿐[이준식의 한시 한 수]〈85〉

山中問答 / 李白·701∼762 問余何事栖碧山 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불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내 마음이 저절로 느긋해지는 것, 그리고 시냇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는 복사꽃을 즐기는 것, 이 정도로도 청산에 머물 명분은 충분하지 않은가. 낙화유수! 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장면은 대개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혹은 허망하게 쇠락해 가는 삶의 편린 정도일 텐데 이백의 감회는 한껏 천진난만하다. 桃花流水 물 따라 흘러가는 복사꽃’에서 그는 되레 세상의 汚濁에서 벗어난 청정(淸淨)과 자유를 읽어낸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그곳은 세속의 일상과는 완연히 다른 ‘인간 세상이 아닌 별천지’로 체감된다. 마음속 理想鄕을 이처럼 소탈하고 경쾌한 분..

가을 나그네[이준식의 한시 한 수]〈84〉

높은 곳에 올라(登高) 두보(杜甫·712∼770) 風急天高猿嘯哀 渚淸沙白鳥飛廻 풍급천고원소애 저청사백조비회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무변낙목소소하 부진장강곤곤래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만리비추상작객 백년다병독등대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간난고한번상빈 요도신정탁주배 거센 바람, 드높은 하늘, 원숭이 울음 구슬프고 맑은 강가 흰 모래톱, 새떼들이 날아든다 가없는 숲엔 우수수 낙엽이 지고 끝없는 장강 도도히 물결 흐른다 만리타향 슬픈 가을에 나그네 신세, 평생토록 병치레하다 홀로 누대에 오른다 고난으로 하얘진 귀밑머리 더없이 한스럽고 노쇠해져 이제는 탁주잔마저 내려놓았네 그는 반년 남짓의 막료 생활을 청산하고 엄무의 도움을 얻어 草堂을 하나 마련했다. 오랜 떠돌이 생활을 마감하는 전원생활, 풍요..

어떤 기다림[이준식의 한시 한 수]〈83〉

庭中有奇樹 綠葉發華滋 정중유기수 녹엽발화자 攀條折其榮 將以遺所思 반조절기영 장이유소사 馨香盈懷袖 路遠莫致之 형향영회수 노원막치지 此物何足貴 但感別經時 차물하족귀 단감별경시 ―‘뜰 안의 진기한 나무(庭中有奇樹)’(한대 무명씨) 정원수의 잎과 꽃들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성장해 가는 장면을 관찰하는 것도, 향기 가득한 꽃송이를 낭군에게 보내려 마음먹는 것도 다 긴 기다림의 한 과정이었으리라. 그렇기에 아내는 나무의 성장과 개화를 결코 무심하게 넘겨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서나 흔하게 접하는 그저 無緣한 나무가 아니라 진귀한 존재이며, 꽃향기 또한 옷자락과 소매에 넘쳐날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꽃이 뭐 그리 소중하랴’는 역설은 이별의 아픔을 애써 달래려는 화자의 자기 위안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것 ..

靑松在東園

靑松在東園 靑松在東園(청송재동원) 동원에 자란 푸른 소나무 衆草沒其姿(중초몰기자) 뭇 풀에 묻혀 안보였으나 凝霜殄異類(응상진이류) 찬 서리에 다른 나무 시들자 卓然見高枝(탁연견고지) 높은 가지 우둑 솟아 보이더라. 連林人不覺(연림인불각) 숲에 가려 사람들 몰랐으나 ​獨樹衆乃奇(독수중내기) 홀로 남으니 더욱 기특하구나. 提壺掛寒柯(제호괘한가) 술병을 겨우 솔가지에 걸고 遠望時復爲(원망시부위) 몇 차래 멀리서 바라보노라. 吾生夢幻間(오생몽환간) 삶은 꿈과 환상(幻想)이거늘 何事紲塵羈(하사설진기) 왜 塵世의 구속에 매어야 하나? ````````````````````````````````````````````````````````````` 靑松在東園, 衆草沒其姿. 凝霜殄異類, 卓然見高枝. 連林人不覺, 獨樹衆乃奇..

추억을 권하는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81〉何處難忘酒

何處難忘酒 何處難忘酒 天涯話舊情 靑雲俱不達 白髮遞相驚 二十年前別 三千里外行 此時無一盞 何以敍平生 하처난망주 천애화구정 청운구부달 백발대상경 이십년전별 삼천리외행 차시무일잔 하이서평생 ​ 어디에서도 술 잊기 어렵거니 멀리 떠돌던 옛 벗과 정담 나누네 청운의 꿈 함께 이루지 못하고 하얗게 쇤 머리에 번갈아 놀라네 이십 년 전에 헤어져 삼천리 밖에서 만났으니 이럴 때 한 잔 술 없으면 어찌 평생의 회포를 풀리 ```````````````````````````````````````` 어떤 자리서 술을 잊지 못할까 하늘 끝 헤어졌다 다시 만나 옛정을 나눌 때지 청운의 꿈은 다들 이루지 못한 채 흰머리 된 걸 서로가 놀라워하지 이십 년 전 이별한 후 아득히 삼천 리 밖을 떠돌았으니 이럴 때 술 한 잔 없다면 무슨 ..

삶의 궤적[이준식의 한시 한 수]〈80〉秋日家居

秋日家居​ 가을날 집에서 梅堯臣 ​移榻愛晴暉 이탑애청휘 걸상 옮겨 맑은 햇빛 즐기니 翛然世廬微 소연세려미 세상 걱정 스르르 사라지네 懸蟲低復上 현충저부상 거미는 줄 따라 내려왔다 올라가고 鬪雀墮還飛 투작타환비 참새는 다투듯 떨어졌다 다시 날아가고 相趁入寒竹 상진입한죽 서로 쫓듯 대나무 숲으로 가버리고 自收當晩闈 자수당만위 저녁 무렵 거미는 대문에서 줄을 거둔다. 無人知靜景 무인지정경 이 조용한 정경 아는 사람 없고 苔色照人衣 태색조인의 이끼 빛만 옷에 비치는구나 `````````````````````````````````````````````````````````````````````````````````````` 걸상을 옮겨가며 맑은 햇빛 즐기노라니 느긋하니 세상 근심 사그라지네 줄에 매달린 거미는 내..

친구의 초대[이준식의 한시 한 수]〈79〉過故人莊

故人具鷄黍 고인구계서 邀我至田家 요아지전가 綠樹村邊合 녹수촌변합 靑山郭外斜 청산곽외사 開軒面場圃 개헌면장포 把酒話桑麻 파주화상마 待到重陽日 대도중양일 還來就菊花 환래취국화 ​ 친구가 닭과 기장밥 마련해 놓고 시골집으로 나를 초대했네 푸른 나무들 마을 주변에 몰려 있고 푸른 산은 성 밖으로 비껴 앉았다 창문 열어 채마밭 마주한 채 술잔 들고 두런두런 농사 이야기 중양절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와 국화꽃 감상하리라 ―‘친구의 농가에 들르다(過故人莊)’ 맹호연(孟浩然·689∼740) 닭과 기장밥을 마련해 놓은 친구의 소박한 초대, 접대를 받는 마음도 그에 걸맞게 소탈하고 편안하다. 주고받는 대화도 뽕나무며 삼나무 이야기뿐. 여름 농가에 누에치기와 베짜기보다 더 긴요하면서 일상적인 얘깃거리가 또 있겠는가. 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