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198

이백을 감동시킨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98〉

黃鶴樓 / 崔顥 昔人已乘黃鶴去 석인이승황학거 此地空餘黃鶴樓 차지공여황학루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일거불복반 白雲千載空悠悠 백운천재공유유 晴川歷歷漢陽樹 청천력력한양수 芳草萋萋鸚鵡洲 방초처처앵무주 日暮鄕關何處是 일모향관하처시 煙波江上使人愁 연파강상사인수 옛사람 황학 타고 이미 떠났고 이곳엔 덩그마니 황학루만 남아 있네 황학은 가버린 후 돌아오지 않고 흰 구름만 천년토록 하릴없이 흐른다 맑은 물엔 반들반들 한양의 숲 어른대고 향초는 더북더북 앵무섬에 무성하다 해는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쯤일까 강 위에 핀 물안개에 마음만 스산하네 신선이 노닐다 황학을 타고 떠났다는 황학루. 신선의 자취는 간데없고 누각만 덩그마니 홀로 남았다. 저 하늘 어딘가를 휘저었을 황학의 날갯짓마저 오랜 세월 무심한 구름 속으로 흐르고 흐를 뿐이..

하늘 끝도 이웃[이준식의 한시 한 수]〈97〉

送杜少府之任蜀州 - 王勃 두소부가 촉주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함 城闕輔三秦 성궐보삼진 風煙望五津 풍연망오진 與君離別意 여군이별의 同是宦游人 동시환유인 海內存知己 해내존지기 天涯若比鄰 천애약비린 無爲在歧路 무위재기로 兒女共沾巾 아녀공첨건 삼진으로 에워싸인 장안 궁궐 자욱한 안개 속에서 촉 땅을 바라보네 그대와 작별하는 이 마음 우린 다같이 벼슬 때문에 객지를 떠도는 신세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 있다면 하늘 끝에 있대도 이웃 같으리 이별의 갈림길에 선 우리 아녀자처럼 눈물로 수건 적시진 마세 친구는 장안을 떠나 촉 땅으로 부임하려는 참이다. 장안에서 아득히 먼 서남쪽 쓰촨(四川) 지역이다. 조정에서 외직으로 나가는 게 꼭 좌천일 리는 없겠지만 화려하고 안전한 수도를 떠나 벽지로 향하는 친구에게 시인은 위로..

희망찬 이별[이준식의 한시 한 수]〈96〉

賦得古原草送別 離離原上草 一歲一枯榮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遠芳侵古道 晴翠接荒城 又送王孫去 萋萋滿別情 이리원상초 일세일고영 야화소부진 춘풍취우생 원방침고도 청취접황성 우송왕손거 처처만별정 白居易·772~846 울울창창 언덕의 풀 해마다 한 번씩 시들었다 무성해지지 들불인들 다 태울소냐 봄바람 불면 다시 돋아나는 걸 향초는 저멀리 옛길까지 뻗어있고 해맑은 푸르름은 옛 성에 닿아있네 다시금 그대를 떠나보내려니 봄풀처럼 그득한 석별의 정 - 옛 언덕의 풀을 읊으며 송별하다 들풀 우거진 언덕에서 친구를 배웅하는 시인. 석별의 아쉬움이 풀처럼 다복다복 가슴에 그득하다. 저 멀리 옛길과 황폐한 도시에까지 닿은 그 향긋하고 싱그러운 푸르름으로 하여 더한층 마음이 아린 이별의 시각이다. 하나 해마다 시들었다 무성해지기를..

결백의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95〉

水垢何曾相受 細看兩俱無有 寄語揩背人 盡日勞君揮肘 輕手輕手 居士本來無垢 수구하증상수 세간량구무유 기어개배인 진일로군휘주 경수경수 거사본래무구 如夢令 / 蘇軾 물과 때가 언제 서로를 받아주었던가 자세히 보면 둘 다 그런 적이 없지 등 밀어주는 사람이여 온종일 팔 움직이느라 노고가 많으시네 살살 하게 살살 거사는 원래 때가 없다네 ```````````````````````````````````````````````````````````````` 물과 때는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공존할 수 없다. 하나는 깨끗한데 하나는 지저분하기에 그렇다. 언뜻 보면 맑은 물에도 때가 있을 법하지만 세밀히 따지고 보면 이 둘은 태생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 평소 맑은 물처럼 고결(高潔)함을 지향해 온 내가 어떻게 몸에 때..

눈에 담긴 사연[이준식의 한시 한 수]〈94〉

江雪 / 柳宗元 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천산조비절 만경인종멸 고주사립옹 독조한강설 산이란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이란 길엔 사람자취 모두 끊겼구나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 홀로 낚시하는데 찬 강에 눈이 내리는구나 ​``````````````````````````````````````````````````````````````````````` 뭇 산에 새들은 더 이상 날지 않고 길이란 길에는 사람 자취 사라졌다 외로운 배 위엔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 千山鳥飛絶, 萬徑人종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눈 내리는 강(江雪)’ 유종원(柳宗元·773∼819) 눈을 다룬 시에는 저마다 사연이 눈처럼 소복하다. 눈 시를 읽을 때 유난히 살..

이 연못이 맑은 까닭은[이준식의 한시 한 수]〈93〉

觀書有感 / 朱熹 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 반무방당일감개 천광운영공배회 문거나득청여허 위유원두활수래 반 이랑 크기의 네모난 연못이 거울처럼 펼쳐져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그 안에 일렁인다 묻노니 이 연못은 어찌 이리도 맑을까 발원지에서 쉬지 않고 물이 흘러들기 때문이지 -책을 읽다 든 생각- `````````````````````````````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연못. 못물이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하늘 풍경이 고스란히 물속에 담겨 일렁거린다. 너른 바다나 호수라면 모를까 100평 남짓한 작은 연못이 왜 이리도 거울처럼 청명할까. 수원(水源)으로부터 끊임없이 활수(活水)가 흘러들기에 가능한 일이다. 멈추거나 고여 있지 않고 늘 새로운 충전이 이루어지니 썩지도 ..

매화, 선비의 풍모[이준식의 한시 한 수]〈92〉

墨梅 / 王冕 吾家洗硯池頭樹 箇箇花開淡墨痕 不要人誇好顔色 只留淸氣滿乾坤 오가세연지두수 개개화개담묵흔 불요인과호안색 지유청기만건곤 우리 집 벼루 씻는 연못가에 매화나무 꽃 핀 자리마다 옅은 먹 자국. 사람들이 그 고운 빛 자랑하지 않아도 맑은 향기 오롯이 온천지에 넘쳐나네 ``````````````````````````````````````````````````````````````````` 자신이 그린 ‘묵매도(墨梅圖)’에 시인은 시 한 수를 담았다. 이처럼 그림의 여백에 더러 그림에 걸맞은 시를 써넣기도 했는데, 이를 제화시(題畵詩)라 한다. 그림을 시적 제재로 삼아 화가가 직접 소회나 창작 배경을 밝히기도 하고, 때론 제삼자가 그림에 대한 비평이나 감상을 적기도 한다. 제화시는 동양화가 시·글씨·그림..

친구 생각[이준식의 한시 한 수]〈91〉

冬晩對雪憶胡居士家[동만대설억호거사가] 王維[왕유] 겨울 저녁 내리는 눈을 마주하며 호거사의 집을 생각하다 寒更傳曉箭[한경전효전] : 쓸쓸한 밤 시각 새벽 시간을 알리니 淸鏡覽衰顔[청경남쇠안] : 맑은 거울에 쇠한 얼굴을 바라보네. 隔牖風驚竹[격유풍경죽] : 들창이 가린 대 숲의 바람에 놀라 開門雪滿山[개문설만산] : 문을 여니 산에는 눈이 가득하구나. 灑空深巷靜[쇄공심항정] : 개끗한 하늘과 깊은 거리 고요한데 積素廣庭閑[적소광정한] : 하얗게 쌓인 넓은 뜰은 한가하구나. 借問袁安舍[차문원안사] : 묻노니 한나라 은자 원안의 집에는 翛然尙閉關[소연상폐관] : 태연스레 아직도 빗장을 닫었겠지 ````````````````````````````````````````````````````````````````..

소박한 축복[이준식의 한시 한 수]〈90〉

遊山西村 莫笑農家臘酒渾 막소농가랍주혼 豊年留客足鷄豚 풍년유객족계돈 山重水複疑無路 산중수복의무로 柳暗花明又一村 유암화명우일촌 簫鼓追隨春社近 소고추수춘사근 衣冠簡樸古風存 의관간박고풍존 從今若許閒乘月 종금약허한승월 拄杖無時夜叩門 주장무시야고문 더 이상 길이 없나 보다 하며 멈칫하는 사이 눈앞에 펼쳐지는 우거진 버드나무 숲과 화사한 꽃들의 향연, 풍년제를 앞둔 흥겨운 풍악 소리, 예스러움이 오히려 정겨운 사람들의 차림새, 이 모든 경이로움 앞에서 시인의 희열감은 한껏 고조된다. 탄탄대로만을 걸어왔다면 결코 맛보지 못했을 삶의 환희, 막다른 지경을 헤쳐 나왔기에 누리는 삶의 축복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려니. 그래서인지 시인은 달빛을 즐기며 아무 때고 남의 집을 찾아 나서겠다는 달뜬 기분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장..

제야의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89〉

今歲今宵盡 明年明日催 寒隨一夜去 春逐五更來 氣色空中改 容顔暗裏回 風光人不覺 已入後園梅 금세금소진 명년명일최 한수일야거 춘축오경래 기색공중개 용안암리회 풍광인불각 이입후원매 -‘황명을 받아 제야를 읊다(應詔賦得除夜) / 史靑 금년 오늘밤이 끝나고 나면 내년 내일이 다가오리니 추위는 이 밤 따라 떠나가고 봄날이 새벽같이 도래하겠지 천지의 기운이 바뀌는 중에 낯빛도 은연중에 좋아질 테지 봄기운,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어느새 뒤뜰 매화에 스며들었네 섣달그믐, 오늘밤이 다하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이제 추위도 끝나고 곧 봄기운이 천지에 가득할 테고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모두들 예전의 화사한 낯빛을 되찾으리라 자연의 이 놀라운 施惠를 아직 감지하지 못했다면 저기 뒤뜰을 한 번 보라. 매화꽃 망울 망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