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198

끝없는 그리움[이준식의 한시 한 수]〈179〉

끝없는 그리움[이준식의 한시 한 수]〈179〉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9-23 03:00업데이트 2022-09-23 03:12 옥돌 계단을 적시는 이슬 밤이 깊자 비단 버선으로 스며든다 방으로 돌아와 수정 발 드리우지만 가을달은 여전히 영롱하게 빛나네 玉階生白露 夜久侵羅襪 却下水晶簾 玲瓏望秋月 ―‘옥돌 계단에서의 원망(옥계원·玉階怨)’ 이백(李白·701∼762) 밤이 이슥하도록 섬돌 위를 서성이는 여인, 이슬이 버선에까지 스미는 걸 느끼고서야 방 안으로 돌아온다. 수정 주렴을 드리웠지만 눈길은 여전히 저 영롱한 가을 달을 놓치지 못한다. 섬돌과 방 안 사이를 오가는 짧은 동선, 그리고 주렴 내리기와 달 바라기라는 단순한 몸짓이지만 시인의 섬세한 관찰을 거치면서 여인의 처지와 심경이 고스..

가을 소리[이준식의 한시 한 수]〈178〉

가을 소리[이준식의 한시 한 수]〈178〉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9-16 03:00업데이트 2022-09-16 03:18 懷君屬秋夜 散步詠凉天 山空松子落 幽人應未眠 그대 생각 간절한 이 가을밤 찬 날씨에 산책하며 시 읊어보네 빈산에 솔방울이 떨어질 이즈음 은거하는 그대 역시 잠 못 이루시리 ― 가을밤 친구 구단(邱丹)에게 보내다(추야기구원외·秋夜寄邱員外) 위응물(韋應物·약 737∼791) 도교에 심취해 신선술을 익히겠다고 산중 은거를 선택한 친구에게 담담하게 그리움을 실어 보낸 노래. 스산한 가을 기운 속에 친구를 그리며 산책에 나서자 절로 우러나는 나지막한 읊조림, 지금 이 시각 그대 역시 잠 못 이루고 있겠지. 인적 없는 산속의 적막을 깨는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 역시..

속 깊은 격려[이준식의 한시 한 수]〈177〉

속 깊은 격려[이준식의 한시 한 수]〈177〉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9-09 03:00업데이트 2022-09-09 03:19 梧桐葉落滿庭陰 鎖閉朱門試院深 曾是昔年辛苦地 不將今日負初心 ―과거 시험장에서(貢院題) 위부(魏扶·약 785∼850) 오동잎 뜰 가득 떨어져 을씨년스럽고 붉은 대문 굳게 닫힌 고사장은 깊기도 해라 지난날 고뇌하며 시험을 치렀던 이곳 오늘도 그 초심을 저버리지 않으리 ``````````````````````````````` 마흔을 넘긴 나이에 어렵사리 과거에 급제한 후 승승장구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시인. 이 시는 그가 과거 시험 책임자로서 공원(貢院·고사장)에 들어갔을 때 느낀 소감을 담벼락에 써 붙인 것이다. 고뇌 속에 시험을 치른 힘겨웠던 경험을 회상하며, ..

서예 대가를 향한 경의[이준식의 한시 한 수]〈176〉

서예 대가를 향한 경의[이준식의 한시 한 수]〈176〉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9-02 03:00업데이트 2022-09-02 03:14 醉後贈張九旭 / 高適 世上謾相識 세상만상식 此翁殊不然 차옹수불연 興來書自聖 흥래서자성 醉後語尤顚 취후어우전 白髮老閑事 백발노한사 靑雲再目前 청운재목전 床頭一壺酒 상두일호주 能更幾回眠 능갱기회안 세상에선 허투루 사람을 사귀기도 하지만 이 어르신은 전혀 딴판이지 흥 나서 글씨 쓰면 성인의 경지요 취한 후 뱉는 말은 거칠 게 없지 백발이 되도록 늘 한가롭게 지내기에 그저 푸른 구름만이 눈앞에 있었지 침상 머리맡엔 언제나 술병이 하나 얼마나 더 이분을 취해 잠들게 할는지 * 謾 ; 속일 만, 헐뜯을 만. 게으를 만. * 殊 ; 죽일 수. 다를 수. 뛰어날 수...

간절한 소망[이준식의 한시 한 수]〈175〉

간절한 소망[이준식의 한시 한 수]〈175〉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8-26 03:00업데이트 2022-08-26 03:19 垂鞭信馬行 수편신마행 數里未鷄鳴 수리미계명 林下帶殘夢 임하대잔몽 葉飛時忽驚 엽비시홀경 霜凝孤鶴逈 상응고학형 月曉遠山橫 월효원산횡 僮僕休辭險 동복휴사험 時平路復平 시평로부평 채찍 떨군 채 말에게 길 맡겼는데 몇 리를 가도록 닭 울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비몽사몽 숲길을 지나다가 날아온 낙엽에 화들짝 놀라 깨니 서리 엉기는 때 저 멀리 홀로 나는 학 희뿌옇게 새벽달이 걸린 먼 산 아이야 길 험하다 불평하지 마라 시절도 태평하고 길 또한 평탄하거늘 ―‘새벽길(조행·早行)’ 두목(杜牧·803∼852) 새벽의 정적을 가르며 길을 나선 시인. 말에게 길을 맡긴 채 꾸벅꾸벅 졸며..

필화를 부른 시[이준식의 한시 한 수]〈174〉

紫陌紅塵拂面來 無人不道看花回 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 장안 거리 붉은 먼지 얼굴을 스치는데 모두들 꽃구경 다녀온다고 떠들어대네 현도관의 많고 많은 복숭아나무 이 모두가 내 귀양 간 다음에 심은 것들이지 ―‘꽃구경하고 돌아오는 군자들에게 장난삼아 보내다 戱贈看花諸君子 / 劉禹錫·772∼842 ```````````````````````````````````````` 현도관(玄都觀), 황실 소속 도교 사원 안에 복숭아꽃이 만발했다. 꽃구경을 마친 군자들의 수레가 지나자 흙먼지가 일고, 다들 한목소리로 꽃이 이쁘다 떠들어대니 아첨배의 부화뇌동 같아 영 마뜩잖다. 9년 전 시인이 좌천될 때만 해도 보이지 않던 복숭아나무들이 현도관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니, 이 주체할 수 없는 격세지감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녹슨 청동거울[이준식의 한시 한 수]〈173〉

무쇠 같은 얼굴, 푸른 수염, 번뜩이는 눈매. 세상 아이들이 이걸 본다면 질겁할 테지. 이 몸 나라에 바쳐 오랑캐 평정하리라 맘먹었거늘, 때를 못 만났으니 물러나 농사나 지어야 하리. 문장 좋아한다고 할 정도는 못 되어도 붓과 먹을 가까이했고, 스스로 병 많음을 탄식해도 마음만은 더없이 풍족했지. 한평생 내 심지는 별처럼 밝았건만, 아, 녹슨 청동거울에야 그것이 어찌 밝게 비치리오. 鐵面蒼髥目有稜 世間兒女見須驚 心曾許國終平虜 命未逢時合退耕 不稱好文親翰墨 自嗟多病足風情 一生肝膽如星斗 嗟爾頑銅豈見明 ―‘거울을 보며(남조·覽照)’ 소순흠(蘇舜欽·1008∼1048) 말쑥하든 추레하든 거울에 비치는 겉모습은 거짓이 없다. 몸을 바쳐 외적을 평정하리라는 결심, 일평생 견지해온 공명정대한 마음이라고 해서 거울이 특별..

강남에서의 호사[이준식의 한시 한 수]〈172〉

사람들 모두가 강남이 좋다 하니, 나그네는 당연히 강남에서 늙어야 하리. 봄 강물은 하늘보다 푸른데, 꽃배 안에서 빗소리 들으며 잠이 든다. 술청 곁엔 달처럼 어여쁜 여인, 눈서리가 엉긴 듯 희디흰 팔. 늙기 전엔 고향에 가지 말지니, 고향 가면 분명 애간장이 다 녹을 터. 人人盡說江南好, 遊人只合江南老. 春水碧於天, (화,획)船聽雨眠. (노,로)邊人似月, 皓腕凝霜雪. 未老莫還鄕, 還鄕須斷腸.) ―‘보살만(菩薩蠻)’ 위장(韋莊·약 836∼910) 당 말엽, 북방은 연이은 전란으로 극도로 혼란스러웠지만 양자강 이남의 강남 지방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여유로웠다. 고향을 떠나 강남에 머문 시인은 화려한 놀잇배에 기거하며 자주 술집도 들락거린다. 배 안에서 빗소리 들으며 잠들기도 하고 달처럼 예쁜 여인의 시중을..

호기로운 출정[이준식의 한시 한 수]〈171〉

호기로운 출정[이준식의 한시 한 수]〈171〉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막걸리 갓 익을 즈음 산으로 돌아오니, 가을이라 기장 먹은 닭 오동통 살이 올랐네. 시동(侍童) 불러 닭 삶고 술 마시는데, 아이들은 희희낙락 내 옷자락에 매달린다. 스스로 위안 얻으려 목청껏 노래하고 술에 취해, 더덩실 춤을 추며 낙조와 빛을 겨룬다. 천자께 내 뜻을 펼치는 게 분명 늦긴 했지만, 채찍 휘갈기며 말을 몰아 먼 길 나서리. 회계 땅 주매신(朱買臣)의 어리석은 아내는 남편을 업신여겨 떠나버렸다지. 나 또한 집을 떠나 장안으로 들어갈 참. 하늘 향해 크게 웃으며 대문을 나서노니,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초야에만 묻혀 있으랴. (白酒新熟山中歸, 黃鷄啄黍秋正肥. 呼童烹鷄酌白酒, 兒女嬉笑牽人衣. 高歌取醉欲自慰, 起舞落日爭光輝. ..

과거 급제[이준식의 한시 한 수]〈170〉

관직 여러 번 옮기는 것보다 과거 급제가 훨씬 낫지 황금빛 도금한 안장에 올라 장안을 나섰네. 말머리가 이제 곧 揚州성곽으로 진입하겠거니 두 눈 씻고 날 보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주게. 及第全勝十改官 金鞍鍍了出長安 馬頭漸入揚州郭 爲報時人洗眼看 ―‘급제 후 광릉 친구에게 보내다(급제후기광릉고인·及第後寄廣陵故人)’ 장효표(章孝標·791∼873) 과거제 이전, 관리 등용은 지방관이 추천한 효자나 청렴한 아전들을 중앙에서 심사해서 결정하거나, 국가에 공을 세운 가문의 자제들을 특별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문벌 중시 풍조가 팽배했던 위진(魏晉) 시대에는 당사자의 능력과 무관하게 가문의 위세로 관리가 되는 게 상례였다. 하지만 과거제는 가문의 배경과 상관없이 보통 집안의 선비들도 순전히 능력 하나로 관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