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198

시인과 도적[이준식의 한시 한 수]〈169〉

저녁나절 부슬부슬 비 내리는 강마을. 밤 되자 찾아온 도적들이 날 알아보네. 앞으로는 이름 숨기고 살 필요 없겠군. 지금 세상 절반이 그대들과 같겠거늘. (暮雨瀟瀟江上村, 綠林豪客夜知聞. 他時不用逃名姓, 世上如今半是君.) ―‘정란사에서 묵다 밤손님을 만나다(정란사숙우야객·井欄砂宿遇夜客)’ 이섭(李涉·800년대 초엽 활동) 강마을에서 하룻밤 묵게 된 시인의 배 안으로 도적 떼가 들이닥쳤다. 시인의 신분을 확인한 도적 수괴의 반응이 놀라웠다. ‘태학박사를 지낸 이섭(李涉)이 분명하다면 내 익히 그 시명(詩名)을 듣고 있으니 재물 대신 시 한 수면 족하다’는 거였다. 이 황당한 요구에 시인이 즉흥적으로 응해준 게 바로 이 시다. 도적조차 자기를 알아볼 정도라니 굳이 이름을 숨기고 은둔 생활할 필요가 없겠다 싶..

뭉클한 우애[이준식의 한시 한 수]〈168〉

그대의 시집 들고 등불 앞에서 읽었소 시 다 읽자 가물대는 등불, 아직은 어두운 새벽 눈이 아파 등불 끄고 어둠 속에 앉았는데 역풍에 인 파도가 뱃전 때리는 소리 把君詩卷燈前讀 詩盡燈殘天未明 眼痛滅燈猶闇坐 逆風吹浪打船聲 ―‘배 안에서 원진(元유)의 시를 읽다(舟中讀元九詩) (白居易·772∼846) 간관(諫官)도 아닌 터에 주제넘게 상소했다는 죄명으로 시인은 장안에서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었다. 남하하는 배 안에서 등잔 불빛이 시들어 가도록 시인이 탐독한 책은 원진의 시집. 시와 문장을 왜 쓰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지음(知音)을 자처할 정도로 의기투합했던 사이이니 그가 원진의 시집을 잡은 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눈의 통증도 잊고 새벽이 가깝도록 내처 읽었고, 등불을 끄고도 도무지 잠을..

술빚 변명[이준식의 한시 한 수]〈167〉

조정에서 나오면 날마다 봄옷 저당 잡히고 매일 강가로 나가 잔뜩 취해 돌아온다 가는 곳마다 으레 술빚이 깔리는 건 인생 일흔 살기가 예부터 드물어서지 꽃밭 속 오가는 호랑나비 다문다문 보이고 물 위 스치며 잠자리들 느릿느릿 난다 봄날의 풍광이여, 나와 함께 흐르자꾸나 잠시나마 서로 즐기며 외면하지 말고 朝回日日典春衣 每日江頭盡醉歸 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 穿花(겹,협)蝶深深見 點水청(전,정)款款飛 傳語風光共流轉 暫時相賞莫相違 ―‘곡강(曲江)’ 두보(杜甫·712∼770) 조회가 끝나는 대로 강가로 나가 술에 젖는다. 무일푼이 되면 입은 옷을 저당 잡히고라도 마신다. 급기야 외상술로 이어지니 도처에 술빚이 깔리는 건 예사. 왜 이토록 음주에 목매는가. 시인은 ‘인생 일흔 살기가 예부터 드물었다’는 핑계로..

무욕의 에고이즘[이준식의 한시 한 수]〈166〉

중년부터 퍽이나 좋아했던 불도 만년 들어 마련한 남산 기슭의 집 흥이 나면 늘 혼자 그곳에 갔고 즐거운 일은 그저 혼자만 알았지. 물줄기가 끊어진 곳까지 걸어가서는 앉아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바라보았고 우연히 숲속 노인을 만나면 담소 나누느라 돌아올 줄 몰랐지. 中歲頗好道 晩家南山수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偶然値林수 談笑無還期. ―‘종남산 별장(종남별업·終南別業)’ 왕유(王維·701∼761) ```````````````````````````````````````````` ‘시불(詩佛)’이란 별칭을 얻을 만큼 불교에 심취했던 시인은 만년에 종남산 기슭에 마련한 별장에서 은자(隱者)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어울릴 친구 하나 없을지라도 물줄기의 끝자락 수원지(水源池)까지의 산책, 뭉실뭉실 피어..

초여름의 정취[이준식의 한시 한 수]〈165〉

梅子留酸軟齒牙 芭蕉分綠與窓紗 日長睡起無情思 閑看兒童捉柳花 매실은 신맛이 돌아 치아를 무르게 하고 파초는 창문 비단 휘장에 초록빛을 나눠준다 긴긴해 낮잠에서 깨어나 무료해진 마음 버들솜 잡는 아이들을 한가로이 바라본다 ―낮잠에서 깨어난 한가로운 초여름(閑居初夏午睡起/楊萬里·1127∼1206) 여름 초입, 매실에는 아직 신맛이 남아 있고 창가 파초잎 그림자가 비단 휘장 위에서 파르라니 일렁대는 계절이다. 해가 길어지면서 낮잠도 푹 즐길 수 있고 공중엔 버들솜이 분분하게 흩날린다. 자연은 여름으로의 진입을 예고하고, 시인은 버들솜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파초와 비단 휘장이 싱싱한 푸름을 서로 공유하는 동안 시인은 버들솜 잡기 놀이에 빠진 동심과 교감하면서 초여름의 정취를 ..

가슴앓이[이준식의 한시 한 수]〈164〉

다시 오마 빈말 남기고 떠난 뒤엔 뚝 끊은 발길 달은 누각 위로 기울고 새벽 알리는종소리만 들려오네요 꿈속, 먼 이별에 울면서도 그댈 부르지 못했고 다급하게 쓴 편지라 먹물이 진하지도 않네요 촛불은 희미하게 비췻빛 휘장에 어른대고 사향 향기 은은하게 연꽃 수 이불에 스미네요 선녀 그리며 유신(劉晨)은 봉래산이 멀다 한탄했다지만 우린 봉래산보다 만 겹 더 떨어져 있네요 來是空言去絶蹤, 月斜樓上五更鐘. 夢爲遠別啼難喚, 書被催成墨未濃. 蠟照半籠金翡翠, 麝薰微度繡芙蓉. 劉郞已恨蓬山遠, 更隔蓬山一萬重. ―‘무제(無題)’ 이상은(李商隱·812∼858) 작별 후 발길 끊은 임을 향한 원망의 노래. 다시 온단 약속이 빈말임이 증명되었지만 애써 부정하고 싶을 만큼 가슴앓이가 이어진다. 그(녀)가 상대를 가슴에 품고 놓치..

초승달의 꿈[이준식의 한시 한 수]〈163〉

初月如弓未上弦 초월여궁미상현 分明掛在碧霄邊 분명괘재벽소변 時人莫道蛾眉小 시인막도아미소 三五團圓照滿天 삼오단원조만천 활 모양의 초승달 아직 반달은 아니지만 또렷하게 푸른 하늘가에 걸려 있구나 사람들이여, 눈썹 같은 초승달 작다 마시라 보름날 둥글어지면 온 천지 비출지니 ― 초승달을 노래하다(부신월·賦新月)무씨의 아들(무씨자·繆氏子) 당 현종 시기 시에 새겨진 초승달 하면 떠오르는 미당의 ‘동천(冬天)’.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미당은 ‘즈믄(천일) 밤의 꿈으로 맑게 씻은’ 초승달에게서 범접할 수 없는 차가움과 순수함을 읽어냈다. 하늘을 날던 ‘매서운 새’마저도 그 앞에서는..

봄날의 회한[이준식의 한시 한 수]〈162〉

근심이라곤 모르던 안방 젊은 새댁 봄날 단장하고 화려한 누각에 오른다 문득 시야에 잡힌 길섶의 푸른 버들 낭군더러 벼슬 찾으라 내보낸 걸 후회한다 閨中少婦不知愁 규중소부부지수 春日凝妝上翠樓 춘일응장상취루 忽見陌頭楊柳色 홀견맥두양류색 悔敎夫婿覓封侯 회교부서멱봉후 ―‘안방 여인의 원망’(규원·閨怨) 왕창령(王昌齡·698∼757) 남편의 부재에도 젊은 아내는 근심 걱정 모른 채 느긋하다. 봄날의 정취를 즐기려 몸단장 새로 하고 누각에 오르는 호사도 누린다. 삶의 굴곡을 체감할 만큼 원숙한 나이도 아니고 부유한 환경이라 어려움을 모르고 지내왔다. 그러니 주저 없이 남편을 벼슬길로 내몰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무심하게 보아 넘겼던 풍광들이 오늘따라 더없이 새롭다. 새록새록 환하게 피어오르는 길섶의 버들 빛에 그..

어떤 한풀이[이준식의 한시 한 수]〈161〉

이 괘씸한 까치 녀석, 거짓말을 일삼다니 희소식 전한다지만 통 믿을 수가 없어 몇 번 날아오기에 산 채로 잡아다 튼실한 새장에 가두고 더 이상 얘기 않기로 했지 호의로 희소식 전하려 했는데 절 새장 속에 가둘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집 떠난 낭군께서 일찍 오길 바라신다면 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게 놓아주세요 叵耐靈鵲多謾語 파내영작다만어 送喜何曾有憑據 송희하증유빙거 幾度飛來活捉取 기도비래활착취 鎖上金籠休共語 쇄상금롱휴공어 比擬好心來送喜 비의호심래송희 誰知鎖我在金籠裏 수지쇄아재금롱리 欲他征夫早歸來 욕타정부조귀례 騰身却放我向靑雲裏등신각방 아향청운리 ―‘작답지(鵲踏枝)’ 당 말엽 민가 돌아오지 않는 낭군을 그리는 아내의 애틋함이 담긴 노래. 바야흐로 여인은 남편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 목매고 있다. 몇 번이고 까치..

스승을 기리며[이준식의 한시 한 수]〈160〉

남쪽 땅으로 좌천된 동파, 당시 재상은 그를 죽이려고도 했지만, 그곳 혜주에서 식사도 잘하고 꼼꼼히 도연명 시에 화답도 했지. 도연명이 천년에 하나 나올 인물이라면 동파는 백년토록 이름 날릴 선비. 벼슬길 들고 난 건 서로 달랐어도 풍기는 정취는 둘이 꼭 빼닮았지. 子瞻謫嶺南 時宰欲殺之 飽喫惠州飯 細和淵明詩 彭澤千載人 東坡百世士 出處雖不同 風味乃相似 ―‘소동파의 화도시에 부쳐(발자첨화도시·跋子瞻和陶詩)’ 황정견(黃庭堅·1045∼1105) ``````````````````````````````````````````` 동파가 대륙의 최남단 광둥성 혜주로 쫓겨난 것은 재상 장돈(章惇) 등 개혁파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그곳은 고온다습한 데다 풍토병이 창궐했기에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험지였다. 하나 동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