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198

시인의 인간미[이준식의 한시 한 수]〈149〉

시어미가 고약하다는 며느리의 말 아마 며느리의 한쪽 주장이겠지요 며느리 못됐다는 시어머니 말은 근거가 있지만 시어미 고약하다는 며느리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시어미가 고약하지 않다면 며느리는 죽지 않았을 터 남의 며느리 노릇은 정말 힘들어 사람이 죽고 없는데도 여태 이런 말들을 해대다니 姑惡婦所云 恐是婦偏辭 姑言婦惡定有之 婦言姑惡未可知 姑不惡 婦不死 與人作婦亦大難 已死人言尙如此 ― ‘고악새(고악·姑惡)’ 범성대(范成大·1126∼1193) ‘고악(姑惡), 고악!’ 하며 우는 물새가 있었다. 뻐꾸기나 뜸부기처럼 울음소리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민간에서는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은 며느리가 환생한 게 곧 고악새라는 전설이 나돌았다. 고부 갈등이 빚어낸 묵은 원한들이 쌓인 탓일까. 고악새의..

山園小梅 / 林逋

온갖 꽃 다 시들어도 저 홀로 곱디고와, 작은 동산 풍광을 독차지하고 있다. 성긴 그림자 맑은 개울에 비스듬히 드리웠고, 그윽한 향기는 저물녘 달빛 아래 일렁인다. 백로는 앉으려다 슬쩍 눈길 먼저 보내고, 흰나비가 이 꽃 알았다면 넋을 잃었을 터 다행히 시 읊으며 서로 친해질 수 있으니, 장단 맞출 악기도 좋은 술잔도 다 필요 없지. 衆芳搖落獨暄姸 占盡風情向小園 疏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霜禽欲下先偸眼 粉蝶如知合斷魂 幸有微吟可相狎 不須檀板共金樽 ―‘동산의 작은 매화(산원소매·山園小梅)’ 임포(林逋·967∼1028) 꽃이 사라진 겨울 동산의 삭막한 풍광 속에 시인의 눈길을 끈 매화. 잎과 가지와 향기가 수묵화처럼 간결하고 과묵하다. 개울물에 듬성듬성 그림자를 드리웠고 저녁 달빛 아래 은은히 향기를 퍼뜨리..

목숨 건 직언[이준식의 한시 한 수]〈146〉

一封朝奏九重天 夕貶潮州路八千 欲爲聖明除弊事 肯將衰朽惜殘年 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 知汝遠來應有意 好收吾骨장江邊 아침에 문장 하나 대궐에 올렸다가 저녁에 아득히 먼 조주로 좌천되었지 성군 위해 폐단을 없애려 했을 뿐 노쇠한 이 몸이 여생을 아까워했으랴 구름 걸린 진령, 고향은 보이지 않고 눈 덮인 남관 말도 나아가질 못하네 네가 멀리서 찾아온 뜻은 알겠는데 부디 내 뼈는 독기 감도는 강변에서 거두어다오 ―좌천길, 남관을 지나며 종손자 한상에게 준 시(좌천지남관시질손상·左遷至藍關示姪孫湘) 한유(韓愈·768∼824) ```````````````````````````````````````````````````````` 당 헌종(憲宗)이 부처 사리를 궁중으로 맞으려 하자 형부시랑(刑部侍郞)이던 시인은 이를 극..

설날 아침[이준식의 한시 한 수]〈145〉

爆竹聲中一歲除 폭죽성중일세제 春風送暖入屠蘇 춘풍송난입도소 千門萬戶曈曈日 천문만호동동일 總把新桃換舊符 총파신도환구부 정월 초하루(원일·元日) 王安石 폭죽 소리 속에 한 해가 저물고 봄바람에 실린 온기 술 속으로 스며든다 집집마다 둥근 해 밝게 떠오르자 복숭아나무 새 부적을 낡은 것과 바꿔 단다 ``````````````````````````````````````````` 섣달그믐과 정월 초하루의 경계, 폭죽을 터뜨리고 새 술을 마신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속으로 훈훈한 봄기운을 들이켠다. 날 밝기가 무섭게 입춘첩(立春帖)을 붙이고 새해 행운을 염원한다. 우리는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 (建陽多慶·따스한 봄빛 속에 경사가 넘쳐나리라)을 주로 써 붙이고, 중국은 재운(財運)과 만사형통을 기원하는 7자로 ..

웃픈 아이러니[이준식의 한시 한 수]〈144〉

狐鼠擅一窟 虎蛇行九逵 不論天有眼 但管地無皮 吏鶩肥如瓠 民魚爛欲미 交徵誰敢問 空想素絲詩 ―‘여우와 쥐(호서·狐鼠)’ 홍자기(洪咨夔·1176∼1236) 소굴 하나씩 독차지한 여우와 쥐 대로를 누비는 호랑이와 독사 하늘이야 내려다보든 말든 그저 땅 위를 깡그리 휩쓸고 있다 오리처럼 살찐 관리는 볼록한 조롱박 형상 물고기처럼 문드러진 백성은 죽이 될 지경 마구잡이로 거둬간들 누가 감히 따지랴 부질없이 청백리 찬가(讚歌)만 떠올려 본다. ```````````````````````````````````````````````````````````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백성의 삶을 목도한 시인의 분노. 권력자에게 빌붙어 재물을 탈취해가는 여우와 쥐도 있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대로를 활보하는 호랑이와 독사도 있다. ..

흔들리지 않는 초심[이준식의 한시 한 수]〈143〉

淸晨聞叩門 청신문고문 倒裳往自開 도상왕자개 問子爲誰歟 문자위수여 田父有好懷 전부유호회 壺漿遠見侯 호장원견후 疑我與時乖 의아여시괴 襤縷茅詹下 남루모첨하 未足爲高栖 미족위고서 一世皆相同 일세개상동 願君汨其泥 원군골기니 深感父老言 심감부로언 稟氣寡所諧 품기과소해 紆轡誠可學 우비성가학 違己詎非迷 위기거비미 且共歡此飮 차공환차음 吾駕不可回 오가불가회 음주(飮酒, 제9수)’도잠(陶潛·365-427) 새벽같이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옷 뒤집어 입은 채 달려가 열어준다./ 그대 누구신가 묻는데, 선량해 뵈는 농부가 서 있다./ 술병 들고 멀리서 인사 왔다며, 세상과 등지고 사는 나를 나무란다./ 남루한 차림에 오두막에 사시니, 훌륭한 거처는 못되지요./ 세상은 다들 하나로 어울리는 걸 좋아하니, 부디 당신도 그 ..

인내[이준식의 한시 한 수]〈142〉

婁師德 / 王十朋 오意由來勿校難 誰能唾面自令乾 直須事過心平後 方服婁公度量寬 내 뜻을 거스르면 이유 안 따지고 넘어가긴 어렵지 얼굴에 침 뱉는데 그 누가 저절로 마르게 두나 일 다 마무리되어 마음 가라앉고 나서야 婁師德, 그분의 넓은 도량 인정하게 되었지 ```````````````````````````````````````````````````````````````` 누사덕, 여황제 武則天 시절 두 차례나 재상을 지낼 만큼 인품과 재능이 출중했던 인물이다. 역사는 그를 인내와 관용의 화신처럼 기록한다. 어떤 연유에서일까. 재상인 그가 자사(刺史)로 부임하는 동생에게 당부했다. 웬만하면 남과 다투지 마라. 동생이 대답했다. 누군가 제 얼굴에 침을 뱉는다 해도, 저 스스로 닦지 절대 다투지 않겠습니다. 형이..

歲夜詠懷 / 劉禹錫

歲夜詠懷 / 劉禹錫 彌年不得意 미년부득의 新歲又如何 신세우여하 念昔同遊者 염석동유자 而今有幾多 이금유기다 以閑爲自在 이한위자재 將壽補蹉跎 장수보차타 春色無情故 춘색무정고 幽居亦見過 유거역견과 제야의 상념(세야영회·歲夜詠懷)’ 류우석(劉禹錫·772∼842) 오랜 세월 뜻대로 잘 안 됐는데 새해엔 또 어찌 될는지 그리워라,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지금은 몇이나 남아 있을까 한가함은 차라리 자유라 치부하고 장수는 허송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치자 봄빛만은 세상물정 모르고 깊은 은거지까지 찾아와 주네 `````````````````````````````````````````````````````` 오랜 풍파를 겪은 터라 시인에게 새해라고 딱히 별스러운 기대는 없다. ‘새해엔 또 어찌 될는지’란 말이 외려 불안스럽기까..

시인의 소신[이준식의 한시 한 수]〈140〉

終南望餘雪 / 祖詠 終南陰嶺秀 종남음령수 積雪浮雲端 적설부운단 林表明霽色 임표명제색 城中增暮寒 성중증모한 -종남산의 잔설을 바라보 종남산 북쪽 마루 곱기도 해라 쌓인 눈이 구름 끝에 피어나는 듯. 갠 날씨에 숲머리도 환하게 빛났건만 저녁 되자 성안은 한기 더욱 짙어지네 `````````````````````````````````````````````````````` 구름과 나란히 산마루에 걸린 잔설이 곱디곱다. 쾌청한 날씨에 놀빛이 숲머리에 반짝이니 장안성의 겨울은 더없이 상큼하다. 하지만 잔설을 바라보는 여유도 잠시뿐, 저물녘이 되면서 분위기가 일변한다. 수려한 산세와 구름 끝에 피어난 잔설, 반짝이는 숲머리로 화사했던 성안은 한기가 엄습하면서 한순간에 뒤바뀐다. 시인은 왜 갑작스레 반전을 꾀했을까. ..

술 초대[이준식의 한시 한 수]〈139〉

問劉十九 / 白居易 綠蟻新醅酒 녹의신배주 紅泥小火爐 홍니소화로 晩來天欲雪 만래천욕설 能飮一杯無 능음일배무 푸르스름한 거품 이는 갓 빚은 술 불꽃 벌겋게 핀 자그마한 질화로 저녁 되자 하늘은 눈이라도 내릴 듯 술이나 한잔 같이할 수 있을는지? 류십구에게 묻는다(문류십구·問劉十九)’ 백거이(白居易·772∼846) ````````````````````````````````````````````````` 벌겋게 숯불이 타는 질화로 곁에서 보글보글 술 익는 소리를 들으며 한껏 들떴을 시인. 보나마나 술독 안에선 푸르스름한 밥알들이 개미 떼처럼 동동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새로 익은 술을 핑계 삼아 친구를 맞을 기대에, 눈이 내릴 듯 우중충한 저문 하늘조차 그저 정겹게만 느껴졌을 테다. 보글거리는 동동주의 숨소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