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 세설신어] [588] 함사사영(含沙射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 세설신어] [588] 함사사영(含沙射影) 권필(權韠·1569~1612)은 시 ‘천하창창(天何蒼蒼) 취중주필(醉中走筆)’에서 세상에 정의와 공도(公道)란 것이 있기는 하냐면서, 온갖 위험이 도사린 세상 길을 탄식했다. 그중 한 대목. “하물며 서울 큰길엔 위험이 많아, 앞에는 태항산이 막고 서있고, 뒤에는 무협의 물 흐르고 있네. 도깨비는 숲에서 휘파람 불고 뱀은 굴에서 기어 나오며, 곰은 서쪽에서 소리 지르고 범은 동쪽에 웅크려있네. 물여우는 사람의 그림자를 기다리고, 땅강아지는 사람 말을 받아 적는다. 그물은 두 어깨를 낚아채 가고, 주살은 두 다리를 달아맨다네(況復長安大道多險巇, 前有太行山, 後有巫峽水. 魍魎嘯林蛇出竇, 熊羆西咆虎東踞. 水鏡俟人影, 天螻錄人語. 羉罿罣..

[정민의 世說新語] [587] 오미사악(五美四惡)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논어' 요왈(堯曰) 편에서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오미(五美)를 높이고 사악(四惡)을 물리치라고 대답한다. 오미, 즉 다섯 가지 아름다움은 이렇다. 첫째는 혜이불비(惠而不費)다. 은혜를 베풀되 선심 쓰듯 낭비하지 않는다. 백성이 이롭게 여기는 일로 실제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둘째는 노이불원(勞而不怨)이니, 힘들어도 원망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 애쓸 가치가 있는 일을 가려서 하게 하면 백성이 원망이 없다. 셋째는 욕이불탐(欲而不貪)이다. 욕심을 내더라도 탐욕스러워서는 안 된다. 의욕과 탐욕은 쉽게 뒤섞인다. 넷째는 태이불교(泰而不驕)다.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아야 한다. 큰일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원칙을 지킨다. 하지만 상대를 우습게 보는 교만은 안..

[정민의 世說新語] [586] 요요적적 (寥寥寂寂)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손 가는 대로 뽑아 든 책이 이태준의 '무서록'이다. 펼치던 손길이 '고독'에 가서 멎는다. 늦은 밤 곁에서 곤히 자는 아내와 아기를 바라보다가 그는 문득 외로웠던가 보다. 이렇게 썼다. "인생의 외로움은 아내가 없는 데, 아기가 없는 데 그치는 것일까. 아내와 아기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 그러고는 "산집 고요한 밤에 말없이 앉았노니, 쓸쓸하고 고요하여 자연과 하나 되다(山堂靜夜坐無言, 寥寥寂寂本自然)"란 한시를 인용하고 "얼마나 쓸쓸한가! 무섭긴들 한가! 무섭더라도 우리는 결국 이 요요적적에 돌아가야 할 것 아닌가!"라며 글을 맺었다. 찾아보니 '선시의경(禪詩..

[정민의 世說新語] [585] 어심양안 (御心養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작은 일을 못 참고 화를 내다가, 그만한 일로 화를 낸 것에 또 화가 난다. 치미는 화가 나를 흔들면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이럴 때면 '칠극(七克)'의 '식분(熄忿)'을 편다. "분노란 무엇인가? 원수를 갚으려는 바람이다. 나쁜 말과 욕설, 다툼과 싸움, 살상과 지나친 형벌 같은 여러 가지 일은 모두 분노의 종류다(怒者何, 復讐之願也. 惡言詈語, 爭鬪戰伐, 傷殺過刑諸情, 皆怒之流也)." 분노가 빚어내는 행동이 이렇다. "인내라는 주인이 한번 떠나가면, 마음은 성을 내고 눈은 부라리며, 혀는 마구 떠들고 얼굴은 사나워진다. 손은 흥분하고 몸은 벌벌 떨려, 온갖 일이 한꺼번에 어지러워진다(忍主一去, 心怒目瞋, 舌譯面厲, 手奮身顫, 百役盡亂矣)." 이것은 분노의 결과다. 한순간에 모..

[정민의 世說新語] [584] 장엄행관 (張嚴行寬)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하탄(何坦)이 지은 '서주노인상언(西疇老人常言)'에서 관직을 맡은 사람들이 유념해야 할 말을 담은 '이관(莉官)'에 나오는 말이다. "정사(政事)를 행함에 있어 너그러움과 엄함 중 어느 것이 중요한가? 엄격함을 편다는 소문[張嚴之聲]과 너그럽게 행하는 실상[行寬之實]이 다 필요하다. 정사에 기준이 있고 명령에 믿음이 있어, 사람들이 풍문만 듣고도 엄숙히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 소문이다. 법 집행은 가벼움을 따르고, 세금을 거두는 것은 약한 쪽을 따라서, 사람들이 안정되고 스스로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실상이다. 하지만 만약 처음에 완이계모(玩易啓侮), 즉 편히 노닥거리면서 업신여김을 받게 행동하면, 끝에 가서는 형벌을 가지고도 간사함을 이기지 못한다. 비록 사람을 아끼고..

[정민의 世說新語] [583] 지도인기 (知道認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예수회 선교사 삼비아시(Francesco Sambiasi·畢方濟·1582~1649)가 스콜라 철학의 영혼론을 설명한 '영언여작(靈言蠡勺)' 서문에서 말했다. "아니마(亞尼瑪) 즉 영혼 또는 영성(靈性)에 대한 학문은 필로소피아(費祿蘇非亞) 즉 철학 중 가장 유익하고 가장 높은 것이다. 고대의 대학에서는 그 건물에 방(榜)을 달아 '너 자신을 알라(認己)'라고 써 놓았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세상 사람의 백 천 만 가지 학문의 뿌리요 종주이니, 사람이면 누구나 마땅히 먼저 힘써야 할 바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져 있던 글이다. 이 말을 두고 소크라테스는 신에 비해 하찮기 짝이 없는 인간의 지혜를 믿지 말고,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

[정민의 世說新語] [582] 불려표조 (怫戾僄窕)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다산의 두 아들 초명(初名)은 농사일을 배우라는 뜻의 학가(學稼)와 학포(學圃)다. 당시 벼슬길에서 겪은 다산의 환멸이 느껴진다. 1801년 다산이 강진으로 귀양을 떠났을 때, 큰아들이 18세, 둘째는 15세의 예민한 나이였다. 한순간에 폐족이 되자 두 아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신을 추스르지 못했다. 강진에서 다산은 두 아들 걱정을 달고 살았다. 큰아들은 불끈하며 제 성질을 못 이기는 '불려(怫戾)'한 성품이 문제였고, 둘째는 표조(僄窕) 즉 진중하지 못하고 경박한 것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각각 '화기재잠(和己齋箴)'과 '경기재잠(敬己齋箴)'을 지어주었다. '화기재잠'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학가는 성질이 불끈하며 사나운 점이 많으니 그 병통을 고치려면 그 ..

[정민의 世說新語] [581] 식기심한 (息機心閑)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홍대용(洪大容·1731~1783)이 절강 선비 엄성(嚴誠)에게 부친 시다. "편히 앉아 가늠할 일 내려놓으니, 유유히 마음 절로 한가롭구나. 뜬구름 멋대로 말렸다 펴고, 나는 새 갔다간 돌아온다네. 육신과 정신 모두 적막하거니, 만상은 있고 없는 사이에 있네. 힘줄과 뼈 저마다 편안할진대, 맑은 기운 얼굴에 떠오르리라. 진실로 이 경지를 간직한다면, 지극한 도 더위잡아 오를 수 있네(宴坐息機事, 悠然心自閑. 浮雲任舒卷, 飛鳥亦往還. 形神雙寂寞, 萬象有無間. 筋骸各安宅, 淑氣登容顔. 苟能存此境, 至道可躋攀)." 식기(息機), 즉 득실을 따지는 기심(機心)은 내려놓겠다. 구름은 멋대로 떠다닌다. 새는 허공을 편히 오간다. 욕심을 걷어내자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근육의 긴장을 푸니 ..

[정민의 世說新語] [580] 고류선성 (高柳蟬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뉘엿한 저녁 연구실을 나서다가 올해 첫 매미 소리를 들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차 시동을 끄고 창문을 내렸다. 내다보니 하늘이 문득 높고, 매미 소리는 이제 막 목청을 틔우느라 나직하다. 테니스장을 지날 때 다시 한번 창을 내렸지만 거기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색(李穡·1328~1396)은 '매미 소리(蟬聲)'에서 "매미 소리 귀에 들자 내 마음이 움직인다(蟬聲入耳動吾情)"고 썼다. 윤기(尹愭·1741~1826)는 '매미 소리를 듣다가(聽蟬)'에서 "빈 산에 해묵은 나무가 많아, 여기저기 매미 울음 그윽도 하다. 그대여 시끄럽다 싫어 말게나, 시끄러운 가운데 고요함 있네(空山老樹多, 處處蟬聲邃. 請君莫嫌喧, 喧中有靜意)"라고 썼다. 과연 매미 소리는 주변을 고요하게 ..

[정민의 世說新語] [579] 약란토비 (若蘭吐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홍유한(洪儒漢·1726~1785)은 성호 이익의 제자다. 그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수덕자(修德者)라고 한다. 스승 성호를 통해 서학서를 처음 접한 뒤 혼자 공부해 신앙의 길을 걸었다. 권철신, 홍낙민, 이존창 등 초기 교회의 핵심적 위치에 있던 인물이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다. 8대 종손 홍기홍 선생 댁에 보관된 '가장제현유고(家藏諸賢遺藁)'와 '가장간첩(家藏簡牒)'에는 성호가 홍유한에게 보낸 편지가 57통이나 남아 있다. '성호집'에는 이 중 단 한 통만 수록되었다. 성호가 홍유한을 떠나보내며 써준 시는 이렇다. 제목이 '홍사량과 작별하며(別洪士良)'이다. "물나라 새로 갠 날씨를 만나, 산 햇빛 사립문에 비쳐들었지. 이별 근심 생각만 어지러운데, 그대는 돌아간다 말을 하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