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607] 옥작불휘 (玉爵弗揮)

송나라 문언박(文彦博)이 낙양령으로 있을 때 일이다. 옥 술잔을 꺼내 귀한 손님을 접대했다. 관기(官妓)가 실수로 하나를 깨뜨렸다. 문언박이 화가 나서 죄 주려 하자, 사마광(司馬光)이 붓을 청해 글로 썼다. “옥 술잔을 털지 않음은 옛 기록에서 전례(典禮)를 들었지만, 채색 구름은 쉬 흩어지니, 과실이 있더라도 이 사람은 용서해줄 만하다(玉爵弗揮, 典禮雖聞於往記. 彩雲易散, 過差可恕於斯人).” 문언박이 껄껄 웃고 풀어주었다. 이 말은 ‘예기'의 ‘곡례(曲禮)’ 상(上)에 “옥 술잔으로 마시는 자는 털지 않는다(飮玉爵者弗揮)”고 한 데서 나왔다. 옥 술잔에 남은 술을 털려다가 자칫 깨뜨리기가 쉬우니 아예 털지 말라는 뜻이다. 옥 술잔을 깨뜨린 것은 혼이 나야 마땅하지만, 채색 구름은 금방 흩어진다. 저 ..

[정민의 世說新語] [606] 죽외일지 (竹外一枝)

2016년 5월 12일,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1879~1948) 선생의 외손녀 후미코(駒田文子) 여사가 선생의 친필 서명이 든 여러 저서와,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서간첩 복제본을 보내왔다. 2012년 내가 하버드 옌칭 연구소에 1년간 머물 때, 그 대학 도서관이 소장하던 후지쓰카 소장 고서를 50종 넘게 찾아내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란 책을 쓴 인연을 기념해 보내준 선물이었다. 중간에 후지쓰카 선생의 친필 한 점이 들어있었다. “대나무 밖 한 가지가 기울어 더욱 좋다(竹外一枝斜更好)”고 쓴 일곱 자다. 그 옆에 ‘소헌학인(素軒學人)’이란 호와 ‘망한려(望漢廬)’란 인장이 또렷했다. 찾아보니, 소동파가 쓴 ‘진태허의 매화시에 화답하다(和秦太虛梅花)’의 제8구였다. 중간 네 구절은 이렇..

[정민의 世說新語] [605] 탄조모상 (呑棗模象)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심문 기록인 ‘사학징의(邪學懲義)’ 중 권철신(權哲身)의 처남 남필용(南必容)의 공초(供招)는 이랬다. “제가 여러 해 동안 사학(邪學)을 독실히 믿은 마음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라에서 지극히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지라 감히 옛것을 고쳐 새로움을 도모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권철신은 제사를 갑작스레 폐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밥과 국만으로 대략 진설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그 말에 따라 조상에 대한 제사를 폐하지는 않겠습니다.” 국금(國禁)을 따르겠다면서도 신앙을 버리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제사를 드리기는 하겠는데 흉내만 내겠다는 얘기였다. 이 진술에 대해 형조에서 내린 판결문은 이랬다..

[정민의 世說新語] [604] 기득환실 (旣得患失)

1658년, 72세의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효종에게 ‘국시소(國是疏)’를 올렸다. 글의 서두를 이렇게 열었다. “전하께서 바른 정치를 구하심이 날로 간절한데도 여태 요령을 얻지 못하고, 예지(叡智)를 하늘에서 받으셨으나 강건함이 부족하여, 상벌이 위에서 나오지 않고, 정사와 권세가 모두 아래에 있습니다. 대개 완악하고 둔한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얻으려 안달하고 잃을까 근심하는 자는 성인께서 말씀하신 비루한 자들이고, 겉으로는 온통 선한 체하면서 속으로는 제 한 몸만 이롭게 하려는 자는 성인께서 말씀하신 가짜요, 말만 번지르르한 자들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행세하는 자는 대부분 이 같은 부류입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 근심스레 위에서 외롭게 서 계시어, 바깥 일을 깜깜히 보지 못하시니, 나라..

[정민의 世說新語] [603] 집가벌가 (執柯伐柯)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633년, 회시(會試)의 시무책(時務策)은 법제(法制)를 묻는 출제였다. 문제는 이랬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법제가 있다. 법제가 타당하면 정치가 간결해서 백성이 편안했고, 법제가 요점을 잃으면 정사가 번잡해져서 백성이 원망한다. 한 나라의 치란은 법제에 좌우된다. 어찌해야 법제가 제자리를 얻고, 정사가 바르게 설 것인가?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글의 서두에서, 맹자가 “한갓 법으로는 저절로 행해질 수가 없다(徒法不能以自行)”고 한 말을 인용하고, “정치만 있고 그 마음은 없는 것을 ‘도법(徒法)’이라 한다(有其政而無其心, 是謂徒法)”고 한 주자의 풀이를 끌어왔다. 백성을 위한 마음 없이 정치를 위해 만든 법제는 도법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어 말했다. “법이란 정..

[정민의 世說新語] [602] 인약발병 (因藥發病)

1625년 9월 12일, 인조가 구언(求言)의 하교를 내렸다. 광해의 난정을 바로잡아 나라의 새 기틀을 세우겠다던 다짐은 3년 만에 왕의 좁은 도량과 우유부단한 언행으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왕은 점차 바른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만 부리고, 희로를 안색에 바로 드러냈다. 보다 못한 김상헌의 구언 건의가 있었다. 임금은 부덕한 몸으로 하늘의 노여움을 만나 백성의 걱정하는 소리가 시끄럽고, 원망하는 한숨이 끊이지 않아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큰 신의를 버리고 작은 일만 살피는 사이에 하는 일마다 마땅함에 어긋나니, 그 죄가 내게 있다며, 신하들에게 바른말을 구하였다.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38)가 ‘구언응지소(求言應旨疏)’에서 포문을 열었다. 그는 무엇보다, ‘임금의 마음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정민의 世說新語] [601] 관간어중 (寬簡御衆)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743년 2월 30일, 영조가 보름 남짓 남은 사도세자의 관례에 내릴 훈시(訓示)의 글을 발표했다. 임금은 직접 쓴 네 개의 첩(帖)을 꺼냈다. 첫 번째 첩은 표지에 ‘훈유(訓諭)’란 두 글자를 썼는데, 안을 열자 ‘홍의입지(弘毅立志)·관간어중(寬簡御衆)·공심일시(公心一視)·임현사능(任賢使能)’이란 16자가 적혀 있었다. 넓고 굳세게 뜻을 세워, 관대함과 간소함으로 무리를 이끌며, 공변된 마음으로 한결같이 살피고, 어질고 능력 있는 이에게 일을 맡기라는 뜻이었다. 16자 아래에는 또 “충성스러움과 질박함, 문아(文雅)함이 비록 아름다워도, 충성스러움과 질박함은 투박하고 거친 데로 흐르기 쉽고, 문아함이 승하면 겉꾸밈에 빠진다. 너그러움과 인자함은 자칫 물러터져 겁 많은 데로 ..

[정민의 世說新語] [600] 일산난취 (一散難聚)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의 ‘큰일을 하는 사람은 인심을 근본으로 삼는다(立大事者 以人心爲本)’는 장강대하의 글이다. 서두가 이렇게 시작한다. “큰일을 세우는 방법 아는가? 위엄과 무력으로 해선 안 되고, 갑옷과 병장기에 기대도 안 된다네. 백성과 함께하면 이루어지고, 제 힘 믿고 처리하면 실패한다네. 근본은 여기 있고 저기에 있잖으니, 애초에 인심을 벗어나지 않아야지. 어리석은 사람 두고 얘기하자면, 이익을 가지고 꾈 수도 있고, 위엄으로 임하여 누를 수도 있다네. 신령스러운 사람으로 논해본다면, 일을 세워 성취할 수도 있지만, 나라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법(若知夫所以立大事乎? 匪因威武, 匪賴堅利. 與衆則成, 自用則墜. 惟其本在此而不在彼, 初不出於人心. 自其莫..

[정민의 世說新語] [599] 일언상방 (一言喪邦)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574년 3월에 선조가 불사(佛事)에 쓰기 위해 의영고(義盈庫)에 황랍(黃蠟) 500근을 바치게 했다. 양사(兩司)에서 이유를 묻자, 임금은 내가 내 물건을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너희가 알 것 없다고 했다. 이이(李珥)가 어찌 이다지 노하시느냐고 하자, 어떤 놈이 그 따위 말을 했느냐며 국문하여 말의 출처를 캐겠다고 벌컥 역정을 냈다. 이래서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는, 해서 안 될 말까지 했다. 계속 발설자를 잡아오라고 닦달하자, 신하의 간언에 위엄을 세워 입을 재갈 물리려고만 하시니 임금의 덕이 날로 교만해지고, 폐해는 바로잡을 기약이 없어 걱정이 엉뚱한 곳에서 생길 것이라고 다시 간했다. 임금이 고집을 꺾지 않자 “전하께서 이리하심은 신 등을 가볍게 보..

[정민의 世說新語] [598] 후미석독(厚味腊毒)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쓴 ‘숙부께 올림(上叔父)’은 숙부가 임지에서 술을 절제하지 못해 구설이 많다는 풍문을 듣고 조카가 올린 편지다. “저는 한때 조금만 쉬더라도 쌓여서 지체되는 일이 너무 많은데, 하물며 아침저녁으로 쉴 새 없이 술을 마신다면 어찌 업무가 폐하여지고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공적인 일은 그래도 바깥일이라 절박하지 않다 해도 밖으로 마음 끓일 일이 많은데, 안으로 석독(腊毒)의 맛만 맞이한다면 두 가지가 서로 침해할 테니 무엇으로 스스로를 보전하시렵니까? 이 조카의 생각은 만약 술 마시는 것을 자제할 수 없다면 일찍 스스로 사직하셔야 합니다.” 술잔을 들고 이 편지를 읽던 숙부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글 속 석독(腊毒)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