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568] 익공익미 (益公益美)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칠극(七克)'의 제2장은 평투(平妬)다. 시샘하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공부에 대해 말했다. 첫 문장이 이렇다. "질투란 무엇인가? 남의 복을 근심하고, 남의 재앙을 즐거워하는 심보다(妬者何? 人福之憂, 人禍之樂, 是也)." "질투하는 사람은 남이 위에 있으면 위에 있음을 시샘하고, 남이 자기와 같으면 같은 것을 시샘한다. 남이 자기만 못하더라도 또 혹 자기와 같아질까 봐 시샘한다. 모든 사람을 원수로 대하므로 홀로 지내며 벗이 없다. 위와 싸워 하늘을 사랑하지 않고, 밖과 다퉈 남을 포용하지 않으며, 안으로 싸워 자신을 들들 볶는다. 비록 세간에서 좋다고 선망하여 다투는 것을 다 갖는다 해도 또한 천하에 복 없는 사람이 될 뿐이다(夫妬者, 人在上, 妬其上, 人己等, 妬其等. 人..

[정민의 世說新語] [567] 이언무책 (易言無責)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선거는 끝났고 막말의 뒤끝이 남았다. 표 때문에 안 해야 할 말들이 난무했다. 맹자 '이루(離婁)' 장에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나무람을 받지 않아서이다(人之易其言也, 無責耳矣)"라 했다. 주자는 "사람이 그 말을 가볍게 하고 함부로 하는 까닭은 실언에 대해 나무람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막말의 버릇이 사회적 견책 장치가 없기 때문이란 뜻일까? 나무람을 받게 되면 막말의 버릇이 고쳐질까? 또 나무람을 받기 전까지는 막말도 면죄부를 받게 되는 걸까?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 봐 주자가 덧붙였다. "군자의 학문이 반드시 꾸짖음이 있기를 기다린 뒤에야 감히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연유가 있어 말한 것이다." 맥락이 있어 한 말이니..

[정민의 世說新語] [566] 천리여면 (千里如面)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을 살펴보는데 '천리여면(千里如面)'이라 새긴 인장이 눈길을 끈다. 용례를 찾아보니 송순(宋純)이 "천리에도 대면하여 얘기 나눈 듯, 한마디 말로 마음이 서로 맞았네(千里如面談, 一言而心契)"라 했고, 이익(李瀷)은 "천리에 대면한 듯, 종이 한 장에 정을 다했다(千里如面, 一紙盡情)"고 쓴 것이 있다. 그제야 이 인장이 편지의 봉함인(封緘印)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먼 벗에게 편지를 써서 봉한 뒤, 그 위에 이 도장을 꾹 눌러서 찍었다. 보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전했다. 몇 장 뒤에는 '마음속 말을 다 못 한다네(寸心言不盡)'란 인문(印文)도 나온다. 이것도 필시 봉함인이다. 찾아보니 당나라 때 시인 전기(錢起)가 지은 '협객과 만나고(逢俠者)'라..

[정민의 世說新語] [565] 중중제망 (重重帝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욕계(欲界)에 속한 천신(天神)들의 왕인 인드라(Indra)는 제석천(帝釋天)이라고도 하는 힌두의 신이다. 그의 궁전 위에는 끝없이 펼쳐진 무한대의 그물 인드라망이 있다. 그물코마다 보석이 주렁주렁 달렸다. 보석은 각각 세공으로 잘 연마된 다면체로, 한 표면에는 무수한 다른 보석의 광채가 비쳐서 맞물린 형상이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끝없이 펼쳐진다. 화엄교학(華嚴敎學)에서는 인드라망의 구슬들이 서로를 비추듯 법계의 일체 현상도 서로 끝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이 세계를 설명한다. 인드라의 그물, 즉 인드라망은 한자로는 인타라망(因陀羅網)으로 쓴다. 제석천의 그물이라 하여 제망(帝網)이라고도 한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환암을 그리며(有懷幻菴)'에서 "지혜의 허공 꽃은 앎..

[정민의 世說新語] [564] 집옥봉영 (執玉奉盈)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응암(凝庵)은 이상정(李象靖·1711~ 1781)이 1767년 고산정사(高山精舍)를 지을 때 오른편 서재에 붙인 이름이다. 그는 이 방에 '응암명(凝庵銘)' 10수를 지어 걸었다. 먼저 제4수. "수렴하고 요약하여, 온통 가득 함양하리. 기미를 깊이 연구해서, 자세하고 합당하게(收斂造約, 渾涵充養. 硏幾極深, 纖悉曲當)." 함양하는 공부는 수렴과 요약에서 나온다. 잔뜩 벌여놓기만 해서 끝간 데를 모르면 함양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작은 기미도 깊이 파고들어 석연해질 때까지 놓지 않는다. 이런 시간이 쌓여야 내면이 충만해진다. 다음은 제8수다. "옥을 잡고 물 가득 찬 그릇 받들듯, 잠깐의 사이라도. 조금씩 밟아 나가, 오래 힘써 공 이루리(執玉奉盈, 顚沛造次. 浸漸經歷, 力..

[정민의 世說新語] [563] 일우보윤 (一雨普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세상은 이처럼 어지러운데 어김없는 봄비에 대지가 깨어난다. 김육(金堉)의 '희우(喜雨)' 시다. "좋은 비 시절 알아, 내리자 잎에서 소리 들린다. 농부들 덕업을 이뤄보려고, 바람 속에 다급하게 몹시 바쁘네(好雨知時節, 初來葉上聞. 九農成德業, 風處急紛紛)." 두보의 시에서 한 구절씩 따와 엮은 연구시(聯句詩)다. 봄비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들판에선 농부들의 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송상기(宋相琦·1657~1723)의 '희우' 시는 또 이렇다. "쟁기질에 비가 마침 부슬부슬 내리니, 단비에 조화의 기미를 알겠구나. 메마른 밭 윤기 돌아 채소가 자라나고, 가문 땅 기름져서 보리가 살지누나. 촌 노인네 쟁기 지고 다투어 활짝 웃고, 들 나그네 산을 보자 마음이 날아갈 듯. 옛 동산 ..

[정민의 世說新語] [562] 신언과우 (愼言寡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가짜 뉴스의 폐해가 갈수록 쌓여간다. 근거 없는 풍문이 입을 건너다니며 사실로 둔갑한다. 진실을 담아내야 할 일부 언론마저 앞장서서 부추긴다. 낄낄대거나 분노하며 소비하다가 거짓임이 밝혀져도 '아님 말고' 식이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논어 '위정(爲政)'에서 공자가 제자 자장(子張)에게 말했다.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빼버리고, 삼가서 그 나머지만 말하면 허물이 적다. 많이 보되 확실치 않은 것은 빼버리고, 삼가 그 나머지만 행하면 뉘우칠 일이 적다(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이 말을 받아 조익(趙翼·1579~1655)이 '계운궁복제의(啓運宮服制議)'에서 썼다. "공자(孔子)는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것은 빼고, 많이 보되 확실치 않은 것은..

[정민의 世說新語] [561] 동우이시 (童牛羸豕)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주역 '대축괘(大畜卦)' 육사(六四)의 효사(爻辭·괘를 구성하는 각 효를 풀이한 말)에 "송아지에게 곡(牿)을 하면 크게 길하다(童牛之牿, 元吉)"고 했다. 동우는 아직 뿔이 제대로 자라지 않은 어린 소다. 곡(牿)은 뿔과 뿔 사이에 잡아맨 횡목(橫木)이다. 뿔이 막 돋기 시작한 어린 소는 근질근질해서 무엇이든 자꾸 들이받으려 든다. 그래서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려고 두 뿔 사이에 가로목을 묶어서 매준다. 아주 길하다고 한 것은 문제를 미리 방지해야 좋은 결과가 온다는 뜻이다. 주역 '구괘(姤卦)' 초육(初六)의 효사에서는 "비쩍 마른 돼지도 날뛰려 든다(羸豕孚蹢躅)"고 했다. 허약한 돼지는 비록 사납지 않지만 틈만 나면 날뛰려는 생각이 있다. 소인도 늘 군자를 해치려고 기회를 ..

[정민의 世說新語] [560] 안불망위 (安不忘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손자병법'에 "적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을 믿지 말고, 내가 대비함이 있음을 믿으라(無恃其不來, 恃我有以待之)"고 했다. 설마 무슨 일이 있으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뜻이다. '주역'에서는 "서리가 내리면 단단한 얼음이 언다(履霜堅氷至)"고 했고, "뽕나무 뿌리에 얽어맨다(繫于苞桑)"고도 했다. 조짐을 보고 큰일이 닥치기 전에 방비를 단단히 하라는 말이다. 1425년 변계량(卞季良)이 '화산별곡(華山別曲)'을 지었다. "긴 염려로 돌아보아, 편안할 때 위태로움 잊지 않으니, 아! 미리 대비하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천재(天災)를 두려워하고, 사람의 궁함 근심하여, 제사를 삼가 받드네. 충직한 이 등용하고, 간사한 자 물리치며, 형벌을 신중히 해, 옛일 살펴 지금 논해, 밤낮으..

[정민의 世說新語] [559] 벌모세수 (伐毛洗髓)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동방삭(東方朔)이 홍몽택(鴻濛澤)을 노닐다가 황미옹(黃眉翁)과 만났다. 그가 말했다. "나는 화식(火食)을 끊고 정기(精氣)를 흡수한 것이 이미 9000여 년이다. 눈동자는 모두 푸른빛을 띠어 감춰진 사물을 능히 볼 수가 있다. 3000년에 한 번씩 뼈를 바꾸고 골수를 씻었고, 2000년에 한 차례 껍질을 벗기고 털을 갈았다. 내가 태어난 이래 이미 세 번 골수를 씻고 다섯 번 털을 갈았다.(吾却食呑氣, 已九千餘年. 目中瞳子, 皆有靑光, 能見幽隱之物. 三千年一返骨洗髓, 二千年一剝皮伐毛. 吾生來已三洗髓五伐毛矣)." 후한 때 곽헌(郭憲)이 쓴 '동명기(洞冥記)'에 나온다. 9000세를 살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천지의 정기를 흡수해서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해야 한다. 그것만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