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99

[차현진의 돈과 세상] [49] 국가의 힘은 지갑을 못 뚫는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49] 국가의 힘은 지갑을 못 뚫는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1.12.08 00:00 중국의 우스갯소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술 담배를 하지 않은 임표는 63세에 죽고, 술은 멀리했지만 담배를 좋아한 모택동은 83세에 죽고, 술과 담배를 모두 즐긴 등소평은 93세에 죽고, 술과 담배에 여자까지 밝힌 장학량은 103세에 죽었다.” 중국 현대사의 풍운아 장학량(張學良), 즉 장쉐량은 영원한 로맨티스트로 기억된다. 청나라가 망한 뒤 만주를 지배하던 봉천 군벌 장쭤린(張作霖)이 1928년 열차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일본 관동군의 소행이었다. 그의 아들 장쉐량은 일본에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휘하 부대를 이끌고 아버지의 라이벌 장제스(蔣介石)의 부하가 되었다. 그런데 장제스..

[차현진의 돈과 세상] [48] 영웅과 역적 사이

[차현진의 돈과 세상] [48] 영웅과 역적 사이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1.12.01 00:00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영화 ‘암살’에서 여자 독립투사 안옥윤(전지현 분)에게 던진 첫마디다. 김원봉은 틀림없는 독립운동가지만,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의 고위직을 지낸 경력 때문에 평가하기가 괴롭다. 미국의 해리 화이트도 그렇다. 화이트는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와 함께 전후 국제통화질서를 설계하였으며, 그 공로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초대 미국 이사를 지냈다. 그런 탁출(卓出)한 공직자가 소련 스파이였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을 무척 곤혹스럽게 만든다. 1946년 3월 8일 미국 조지아주 사배너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사회에서, 해리 덱스터 화이트 미국 재무부 차관보(왼쪽)가 존 ..

[차현진의 돈과 세상] [47] 진화론의 진화

[차현진의 돈과 세상] [47] 진화론의 진화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1.11.24 00:00 ‘밈(meme)’이라는 말은 시중에 빠르게 전파되는, 인기 있는 사진이나 글을 가리킨다. 원래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문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학술 용어였다. 생물의 번식 과정에서 유전자가 하는 것처럼 문화의 전파 과정에서 정보를 복제하여 전달하는 의미 단위를 말한다. 생각, 행동양식, 복장, 음식 등 어떤 것도 밈이 될 수 있다. 진화론도 밈이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을 쓰자 카를 멩거가 제목까지 흉내 내어 ‘화폐의 기원(Origin of Specie)’을 발간했다. 화폐는 우연하게 등장하여 적자생존 법칙에 따라 진화했다는 내용이다. 비트코인도 화폐..

[차현진의 돈과 세상] [46] 양심이냐, 실리냐

[차현진의 돈과 세상] [46] 양심이냐, 실리냐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B0%A8%ED%98%84%EC%A7%84%EC%9D%98%20%EB%8F%88%EA%B3%BC%20%EC%84%B8%EC%83%81 www.chosun.com 입력 2021.11.17 00:12 물류 대란의 징조는 지난 3월 말 수에즈운하 사고였다. 큰 배가 드러누워 폭 200미터 뱃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전 세계가 발을 굴렀다. 190킬로미터 운하를 건너는 데는 15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아프리카 대륙을 따라 1만킬로미터를 우회하는 데는 며칠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 구상은 지리상의 발견 이후 계속되다가 1869년 실현되었다. 프랑스 ..

[차현진의 돈과 세상] [45] 디지털세와 신성모독

[차현진의 돈과 세상] [45] 디지털세와 신성모독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입력 2021.11.10 00:10 16세기 종교개혁 전에는 교황의 한마디가 곧 기독교 세계의 질서였다. 교황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기독교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데 힘을 쏟았다. 대서양을 좌우로 나누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신대륙과 구대륙을 사이좋게 분할 점령토록 한 것이다. 이를 토르데시야스(1494년) 조약이라고 한다. 종교개혁 뒤 세상이 달라졌다.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는 교황청 결정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도양을 가로질러 제멋대로 향료 무역을 시작했다. 영국이 자극을 받았다. 상인들의 자본금을 모아 무역 회사를 세웠다. 동인도주식회사였다. 이 회사의 공식 명칭은 ‘동..

[차현진의 돈과 세상] [44] 힘 없으면 당한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44] 힘 없으면 당한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B0%A8%ED%98%84%EC%A7%84%EC%9D%98%20%EB%8F%88%EA%B3%BC%20%EC%84%B8%EC%83%81 www.chosun.com 1912년 지브롤터 해협의 요충지 모로코에 대한 권리를 놓고 강대국들이 다툰 '아가디르 위기' 당시, 프랑스 군대가 숙영지를 향해 행진하는 모습. /GoShow·위키피디아 19세기 말 조선은 강대국들의 놀이터이자 싸움터였다. 20세기 초 모로코도 그랬다. 아프리카 대륙의 서북단 모로코는 지브롤터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코를 맞대고 있어 늘 유럽의 사냥감이었다. 하지만 한 나라가 차지하기에는 너무나 ..

[차현진의 돈과 세상] [43] 차이나타운과 짜장면

[차현진의 돈과 세상] [43] 차이나타운과 짜장면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B0%A8%ED%98%84%EC%A7%84%EC%9D%98%20%EB%8F%88%EA%B3%BC%20%EC%84%B8%EC%83%81 www.chosun.com 입력 2021.10.28 00:00 인천 차이나 타운의 짜장면 거리. 6개월 전 강원도에 차이나 타운을 세운다는 소식에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인천과 부산의 차이나타운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슬픈 현대사의 산물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별로 유쾌하지 않다. 인천·부산의 차이나타운은 구한말 중국의 조계지(租界地)였다. 조계지란,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강대국이 독자적 행정권..

[차현진의 돈과 세상] [42] 노벨상 유감

[차현진의 돈과 세상] [42] 노벨상 유감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B0%A8%ED%98%84%EC%A7%84%EC%9D%98%20%EB%8F%88%EA%B3%BC%20%EC%84%B8%EC%83%81 www.chosun.com 입력 2021.10.21 00:00 올해로 120세를 맞은 노벨상의 탄생은 해프닝에 가깝다. 1888년 알프레드 노벨의 친형인 루드비그가 죽자 상당수 신문사가 알프레드가 죽었다고 착각해 “죽음의 상인, 마침내 죽다”라고 오보했다. 다이너마이트로 재벌이 된 알프레드는 장차 자기가 그렇게 기억될 것에 경악하여 서둘러 노벨재단을 만들었다. 잘 알려진 대로 노벨상은 물리, 화학, 의학, 문학, 평화 등 다섯 분야..

[차현진의 돈과 세상] [41] 10원 한 장

[차현진의 돈과 세상] [41] 10원 한 장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B0%A8%ED%98%84%EC%A7%84%EC%9D%98%20%EB%8F%88%EA%B3%BC%20%EC%84%B8%EC%83%81 www.chosun.com 입력 2021.10.14 00:00 1950년대 발행된 10원권 지폐들. /한국은행 홈페이지 얼마 전 대선 주자 한 분이 “10원 한 장 피해준 적 없다”는 말을 하자 젊은 사람들이 “10원 한 장이라니?”라고 의아해 했다. ‘10원 한 장’은 동전이 없었을 때 나온 관용구다. 1959년 이전 우리나라에는 동전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이었다. 오늘날에는 화폐를 지폐와 동전으로 나누지만, 금속 화폐 시..

[차현진의 돈과 세상] [40]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차현진의 돈과 세상] [40]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B0%A8%ED%98%84%EC%A7%84%EC%9D%98%20%EB%8F%88%EA%B3%BC%20%EC%84%B8%EC%83%81 www.chosun.com 입력 2021.10.07 00:00 지난 2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에서는 대통령이 아닌, 최고사령관이 군 통수권을 갖고 있다. 그러니 쿠데타가 안 일어나는 것이 이상하다. 쿠데타는 우리나라도 겪었다. 그런데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하면서 권력을 ‘양보’하는 듯한 파격을 보였다. 한국은행 출신의 김재익 경제수석에 대한 무한 신뢰였다. 김재익은 수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