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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酒道

[이규태 코너] 酒道 조선일보 입력 2002.04.03 20:28 신임 검사들을 위한 실무지침 가운데 지켜야 할 주도(酒道)가 들어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얼마나 마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마시느냐가 문제라 전제하고 상사부터 차례로 술을 권한다, 상사에게는 두 손으로 권한다, 건배를 할 때에는 자신의 잔을 낮춘다는 등이 그것이다. 서양의 주도(酒道)가 수평사고에 뿌리를 두었다면 한국의 주도는 수직사고에 뿌리 박았다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굳이 주도를 가르쳐서가 아니라 은연중에 몸에 익혀 내렸는데 마을 사람들이 상하 가림없이 참여했던 향음(鄕飮)의 주법이 수직적으로 돼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단위로 날을 잡아 학덕있는 분이나 나이 많은 분을 주빈으로 상석에 모시고 신분이나 벼슬 그리고 평민이면 나이순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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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일본속의 元曉

[이규태 코너] 일본속의 元曉 조선일보 입력 2002.04.04 19:59 불교 교리와 철학에 그 많은 저술을 남긴 이론가 원효대사는 만년에 아무런 거리낌없다는 무애인(無碍人)을 자처, 무애박(無碍匏)을 치고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무애무(無碍舞)를 추고 다니며 무지몽매한 민중에 불심을 적시고 다녔다. 곧 의상대사가 산간불교·귀족불교로 정법을 지켰다면 원효대사는 시정(市井)불교·민중불교로 편법 전도를 꾀한 것이다. 이 원효대사의 노래하며 춤추는 염불불교가 일본에 건너가 용약염불(踊躍念佛)의 씨앗을 뿌렸다. 7세기 나라(奈良)시대의 고승 행기(行基), 10세기 헤이안(平安)시대의 고승 공야(空也), 13세기 가마쿠라(鎌倉)시대의 고승 일편(一遍)의 노래하며 춤추는 염불에 의한 제도(濟度)의 뿌리를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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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시장 정찰제

[이규태 코너] 시장 정찰제 조선일보 입력 2002.04.05 18:46 남대문·동대문 시장 등 서울의 주요 재래시장에도 오는 5월부터 백화점처럼 가격 정찰제를 시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제 유구한 한국적 상술이던 에누리며 덤이 발붙일 여지를 뭉개버리는 것이 되니, 공정거래라는 경제적 소득은 얻을지 몰라도 그에 잠재된 인심이라는 심정적 가치는 유린당한 것이 된다. 같은 시장이라도 인종·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바자와 생김새며 말이며 차림새가 같고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끼리 팔고 사는 5일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바자에서는 속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이며, 팔고 사는 상대방의 일거수 일투족, 달라지는 눈빛까지 놓쳐서는 안 되며, 일단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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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서울 소림사

[이규태 코너] 서울 소림사 조선일보 입력 2002.04.07 19:41 중국에서는 오악(五岳)이라 하여 다섯 개 명산을 숭상해왔는데 그 중 한복판에 있는 중악(中岳)이 숭산(嵩山)이다. 태실산(太室山) 소실산(少室山)으로 불리는 두 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하의 치수를 성공시킨 전설속의 임금 우왕(禹王)이 두 부인을 거느렸는데, 젊은 쪽이 소실산이요 첩을 소실이라 부르게끔 원인 제공을 한 바로 그 산이다. 495년에 북위(北魏)의 효문제가 인도에서 온 고승을 위해 절을 소실산 두메에 짓고 소림사(少林寺)라 했던 것이다. 신라 유학승들이 반드시 들러 좌선 한번 하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던 곳이 바로 소림사 초조암(初祖菴)이다. 바로 선종(禪宗)의 우두머리인 달마대사가 면벽 9년 도를 닦았던 암자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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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舞草

[이규태 코너] 舞草 조선일보 입력 2002.04.08 20:56 안면도에서 열릴 국제 꽃박람회에 중국 운남성에서만 자라는 콩과식물인 무초(舞草)가 전시된다 한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면 그 잎새들이 리듬에 맞추어 위아래로 흐느적거린다 하여 무초다. 어른 목청보다 아이 목청에 민감하고 남자 목청보다 여자 목청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빠른 리듬보다 느슨한 리듬에 민감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춤추다가도 멎어버린다 한다. 인도 무굴제국의 3대 황제 때 신하 한 사람이 성가(聖歌)인 라가를 연주하여 꽃을 피웠다는 기록이 있으나 과장된 기록으로만 여겨왔었다. 한데 이를 범연하게 보아 넘기지 않았던 찰스 다윈은 미모사(함수초·含羞草)와 봉숭아 앞에서 색소폰을 불어 그 잎이 자극받아 운동을 일으키는가 여부를 실험했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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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砲煙속 聖誕교회

[이규태 코너] 砲煙속 聖誕교회 조선일보 입력 2002.04.09 20:13 베들레헴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공략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포연 위에 떠있는 성탄(聖誕)교회의 종탑이 별나게 눈을 끈다. 수난 투성이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 종탑은 15세기에 영국과 베니스가 오크재(材)와 구리를 희사해서 지은 것으로 그것이 총탄이 되어 자기네 가슴에 박힐 줄을 몰랐던 것이다. 17세기에 이 교회를 점거한 터키 병사들이 그 종탑의 오크재로 총신을 만들고 지붕의 구리로 총탄을 만들어 베니스 공화국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 성탄교회에는 드나드는 문이 없다. 문 자리는 있으나 모두 메워지고 겨우 1미터 남짓의 허리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암문(暗門)으로 드나들게 돼 있다. 안에 들어서도 사방을 분간할 수 없게끔 조명도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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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오리엔탈 考

[이규태 코너] 오리엔탈 考 조선일보 입력 2002.04.10 20:32 유인원(類人猿)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던 케냐의 현장에 가면 세계 중심탑이 서있다. 케냐 사람들이 세계의 중심은 자기나라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자기네 임금의 사생아가 추방당해 이룩한 나라들이 동양이라며 어깨를 우쭐대던 것이 생각난다. 프랑스가 세계문화의 중심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국세(國勢)가 시들고 있다고 경고한 것은 장관을 역임한 베일피트다. 신화시대의 중국국가인 하(夏)도 한복판이란 뜻이었으며, 지금도 진(秦)에서 비롯된 지나(支那)란 호칭을 싫어하고 세상의 복판 나라라는 중국(中國)을 고집하고 있다. 이미 '서경(書經)'에 중국이 복판이요 주변 나라들을 오랑캐라 하는 사이(四夷)사상이 나온다. 자기나라 이외에는 동이(東夷) 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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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가야금 미스터리

[이규태 코너] 가야금 미스터리 조선일보 입력 2002.04.11 20:28 가야금의 대가 황병기 교수가 가야금에 현대음악을 접목시킨 「미궁」은 인생의 희비애락을 나타내고자 울고 웃는 사람목청을 깐 독창적인 작품이다. 미스터리에 휘몰리기 좋아하는 10대 네티즌 사이에 이 「미궁」을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루머가 번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문화인류학자 마가릿 미드 여사가 한국에 왔을 때 가야금 연주를 듣고 「악기가 아니다 사람이 들어앉아 울고 있는 것 같다」던 말이 생각난다. 이를 계기로 루머의 사회심리를 살펴보는 것도 무위하지 않을 것 같다. 고종 25년 5월 당시 외부장관인 조병식은 한성의 모든 외국 공관에 공문을 보내어 항간에 서양인들이 조선아이들을 유인하여 삶아 먹는다는 소문이 파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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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한자교육

[이규태 코너] 한자교육 조선일보 입력 2002.04.12 19:25 학생 때 시험문제로 '견유학파(犬儒學派)'의 풀이를 구하는 문제가 나왔던 적이 있다. 학풍이 무성했던 고대 희랍의 어느 학파일 것이라는 것 이외에 전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한자풀이로 따져 가늠해 볼 수밖에 없었다. 유(儒)는 '人+雨+而'의 모둠글자다. 시골에서 허수아비 수염을 그릴 때 '而'자 묘양으로 그린 것으로 미루어 而는 수염일 것이요, 비(雨)에 젖은 수염은 부드럽고 유연해질 것이다. 그런 수염을 한 사람(人)은 강직한 사람 무인(武人)의 반대인 문인이나 선비 학자일 것이다. 개(犬)는 이집 저집에서 얻어먹고 다니는 걸식동물이요 따라서 견유(犬儒)는 개처럼 걸식하고 다니는 학자이고 그 학풍을 따른 학파가 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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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山의 날

[이규태 코너] 山의 날 조선일보 입력 2002.04.14 19:50 세계 산의 해를 맞아 많은 행사를 마련하고 있는 산림청에서 산의 날 제정을 두고 여론 조사를 했더니 91%가 찬성을 하고 과반수가 가을에 잡기를 바라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문화 문명을 두고 과거와 현대가 접속되게끔 현대문명을 수용해야 한다는 연결사고가 있고 낡은 과거는 잘라버리고 현대문명은 새롭게 수용해야 한다는 단절사고가 있는데, 후진국이고 비전이 없는 나라일수록 전통문화를 열등시하여 마치 세균이라도 묻은 것처럼 잘라버리는 단절사고가 우세하다. 산의 날도 그렇다. 산에 오른다는 것을 높은 데 오른다 하여 등고(登高)라 했는데, 우리 전통 세시민속에 유월 보름인 유두(流頭)날을 내등고일(內登高日)이라 했고 구월구일 중구(重九)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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