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이야기 1625

[한자 뿌리읽기]<79> 저주(咀呪)

[동아일보] 咀呪는 남의 불행이나 액운을 기원하는 말이다. 타인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불가능할 때, 사람들은 咀呪라는 보다 우회적이지만 위협적인 방식을 택한다. 咀는 의미부인 口(입 구)와 소리부인 且로 구성되었다. 且는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男根(남근)의 모양인데, 이는 부권사회가 확립됐던 시절의 남성 숭배를 의미하며, ‘조상’이 원래 뜻이다. 하지만 且가 ‘또’라는 부사어로 가차되어 쓰이자 且에다 제단을 그린 示(보일 시)를 더한 祖로 ‘남근(且)에 대한 숭배(示)’를 더욱 형상적으로 그려냈다. 그래서 且로 구성된 글자에는 ‘조상신’이라는 의미가 깊숙하게 스며 있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예컨대 助는 조상(且)의 힘(力·력)을 빌려 ‘도움을 받다’라는 의미요, 沮(막을 저)나 阻(험할 조)는 조상(且)..

漢字 이야기 2021.09.14

[한자 뿌리읽기]<78>제헌(制憲)

[동아일보] 憲法(헌법)은 법치사회에서 가장 상층에 위치하는 국가 통치체제에 관한 대표법이다. 制憲節(제헌절)은 그러한 최고법의 制定(제정)을 기념하는 날이다. 制는 소전체에서 末(끝 말)과 刀(칼 도)로 이루어져, 칼로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모습을 그렸다. 나뭇가지의 끝을 형상화한 末이 조금 변해 지금의 형체로 고정되었다. 그래서 制는 나뭇가지를 ‘자르다’가 원래 뜻이었는데 이후 ‘자르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확대되었다. 옷감을 마름질하고 통나무를 자르는 것은 옷이나 기물을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그래서 制에는 다시 制作(제작)이라는 뜻이 담기게 되었다. 다만 衣食住(의식주)에서 衣가 처음 놓이는 것처럼 옷 만들기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기에 옷을 만들기 위한 옷감의 마름질을 나타낼 때에는 衣를 더한 製..

漢字 이야기 2021.09.14

[한자 뿌리읽기]<77>인(燐)과 인(隣)

[동아일보] 燐은 火(불 화)가 의미부이고 (린,인)이 소리부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린,인)은 의미부도 겸하고 있다. (린,인)은 금문에서 원래 사람의 정면 모습(大·대)에 두 발(舛·천)을 그렸으며 사람의 정면 모습(大) 사이로 점을 네 개 찍어 불이 번쩍거리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아마 원시축제 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불춤을 추거나 燐을 바른 장식으로 번쩍거리게 한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발(止·지)의 모습이 두 개 합쳐져 만들어진 舛은 바로 그러한 동작을 강조한 글자이다. 하지만 소전체에 들면서 大와 네 점을 그린 (린,인)의 윗부분이 炎(불꽃 염)으로 변했으며, 예서 이후 米(쌀 미)로 변해 지금의 자형으로 고정되었다. 불꽃을 상징한 (린,인)의 윗부분이 米로 변해버리자, 번쩍거..

漢字 이야기 2021.09.14

[한자 뿌리읽기]<76>침(鍼)과 구(灸)

[동아일보] 제갈량의 고향이자 초당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허난(河南)성 南陽(난양)에 가면 醫聖祠(의성사)라 이름 붙여진, 張仲景(장중경)의 묘와 사당이 있다. 동한 시대를 살았던 ‘의학의 성인’ 장중경은 ‘傷寒論(상한론)’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남방의 다양한 약초에 근거한 약물요법 처방을 제시한 대표자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황허(黃河) 강을 중심으로 한 북방은 황량한 환경 조건으로 인해 약물보다는 침과 뜸을 중심으로 하는 물리요법이 유행했고, 그 근원은 ‘黃帝內經(황제내경)’에서부터 이어져 왔다. 전국시대를 살았던 또 하나의 의학의 神人(신인)인 扁鵲(편작)은 산둥(山東)성 사람이자 침과 뜸으로 대표되는 물리요법의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다. 鍼은 신석기시대의 폄石(폄석·돌 침)에서 보듯 대단히 오..

漢字 이야기 2021.09.14

[한자 뿌리읽기]<75>행복(幸福)과 건강(健康)

[동아일보] ‘웰빙(well being)’을 우리말로 옮긴다면 아마도 ‘잘∼ 살다’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한자어로는 어떻게 될까. 중국의 경우 아직 통일된 번역어가 등장하고 있지 않으나 幸福이 가장 근접한 어휘가 아닐까 생각된다. 幸福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健康이 으뜸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幸은 소전체에서부터 등장하는데 지금의 형체와는 달리 夭와 ’으로 구성되었다. 夭는 사람의 정면 모습(大·큰 대)에서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여 놓음으로써 ‘죽음’을 상징했으며, 거꾸로 선 사람의 모습으로부터 ‘거꾸로’라는 의미를 그렸다. 그래서 죽는 것(夭)과 반대되는 개념, 즉 ‘不夭(불요)’를 幸이라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幸에는 이렇듯 ‘죽음(夭)을 면하다’는 뜻으로..

漢字 이야기 2021.09.14

[한자 뿌리읽기]<74>피서(避暑)

[동아일보] 허베이(河北)성 承德(승덕)에 가면 중국 최고의 피서지로 알려진 避暑山莊(피서산장)이 있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行宮(행궁·임금이 거동 때 묶던 별궁)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고, 매년 한여름이면 중국 공산당의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 우리에게는 ‘熱河日記(열하일기)’의 주된 배경이 되는 熱河로 알려져 더욱 친숙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기도 하다. 避暑는 더위(暑)를 피한다(避)는 뜻이다. 暑는 日(날 일)과 者로 이루어졌는데 者는 소리부도 겸한다. 者는 갑골문에서 솥에다 콩(叔·숙)을 삶고 있는 모습을 그렸는데, 소전체에 들면서 지금의 형체로 고정됐다. 그래서 者는 ‘삶다’가 원래 뜻이다. 하지만 그 뒤 ‘∼..

漢字 이야기 2021.09.14

[한자 뿌리읽기]<73>가(歌)와 요(謠)

[동아일보] 歌는 의미부인 欠과 소리부 겸 의미부인 哥로 구성되었는데, 哥는 다시 두 개의 可로 구성되었다. 可는 갑골문에서 괭이와 입(口·구)을 그렸다. 괭이는 농기구를 상징해 농사일을 의미하고 口는 노래를 뜻한다. 그래서 可는 농사일을 할 때 불렀던 勞動歌(노동가)를 상징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면 고된 일도 쉽게 느껴지고 힘든 일도 쉽게 이루어졌던지 可에는 ‘적합하다’나 ‘可能(가능)하다’는 등의 뜻이 생겼고, 그 뒤 肯定(긍정)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로 사용됐다.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뜻하는 可가 두 개 합쳐졌다는 것은 ‘설문해자’에서의 해석처럼 ‘노래(可)가 계속해서 이어짐’을 뜻했다. 그래서 哥는 ‘계속해 노래 부르다’가 원래 뜻이다. 하지만 위진 남북조 이후 북방의 鮮卑..

漢字 이야기 2021.09.14

[한자 뿌리읽기]<72>파(派)와 병(兵)

[동아일보] 派兵은 군대(兵)를 나누어(派) 보낸다는 뜻이며, 그것은 전쟁을 치르기 위함이다. 하지만 전쟁이 그토록 빈번했던 그 옛날에도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만 했고, 正(바를 정)의 자원에서도 보듯 정의로울 때만 용인되었다. 正은 원래 성(국·국)을 치러 가는(止·지) 모습을 그렸으며, 그 征伐(정벌)은 언제나 정의로워야 한다는 뜻에서 ‘正義(정의)’의 의미가 나왔고, 이후 척(조금 걸을 척)을 더한 征으로 征伐의 원래 의미를 나타냈다. 派는 원래 永에서 만들어진 글자다. 永은 갑골문에서 강(水·수)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人·인)의 모습을 그렸다. 이후 永이 끝없이 이어지는 긴 강처럼 永遠(영원)하다는 의미로 뜻이 확장되자 원래 뜻을 나타낼 때에는 다시 水를 더하여 泳을 만들었다. 그래서 口(입 구..

漢字 이야기 2021.09.14

[한자 뿌리읽기]<71>공(孔)과 공(空)

[동아일보] 구멍을 뜻하는 대표적인 한자에 孔과 穴, 空이 있다. 모두 빈 공간과 구멍을 뜻하지만 그 뿌리는 서로 다른 문화적 층위를 지닌다. 우선 孔은 금문에서 아이(子·자)의 머리에 선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했다. 이 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머리의 특정 부위를 지칭하는 지사부호로 보인다. 그래서 孔은 어린아이의 ‘숨구멍’에서 유래한 글자이다. 아이의 숨구멍은 생명의 중요함과 신비함이 동시에 스며있는 곳이다. 그래서 孔은 단순히 구멍이라는 의미 외에도 孔德(공덕·큰 덕)처럼 ‘깊다’나 ‘위대하다’는 뜻을 가진다. 그리고 구멍이라는 뜻을 나타낼 때에도 毛孔(모공)이나 瞳孔(동공)처럼 인간의 신체와 관련된 부위에 주로 쓰인다. 그러자 일반적인 구멍을 나타내기 위해 다른 글자가 필요했는데, 穴과..

漢字 이야기 2021.09.14

[한자 뿌리읽기]<70>진(眞)과 정(貞)

[동아일보] 오늘날의 점술가는 미신의 대명사이고, 근대를 위태롭게 하는 전시대의 유물이다. 하지만 고대의 점술가는 미래의 예언가이자 공동체의 불운을 미리 막아주는 우두머리의 역할을 수행했다. 貞과 眞은 이러한 옛 점술가의 지위를 아주 잘 보여주는 글자이다. 眞은 善(선)과 美(미)와 함께 인류가 추구하는 세 가지 지향점 중의 하나이지만 이의 자형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잘 파악돼 있지 않다. ‘설문해자’에서 ‘眞은 신선이 모습을 변화시켜 승천하는 것을 말한다. 匕와 目(눈 목)과 ㄴ과 八(여덟 팔)로 구성되었는데, 八은 신선의 탈 것을 말한다’고 했지만, 금문의 자형과 어떤 연계도 지울 수 없다. 眞이 금문에 들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의 개념은 전국시대 말부터 유행한 신선사상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漢字 이야기 2021.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