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587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1> 유머감과 인간미

두 낱말이 가진 연관성을 끄집어 찾아내면 어떠한 느낌이 전해져 올까? 유머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남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이다. 비슷한 우리말은 무얼까? 우스개, 익살, 한자어로 골계(滑稽)해학(諧謔), 농담(弄談), 풍자(諷刺), 영어로 위트(wit), 조크(joke), 코믹(comic) 등. 하지만 어원으로 따지면 이들 낱말들은 유머와 거리가 멀다. 유머(humor)는 몸안에 흐르는 체액을 뜻하는 라틴어 후모르(humor)에서 왔다. 고대 로마인들은 남을 웃기는 기질이 그 사람의 체액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의학용어인 유머는 일상용어인 유머가 됐다. 물론 유머는 체액이 아니라 머리에서 결정된다. 그래도 유머가 체액으로부터 나온다는 옛날 생각은 나름 그럴 듯하다. 유머 있는 사람에게는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2> 와이파이, 블루투스 ; 새로 나온 낱말들

인류가 디지털 데이터 처리기계인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문명의 양상은 전환되었다. 그 시조는 알란 튜링이라는 천재다. 한 잎 베인 사과인 애플사의 로고는 독 묻은 사과를 한 입 먹고 자살한 튜링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오마주다. 2차대전 때 독일군 암호인 에니그마를 풀어 연합군 승리에 기여한 그는 튜링 머신이라는 컴퓨터 사고체계에 따라 1943년에 콜로서스라는 세계최초의 컴퓨터를 만들었다. 수백만 년간 이어져 온 아날로그 세상이 순식간에 디지털 문명을 맞이한 것이다. 군사목적으로 미국 전역의 여러 대 컴퓨터들을 분산시켜 연결시킨 1970년대의 알파넷은 1991년에 HTML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는 통신규약인 http(Hypertext Transfer Protocol) 기반의 전지구적 거미줄 통신망(WWW;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3>오행과 오장 ; 무슨 연관이 있을까?

왜 하필 5일까? 도대체 무슨 연유나 이치가 있는 것일까? 각을 가진 평면 형태로 우리 눈에 보이는 가장 일반적인 모양은 세모나 네모다. 4혈액형, 4상체질, 4계절을 보면 세상은 4로 이루어진 것같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상의 기본원소로 물-불-공기-흙의 4 가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여긴 피타고라스는 직각 삼각형 정리를 발견했으면서도 그들 학파의 휘장은 5각형이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5에 관하여 더욱 심오한 사고를 했다. 우선 '주역'이 출발점이다. 주역에서 태극은 태극기 무늬와 달리 극성 없는 무극이다. 무극의 태극이 음(--)과 양(―)으로 갈라졌다. 음양과 오행을 통합한 것이 '황제내경', 즉 내경이다. 황제는 실제 역사 인물이 아니라 단군처럼 신화적 존재다. 황제와의 양..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4> 가난, 빈곤, 궁핍 ; 그 이유는?

우리는 이런 모자란 낱말들보다 풍요, 부유, 여유와 같은 말들을 좋아한다. 가난은 순우리말 같지만 간난(艱難)에서 유래했다. 두 한자 모두 어렵다는 뜻이다. 가난은 주로 내가 사는 집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기에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한다. 가난(家難)이라 써도 될 듯하다. 우리말로 가난은 경제적으로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여 어렵다는 뜻이다. 빈곤(貧困)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재화(貝)를 나누고(分) 나무(木)가 사방으로 에워싸였으니(囗) 꽉 막혀 힘들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베풀어 나누면 힘들기보다 오히려 기쁠 수 있으므로 이때는 빈곤이 아니라 빈희(貧喜)다. 궁핍에서 궁(窮)은 더 어찌 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인 궁색한 지경에 놓인 것이다. 핍(乏)은 있는 것이 다 떨어지고 없는 결..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5> 야만인과 미개인 ; 과연 누굴까?

두 낱말은 우리와 관계없는 것같다. 우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니까…. 야만이란 길들여지지 않은(野) 쌍스러운 오랑캐(蠻)란 뜻이다. 세상의 중심에 당당히 위치한다는 중화민족의 관점에서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은 모두 동서남북 변방에 놓인 오랑캐들이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우리 한족(韓族)도 만주의 여진족처럼 동이에 속한 오랑캐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진족이 오랑캐였다. 오랑캐란 말은 우리가 여진족의 한 부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오랑캐가 중원을 차지하여 청나라가 되자 오랑캐는 바뀌었다. 6·25 노래에 나오는 '무찌르자 오랑캐'는 중공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제 중국은 우리와 수교국이니 오랑캐가 아니게 되었다. 그리스·로마에서도 그들 아닌 족속들은 야만스럽고 미개한 바바리언이었다. 로마제국이..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6> 얼추와 대충 ; 완벽할 수 없는

얼추 대충하면 어찌 될까? 우리 인간은 과연 100% 완벽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 유래한 상용어·지명 사전' 책에는 교회, 장로, 성당 등의 낱말이 불교에서 유래한다고 되어 있다. 기독교 관점에서는 기분 나쁠 수 있다. 그런데 불교는 천주교보다도 약 1400년 먼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불교에서 유래한 점심 등의 일상어와 미아리 등의 지명이 수두룩하다. 이 중 얼추도 그렇다. 불화, 단청, 조각 등에 모두 능한 승려가 금어(金魚)란다. 셋 중에서 둘에만 능하면 어축(漁軸)인데 이 어축이 변해서 얼추가 되었단다. 둘만 능히 잘해도 꽤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얼추는 그런 뜻보다 얼렁뚱땅 대충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얼추 맞다는 말은 100% 완전하지는 않아도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7> 가극과 창극 ; 같으나 달라진

두 낱말은 뜻이 다를 이유가 없다. 그런데 달라졌다. 무슨 연유가 있을까? 노래를 뜻하는 한자는 歌(가), 謠(요), 창(唱), 곡(曲) 등이다. 글자 조합에 따라 서로 다른 뜻이 생겼다. 가요, 민요, 가곡은 느낌부터 다르다. 가극(歌劇)과 창극(唱劇)도 그렇다. 둘 다 노래를 부르는 극이다. 가(歌)가 하품(欠)하듯 입을 벌리며 노래하는 것이라면, 창도 입(口)을 움직이며 노래하는 것이다. 두 낱말의 차이는 확연하다. 가극은 주로 오페라다. 뮤지컬도 음악연극(musical play)이란 뜻이니 오페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오페라와 뮤지컬은 다르다. 전통적 오페라는 노래를 기초로 하는 극이다. 가사(aria) 아닌 대사도 노래처럼(recitativo) 표현한다. 대중적 뮤지컬은 극을 기초로 하는 노래다...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8> 글 그림 그리움 ; 다 똑같은 행위

세 낱말은 다 긁어서 이루어진 것이다. 어디에 무엇을 긁느냐가 다를 뿐. 글이란 머릿속에 가진 생각을 종이에 긁는 것이다. 한자로 글을 뜻하는 서(書)는 붓(聿)으로 사람의 말(曰)을 긁은 것이다. 요즘은 컴퓨터 키보드로 모니터에 쓰고 프린터에 긁어 출력하지만 글이란 자신의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종이에 긁은 것이다. 인류가 말을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획기적 전환점이다. 글의 수단인 문자의 기원은 그림이다. 코끼리와 같은 어떤 상(象)의 모양(形)을 나타내는 상형문자(pictograph)다. 나일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있었던 5000~6000여년 전의 문자는 모두 긁어서 그린 그림이었다. 황하문명을 이룬 중국 최초의 한자인 갑골문도 거북의 배(甲)와 소의..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9> 인사와 민사 ; 왜 차이가 날까?

두 낱말 모두 사람의 일인데 전혀 느낌이 다르다. 왜 그럴까? 인사(人事)는 한자 뜻 그대로 사람이 하는 일이다. 경영학에서 인사란 회사구성원을 다루는 인적 자원관리다. 또 인사가 만사라고 할 때는 사람을 기용하여 쓰는 일이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인사는 남에게 공경하는 뜻으로 행하는 예의다. 중국어로는 행례(行禮), 청안(請安)이다. 일본어로는 밀며 다가간다는 뜻에서 아이사쯔(あいさつ, 挨拶)다.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며 접근한다는 뜻이니 재미있다. 영어로는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그리팅(greeting)이거나 머리를 숙이며 절을 하는 바우(bow)다. 인사를 잘해야 좋은 사람이란 말을 듣는다. 그런데 민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은 없다. 민사라 하면 민사소송, 민사법 등이 연상된다. 민사에 엮이면 골치아프다..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10> 해삼 해서 해과 ; 나라마다 다른 단어

똑같은 생물을 두고 나라마다 낱말이 다르니 재미있는 세상이다. 성경의 창세기 초반부에 바벨탑 사건이 나온다. 그때는 세상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며 똑같은 언어를 썼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려고 높은 바벨탑을 쌓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 모습이 안 좋았다. 결국 바벨탑을 허무신다. 그리고 흩어져 살게 하며 서로 말을 못 알아 듣게 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까? 필자가 만일 목사라면 바벨탑 사건을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설교하겠다. 우리를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하고 서로 언어를 다르게 하였기에 인간 세계는 다양해졌다. 생태계에서 다양성이란 곧 건강성이다. 단일성은 곧 획일성이며 그 하나(一)에 닥칠 수 있는 위기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치명적 위기가 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