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587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0> 짬뽕과 잡탕 ; 다르지만 비슷해진 말

짬뽕의 어원을 알면 잡탕의 의미와 한참 멀어진다. 그래도 잡탕보다 짬뽕이어야 한다. 한국인의 일상 고민 중 하나가 중국음식점에서 짬뽕을 먹을 것이냐, 짜장면을 먹을 것이냐다. 오죽하면 짬짜면이 나왔을까? 짜장면은 우리네 된장처럼 중국식 장(醬)인 춘장을 불에 달궈(炸) 만든 양념에 비빈 국수(麵)란 뜻의 작장면(炸醬麵)에서 유래했다. 원래 청나라 산동성에서 왔다지만 짜장면은 작장면과 다르다. 한국인 입맛에 맞추어진 음식이다. 자장면도 표준말이라지만 동의하기 싫다. 짜장면은 짜장면이라고 해야 짜장면의 제 맛이 난다. 우리말에서 된소리 발음은 말 맛을 살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꼭 나쁘게만 여길 일이 아니다. 짬뽕도 된소리 발음화에 따른 낱말이다. 그런데 짬뽕의 원래 뜻이 의외다. 일본에 사는 중국인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1> 빈둥빈둥, 얼토당토 : 흥청망청, 이판사판

네 글자로 이루어진 이 낱말들은 2, 4번째 글자가 똑같은 낱말인데 두 부류다. 첫 번째는 순우리말이다. 이중 빈둥빈둥류는 어떤 모양이나 소리를 흉내낸 의태어, 의성어다. 속이 빈 사람처럼 게으른 모양이 빈둥빈둥이다. 살금살금, 벌컥벌컥, 두런두런, 올망졸망 등 우리말 특유의 정겨운 표현들이 많다. 또한 얼토당토류는 우리말의 발음이 변해서 된 낱말이다. 얼하지도 당하지도가 얼토당토가 되었다. 비슷하게 얼추되지도 않고 마땅히 당치도 않아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 행동이 굼뜨고 모자란 사람에 대한 어리바리도 사람의 정신인 얼이 버려졌다, 아니면 어리고 어리석다를 한 번 더 강조하기 위해 발음이 변한 말이다. 두 번째는 한자에서 온 낱말이다. 연산군 때 왕의 맑음(淸)을 돋구기(興) 위해 전국에서 상납된 미녀..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2> 곤욕과 곤혹 ; 느껴지는 게 다르다

한자로 된 낱말 중에 발음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명확한 단어가 많다. 권위와 권한, 실수와 실패, 전투와 전쟁, 투기와 투자 등이 그렇다. 이 칼럼에서 그런 것들을 다루어도 되지만 될수록 피하려고 한다. 차이가 명확해서 잘못 쓰이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곤욕과 곤혹은 많이 잘못 쓰인다. 한자로 따지면 너무 다른 뜻이다.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곤(困)은 나무(木)가 우리(口)에 갇혀 있는 모양이다. 죄지을 일 없는 나무도 생명이니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겠는가? 사람이 갇혀 있는 죄수(囚)도 괴롭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욕이 곤욕이다. 욕(辱)은 하늘을 뜻하는 별 辰과 법칙을 뜻하는 마디 寸을 합친 글자이니 우리가 생각하는 욕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농사는 하늘(辰)의 법칙(寸)에 어긋나면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3> 스트레스-히스테리-노이로제- 콤플렉스-트라우마

이 네 글자 단어들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다. 처방을 알면 기분이 편하다. 스트레스(stress)란 금방 끊어질 듯한 팽팽한 줄(string)을 뜻한다. 또는 위에서 누르는(press) 것이다. 외부로부터 이러한 긴장이나 압박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더 적극 반응하게 되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으나 정도가 지나치면 끊어지거나 찌부러져 버린다. 히스테리(hysterics)란 여성을 자궁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 말이다. 서양의학의 아버지라는 히포크라테스는 자궁이 비정상적 흥분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진단했다. 엇비슷한 시기를 살던 노자가 여자의 음문을 만물의 근원이라고 했던 것에 비하면 비과학적이고 몰철학적이다. 노처녀가 아니더라도 여자든 남자든 심지어는 전자제품이나 기계까지도 발작 증상을 일으킬 수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4> 마을과 부락 ; 쓸데없는 낱말은?

두 낱말은 비슷하게 들려도 하나에는 우리에게 마음 아픈 역사가 있다. 마을은 원래 물()에서 나온 말이다. 물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며 마을을 이루었다. 중앙에서 내려 보낸 사또(使道)의 통치 관할 구역인 고을(郡)과 달리 마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씨족사회 공동체에서 비롯되었다. 한자로 밭(田)이 있는 땅(土)인 리(里)가 마을에 가장 가깝다. 촌(村, 邨)도 있으나 이는 시장 중심의 도시인 시(市)와 상대되는 말이다. 동네(洞內)는 한자에서 온 말로 짐작되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마을의 뜻으로 동(洞)을 안 쓰기에 우리말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을 뜻하는 한자로 읍(邑), 면(面) 등이 있으니 이제는 洞, 里와 함께 행정구역을 나누는 단위가 되었다. 예전에 우편봉투에 인쇄되어 쓰이기도 했던 '시(도)-시..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5> 어여쁘다와 아름답다 ; 한자, 영어보다 좋은

우리가 매일 달고 사는 낱말이지만 어원을 알면 익숙했던 말들이 낯설게 여겨진다. 세종 때 만들어진 훈민정음 서문에 어여쁘다라는 낱말이 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중략)~내 이를 위하야 어엿비너겨~. 여기서 어엿비너겨가 바로 어여삐 여긴다는 뜻이다. 서문의 한자본을 보면 어여삐 여기는 것에 해당하는 한자가 불쌍히 여길 민(憫)이다. 마찬가지로 세종 때 만들어진 석보상절에도 어엿브다에 해당하는 한자가 가엽게 여길 연(憐)이다. 이렇듯 세종 때에 어엿브다는 불쌍히 여기고 가엽게 여긴다는 연민의 뜻이다. 그런데 어엿브다→어여쁘다→예쁘다로 음이 변하면서 뜻도 변하였다. 생긴 모양이나 행동이 보기에 좋고 사랑스럽거나 귀엽다는 뜻이다. 가엽게 여기면 예쁘게 보이는 법이니 의미 변화가 이해된다. 어원이 분명한 예쁘다..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6> 두려움과 설렘 ; 떨림의 두 종류

두렵건 설레건 사람은 떨게 된다. 하지만 그 떨림의 작동방식이 전혀 다르다. 두렵다는 것은 무서워하는 것이다. 맹수가 둘러싸서 날 잡아 먹으려 하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 이렇게 나를 사방에서 원으로 둘러싸여 있을 때의 감정이 두려움이다. 내가 가운데서 두루(周) 둘러싸여 있는 감정이다. 이렇듯 두려움이란 맹수들의 공격 속에서 살던 선사시대부터 뼛속 깊이 DNA로 체득된 인간의 오래된 감정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설 때, 그래서 많은 시선들이 오직 나에게로 쏠릴 때 느끼는 두려움은 우리의 선조가 맹수들에 둘러싸일 때 느끼는 감정의 연장선상에 있다. 설렌다는 것은 살며시 움직인다는 것이다. 심하게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살살 자그마한 동작으로 흔들리는 것이다. 작은 마음의 흔들림이 설렘이다. 그것도 한 해..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7> 토론과 포론 : 초월과 포월

토론과 초월은 원래 있는 말이고, 포론과 포월은 새로 만든 말이다. 무슨 차이일까? 학생들의 토론대회에 간 적이 있다. 정말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말(言)의 마디(寸)마다 상대방을 치고, 때리고, 공격하며, 비난하는 토(討)의 격한 대결이었다.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을 이유도 여유도 없다. 딴죽을 걸기 위해 듣는 것이라면 모를까? 무르익은(爛) 자신의 생각과 상대방을 헤아리는(商) 난상토론(爛商討論)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잘 알지도 못하는 어지러운(亂) 마당(場)에서 난장토론(亂場討論)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포론이다. 포론에서 포(包)란 엄마가 뱃속의 아이(巳)를 감싸안듯이(?) 상대방의 생각을 감싸안는 것이다. 제대로 헤아릴 수 있도록 귀기울여 경청하며 나의 무르익은 생각을 말해서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8> 감정과 감성 ; 전혀 다른 느낌

두 낱말은 뜻이 다를 이유가 없다. 그런데 다르다. 아니 달라졌다. 저 사람은 말을 참 감정적으로 하네! 저 사람은 말을 참 감성적으로 하네? 두 문장은 뜻이 전혀 다르다. 전자는 싫은 내색을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다 드러내며 말한다는 뜻이다. 후자는 상대방이 공감 가도록 부드럽게 말을 잘한다는 뜻이다. 전자가 부정적이라면, 후자는 긍정적이다. 감정과 감성은 반대말이 된다. 어째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을까? 한자인 감정의 정(情)과 감성의 성(性)에 관해 제 아무리 열심히 연구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정은 인정, 정성, 정취 등의 낱말에 쓰이며 좋은 뜻에 주로 쓰인다. 정이라는 글자를 하나만 떼어놓고 보아도 느낌이 좋다. 오죽하면 초코파이 이름이 정일까? 성은 천성, 성질, 성별 등의 낱말에 쓰이며 가..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9> 광고, 선전, 홍보 ; 같지만 달라졌다

광고도 널리(廣) 알리는(告), 선전도 널리(宣) 알리는(傳), 홍보도 널리(弘) 알리는(報) 일이다. 한자의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큰 맥락에서 뜻이 같다. 그런데 뜻이 달라졌다. 세계 최초의 광고는 3000년 전에 도망간 노예를 찾는다는 내용이란다. 이는 광고한 흔적이 그렇게 역사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지 세계 최초의 광고인지는 불분명하다. 그 이전에도 사람이 살면서 남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일들은 많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광고할 일이 많다. 가령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기 전에 광고한다며 교인들에게 공지사항으로 알릴 말을 전한다. 이럴 경우 광고라는 단어는 어색하다. 광고는 상업적인 경우에 어울린다. 그래서 상업광고(commercial)다. 광고는 우리 것을 사주길 바라는 분명한 목적으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