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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91] 장기 연재물의 나라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91] 장기 연재물의 나라 신상목 기리야마 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만화 '베르세르크' 작가 미우라 겐타로의 부고. 지난 5월 6일 일본 만화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겐타로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크 판타지 장르의 명작이라 불리는 ‘베르세르크'는 1989년에 첫 회가 시작된 이후 30년이 넘은 금년 초까지 집필이 계속된 장기 연재물이다. 10대에 이 작품을 접한 독자가 이제는 40대의 중년이 되었으니 그 세월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치밀한 디테일의 작화와 기상천외한 스토리텔링으로 사랑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죽음에 팬들은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작자인 미우라가 20대 초반에 연재를 시작한 이래 30년 동안 하루 15시간씩 창작에 몰두하다 건강을 해쳐..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90] 세기의 컬렉션, 세기의 기증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90] 세기의 컬렉션, 세기의 기증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www.chosun.com 도쿄 우에노에 위치한 ‘국립서양미술관’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모네, 고흐, 르누아르 등 교과서급 거장의 작품을 다수 소장한 이곳은 건물도 하나의 작품으로 이름이 높다.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이곳은 시대를 앞선 기능미와 조형미로 1959년 개관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 모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이 되었다. 국립서양미술관 탄생 배경에는 아트 컬렉터 마쓰카타 고지로(松方幸次郞·1865~1950)가 있다. 가와사키 조선소의 경영자로 1차 대전 당시 조선업 호황으로 거부를 모은 그는 열정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하였다. 유럽 화랑가의 큰손으로 그가 미술품 구입에 쓴 금액이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9] 도조 히데키와 ‘삼간사우’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9] 도조 히데키와 ‘삼간사우’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4.30 03:00 | 수정 2021.04.30 03:00 1944년 2월, 총리 겸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는 불리한 전황(戰況) 타개를 이유로 참모총장을 겸직한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군 수뇌부의 무능과 현실 감각 결여에 대한 불만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었다. 도조가 행정권, 군정권에 이어 군령권까지 손에 쥐자 육군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고조되고, ‘삼간사우(三奸四愚)’라는 소문이 나돈다. 삼간사우란 세 명의 간신과 네 명의 어리석은 인물이라는 의미로, 도조가 중용하고 의지하던 측근들을 말한다. 그중의 한 명으로 지목되는 사토 겐료(佐藤賢了)는 육군성 최요직인 군무국장을..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8] 국가의 건강과 신진대사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8] 국가의 건강과 신진대사 신상목 대표 입력 2021.04.16 03:00 | 수정 2021.04.16 03:00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사(代謝)’라는 말이 일상어처럼 쓰인다. 기초대사, 운동대사, 대사증후군 같은 용어를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여기서 대사는 ‘신진대사(新陳代謝)’, 즉 영어의 metabolism을 말한다. 신진대사는 한자를 보아도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설명하자면, 신진은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을 말한다. 진은 진부(陳腐)에서 볼 수 있듯 오래되거나 낡은 것을 의미한다. 대사는 ‘번갈아 바뀌다’는 의미로, 여기서 사(謝)는 ‘물러나다', ‘기세가 쇠하다'라는 뜻이다. 문자대로 풀이하면 신진대사란 ‘오래된 것이 물러가고 새로운..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7] 혀가 두 겹, ‘니마이지타’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7] 혀가 두 겹, ‘니마이지타’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4.02 03:00 | 수정 2021.04.02 03:00 한국에서 위선을 나타내는 속어가 ‘내로남불’이라면 일본에서는 ‘니마이지타(二枚舌)’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혀가 두 겹이라는 의미로, 입장이나 처지의 유불리를 따져 일구이언하거나 식언(食言)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신뢰할 수 없거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므로 비난의 강도가 꽤 센 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치인 등의 사회적 공인에게 니마이지타라는 평판은 치명적이다. 니마이지타는 직관적으로도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지만, 저절로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불교의 십악(十惡) 중 하나인 양설(兩舌)에서..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6] 투기와 범죄의 차이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6] 투기와 범죄의 차이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3.19 03:00 | 수정 2021.03.19 03:00 한국청년연대, 청년진보당, 청년하다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LH 투기 의혹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어 사전에 의하면 ‘투기(投機)’는 본래 불교의 선(禪) 용어라고 한다. ‘스승과 제자의 마음이 투합(投合)하는 것’, ‘깨달음이 통하는 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투기의 의미이다. 이러한 뜻의 말이 왜 영어의 ‘speculation’에 해당하는 경제 행위를 의미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그 연원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5] 쇼와 ‘바보 예산’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5] 쇼와 ‘바보 예산’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3.05 03:00 | 수정 2021.03.05 03:00 1987년 12월 다음 연도 예산안을 소개하는 대장성 기자회견장에서 주계관(主計官) 다야 히로아키(田谷廣明)는 ‘쇼와 3대 바보 예산(昭和三大馬鹿査定)’ 발언으로 화제를 모은다. 발언의 계기가 된 것은 도호쿠(東北), 호쿠리쿠(北陸), 규슈·가고시마(九州·鹿児島) 노선 등 소위 ‘정비(整備) 신칸센’으로 불리는 지방 신칸센 건설 예산이었다. 이들 노선은 해당 지역에는 숙원 사업이었으나, 국가 전체로는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다. 철도 민영화, 재정 건전화 등의 과제를 안고 있던 대장성은 물동량, 기존 철도 활용도 관점에서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0] 일본 패망을 부른 가짜 깃발 작전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0] 일본 패망을 부른 가짜 깃발 작전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0.12.18 03:00 1931년 9월 18일 심야 주봉천(奉天) 일본 총영사관에 중화민국 교섭서(署) 일본과에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일본군이 봉천 일대를 포위한 채 중국군을 공격하고 있으며, 중국군은 교전 확대를 우려하여 무저항으로 대응하고 있으니 일본군의 공격을 중지해달라는 긴급 요청이었다. 하야시 규지로(林久治郎) 총영사가 즉각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郎) 관동군 고급참모에게 연락을 취해 중국 측의 요청을 알리고 군사작전 중지를 요청했지만, 이타가키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금번 사태는 중국 측 공격으로 시작된 것이며 이를 철저히 응징하는 것이 군의..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9] 국체명징운동과 파시즘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9] 국체명징운동과 파시즘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0.12.04 03:00 1912년 도쿄제국대학 법학교수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는 저작 ‘헌법강화(講話)’에서 ‘천황기관설’을 주장한다. 국가는 법인격을 가지며, 천황은 국가 최고기관으로서 의회, 내각 등 타 기관의 보좌를 받아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왕권신수설이나 군주주권설이 수명을 다하고 국가법인설에 기초한 입헌군주제가 보편화된 시대였다. 미노베의 학설은 시대 변화를 반영한 이론으로, 민권운동 확산 등과 맞물려 ‘다이쇼 데모크라시’ 의회주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후 천황기관설은 헌법 해석의 통설이 되었으며, 천황주권설을 따르지 않는 것이 천황 통치권을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4] 어느 판사의 죽음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4] 어느 판사의 죽음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2.19 03:34 | 수정 2021.02.19 03:34 야마구치 요시타다(山口 良忠·1913~1947) 판사. 2차 대전 패전 뒤 일본의 극심한 식량난 속에 식량관리법 위반 사범을 처벌해야 했던 그는 암시장 식량을 거부하고 배급만 먹다 영양실조로 쓰러져 끝내 숨졌다. /위키피디아 1947년 11월 일본 신문에 한 판사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가 게재된다. 판사의 이름은 야마구치 요시타다(山口良忠). 34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의 사인은 영양실조였다. 전쟁 직후 식량 부족이 심각하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지체 높은 판사가 아사(餓死)했다는 소식에 일본인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