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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3] 영국을 격분시킨 ‘여왕 폐하’ 사건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3] 영국을 격분시킨 ‘여왕 폐하’ 사건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1.29 03:00 1895년 조선의 근대 법령 1호인 ‘재판소구성법’ 제정에 관여한 일본의 법률고문 호시 도루(星亨·1850~1901)는 영국 유학 중이던 1877년 일본인 최초로 법정변호사(barrister) 자격을 취득한 수재이자 영어의 달인이었다. 출중한 영어로 메이지 정부에 발탁되어 출셋길을 달린 그였지만, 영어 실력이 오히려 화(禍)를 부른 적도 있다. 1874년 요코하마 세관장이던 호시는 영국 상인들의 규칙 위반을 두고 주일 영사 로버트슨과 서한 교신을 하였는데, 이 서한에서 빅토리아 여왕을 ‘여왕 폐하’라고 표기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영국 측은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2] 작심삼일과 벤쿄(勉强)

해가 바뀌면 으레 새해 각오 한두 개씩은 마음에 품기 마련이다. 그런 각오가 오래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것을 ‘작심삼일’이라고 한다. 일본어의 작심삼일에 해당하는 말로는 ‘밋카보즈(三日坊主)’가 있다. 직역하면 삼일 승려라는 뜻으로, 승려가 되기 위해 출가를 하였다가 엄격한 불가의 수행을 참지 못하고 사흘 만에 속세로 돌아오고 만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관용구이다. 비슷한 말로는 ‘산가쓰테이킨(三月庭訓)’이 있다. 데이킨은 데이킨오라이(庭訓往來)의 준말로, 에도시대에 1월부터 12월까지 달별로 좋은 문장의 세시기(歲時記) 산문을 모아두었다가 서당에서 교육용으로 사용하던 습자(習字) 교재를 말한다. 산가쓰테이킨은 마음먹고 1년분 교재를 장만해 두고는 3월 부근에서 글 배우기를 포기한다는 의미로, 공부를 끈기..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1] 진보 지식인의 변절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1] 진보 지식인의 변절 신상목기리야마본진대표·前주일대사관 1등서기관 입력 2021.01.01 03:00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1836~1916)는 메이지 시대의 정치학자, 교육가이다. 그는 막부의 번서조소(蕃書調所)에서 양학(洋學) 교관으로 근무하며 일찍부터 서구의 정치사상·제도를 연구한 신지식인이었다. 메이지 신정부에 임용된 그는 출중한 외국어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 개혁에 관한 다수의 논문, 제언을 남기며 왕성하게 활동한다. 계몽사상의 대명사인 메이로쿠샤(明六社)의 일원으로도 활약한 그의 초기 사상은 한마디로 ‘천부인권설’이었다. 그는 ‘인간은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존재이며, 인간에게 만복을 내리는 것이 하늘의 뜻’임을 공리(公理)로 세우고 자유·평등·입헌주의 등 서구..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8] 이등병으로 징집된 칙임관

1944년 7월 체신부 공무국장 마쓰마에 시게요시(松前重義)에게 느닷없이 징집 전보가 날아든다. 공무국장은 전파 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칙임관(고위 공무원)의 자리다. 누가 봐도 43세의 그에게 날아든 이등병 소환장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그는 꼼짝없이 이등병 신분으로 남방 전선에 투입된다. 마쓰마에는 공학 박사 학위를 보유한 정통 기술 관료였다. 대미(對美) 개전 이후 악화 일로의 전황을 지켜보던 그는 승전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다. 현대전은 정신력이 아니라 병기의 기술력, 인적 자원, 자원량으로 승패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과학 기술계 동료들과 미·일 간 생산력 및 자원량 조사에 착수한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대미전을 수행하려면 연간 최소 철강 600만t, 알루미..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7] 출세魚 방어

요즘 날씨가 추워지면서 방어가 제철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명태⋅고등어⋅삼치 등을 제치고 겨울 생선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분위기다. 특히 수산 업계에서 경매용으로나 쓰던 ‘대방어’라는 이름을 일반인도 널리 쓰면서 다 자란 방어의 인기가 특히 높다. 방어는 일본어로 ‘부리(ブリ)’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일본에서는 방어를 부르는 명칭이 성장 단계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으나 간토(關東) 지방에서는 작은 순서대로 와카시-이나다-와라사 등으로 부르다가 80㎝ 이상급 완전 성어(成魚)가 되면 부리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이렇듯 성장을 거치며 이름이 바뀌는 생선을 ‘출세어(出世魚)’라고 한다. 출세어라는 다소 엉뚱한 별명은 과거 일본의 상류층이 성..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6] 도움이 되는 克日

요즘 날씨가 좋은 계절이라 창문을 열고 운전할 때가 많다. 선선한 가을 공기를 느끼는 것은 좋은데 담배를 창문 밖으로 내놓고 피우는 운전자들 때문에 종종 기분이 상하곤 한다. 앞차나 옆 차에서 날아드는 담배 연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담배 연기도 싫지만 자기 차에 담배 냄새가 배는 것은 싫으니 밖으로 내놓고 피겠다는 그 이기심이 더욱 고약하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나 그런 운전자들이 예전보다 더 많아진 듯한 느낌이다. 고백을 하자면 나도 예전에는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행동을 고치게 된 계기는 일본에서의 경험이었다. 일본에 처음 가서 일본인 부동산 업자 K상의 차를 타고 집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한국에서 하던 대로 담배를 밖으로 내밀자 K상이 질색을 한다. 자기는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5] 계몽 군주 유감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5] 계몽 군주 유감 신상목 대표 검색 - 조선일보 www.chosun.com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19세기 말 서세동점의 압력에 직면한 일본 지식인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서양 문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에 몰두한다. 탐구 끝에 도달한 서양 문명의 핵심은 기독교 사상과 과학적 합리주의의 기묘한 이중주였다. 일본인들이 근대성의 표상으로 특히 주목한 것은 과학적 합리주의의 저변을 관통하는 ‘계몽’ 사조(思潮)였다.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 논문에서 설파한 ‘계몽이란 (의타적)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 ‘과감히 알려 하라.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자유가 주어지면 민중은 스스로를 계몽할 수 있는 존재’ 등의 화두는 일본 근..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4]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소설(小說)이라는 말은 한국인들의 언어 습관에서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일정한 개연성과 인과관계의 구조를 갖도록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작된 산문체 문학 장르, 즉 novel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그저 사실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fiction)를 의미할 때도 있다. 소설이라는 말 자체는 중국 유래이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나 장자(荘子) 외물편(外物篇)에 등장하는 소설은 가담항어(街談巷語·저잣거리에서 얻어들은 이야기), 잔총소어(殘叢小語·특별히 의미를 취할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논설) 등의 의미라고 한다. 이후 중화문명권에서는 패관문학류의 지어낸 이야기를 소설이라 불렀지만 이는 세속적이고 격이 떨어지는 잡설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3] 권모술수와 정치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권모술수(權謀術數)’는 한국에서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묘한 술책으로 풀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희(朱熹)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권모술수를 ‘공명(功名)을 얻기 위한 설’로서 인의(仁義)를 저해하는 개념으로 기술하고 있다. 주자학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 ‘권모술수에 능하다’는 표현은 모욕에 가깝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비책(秘策)의 의미로 통하기도 하고, 세(勢)나 시운(時運)의 불리함을 극복하는 처세술로 취급되기도 한다. 하극상이 난무하던 전국(戰國)시대를 거친 역사 탓인지 이기기 위한 방책, 의지를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2] 야스쿠니 신사와 두 가톨릭 신부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태평양전쟁 종전 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는 국가 신도 철폐에 나선다. 군국주의를 초래한 정신 구조 기저에 '천황국체론'과 그를 종교화한 국가 신도가 있다고 봤기 때문. GHQ는 전쟁 책임이 있는 조직이나 운동이 종교의 가면을 쓰고 존속하는 걸 원치 않았다. GHQ 지침에 따라 히로히토 국왕은 '인간 선언'으로 신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학교를 포함한 모든 공적 기관에서 국가 신도는 금지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게 야스쿠니 신사 처리였다. GHQ는 신사가 군국주의적 국가주의의 정신적 중추라는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정교분리와 종교 자유 보장이란 대원칙이 있어 고심하고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폐사(廢社)되어도 이상할 게 없던 야스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