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누더기 인형

[이규태 코너] 누더기 인형 조선일보 입력 2002.02.08 20:20 대보름날 짚인형인 제웅의 뱃속에 동전을 담아 거리에 던져두면 아이들이 주워감으로써 그해에 닥칠 액(厄)을 파는 세시 민속이 있었다. 곧 없애고 싶은 악의 상징이 제웅이다. 1960년대 초 소록도의 환자지역과 미감아(未感兒) 수용지역 간의 완충지역에 팔다리 찢긴 누더기 인형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버려진 내력은 이렇다. 외국에서 온 구호물자 가운데 흑인인형이 있어 순영이라는 아이 차지가 됐다. 어머니가 그리운 순영이는 이 인형 앞치마에 「어머니」라 쓰고 소꿉놀이에서 어머니로 삼곤 했다. 한데 다른 아이들이 「네 어머니가 깜둥이야」하며 놀려댔다. 그래서 이 인형을, 더불어 수용된 흑인 소녀인 리자 자매에게 던져 주었다. 낯..

이규태 코너 2022.11.28

[이규태 코너] 개팔자

[이규태 코너] 개팔자 조선일보 입력 2002.02.09 19:55 한말 서울 인사동에 안동김씨 세도가인 혜당댁(惠堂宅)과 호판댁(戶判宅)이 솟을대문을 맞대고 있었다. 팔도 350고을 수령들의 뇌물 실은 수레가 줄지어 빨리 바치고 돌아가고자 종들에게 약과며 약식을 바치면 이들은 이를 짐승 우리에 던져버리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팔도에 「혜당댁 나귀는 약식을 잘 자시고 호판댁 큰말은 약과도 아니 잡순다」는 노래가 나돌았었다. 서민들은 먹기는커녕 보지도 못했던 약식과 약과인데 말이다. 그러했듯이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애견 디스비는 애플 파이도 안 먹었다 하여 「앙투아네트의 애견」 하면 주제넘은 행위를 빗대는 말이 되고 있다. 「부엌 강아지」 하면 상팔자를 빗댄 속담이다. 부엌의 가장 따스한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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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정초 風流

[이규태 코너] 정초 風流 조선일보 입력 2002.02.13 20:04 우리나라 세시민속의 과반이 설에서 대보름 사이에 집중돼 있을 만큼 행사도 많았지만 그간에 고답적인 풍류도 비일비재했다. 지금은 기억하는 이도 없지만 그 풍류를 되뇌어 보면 현재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가를 절감하게 된다. 빙화라는 자연예술도 그것 중 하나이다. 정월 인일(人日)에 세숫대야만한 나무 그릇에 물을 담는다. 그 복판에 질그릇 하나 엎어놓고 방문 밖에 놓아두고 잠든다. 자고 나면 그 나무대야에는 다양한 얼음꽃이 핀다. 수목·화초·금수(禽獸)·전각(殿閣)·차마(車馬) 같기도 한 이 빙화를 들고 사랑에 달려가 어느 누구의 빙화가 품수가 높은가를 겨룬다. 그 그림이 십장생(十長生)이거나 송죽매란(松竹梅蘭)이면 품수가 높아진다. 선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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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서양 업둥이

[이규태 코너] 서양 업둥이 조선일보 입력 2002.02.14 19:34 갓난 아기를 버리는 기아문화도 한국이 서양과 비교하면 인간적이다. 남의 집앞에 버리는 아기를 업둥이라고 한 것부터가 그렇다. 업동이 전화되어 업둥이가 된 것인데, 업이란 전생의 소행으로 현세에 받는 응보로 그 아기가 문전에 버려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 업보라는 필연으로 받아들였던 것 자체가 그렇다. 더욱이 그 집안에 재산을 늘려주고 지키는 사람이나 짐승을 업이라 했으니 업둥이는 복과 재물을 불러오는 아기라는 인식도 깔려 있었다. 문전에 와 있는 그 업둥이를 어떻게 외면하고 버릴 수 있겠는가. 아들이면 자손이 귀한 집 찾아 버렸고, 딸이면 무당집 문전에 버렸다. 그렇게 길러져 가계를 잇고 무당을 세습했던 것이다. 전통무가에 「버리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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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定刊法 개정안

[이규태 코너] 定刊法 개정안 조선일보 입력 2002.02.15 20:09 전체주의 독재는 그가 하는 일을 그르다 하고 비판하는 일을 제거하는 것이 그 속성이다. 진시황이 유아독존이 되어 여산릉과 아방궁을 짓는 데 70여만명의 죄수를 동원하고 불로불사의 약을 구하고자 국고를 탕진하자 유생들이 비판하고 나섰고, 그 정치의 앞잡이인 이사는 금서령을 내려 모든 책을 거두고 벽에 바른 책종이까지 떼어 불살라버렸다. 그 이듬해에는 진시황이 자신을 비방한 460여명의 유학자들을 잡아다가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 시켰다. 이 분서갱유는 사상 최초의 언론탄압이었으며 전체주의를 하려면 언론탄압이 필지라는 상징적 사건으로 입에 오르내렸던 분서갱유이다. 식민정책을 진행 중이던 한말 일본통감부가 강제병탐 이전부터 준비한 것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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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색동 考

[이규태 코너] 색동 考 조선일보 입력 2002.02.17 19:41 솔트레이크시티의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선수단이 오색 색동옷을 어깨에 두르고 입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색동은 한국을 대변하는 상징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 된다. 색동옷 하면 명절이나 명일에 아기들이 입는 때때옷을 연상할 것이다. 시집 가는 날 신부가 입는 장삼 소매도 색동임을 감안할 때 경사스러운 날에 입는 옷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볼 수 있다. 호사다마라, 경사스러운 날이나 일에는 액이나 마가 끼게 마련이며, 이를 막고 쫓는 수단으로 색동옷을 입혔음직 하다. 무당들이 신을 내리는 강신굿을 할 때 색동옷을 입었던 것도 이 마와 액이라는 어두운 신령에 대치시키는 밝은 신령을 부르는 색동임을 알수 있게 한다. 히말라야 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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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都羅山

[이규태 코너] 都羅山 조선일보 입력 2002.02.18 20:12 끊어진 임진강 철교의 남쪽 수풀 속에 철마 한 마리가 강 건너 도라산을 바라보고 쓰러져 있었다. 노산 이은상은 이 철마를 보고 이렇게 읊었다. 「철마야 너 왜 입을 다물고 /잡초 속에 쓰러져 누웠느냐 /벌떡 일어나 우렁차게 울어 /이 적막한 하늘을 뒤흔들어라 /지금 곧 북으로 북으로 /냅다 한번 달리자꾸나.」 그 철마가 52년 만에 벌떡 일어나 민족의 염원을 싣고 우렁차게 울긴 했는데 겨우 철교를 건너 맞바라보이는 도라산 기슭에 멎고야 말았다. 임진강 건너기가 얼마나 힘겨운가를 도라산은 알고 있다. 임진년 왜란으로 졸지에 피란길 떠났던 선조께서 좌우의 신하들이 도망친 후 굶주린 채 폭우 쏟아지는 밤 이 임진강을 건너야 했다. 내의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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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八字訣

[이규태 코너] 八字訣 조선일보 입력 2002.02.19 19:48 설날 세배를 하면 세뱃돈이나 주고 덕담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학식이 있는 집안 어른이나 서당 훈장에게 세배를 하고 나면 봉투 하나씩을 건네주는데 촌지 봉투가 아니다. 집에 갖고 돌아와 무릎 꿇고 정중히 봉투를 뜯어보면 붓글씨가 크게 쓰인 종이가 나온다. 글 내용은 그 아이에게 교훈이 되는 글이게 마련이다. 이를 테면 기가 사나워 매사에 덤비는 아이라면 「소걸음으로 가라(牛步行)」는 삼자결(三字訣)이고 인내심이 부족하여 공부나 일을 못 마치는 아이에게는 「마음 위에 칼을 얹어라(心上置刀)」라는 사자결(四字訣)이다. 참을 인(忍)자를 풀어보면 마음 심(心) 위에 칼(刀)이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개화기 중학교들에 악자결(惡字訣)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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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돼지꿈

[이규태 코너] 돼지꿈 조선일보 입력 2002.02.20 19:57 작년 1년 동안 1억원 이상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 네 사람에 한 사람꼴로 돼지 꿈을 꾼 것으로 한 은행의 조사에서 밝혀졌다. 물론 돼지 꿈을 꾸어서 복권에 당첨된 것이 아니라 돼지 꿈을 꾸면 재수가 생긴다는 머릿속의 통념이 꿈 속에 돼지를 몰아넣었을 뿐일 게다. 돼지에게 신통력이 있어 길(吉)한 땅이나 길한 사람을 점지해준다는 문헌 기록은 비일비재하다. 고구려 유리왕은 제사에 쓰고자 기르는 돼지 교시(郊豕)가 도망쳐 뒤쫓아 갔다가 위나암(慰那巖)이라는 도읍터를 점지받고 천도했다. 고려 태조의 할아버지 작제건이 용왕을 구한 대가로 얻은 돼지를 따라가 도사리고 앉은 곳에 궁궐터를 정했는데 바로 그곳이 개성 만월대(滿月臺)다. 희랍신화에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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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라산 觀光財

[이규태 코너] 도라산 觀光財 조선일보 입력 2002.02.21 19:26 부시 대통령의 현지 연설로 도라산이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미 개성이 눈 안에 담기는 전망대와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제3땅굴 그리고 판문점이라는 분단 관광재들에 이번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철도 침목이 호재로 더해진 셈이다. 분단 분계선에 쳐져 있던 녹슨 철조망을 잘라 관광상품으로까지 개발할 참이라 한다. 이처럼 분단 관광재 위주로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역사 관광재 개발을 더하면 금상첨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도라산 역사 관광재 1호는 한양·개성·평양을 이었던 봉수대(烽燧臺)의 원형 복원이다. 민족 염원의 봉화를 올릴 수 있어 분단 최북단의 관광재로 안성맞춤이다. 봉화를 못 올리게 하면 풍선이나 종이학이라도 날림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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