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어린이 경제과외

조선일보 | 오피니언 입력 2002.01.17 20:36:10 어릴 적 장에 갔다오는 할아버지에게 엿 사먹고자 돈 3전만 달라고 했다가 얻지도 못 했을 뿐더러 호통만 맞았던 기억이 난다. 돈 한푼ㅡ하면 타산되지 않은 돈이지만 3전 5전ㅡ하면 타산된 돈이요, 철도 들지 않은 놈이 일찍부터 타산한다는 것에 옛 어른들은 교육적인 거부감을 가졌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서당에서 훈장이 이런 문제를 자주 냈던 기억이 난다. 두 아이가 노는데 동네 어른이 떡 세 개를 나누어 먹으라며 주고 갔다. 어떻게 나눠 먹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하나씩 떡을 나누어 갖고 나머지 하나는 둘이서 똑같이 나눠 먹는다고 했을 것이다. 산술로는 맞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나머지 하나는 돌부처에게 바친다 해야 맞는 것으로 쳤다. 곧..

이규태 코너 2022.11.29

[이규태 코너] 은퇴자 협회

[이규태 코너] 은퇴자 협회 조선일보 입력 2002.01.18 20:21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해피 버스데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되고 있지만 단 한 가지 은퇴를 축하하는 '해피 리타이어먼트'는 우리나라에서 통하지 못하고 있다. 카드 파는 가게에 들어가보아도 '해피 리타이어먼트'의 카드는 살 수가 없다. 만약 그런 카드가 있어 사서 보냈다면 약올린다 해서 평생 원한을 살 것이다. 하지만 미국 카드 가게에 들어가면 은퇴를 축하하는 카드가 다양하기 그지없다. 그 인쇄된 문구를 몇 가지 옮겨보면 이렇다. 「은퇴한 나날은 행복한 나날/ 신나는 새 경치를 바라보며/ 많은 새로운 일을 하게 됐으니/ 당신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은퇴하는 마당은/ 미래를 바라보고/ 그대의 전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

이규태 코너 2022.11.29

[이규태 코너] ‘평화 의식’

[이규태 코너] ‘평화 의식’ 조선일보 입력 2002.01.20 19:18 이스라엘 사해(死海)변에 로마에 저항했던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가 있다. 예루살렘을 함락당하자 유대인들은 이 요새에 포위당한 채 7년간을 버티다가 노예가 되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960명이 집단자결을 감행한 비극의 현장이다. 온 세계로 이산한 유대인들이 순례하는 성지가 돼있으며 뱀길(蛇道)로 불리는 좁다란 외길을 한 시간 남짓 오르면 요새에 이른다. 이곳을 순례하는 유대인들은 예외없이 마사다의 흙을 마련해온 병에 담아가게 마련인데 비록 이산해 살고 있더라도 이 집단 자결로 과시한 유대인의 구심력(求心力)을 그들의 피가 스민 그 흙에서 얻고자 함일 것이다. 그래선지 이산해 살고 있으면서 과시되는 강력한 유대인의 단결력을 마사다 정신..

이규태 코너 2022.11.29

[이규태 코너] 백제성(白帝城)

[이규태 코너] 백제성(白帝城) 조선일보 입력 2002.01.21 20:26 세상 물정 모른다는 뜻의 「야랑자대(夜郞自大)」라는 말이 있다. 장강(양자강·楊子江)의 수원인 사천성 깊은 산골에 야랑(夜郞)이라는 미개국이 있었는데 한(漢)나라 사신이 처음 이 나라에 들렀을 때 「한나라가 우리나라만큼 크냐」고 물었다 해서 생긴 말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안녹산의 난에 연루되어 이 야랑국으로 귀양가면서 삼협(三峽)을 역류하면서 「사흘 아침 사흘 밤이 걸려/수염이 희어졌다」고 읊었는데 백제성에 당도하자 은사(恩赦)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돌려 「만겹 산들을 뚫고/하루아침에 삼협 천리 물길을 빠져나왔다」고 읊었다. 장강을 가로막는 삼협 서쪽 입구인 백제성(白帝城)은 중국의 서반(西半) 산간부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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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용간란 할머니

[이규태 코너] 용간란 할머니 조선일보 입력 2002.01.22 19:45 옛 선비나 부호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책이 엊그제 본지에 소개되었다. 12대 만석꾼 9대 진사를 배출한 경주 최부잣집의 철학은 만석 이상의 재물은 못사는 사람에게 베풀고 백리 주변에 굶는 사람을 없게 하며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않음으로써 부(富)와 벼슬과 권력 때문에 척 짓지 말고 살라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한국사상 유일무이하게 부와 덕망과 이름을 10대 이상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에는 서양사회에 있어 '귀족신분의 의무'란 뜻이었으나 한국의 전통 상류사회에도 이처럼 정신적 의무가 주어져 있었고 서민층의 하류사회에도 나름대로의 정신적 기틀이 잡혀 있었다. 옛날 어머니들은 시집 간 딸이 사위에게 얻어맞고..

이규태 코너 2022.11.29

[이규태 코너] 즉석 피임약

[이규태 코너] 즉석 피임약 조선일보 입력 2002.01.23 20:25 성관계 후 사흘 안에 두 차례 먹으면 임신을 피할 수 있는 피임약 「노래보정」이 발매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문란해져 있는 성의식을 타락시킨다 하여 그 발매를 두고 많은 저항을 받아왔던 즉석 피임약이다. 성을 둔 종족보존의 회임(懷妊)과 환락도구로서의 피임(避妊)은 역사가 생긴 이래 반비례의 가치관으로 상충해왔으며, 이제 명분은 전자를 유지하되 실속은 후자가 판칠 수 있는 멍석을 깔아놓은 셈이 됐다. 피임의 역사는 회임의 역사와 더불어 했으며, 전자는 공개적인데 후자는 은폐적이었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피임의 원시적 방법으로 질 속에 회임을 방해하는 물질을 미리 넣어두었다. 주로 해초를 썼고, 희랍·로마시대부터 해면(海綿)을 썼..

이규태 코너 2022.11.28

[이규태 코너] 人情 담보대출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人情 담보대출 입력 2002.01.24 20:34:18 혈연의 농도를 촌수로 나타내는데 삼촌(三寸)까지만 있고 이촌(二寸) 일촌(一寸)은 없다. 따질 필요가 없을 만큼 피의 결속농도가 진하다 해서 가리지 않을 뿐이지 이촌은 형제 간이요 부모와 자녀 간이 일촌이다. 반촌(半寸)이란 말도 쓰는데 일촌은 자녀측에서 본 부모와의 인정 밀도요,반촌은 부모측에서 본자녀와의 인정 밀도다. 곧 이 세상에서 가장 인정이 짙은 관계가 부모와 자녀 간인 것이다. 그러했기로 신은 아브라함의 신심을 시험하고자 늘그막에 낳은 아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의 영웅 에프타는 개선하는 그를 반겨 맨 처음 달려오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조건으로 지배자가 될 것을 신탁(神託)받는다. 그의 외동딸이 맨..

이규태 코너 2022.11.28

[이규태 코너] 도덕 은행

[이규태 코너] 도덕 은행 조선일보 입력 2002.01.25 20:43 중국 장사(長沙) 인근 마을에서 시작된 도덕은행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도덕은행이란 남이 불행을 당했을 때 봉사나 금품으로 돕고 이를 은행에 돈 맡기듯 저축해놓고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자신의 불행에 대비, 그 저축 선행을 찾아쓰는 제도다. 무형의 봉사를 저축할 때에는 그 봉사 현장의 이장이 봉사 시간을 확인하는 증명서를 떼어 주고 이를 도덕은행에 맡기면 1시간을 5위안으로 환산 통장에 올린다. 19세기에 중국에서 오래 살았던 아더 스미스의 「중국인 성정론(長沙論)」에 이런 목격담이 적혀 있다.「말을 타고 가던 한 부인이 낙마를 하여 땅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데 이를 보고도 마부는 모른 체하고 말을 몰..

이규태 코너 2022.11.28

[이규태 코너] 실버 시터

[이규태 코너] 실버 시터 조선일보 입력 2002.01.27 18:56 전통 사회에서 효자의 조건으로 '노모에게는 책비, 노부에게는 입담꾼ㅡ'이란 말이 있었다. 늙으신 어머니에게는 책 읽어드리는 계집종을 드려 이야기책을 읽어드리고 늙으신 아버님에게는 떠돌아다니며 우스개 이야기를 해서 웃기는 입담꾼을 드려 웃기게 해드림으로써 효도한다는 뜻이다. 외로운 노인들 말동무해주고 산책 같이하며 고독을 덜어주는 신종 직업 실버 시터의 전통적 존재형태랄 수가 있다. 책비는 부름을 받고 가 누워 있는 마님 머리맡에서 이야기 책을 읽어드리는데 그 격앙과 어조로 울리고 웃기기를 마음대로 했다. 대가는 이야기 듣는 노모를 얼마나 많이 울려서 눈물을 흘리게 했는가로 값이 오르내렸는데 수건 하나를 적셨을 때 한 짠보, 석 장 울..

이규태 코너 2022.11.28

[이규태 코너] 불로장수약

[이규태 코너] 불로장수약 조선일보 입력 2002.01.29 13:40 한국인 과학자가 주도하는 미국의 한 연구팀이 빈혈 치료제의 영향을 실험하던 중 우연히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체 구조와 유사한 점이 많은 파리에다 실험해보았더니 무려 50%나 수명이 연장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 여산릉에 묻힌 진시황이 몸을 일으켰을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진시황은 삼신산에 있다는 불사약을 구하러 서시를 파견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연(燕)나 라 술사인 노생(盧生)을 갈석산으로 손수 찾아가 선문고(羨門高)라는 신선이 갖고 있다는 불로불사약을 구해오도록 시켰었다. 한무제(漢武帝)가 사냥을 갔을 때 이상한 달무리같은 원광이 떠있는 것을 보고 찾아갔더니 백발 홍안의 노인이 걷고 있었다. 나이가 13..

이규태 코너 2022.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