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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황혼 이혼

[이규태코너] 황혼 이혼 조선일보 입력 2004.05.02 18:59 | 수정 2004.05.02 19:04 영국의 지성 해머튼의 ‘지적 생활을 위하여’에 보면 2차대전 전만 해도 프랑스 시골에서는 규수에 대한 소문만을 듣고 결혼상대로 정해버린다고 했다. 그 규수가 꼭 보고 싶으면 교회의식의 행렬 때 2층집에 숨어서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숨어서 본 사실을 상대방이 알면 혼담은 깨지게 돼있을 정도로 내외가 심했다. 근 반세기 동안 프랑스에서 살아온 해머튼의 관찰로 연애결혼한 쌍은 행복한 체 내색을 하지만, 내색 없이 행복한 것이 서로 보지도 않고 결혼한 쌍이라 했다. 그 이유로서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인지라 결혼은 하늘이 정해준 천정연분이라는 의식이 파경의 위기를 감내하는 힘을 더해준 때문이라 했다.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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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이라크 포로 학대

[이규태 코너] 이라크 포로 학대 조선일보 입력 2004.05.03 18:01 십자군전쟁의 이슬람측 영웅 살라딘을 모르는 유럽사람은 없다. 패자인 기독교도에 대한 예상을 뒤엎는 인도적 대접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함락 직전 농성 중이던 십자군측에서 밀사를 살라딘 휘하에 보내어 “무혈(無血)항복할 수 있게 하라. 그러지 않으면 이슬람 포로 5000명을 죽이고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통고하자 살라딘은 전자를 선택하고 포로와 부녀자들에게 인도적 대우로 유럽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포로가 된 기독교국 왕을 자기 곁에 앉혀 사막에서 황금만큼 귀한 얼음을 찬물에 타 권하기도 했다. 복수의 종교로 알아왔던 유럽사람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준 살라딘이었다. 한데 지금 이라크를 지배하고 있는 미·영국군은 이슬람교도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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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황금오줌 누는 돼지

[이규태 코너] 황금오줌 누는 돼지 조선일보 입력 2004.05.04 17:07 중국 역사상 제일 부자로 진(晋)나라의 석숭(石崇)과 왕개(王愷)를 친다. 이 두 부호가 사치를 겨루는데, 석숭이 비단옷 입혀 금싸라기와 제호탕만을 먹여 기른 통닭구이를 즐긴다니까, 왕개는 첫 아기를 낳은 미모의 여인들 젖만을 먹여 기른 돼지고기 구이를 즐긴다고 응수했다. 동물학자 슈테그만은 독일 북부지방에서 어머니들은 불어난 젖을 돼지에게 먹여 기르고, 이렇게 기른 돼지는 중세 봉건주에게 바쳐진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상전이나 원님에게 바친 화전(火田)돼지라는 게 있었다. 화전 농가들에서는 불을 질러 나무를 태운 자리에 주둥이가 길죽한 특종돼지를 놓아 먹이게 마련인데, 나무뿌리만을 캐어 먹고 자란다. 이 화전돼지 고기는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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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떡과 한국인

[이규태코너] 떡과 한국인 조선일보 입력 2004.05.05 18:18 법도 있는 집에 시집가려면 음식 백팔십 수를 익혀야 했다. 장 36가지, 김치 36가지, 젓갈 36가지, 죽 36가지, 그리고 떡 36가지, 도합 180가지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 해서 백팔십 수다. 그래선지 계집아이는 어릴적부터 그 음식가지 이름을 타령조로 외우면서부터 철이 든다. 떡타령을 들어보자.‘왔더니 가래떡/울려 놓고 웃기떡/정들라 두텁떡/수절과부 정절떡/색시 속살 백설기/오이 서리 기자떡/주눅 드나 오그랑떡/초생달이 달떡이지’하는 식이다. 떡문화가 발달한 증거로 1년 열두달 명절마다 떡을 달리 빚어먹었다. ‘정월 보름 달떡이요/2월 한식에는 송편이며/삼월삼짇 쑥떡이로다/사월 팔일 느티떡/오월 단오에는 수리치떡/유월 유두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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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전주 비빔밥

[이규태 코너] 전주 비빔밥 조선일보 입력 2004.05.06 18:06 전주의 5월 축제인 풍남제에서 토산 식품인 전주비빔밥 2004명분을 비벼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보시를 했다. 토산 식품의 과시일 뿐 아니라 기네스북에 올림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인스턴트 식품으로 온 세계에 선을 보인다는 저의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세상 사람들의 식사문화는 서양사람들처럼 수프를 먹어치우면 야채가 나오고 야채를 먹어치우면 메인 디시 식으로 차례대로 먹어치우는 시간계열형(時間系列型)과 한국사람들처럼 먹기로 준비된 모든 주·부식을 한 밥상에 차려내는 공간전개형(空間展開型)으로 대별된다. 밥 먹는 과정이나 식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켜 단시간에 간편히 배를 채우는 데 고도로 발달된 것이 공간전개형이요, 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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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어머니 지위

[이규태코너] 어머니 지위 조선일보 입력 2004.05.07 18:14 오나가나 부인들 틈에 인기가 있고, 매력적인 사나이가 있다. 잘 생긴 것도, 지체가 높은 것도, 또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 매력의 원천이 궁금하여 그의 집에 들러보았다. 방에는 평범한 여인의 초상화 하나가 걸렸을 뿐이다. 그 매력의 사나이는 “어머니의 초상이다.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모파상의 단편소설 ‘초상화’는 이렇게 끝나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을 갈망하면서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므로 짙어진 모성애가 초상화로부터 전위되어 매력의 원천이 됐다는 줄거리다. 모성애는 죽어서도 자식들 성행을 좌우하리만큼 강력한 것이다. 미술학도 시절의 앙드레 마르로는 어머니를 그린 명화 10여점을 놓고 거기에 표출된 모성애의 농도를 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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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황사 경제

[이규태 코너] 황사 경제 조선일보 입력 2004.05.09 18:27 중국 양쯔강 연안에는 200수십년 전부터 서양사람들이 상륙, 토지를 사고 빌딩과 공장을 지었으며 은행을 들여오고 철도를 놓고 항만을 구축했다. 이 같은 침투를 두고 중국사람들은 주권이나 체면이 손상당했다든지 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단 깔아놓은 철도를 뜯어갈 수 없을 것이고 세워놓은 공장을 업고 나갈 수 없다는 타산의 공감대에서 우러나온 무관심이다. 구미 열강은 앞다투어 내륙으로 침투해 들었다. 이 투자의 경제 사이클이 생산으로 이어지면서 국내외 정세와 중국인의 심성이 야합, 자의·타의적으로 서양사람들이 버티어내기 어렵게 했다. 무슨 파괴나 반항운동을 벌이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견디어 낼 수 없게 되고 창사(長沙)까지 파고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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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相生論

[이규태코너] 相生論 조선일보 입력 2004.05.10 18:41 미국 케이바브 자연공원에서 사슴을 잡아먹는 늑대를 소탕한 일이 있다. 보호받게 된 사슴이 늘어나 10만마리에 이르자 식량난과 스트레스로 사슴이 멸종해가고 뿌리까지 파먹힌 초목마저 고목화됐다. 자연생태계에서 사슴과 늑대는 잡아먹고 먹히는 OX관계가 아니라 상생(相生)을 유지하는 △관계임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이다. 아프리카 자연공원에 가보면 사자가 졸고 있는 주변에 사슴과 얼룩말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잡아먹고 먹히는 상극(相剋) 관계를 공존시키는 것을 보고 공원관리인에게 자주 항의해온다고 들었다. 그 관리인의 설명을 들어보자. 배가 고파진 사자는 전력 질주하여 사슴이나 얼룩말 한 마리 잡아 영양 좋은 내장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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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영통사(靈通寺)

[이규태코너] 영통사(靈通寺) 조선일보 입력 2004.05.11 18:45 조선조 화가 강세황(姜世晃)의 그림에 ‘영통사동구(靈通寺洞口)’가 있다. 화상(畵想)을 반추상화한 현대화만 같은 이 그림은 겹싸인 거암틈으로 실낱같은 산길 하나가 나있고 나귀 탄 사람하나가 애써 찾아야 보일 만큼 거암과 대조되어 그려져 있다. 자연계와 초자연계, 속계(俗界)와 영계(靈界)의 경계가 그 길끝에 있는 것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영이 통한다하여 영통사려니ㅡ하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고려 태조의 조상이 살았다는 개성 오관산(五冠山) 아래 자리잡은 이 절을 두고 이규보(李奎報)가 송도에서 가장 영험하게 아름다운 경관이라했고 변계량(卞季良)이 이곳에 와보니 구름의 뿌리가 바로 이 협곡임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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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느티나무

[이규태코너] 느티나무 조선일보 입력 2004.05.12 17:23 요즈음 솜을 날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개량나무들을 느티나무로 바꿔심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 기후풍토에서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병들지 않으며, 가장 장수하는 나무가 느티나무요, 보호받고 있는 1만4000그루의 보호수 가운데 절반인 7000그루가 느티나무이며, 그 중 1000년 이상 되는 노거수가 25그루나 된다. 한국 사람의 체형이나 체질, 그리고 사고방식이 한국풍토와 밀접하듯이 한국풍토에 적응한 느티나무는 한국인이다. 다빈치의 명화 「수태고지(受胎告知)」만 보더라도 배경의 나무들이 마치 자로 재 그려놓은 것처럼 좌우가 대칭이 돼있으며, 사실 유럽 나무들이 그렇게 균제미가 있다. 레스피기가 음악으로 그 수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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