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 녹차 즐기는 뉴요커

[이규태코너] 녹차 즐기는 뉴요커 조선일보 입력 2004.05.26 18:18 지금 뉴욕에서는 웰빙문화의 일환으로 녹차 붐이 일고 있어, 커피 소비량을 위협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람들이 들끓는 카페를 들여다보면 녹찻집이게 마련이요, 동양계 음식점들도 요리 메뉴보다 차로 수입을 올리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편리만을 추구해 과속하는 미국 문명에 대한 염증이 미국 청장년층으로 하여금 이스트 터닝, 곧 동양회귀(東洋回歸)를 하게 해왔고, 그 회귀 정도를 동양차인 녹차 기호가 나타내준 것일 게다. 이미 녹차는 그 떫은 맛이 선(禪) 경지의 맛으로 서양사람들에게 알려지기도 했지만, 국내외 학계에서 많은 질병의 예방 음료로도 권위 있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근간에 미국심장학회 학술지에 차를 마시는 사람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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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잔디 안식일

[이규태코너] 잔디 안식일 조선일보 입력 2004.05.27 17:35 청산리 전투 때 독립군 지대장이었던 이범석(李範奭) 장군이 전투 당시를 회고하던 도중 갑자기 당시 불렀다던 군가를 불렀던 일이 생각난다.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질경이여라/ 짓누르고 짓이길수록 살아나는 뗏장이어라」 하는, 밟아도 아리랑이었다. 일제 때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철로공사에 징용되었던 한국인이 혹사를 감내하면서 불렀다던 노래도 질경이와 뗏장의 강인한 생존력에서 용기를 얻는 밟아도 아리랑이었다. 질경이는 수레가 밟고 다니는 길 복판에 자생하여 바퀴에 짓눌려도 잘도 살아난다 하여 차전자(車前子)로 불린 들풀이고, 뗏장은 옮겨 심기 위해 흙에 엉킨 뿌리째 떼어낸 잔디로, 밟아도 짓이겨도 살아나는 민족 저력의 상징으로 거론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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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슬픔이 마렵다

[이규태코너] 슬픔이 마렵다 조선일보 입력 2004.05.28 18:49 지금은 쓰지 않지만 옛 우리 조상들 대변을 대마(大馬), 소변을 소마(小馬)라 했다. 그래서 대소변을 본다는 것을 말(馬) 본다 했다는 것이 선조 때 판서 이기의 ‘송와잡설(松窩雜說)’에 나온다. 조선조의 일본 외교사절인 조선 통신사의 한 사신이 사관에 들어 변기를 들여놓는 것을 보고 그것이 뭣이냐고 물었던 것 같다. 일본말로 변기를 뜻하는 ‘오마루’라 하자 마루를 ‘말’로 듣고 한국말과 일본말이 같은 것에 놀라는 대목이 사신 기록에 나온다. 중국에서 휴대용 변기 곧 요강을 수자(獸子)라 하는데 변을 보기 편리하게끔 변기 모습을 짐승 허리처럼 만든 데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이기가 귀빈(貴賓)의 집에서 쓰는 변기를 보았는데 복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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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앨리스와 순이

[이규태 코너] 앨리스와 순이 조선일보 입력 2004.05.30 18:48 할리우드 명남우(男優)들이 평범한 한국여성과의 사랑의 흡인권에 줄줄이 빨려들고 있다. 이름마저도 한국적인 순이와 우디 앨런과의 사랑을 필두로 박나경과 웨슬리 스나입스 그리고 지금 화제로 오르내리고 있는 앨리스 김과 니컬러스 케이지가 그 흡인 역학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 세 한국여성의 공통점으로 인기직업과는 거리가 먼―용모나 학벌이나 신분 그리고 끼와 거리가 있는―평범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평범성에 미국의 선택받은 안정 인기인들을 매혹시키는 정신적 자원이 잠재돼 있다는 것이 된다. 그것이 뭣일까. 미국에서 남편 대상으로 선호되고 있는 것이 요트 경조(競漕)인 레가타 선수다. 삐걱거리는 결혼생활을 무난히 꾸려가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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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小兄이라는 벼슬

[이규태코너] 小兄이라는 벼슬 조선일보 입력 2004.05.31 18:36 | 수정 2004.05.31 22:42 중국 지안(集安)의 초기 고구려 왕궁터에서 발굴된 소형(小兄)이라 새겨진 기왓장이 처음으로 공개 보도되었다. 각종 호칭을 고증한 중국 고문헌 ‘칭위록(稱謂錄)’에 보면 ‘고구려 땅에서 장관을 형(兄)이라 부른다’ 했으니 형은 고구려 초기의 관직이름으로, 지금의 장관급인 대형(大兄)에 버금가는 차관급 관직명이다. 그 차관이 근무하는 왕궁 내의 건물 지붕에 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왓장일 것이다. 한자의 뿌리를 풀이해 놓은 ‘설문(說文)’에 형(兄)은 신명을 받들어 하달하는 사람으로, 신바람이 든 황홀 상태를 뜻하는 열(悅) 예(兌) 탈(脫) 등 한자에 형(兄)자가 들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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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소황제 성인병

[이규태 코너] 소황제 성인병 조선일보 입력 2004.06.01 17:06 | 수정 2004.06.01 17:09 80년대 중국 안휘성에서 있었던 일이다. 소학교 1학년 교실 수학시간에 채왕이라는 어린이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애지중지 제재라고는 받아본 적 없이 자기중심으로 자라온 소황제라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선생이 가서 말려도 듣지 않자 들고 있던 책으로 머리를 몇 번 내려쳤다. 소황제는 그길로 울며 집에 돌아가 일러바쳤고 아버지는 곡괭이를 들고 교실로 쳐들어가 흑판에 글 쓰고 있는 선생을 내려쳤고 쓰러지자 뒤따라간 어머니가 짓밟았으며 선생은 그 길로 죽어갔다. 외둥인 소황제를 두고 친가 외가 조부모 넷과 부모 둘이서 응석받이를 하여 심성이 비뚤어졌다 하여 4-2-1병(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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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머리 좋아지는 밥

[이규태코너] 머리 좋아지는 밥 조선일보 입력 2004.06.02 17:07 | 수정 2004.06.02 17:50 일제 때 자랐던 노인세대는 쌀밥을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고정관념의 노예인 데 예외가 없다. 태부족인 쌀을 먹지 못하게 하는 일제의 교활한 영양학설에 속은 것이다. 밥과 빵을 비교해 쌀에는 비타민B1이 0.10㎎인데 밀가루에는 0.15㎎으로 0.05㎎이 적다는 것이 머리를 나쁘게 하는 영양결핍이라는 것이다. 쌀을 먹지 못하게 하고자 억지로 찾아낸 논리다. 이 미세한 영양상의 차이도 쌀을 지속적으로 먹었을 때 생기는 것으로 아무리 가난하다 한들 밴댕이 젓갈이나 새우젓 한 마리 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이 보충되는 영양차다. 더욱이 1.3㎎의 하루 한 사람 소요량은 1년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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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19세 성인

[이규태 코너] 19세 성인 조선일보 입력 2004.06.03 18:51 장가들 수 있는 나이에 이르러 상투를 틀고 관을 씌우는 관례(冠禮)를 치르고야 성인이 됐었다. ‘경국대전’에 그 나이가 남 15세, 여 14세로 정해져 있지만 예외가 많았다. 뱃속 아이끼리 정혼하는 지복(指腹) 성년도 있고 기저귀 찬 아기끼리 정혼하는 강보(襁褓) 성년도 있으며 양가 부모 중 50세를 넘거나 병들면 12세로 성년을 낮출 수 있었으며 노동력이 아쉬우면 10세 이전에 20세 신부와 결혼하는 등 예외가 많았다. 역사시대의 성년 나이는 성적 육체적 성숙과는 아랑곳없이 가족적 경제적 이유로 기복이 컸다. 눈여겨 되돌아볼 것은 육체적 성숙이 아니라 정신적 성숙을 보장하는 성년문화가 발달했었다는 점이다. 이미 삼한시대의 예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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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붕어 農法

[이규태코너] 붕어 農法 조선일보 입력 2004.06.04 18:40 막걸리가 우리나라 술이요, 짚신이 우리나라 신발이듯이 붕어는 우리나라 물고기다. 천어(川魚) 가운데 한국인과 가장 친근한 것이 붕어인 데는 이유가 있다. 종류도 많고 잘 자라고 맛도 좋다. 크기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 물고기도 붕어뿐일 것이다. 2치 이내 크기면 호박씨 붕어요, 3치 이내면 팥잎붕어, 한 뼘 크기면 떡붕어 또는 뼘치라 부르고 폭이 갸름하고 길면 희나리배기라 했다. 명산지마다 맛도 다르고 조리법도 달랐다. 18세기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은 우리나라의 붕어 명산지를 꼽았는데 제천 의림지, 전주 덕진못, 평양 대동강, 의주 압록강, 경흥 적지가 그것이다. 덕진 붕어는 조림에 좋고 대동강 붕어는 찜이 일품이며 압록강 붕어는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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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連理枝

[이규태코너] 連理枝 조선일보 입력 2004.06.06 18:59 충청도 괴산 청전면 선유동구에 100여년된 두 노송의 가지가 맞붙는 연지(連枝) 현상이 일어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예부터 두 나무가 연지하면 상서로운 조짐으로 그 조짐을 시세에 맞추어 해석하게 마련이다. 이 선유동구의 소나무 연지를 두고 새 국회가 개원한 것과 때를 같이 한 데다 전에 없이 보수 진보가 상극(相剋)하는 정치판토가 예상되는지라 상생의 희망을 그 연리지에 기대해 보는 것이다. 이 연리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 나물왕 7년으로 박혁거세를 모신 시조묘 앞뜰에 있는 나무들 사이에 일어났었다. 그 이래로 자주 일어났고 일어났을 때마다 그 연지의 조짐을 풀이하고 있다. 연지가 일어난 마을이나 고을에 여막살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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