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참수(斬首)

[이규태 코너] 참수(斬首) 조선일보 입력 2004.05.14 17:56 | 수정 2004.05.14 17:58 대만이나 보르네오 뉴기니 등지에 사람 목을 자르는 종족이 있는데, 이 자른 목의 두개골을 집안에 모셔 두지 않으면 악마와 병액이 닥친다 하여 소중히 떠받친다. 게르만 민족들은 참수로 희생시켜 그 피를 땅에 뿌려야 풍년이 드는 것으로 알았다. 스웨덴에서는 기근이 들면 임금을 참수로 희생하여 그 피로 제단을 물들였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그레트헨이 참수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단두대에 가까울수록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밀어닥쳤다 했는데 참수에서 흐르는 피를 얻기 위해서다. 간질병 등 불치병에 좋다 하여 집행인은 참수에서 흐르는 피를 컵으로 받거나 수건에 묻혀 팔아 수입을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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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휴대폰 증후군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휴대폰 증후군 입력 2004.05.16 18:46:01 | 수정 2004.05.16 18:46:01 머리에 몇가닥 물을 들인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어머니가 나무랐던 그날 밤 일이다. 친구들이 놀러 왔다면서 과일 좀 갖다 달라기에 들고 들어갔더니 머리가닥을 염색한 너댓명의 또래가 와 있었다는 투고를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말대꾸 대신 시위를 하는 휴대폰세대다. 부모나 선생은 미숙인간들을 올바르게 자라나게 하는 종적(縱的) 기능이라면 휴대폰은 미숙인간끼리 연대하여 종적 기능에 저항하는 횡적(橫的) 기능이다. 휴대폰의 청소년층 보급이 우리나라보다 덜한 일본에서 히끼고모리족(族), 곧 방에 처박혀 가족이나 이웃과 담을 쌓고 사는 자폐(自閉) 증상의 방콕족 증가와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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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상원사 가는길

[이규태코너] 상원사 가는길 조선일보 입력 2004.05.17 18:48 | 수정 2004.05.17 19:05 6·25전쟁 때 작전지역이던 오대산 상원사에 일단의 병력이 출동했다. 이미 통고한 사찰 철거령을 집행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상원사 방장인 고승(高僧) 방한암(方漢巖) 스님은 문짝과 툇마루 판을 뜯어 절 마당 복판에 높이 쌓아올렸다. 그 위에 올라앉은 스님은 방화(放火)를 위해 횃불을 손과 손에 든 소대병력에 에워싸여 있었다. 스님은 말했다. 나를 태워 죽이기 전에는 절간에 불을 지를 수 없다고. 병사들은 지휘관에게 눈길을 돌렸다. 생각이 깊었던 지휘관이었던지 잠깐 고민하던 끝에 부대를 인솔하고 하산했다. 그렇게 해서 구제된 상원사다. 오대산 동구에 있는 관동대찰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20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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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곰 발바닥

[이규태코너] 곰 발바닥 조선일보 입력 2004.05.18 18:42 거위 발바닥, 곧 아장(鵝掌)이라는 중국요리가 있다. 살찐 거위를 철판 쇠그물 속에 가두고 철판 밑에서 숯불을 피운다. 거위는 뜨거워 오르는 발바닥을 감당 못해 퍼덕거리며 그 사이에 온몸의 기름기가 발바닥으로 집결되어 바닥살이 두껍게 부푼다. 이렇게 한 접시의 거위 발바닥 요리를 위해 수십 마리를 잔인하게 점진 살해했던 것이다. 중국요리는 흔히 먹지 않고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만드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지만, 아장처럼 흔히 먹는 재료의 특정 부위에 인공적으로 기를 집중시켜 별맛을 나게 하는 괴상한 요리 철학을 갖고 있는 중국 사람들이기도 하다. 고대 주(周)나라 이래의 궁중에 팔진요리(八珍料理)가 있는데, 이처럼 짐승의 어느 한 부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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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벨리스윙

[이규태코너] 벨리스윙 조선일보 입력 2004.05.19 18:50 보아서는 안 될 성적 장면에 직면했을 때 문화권에 따라 얼굴을 가리는 나라, 배꼽을 가리는 나라, 국부를 가리는 나라, 발을 가리는 나라로 부위가 다르다. 인체의 치부를 둔 그 나라 문화의 변수가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배꼽을 가리는 문화권이 넓은 것은 성기의 대행 이미지가 강한 때문일 것이다. 서양화에서 최초의 남자인 아담을 그릴 때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는 배꼽을 그리고 있지만, 그리지 않은 그림이 보다 많다. 배꼽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야 생기는 것으로 성행위가 전제된다. 하지만 신이 창조한 아담에게 배꼽을 그린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라 하여 그리지 않았다. 이처럼 기독교문화권에서 배꼽은 성 이미지와 맥락이 닿는다. 빅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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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스님의 태평양 횡단

[이규태코너] 스님의 태평양 횡단 조선일보 입력 2004.05.20 18:17 신라 청년 대세(大世)는 숭배하는 담수(淡水) 스님을 찾아가 그의 모험을 의논했다. ‘신라 산골에서 생을 마친다는 것은 못 속의 물고기나 조롱 속의 새와 다를 것이 없소. 낚싯배라도 타고 나아가 오월(吳越)의 땅에 이르러 온 천하를 날아다니며 호령하고 싶소’ 하고 떠나간다. 이 신라 젊은이들의 프런티어십을 뒷받침한 것이 신라 불교였다. 곧 불교에 있어 구도(求道)는 서역(西域)으로 통했고 신라스님들의 소망은 중국 오대산과 불교발생지인 오천축의 성지순례였기에 그것이 모험 정신으로 토착화했음 직하다. 사발같은 통배에 돛자리 펴 달고 신라를 떠나 동지나해 남지나해 벵골만을 가로질러 갠지스강 삼각주에 상륙한 혜초, 염천의 오천축을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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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농땡이 문화론

[이규태코너] 농땡이 문화론 조선일보 입력 2004.05.21 18:32 육식동물인 사자는 먹이를 쫓을 때 그것이 나약한 토끼일지라도 한눈팔지 않고 전력 질주를 한다. 잡아서 고(高)칼로리를 섭취하고 나서는 느긋하게 누워 지낸다.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가 선명하다. 이에 비해 초식동물인 원숭이는 먹이가 저(低)칼로리라서 먹으면서 먹이 찾아 옮겨가야 하기에 부산하게 나부대며 동시다발적으로 행동한다. 곧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가 혼동된다. 사육하지 않고 방생시킨 말은 8시간 풀을 뜯어야 겨우 2시간 일할 기운을 얻기에 8시간 동안에 생리도 하고 암내도 맡고 새끼 보살피는 여타의 일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선지 초식성의 한국인의 노동 밀도가 육식성 미국사람들의 75%라는 조사가 있었다. 직장에서 4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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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17년 매미

[이규태코너] 17년 매미 조선일보 입력 2004.05.23 18:42 | 수정 2004.05.23 18:45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미국은 5월 중순에 들면서 매미와의 전쟁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 미국 동부지방 전역에서 울어댈 공포의 매미울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미국신문이 없을 정도다. 17년 주기로 환생한다 하여 이름붙은 '17년 매미'는 동부 15개주에서 축구경기장만한 넓이에 약 100만마리가 밀집하는 가공할 발생을 한다. 수놈들은 자동차 엔진보다 큰 소리로 암놈을 불러대며 그 소음은 전화를 걸지 못할 정도요, 여름 내내 이명증(耳鳴症) 환자가 돼 있어야 한다. 이 맹렬 러브콜에 응해 몰려드는 암놈이 나무에 달라붙어 수액을 빨아대면 나무가 고사하기에 비닐로 나뭇가지에 옷을 해 입히기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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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푸른 장미

[이규태코너] 푸른 장미 조선일보 입력 2004.05.24 18:46 장미에는 홍장미와 백장미밖에 없음을 두고 시인 브라운은 “순결 아니면 정열뿐 그 밖의 어떤 선택도 완강하게 거부하는 여인의 본질…”이라고 읊었다. 황장미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1864년의 일로 파리의 한 장미시험장에서의 일이다. 25만그루의 비황색 장미에 인공으로 수분(受粉), 5만달러를 들여 노랑으로 변색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하여 장미꽃 색을 22가지나 달리해 놓았지만 유독 푸른 장미만은 변색을 완강하게 거부해 왔다. 이미 로마의 화신(花神)인 플로라가 그의 연인인 숲의 요정을 장미로 환생시킬 때 ‘차갑고 우울하며 죽음을 암시하는…’ 푸른 장미만을 제외시키더니, 그 저주의 연장인지 모르겠다. 장미뿐 아니라 자연계에서 푸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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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부처님표 신발

[이규태코너] 부처님표 신발 조선일보 입력 2004.05.25 17:15 전 국민의 95%가 불교신도인 불교국가 태국에서 부처님 모습을 로고로 담은 스포츠화의 시장 상륙을 두고 발칵하고 있다는 외신이다. 한 호주 신발업체가 유럽형 디자인에 동양의 가치를 접목시킨 것이라는 미명으로 판촉에 나선 데 대해 부처님을 짓밟는 신성모독이라 하여 발칵한 것이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일 때 아래 하(下)를 써 존대한다. 그 상대가 임금이면 임금이 정사를 보는 전당(殿堂) 아래라 하여 전하(殿下)로, 부모면 무릎 아래라 하여 슬하(膝下)로 높여 불렀다. 존경하는 이의 호칭으로 말루하(抹樓下) 또는 족하(足下)라는 말도 자주 썼는데 이 모두 스스로를 낮추는 같은 맥락의 존칭이다. 형제의 아래항렬의 호칭인 조카의 어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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