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427] 총욕불경(寵辱不驚)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사람은 남에게 조금 굽히지 않으려다 큰일을 그르치고 만다. 심화(心火)를 못 다스려 스스로를 태우기에 이른다. 조익(趙翼·1579~1655)이 '심법요어(心法要語)'에서 말했다. "심법의 요체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단지 붙든다는 '조(操)' 한 글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대개 마음이란 붙잡지 않으면 달아난다. 달아나지 않으면 붙잡게 되니, 단지 붙잡느냐 놓아두느냐에 달렸을 따름이다(心法之要, 不在多言, 只在操之一字而已. 蓋心不操則舍, 不舍則爲操, 只有操與舍而已)." '금단정리서(金丹正理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총애와 치욕에 안 놀라니, 간목(肝木)이 절로 편안하다. 동정(動靜)을 경(敬)으로써 하자, 심화(心火)가 절로 안정된다. 먹고 마시기를 ..

[정민의 世說新語] [426] 정수투서 (庭水投書)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북위(北魏) 사람 조염(趙琰)이 청주자사(靑州刺史)로 있을 때, 고관이 편지를 보내 청탁을 했다. 그는 물속에 편지를 던져 버리고 이름도 쳐다보지 않았다. 진(晉)나라 공익(孔翊)은 낙양령(洛陽令)으로 있으면서, 뜰에 물그릇을 놓아두고 청탁 편지를 모두 물속에 던졌다. 질도(郅都)는 제남(濟南)의 수령이 되어 가서 사사로운 편지는 뜯어보지도 않고, 선물과 청탁을 물리쳤다. 진태(陳泰)는 병주태수(幷州太守)로 있으면서 장안의 귀인들이 보낸 편지를 뜯지도 않고 벽에 걸어두었다. 다시 부름을 받아 올라가자 그 편지를 모두 본인들에게 되돌려주었다. 마준(馬遵)이 개봉윤(開封尹)이 되자 권세가와 호족의 청탁이 끊이지 않았다. 손님이 청탁하면 잘 예우해서 면전에서 꺾어 거절하지는 않았다...

[정민의 世說新語] [425] 무소유위 (無所猷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기(尹愭·1741-1826)가 '소일설(消日說)'에서 말했다. "사람들은 긴 날을 보낼 길이 없어 낮잠이라도 자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성인께서 '배불리 먹고 날을 마치도록 아무 하는 일이 없다(飽食終日, 無所猷爲)'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저마다 하는 일이 있어 종일 부지런히 애를 써도 부족할까 걱정인데, 어찌 도리어 세월을 못 보내 근심한단 말인가?" '소학(小學)' '가언(嘉言)'에서는 장횡거(張橫渠)의 말을 인용해, "배우는 자가 예의를 버린다면 배불리 먹고 날을 보내면서 아무 하는 일이 없어 백성과 똑같게 된다. 하는 일이라곤 입고 먹는 사이에 잔치하며 노니는 즐거움을 넘어서지 않는다(學者捨禮義, 則飽食終日, 無所猷爲, 與下民一致,..

[정민의 世說新語] [424] 덕근복당 (德根福堂)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온(鄭蘊·1569~1641)이 1614년 2월, 영창대군 복위 상소를 올렸다가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감옥에 들며 지은 시다. "삼월이라 삼짇날, 젓대 소리 들려온다. 어이해 포승 묶여, 복당문(福堂門)에 혼자 드나(政是三三節, 笙歌處處聞. 如何負縲絏, 獨入福堂門)." 삼월 삼짇날이라 밖이 떠들썩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즐거운 날 포승줄에 묶인 채 감옥에 들어가는가? 감옥을 복당(福堂)이라 했다. 이덕무는 지금 사람들이 감옥을 복당(福堂)이라 하는 까닭을, 위서(魏書) '형벌지(刑罰志)'에서 현조(顯祖)가 "사람이 갇혀 고생하면 착하게 살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방과 복당이 함께 사는 셈이다. 짐은 회개시켜 가벼운 용서를 더하고자 한다(夫人幽苦則思善. 故囹圄與福堂同居. 朕欲改..

[정민의 世說新語] [423] 구겸패합 (鉤鉗 闔)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이첨(李爾瞻)이 함경감사로 부임하던 날, 수레를 타고 만세교(萬歲橋)를 건넜다. 그는 서안(書案)에 놓인 책만 보며 바깥 풍경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감영의 기생들이 그의 잘생긴 얼굴과 단정한 거동을 보고는 신선 같다며 난리가 났다. 늙은 기생 하나가 말했다. "내가 사람을 많이 겪어 보았는데, 사람의 정리란 거기서 거기다. 이곳 만세교는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기이한 볼거리다. 누구든 처음 보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사람의 정리가 아니다. 그는 성인이 아니면 소인일 것이다." 이이첨은 인물이 관옥(冠玉)처럼 훤했다. 대화할 때 시선이 상대의 얼굴 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었고,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처럼 웅얼거렸다(..

[정민의 世說新語] [422] 가경가비(可敬可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세재(李世載·1648~1706)는 실무 역량이 탁월했다. 부산 왜관에는 툭하면 차왜(差倭)가 드나들며 불법 교역을 일삼고, 풍속을 해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가 동래부사로 부임하면서 규정을 점검하고 과감한 조처를 취하자 왜인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의 위엄에 압도되어 간사한 버릇을 고쳤다. 그는 동래부가 생긴 이래 최고 명관이란 찬사를 들었다. 1698년 경상관찰사가 되어서는 칠곡의 가산산성(架山山城)을 새로 쌓고, 병기(兵器)를 정비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뒤에 그가 평안감사로 부임했다. 그곳의 자모산성(慈母山城)은 옛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지키던 성 가운데 하나였다. 임꺽정이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활동했을 만큼 수량도 풍부하고 입지도 훌륭..

[정민의 世說新語] [421] 세구삭반 (洗垢索瘢)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박세채(朴世采)가 조카 박태초(朴泰初)에게 보낸 글의 일부다. "예로부터 자기는 바르고 남은 그르다고 여기면서 만세의 공론을 이룬 적이 어찌 있었던가? 대개 저마다 자기와 같게 하려 하여 상대방은 잘못이라 하고 저만 옳다고 하니, 이 때문에 양측의 성냄과 비방이 산과 같다. 계교하기를 반드시 때를 벗겨 내서라도 흉터를 찾으려고 하여, 함께 벌거벗고 목욕하는 지경에 이르니, 이 일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自古安有自以爲正而指人爲邪, 因成萬世公論者耶? 蓋欲各使同已, 指彼爲邪, 措己爲正, 以故兩邊怒謗如山. 計必洗垢索瘢, 以至同浴裸裎之域, 未知此事稅駕於何地也.)" 글 속의 세구삭반(洗垢索瘢)은 때를 벗겨 내서라도 잘 보이지 않는 남의 흠결을 찾아내 시비한다는 의미다. 위징(魏徵)이 ..

[정민의 世說新語] [420] 법여시족(法如是足)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한문제(漢文帝)가 지나는데 백성 하나가 다리 밑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말이 놀라 황제가 크게 다칠 뻔했다. 백성은 이제 지나갔겠지 싶어 나왔다가 놀라 달아났던 것이었다. 문제가 그를 정위(廷尉) 장석지(張釋之)에게 넘겼다. 장석지는 벌금형을 내린 후 그를 석방했다. 임금은 고작 벌금형이냐며 화를 냈다. 장석지가 대답했다. "법은 천자가 천하 백성과 함께하는 공공(公共)의 것입니다. 법이 그렇습니다. 더 무겁게 적용하면 백성이 법을 믿지 않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그를 베셨으면 몰라도, 제게 맡기셨으니 저울에 달 뿐입니다." 문제가 수긍했다. 이번엔 어떤 자가 한고조(漢高祖) 사당 앞의 옥환(玉環)을 훔쳤다. 장석지는 종묘의 물건을 도둑질한 죄안을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황제는..

[정민의 世說新語] [419] 관과지인 (觀過知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793년 4월 22일에 승지 심진현(沈晉賢) 등은 정조 임금이 탕평의 취지로 반대당을 등용하자, 숨죽여 지내던 귀두남면(鬼頭藍面)의 해괴한 무리가 한꺼번에 튀어나온다면서, 그들에게 내린 벼슬을 취소할 것을 건의했다. 정조는 큰 죄를 지은 자가 아니면 당파와 친소를 떠나 등용하겠다 하고, 건의를 올린 승지들을 도성 밖으로 쫓아내라는 뜻밖의 비답(批答)을 내렸다. 입으로는 소통을 말하면서 부싯돌이나 신기루처럼 잠깐 동안 반짝 사람의 눈이나 어지럽히는 것은 새로운 정치의 법식이 아니라고도 했다. 승정원이 술렁였다. 좌의정 김이소(金履素)가 처분을 거두어 줄 것을 청했다. 왕이 다시 말했다. "모든 일은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이나 같다[過猶不..

[정민의 世說新語] [418] 격탁양청 (激濁揚淸)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사헌부(司憲府)는 시정(時政)을 논의하고, 백관(百官)을 규찰하며, 기강과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의 억울한 일을 처리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서거정(徐居正)이 '사헌부제명기(司憲府題名記)'에서 감찰어사의 직분을 이렇게 썼다. "임금이 잘못하면 용린(龍麟)조차 비판하고, 우레와 번개와도 맞겨룬다. 부월(斧鉞)을 딛고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장상(將相)과 대신이 허물이 있으면 이를 바로잡았고, 종친이나 신분 높은 가까운 신하가 교만하거나 함부로 굴면 탄핵하여 이를 쳤다. 소인이 조정에 있으면 반드시 제거하려 했고, 탐욕스러운 관원이 관직에 있으면 기필코 이를 물리치려 하였다. 곧은 이를 천거하고 그릇된 이를 몰아내며, 탁한 이를 내치고 맑은 이를 드높였다(君有過擧, 批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