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337] 작문오법 (作文五法)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원황(袁黃·1533~1606)이 '간생에게 주는 문장에 대해 논한 글(與干生論文書)'에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가 존심(存心), 즉 마음 간수다. "글은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거칠면 글이 조잡하고, 마음이 섬세하면 글도 촘촘하다. 마음이 답답하면 글이 막히고, 마음이 천박하면 글이 들뜬다. 마음이 거짓되면 글이 허망하고, 마음이 방탕하면 글이 제멋대로다(夫文出于心, 心粗則文粗, 心細則文細. 其心鬱者其文塞, 其心淺者其文浮. 其心詭者其文虛, 其心蕩者其文不檢)." 글은 마음의 거울, 글에 그 사람이 훤히 비친다. 둘째는 양기(養氣), 곧 기운 배양이다. "기운이 온화하면 글이 잔잔하고, 기운이 가득 차면 글이 화창하며, 기운이 씩씩하면..

[정민의 世說新語] [336] 삼환사실(三患四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강필효(姜必孝·1764~1848)가 남긴 '어록'의 한 대목이다. '배움에는 삼환사실(三患四失), 즉 세 가지 근심과 네 가지 잃음이 있다. 미처 알지 못할 때는 듣지 못함을 근심하고, 듣고 나서는 배우지 못함을 근심하며, 배운 뒤에는 행하지 못함을 근심한다. 이것을 일러 세 가지 근심이라 한다. 혹 너무 많은 데서 잃고, 혹 너무 적은 데서 잃으며, 혹 너무 쉬운 데서 잃고, 혹 중도에 그만두는 바람에 잃는다. 이를 두고 네 가지 잃음이라 한다.'(學有三患四失, 未聞患弗聞, 旣聞患弗學, 旣學患弗行, 斯謂之三患. 或失之多, 或失之寡, 或失之易, 或失之止, 斯謂之四失.) 공부하는 사람이 놓지 말아야 할 점검처와 놓치기 쉬운 지점을 쉽게 말했다. 몰라 안타깝고, 알면 배워 익히며,..

[정민의 世說新語] [335] 중봉직필 (中鋒直筆)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처음 붓을 잡을 때부터 중봉직필(中鋒直筆)이란 말을 수없이 들었다. 중봉은 붓끝 뾰족한 부분이 어느 방향이든 모든 획의 정중앙을 지나야 한다는 뜻이다. 직필은 붓대가 지면과 직각을 이뤄야 한다는 말이다. 손목이나 손가락으로 재주를 부릴 수 없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필관을 야물게 잡아야 중봉직필이 된다. 반대로 측필편봉(側筆偏鋒)은 붓을 좌우로 흔들어 붓끝을 필획의 측면으로 쓸며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눈을 놀라게 하는 획이 나오겠지만 정공법은 아니다. 상유현(尙有鉉·1844~1923)의 '추사방현기(秋史訪見記)'에 중국 사람 탕상헌(湯爽軒)이 추사의 글씨를 평한 대목이 있다. 중국 사람이 추사의 글씨를 값을 안 따지고 다투어 사가는데, 예서만 찾지 행서나 초서는 편획(偏劃)이 ..

[정민의 世說新語] [334] 양생칠결 (養生七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원나라 추현(鄒鉉)의 '수친양로신서(壽親養老新書)'에 노년의 양생을 위한 일곱 가지 비결이 보인다. 첫째 "말을 적게 해서 진기(眞氣)를 기른다(少言語養眞氣)." 말수를 줄여야 내면에 참다운 기운이 길러진다. 쉴 새 없이 떠들면 폐의 기운이 소모되어 안에 쌓여야 할 기운이 밖으로 흩어진다. 그 틈을 타 나쁜 기운이 밀려든다. 둘째 "색욕을 경계하여 정기를 기른다(戒色慾養精氣)." 손사막(孫思邈)이 말했다. "정욕을 함부로 하면 목숨은 아침 이슬과 같다.(姿其情欲, 則命同朝露也.)" 정기를 함부로 쓰는 것은 생명의 뿌리를 흔드는 행위다. 과도한 음양의 접촉을 삼간다. 셋째 "맛을 담박하게 해서 혈기를 기른다(薄滋味養血氣)." 기름진 음식은 피를 탁하게 해서 혈관을 막는다. 입에 ..

[바로잡습니다] 23일자 A28면 '정민의 世說新語-각병십법(却病十法)'

23일자 A28면 '정민의 世說新語-각병십법(却病十法)'에서 "집안을 화목하게 하여 서로 꾸짖는 말을 않는 것(家室和睦, 無交讁之言)"이란 구절이 제작 과정에서 '讁'(꾸짖을 적) 자가 빠졌습니다. ■ 정민의 世說新語-각병십법(却病十法)'에서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24/2015092400389.html

[정민의 世說新語] [333] 각병십법 (却病十法)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진계유(陳繼愈)가 '복수전서(福壽全書)'에 '각병십법(却病十法)' 즉 질병을 물리치는 열 가지 방법을 적어 놓아 소개한다. 첫째는 "가만 앉아 허공을 보며 몸뚱이가 원래 잠시 합쳐진 것임을 깨닫는 것(靜坐觀空, 覺四大原從假合.)"이다. 잠깐 빌려 사는 몸을 혹사하지 말자는 얘기다. 둘째는 "번뇌가 눈앞에 나타나면 죽음과 견주는 것(煩惱見前, 以死譬之.)"이다. 죽기보다 더하려고 하고 마음먹으면 못 견딜 일이 없다. 셋째는 "늘 나만 못한 사람을 떠올려 굳이 느긋한 마음을 갖는 것(常將不如我者, 强自寬解.)"이다. 사람이 위쪽만 올려다보면 답이 안 나온다. "조물주가 먹고살기 위해 나를 힘들게 하더니 병 때문에 조금 여유가 생겼으니 도리어 경사나 다행이라 여긴다(造物勞我以..

[정민의 世說新語] [332] 무익십사 (無益十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청매(靑梅) 인오(印悟·1548∼1623) 스님의 문집에서 '십무익(十無益)'이란 글을 보았다. 수행자가 해서는 안 될 열 가지 일을 나열했다. 알려진 글이 들쭉날쭉해서 문집에 따라 보이면 다음과 같다. "마음을 안 돌보면 경전을 봐도 소용없고(心不返照, 看經無益), 본성 공(空)함 모르고는 좌선이 부질없다(不達性空, 坐禪無益). 뿌리지 않고 열매를 바람은 도를 구함에 무익하고(輕因望果, 求道無益), 바른 법을 안 믿고는 고행이 쓸데없다(不信正法, 苦行無益). 아만(我慢)을 안 꺾으매 법 배워도 쓸모없고(不折我慢, 學法無益), 실다운 덕 없고 보니 겉 꾸밈이 소용없다(內無實德, 外儀無益). 스승의 덕 못 갖추곤 중생제도 허망하고(欠人師德, 濟衆無益), 신실한 맘 아니고는 교묘한..

[정민의 世說新語] [331] 처세육연 (處世六然)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박병호 선생의 서예전 도록을 보는데 명말(明末) 최선(崔銑)이 왕양명(王陽明)에게 주었다는 처세훈이 새삼 눈에 띈다. 경주 최부자 댁의 가훈이기도 하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선생의 번역에 따라 옮기면 이렇다. '스스로는 세속에 집착하지 않고, 남에게는 온화하고 부드럽게. 일을 당하면 단호하고 결단성 있게, 평소에는 맑고 잔잔하게. 뜻을 이루면 들뜨지 말고 담담하게, 뜻을 못 이루어도 좌절 없이 태연하게(自處超然, 處人譪然. 有事斬然, 無事澄然. 得意澹然, 失意泰然).' 스스로 자처함에 초연키는 어렵다. 남과 대할 때 마냥 푸근하기도 쉽지가 않다. 일이 생기면 칼로 베듯 과단성 있게 처리해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때를 다 놓친다. 일이 없을 때는 공연히 사부작거려 없을 일을 만들지..

[정민의 世說新語] [330] 고태류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추사(秋史)가 조카 민태호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읽다가 글 속 언저리를 한참 서성였다. "산촌의 비가 아침에 개었으니 북악산 자락에는 온갖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났겠구나. 예전 비에 옷 젖던 일도 생각나고 해묵은 이끼에 신발 자국이 찍히던 것도 기억나는군.(邨雨朝晴, 想北崦百花盡放. 攬舊雨之沾裳, 記古 之留屐.)" 사각사각 봄비에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 몽환적 풍경을 연출한다. 나막신을 신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물기를 머금은 스펀지 같은 이끼 위에 발자국이 또렷이 찍히더니 물이 고인다. 애틋하다. 예전 김일로 시인의 시집 '송산하' 중 "산기슭 물굽이 도는 나그네. 지팡이 자국마다 고이는 봄비"란 구절 앞에서 책장을 덮고 눈을 감았던 기억과 겹쳐졌다. 때마침 문자 하나가 들어..

[정민의 世說新語] [329] 기부포비 (飢附飽飛)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당나라 시인 고적(高適)의 '휴양수창대판관(睢陽酬暢大判官)'은 이렇다. "오랑캐는 본래부터 끝이 없으니, 회유함이 하루아침 일이 아닐세. 주려 착 붙을 때는 쓸 만하다가, 배부르면 떠나가니 어이 붙들까.(戎敵本無厭,羈縻非一朝. 飢附誠足用,飽飛安可招.)" 서융(西戎)은 초원에 야영하며 사는 족속으로 사납고 거칠어 좀체 신하로 복속되는 법이 없다. 곡식이 늘 부족해 먹을 것이 없으면 중원에 붙어 순종하지만 일단 배가 부르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통제를 벗어날 뿐 아니라 중원에 큰 위협을 가하곤 했다. 시 속의 기부포비(飢附飽飛)는 배고프면 붙고 배부르면 날아간다는 의미다. 형세가 여의치 않으면 숙이고 들어와 혜택을 구걸하고, 만만하다 싶으면 어느새 등을 돌려 해코지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