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318] 육회불추(六悔不追)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송나라 때 구준(寇準)이 살아가면서 돌이킬 수 없는(불추·不追) 여섯 가지 후회를 '육회명(六悔銘)'에 담아 말했다. "관직에 있을 때 나쁜 짓 하면 실세해서 후회하고, 부자가 검소하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 후회한다. 젊어 부지런히 안 배우면 때 넘겨서 후회하고, 일을 보고 안 배우면 필요할 때 후회한다. 취한 뒤의 미친 말은 술 깬 뒤에 후회하고, 편안할 때 안 쉬다가 병든 뒤에 후회한다(官行私曲失時悔, 富不儉用貧時悔. 學不少勤過時悔, 見事不學用時悔. 醉後狂言醒時悔, 安不將息病時悔)." 성호 이익 선생이 여기에 다시 자신의 여섯 가지 후회를 덧붙였다. "행동이 때에 못 미치면 지난 뒤에 후회하고, 이익 앞에서 의를 잊으면 깨달은 뒤 후회한다. 등 뒤에서 남의 단점 말하면 마주해..

[정민의 世說新語] [317] 시지인길(尸至人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김정국(金正國·1485~1541)이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세상 사람 중에 집을 크고 화려하게 짓고 거처가 사치스러워 분수에 넘치는 자는 머잖아 화를 당하지 않음이 없다. 작은 집에 거친 옷으로 검소하게 사는 사람이라야 마침내 이름과 지위를 누린다." 그 자리에 있던 종실 이종(李鍾)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내 들으니 큰 집을 옥(屋)이라 하고 작은 집은 사(舍)라 한답니다. 옥(屋)이란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시지(尸至), 즉 송장에 이른다는 뜻이 되고, 사(舍) 자는 쪼개서 읽으면 인길(人吉), 곧 사람이 길하다는 뜻이 되지요. 큰 집에 사는 자가 화를 받고 작은 집에 사는 자가 복을 받는 것이야 괴이할 것이 없습니다." '사재척언(思齋摭言)'에 나온다. 범저(..

[정민의 世說新語] [316] 우적축은 (牛賊丑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옥봉(李玉峯)은 여류 시인이다. 이웃 아낙이 소도둑으로 몰려 갇힌 남편의 억울함을 탄원하는 글을 써달라며 그녀를 찾아왔다. 옥봉이 전후 사정을 글로 적고 끝에 시 한 구절을 얹었다. "첩의 몸이 직녀가 결코 아니니, 낭군이 어찌 견우시리오.(妾臣非織女, 郎豈是牽牛)" 자기가 예쁜 직녀가 아닌데 남편이 어떻게 견우가 될 수 있느냐는 얘기다. 견우(牽牛)는 뜻으로 풀면 소를 끌고간다는 의미다. 소도둑을 재치 있게 이렇게 풀이했다. 탄원서를 받아본 태수가 무릎을 치며 탄복하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남편을 석방했다. '지봉유설'에 나온다. 홍휘한(洪徽漢·1723~?)은 얼굴이 너무 시커메서 젊어서부터 친구들이 그를 우적(牛賊), 즉 소도둑이라 놀리곤 했다. 사람들이 우적을 아예 호 부..

[정민의 世說新語] [315] 근신수마 (謹身數馬)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허균이 젊은 시절 감목관(監牧官)으로 말 목장에 파견되면서 시 한 수를 썼다. 앞의 네 구는 이렇다. "기북(冀北)에서 좋은 말을 가려내어서, 금대(金臺)에서 특별한 은총 입었네. 몸을 삼가 수마(數馬)를 생각하지만, 감목으로 말 먹임이 부끄러워라.(冀野掄侖材重, 金臺荷寵殊. 謹身思數馬, 監牧愧攻駒.)" 과거에 급제해 큰 뜻을 펼쳐볼 줄 알았는데 고작 말 목장에서 말똥이나 치우고 망아지 기르는 일이나 감독하는 관원이 된 일을 자조한 내용이다. 제3구의 수마(數馬)는 고사가 있다. 진(晉) 나라 때 석경(石慶)이 태복(太僕)으로 수레를 몰고 나갔다. 왕이 그에게 불쑥 수레를 끄는 말이 몇 마리냐고 물었다. 석경은 채찍으로 말의 숫자를 하나하나 세더니 손가락 여섯 개를 펴보이며 "..

[정민의 世說新語] [314] 사지삼혹 (四知三惑)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한나라 때 양진(楊震·?~124)이 동래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창읍 현령 왕밀(王密)을 만났다. 그는 예전 양진의 추천을 받아 벼슬을 시작했으므로 은혜로 여겨 밤중에 찾아와 황금 열 근을 바쳤다. "나는 그대를 알아보았는데, 그대는 어째서 나를 모르는가?" 왕밀이 말했다.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모릅니다." 양진이 대답했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네(四知).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 하는가?" 왕밀이 부끄러워하며 나갔다. 그는 청렴해서 자식들이 거친 음식을 먹고 외출할 때도 걸어 다녔다. 벗들이 먹고살 도리를 하라고 하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후세에 청백리의 자손으로 일컬어지게 하려 하네. 이것만 남겨줘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의 둘째 아들 양병(楊..

[정민의 世說新語] [313] 상구작질 (爽口作疾)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송나라 때 진록(陳錄)이 엮은 '선유문(善誘文)'은 선행을 권유하는 글을 모은 권선서(勸善書)다. 그 첫머리에 송대 조변(趙抃·1008~1084)의 '조청헌공좌우명(趙淸獻公座右銘)'이 실려 있다. 모두 24칙의 짤막한 글을 싣고 그 아래에 설명을 달았다.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읽어본다. "구함이 없는 것이 보시보다 낫다(無求勝布施)." 보시에는 제 복(福)을 구하려는 마음이 깔려 있다. 애초에 복을 향한 마음을 버리는 것만 못하다. 그 아래 "구함이 없으면 절로 편안하니 보시는 복을 탐하는 것이다(無求自安, 布施貪福)"란 설명을 달았다. "입에 맞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병이 된다(爽口味多須作疾)." 건강에 좋은 음식은 입에는 깔깔하다. 미식과 보양식만 찾아다니면 몸에 해롭..

[정민의 世說新語] [312] 파부균분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한나라 때 임회(臨淮)에 사는 사람이 비단을 팔러 시장에 갔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자 얼른 비단을 머리에 얹어 비를 피했다. 뒤늦게 한 사람이 뛰어들더니 자기도 비를 피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비단 한 끝을 그 사람에게 내주었다. 비가 그쳤다. 젖은 비단을 거두어 정돈하려는데 비를 피하게 해달라던 자가 갑자기 태도를 싹 바꿔 비단이 원래 자기 것이니 내놓으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비단 주인은 기가 턱 막혔다. 마침내 서로 엉겨 붙어 큰 싸움이 되었다. 태수 설선이 지나다가 두 사람을 불렀다. 둘은 태수 앞에서도 기세가 등등했다. 태수가 관리를 시켜 비단을 절반으로 잘라 반씩 나눠 주었다. 그러고는 관리를 시켜 두 사람의 반응을 들어보게 했다. 비단 주인은 원통해 죽겠..

[정민의 世說新語] [311] 호식병공 (虎食病攻)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수연(鄭壽延)이란 벗이 병중의 안정복(安鼎福)을 위해 양생 요령을 적은 '위생록(衛生錄)'이란 책을 빌려주었다. 안정복이 읽고 돌려주며 책에 발문을 써 보냈다. 그중의 한 대목. "위생의 방법은 안으로 그 술법을 다해도 밖에서 오는 근심을 조심해 살펴 미리 막아야 한다. 그래야 안팎이 다 온전할 수 있다. 선표(單豹)는 안을 다스렸으나 범이 밖을 잡아먹었고, 혜강(嵆康)은 양생(養生)에 힘썼지만 마침내 세화(世禍)에 죽었다. 그래서 군자는 거처하는 곳을 삼가고 사귀는 바를 조심해야 한다. 두 사람은 안에만 힘을 쏟고 밖에는 소홀해 이렇게 되었다. 이것이 과연 양생의 방법이겠는가?" 위 글 속 선표의 얘기는 고사가 있다. 전개지(田開之)가 주 위공(周威公)에게 말했다. "양생은..

[정민의 世說新語] [308] 매륜남비(埋輪攬轡)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일이다. 장강(張綱) 등 8인에게 전국을 순시해서 관리들의 비리를 규찰하라는 명이 내렸다. 모두 명을 받들어 해당 지역으로 떠났다. 장강만은 낙양의 도정(都亭)에다 수레바퀴를 파묻고 이렇게 말했다. "승냥이와 늑대가 조정을 맡고 있는데 여우 살쾡이를 어이 물으리(豺狼當路 安問狐狸)." 그러고는 당시 권력을 멋대로 농단하던 대장군 양기(梁冀)가 임금을 업신여긴 일을 15가지로 조목조목 나열하며 격렬하게 탄핵했다. 낙양이 이 일로 발칵 뒤집혔다. 후한 환제(桓帝) 때 기주(冀州) 땅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 도적 떼가 창궐하고 탐관오리가 횡행해 민심이 흉흉했다. 황제는 범방(范滂)을 청조사(淸詔使)로 보내 비리를 척결케 했다. 범방은 수레에 올라 고삐를..

[정민의 世說新語] [307] 선담후농 (先淡後濃)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연암 박지원의 '마장전(馬駔傳)'은 송욱과 조탑타, 장덕홍 등 세 사람이 광통교 위에서 나누는 우정에 대한 토론으로 시작된다. 탑타가 말했다. "아침에 밥 동냥을 다니다가 포목전에 들어갔었지. 베를 끊으러 온 자가 있었네. 베를 고르더니 핥아도 보고 허공에 비춰 살피기까지 하더군. 그러고는 값은 말 안하고 주인 더러 먼저 불러보라는 게야. 그러더니 둘 다 베는 까맣게 잊었는지 포목장수가 갑자기 먼 산을 보며 구름이 나온다고 흥얼대더군. 사려던 사람은 뒷짐 진 채 왔다 갔다 벽에 걸린 그림 구경을 하고 있지 뭐야." 송욱이 대답한다. "네 말이 교태(交態), 즉 사귐의 태도는 알았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사귐의 도를 깨닫기는 아직 멀었어." 덕홍이 나선다. "꼭두각시놀음에서 장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