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293] 무덕부귀(無德富貴)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한나라 때 하간왕(河間王) 유덕(劉德)은 귀한 신분이었음에도 높은 인품과 학문으로 모든 이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죽자 헌왕(獻王)의 시호가 내렸다. 헌(獻)은 총명예지(聰明叡智)를 갖춘 사람에게 내리는 이름이다. 반고(班固)가 찬문(贊文)에 썼다. "예전 노나라 애공(哀公)이 이런 말을 했다. '과인은 깊은 궁중에서 태어나 아녀자의 손에서 자랐다. 근심을 몰랐고 두려움도 겪어 보지 못했다.' 이 말이 맞다. 비록 망하지 않으려 한들 얻을 수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옛 사람은 편안한 것을 짐독(鴪毒)처럼 여겼고, 덕 없이 부귀한 것을 일러 불행이라고 했다(無德而富貴, 謂之不幸). 한나라가 일어나 효평제(孝平帝) 때 이르러 제후왕이 100명을 헤아렸다. 대부분 교만하고 음탕하여 ..

[정민의 世說新語] [292] 군이부당 (羣而不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629년 병조판서 이귀(李貴)가 글을 올려 붕당의 폐해를 지적하자 인조가 못마땅해하는 비답(批答·임금이 상주문 말미에 적는 대답)을 내렸다. 조익(趙翼·1579~ 1655)이 붓을 들었다. 간추려 읽어본다. 사적으로 아첨하며 영합하는 것을 당(黨)이라 한다. 공자가 군자는 "어울리되 파당을 짓지 않는다(羣而不黨)"고 한 것이 그 예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군자는 서로 도와 몸을 닦고 조정에 서면 세상을 위해 일한다. 소인은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 군자의 '붕(朋)'과 소인의 '당(黨)'이 이렇게 나뉜다. 참소하는 자들은 군자를 모함할 때 당을 짓는다고 지목해 임금을 격노케 하여 일망타진의 꾀를 이룬다. 군자의 붕과 소인의 당은 겉으로 보면 다 비..

[정민의 世說新語] [291] 소심방담 (小心放膽)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몇 해 전 대만 중앙연구원의 후스(胡適) 기념관을 찾았다. 그곳 기념품점에서 후스의 친필 엽서를 몇 장 구입했다. 그중 한 장은 그 후 내 책장 앞쪽에 줄곧 세워져 있다. "대담한 가설, 꼼꼼한 구증(大膽的假設, 小心的求證)." 가설(假說)이라 하지 않고 가설(假設)이라 쓴 것이 인상적이다. 학술적 글쓰기의 핵심을 관통했다. 공부는 가설(假設) 즉 허구적 설정에 바탕을 둔 가설(假說)에서 출발한다. 혹 이런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볼 수는 없나? 그런데 그 가설이 대담해야 한다. 모험적이다 못해 다소 위험해 보여도 가설은 가설이니까 상식에 안주하면 안 된다. 새로운 가설에서 새로운 관점, 나만의 시선이 나온다. 보던 대로 보고 가던 길로 가서는 늘 보던 풍경뿐이다. 볼 것을 못 ..

[정민의 世說新語] [290] 고구만감 (苦口晩甘)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덕리(李德履·1728~?)가 쓴 '동다기(東茶記)'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차에는 고구사(苦口師)니 만감후(晩甘侯)니 하는 이름이 있다. 또 천하의 단것에 차만 한 것이 없어 감초(甘草)라고도 한다. 차 맛이 쓴 것은 누구나 말한다. 차가 달다는 것은 이를 즐기는 사람의 주장이다." 표현이 재미있어서 찾아보니 각각 출전이 있다. 당나라 때 피광업(皮光業)은 차에 벽(癖)이 있었다. 그가 갓 나온 감귤을 맛보는 자리에 초대받아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잔칫상에 차려 내온 훌륭한 안주와 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차부터 내오라고 야단이었다. 큰 잔에 담아 차를 내오자 그가 시를 지었다. "감심씨(甘心氏)를 아직 못 보았으니, 먼저 고구사(苦口師)를 맞아야겠네(未見甘心氏, 先迎苦口師)..

[인터뷰] 정민 '나의 글이 가는 길'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개성공단에서 발굴한 연암 박지원의 글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신성헌 기자 “야! 넌 사내자식이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네?” “뭔 말이 그렇게 많냐구!” 지도교수가 논문을 탁 집어던졌다. 석사 학위 논문 심사 때 일이었다. 학생이 제출한 논문에 권필(權韠·1569-1612)의 한시를 적은 ‘空山木落雨蕭蕭(공산목락우소소)’라는 대목이 있었다. 이걸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라고 옮겼던 것. 우연히 그 쪽을 펴든 교수 입에서 불벼락이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학생이 “왜 그러세요?” 물었다. “이거 무슨 자야?” “빌 공(空)입니다.” “거기 ‘텅’자가 어딨어!” ‘빈 산’ 하면 될 것을 ‘텅 빈 ..

[정민의 世說新語] [289] 병동지한(甁凍知寒)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변계량(卞季良·1369~1430)의 '이재와 김대언의 시운을 차운함(次頣齋及金代言詩韻)' 7수 중 마지막 수. '내 생애 다행히 후한 은혜 입었건만, 여린 시내 물결 보탬 얻지 못해 부끄럽네. 산보(山甫)가 임금 곁에서 진작 보필했더라면, 두보가 어이 굳이 유관(儒冠) 탄식하였으리. 김을 매자 마침내 소반 위 밥이 되고, 물병 얼어 천하가 추워짐을 알 수 있네. 교화에 참여하여 지치(至治)를 이룰진대, 여자는 베가 남고 남자는 곡식 남을 텐데(吾生幸沐睿恩寬, 愧乏微涓得助瀾. 山甫早能陪袞職, 少陵何必歎儒冠. 鋤禾竟是盤中粒, 甁凍可知天下寒. 參贊會須登至治, 女多餘布士餘餐).' 의미는 이렇다. 은혜를 입어 벼슬길에 올랐지만 정작 나라 위해 내세울 만한 일을 한 게 없어 부끄럽다. 주..

[정민의 世說新語] [288] 허착취패 (虛著取敗)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566년 퇴계 선생이 박순(朴淳)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중 한 대목이 이렇다. "홀로 바둑 두는 자를 못 보았소? 한 수만 잘못 두면 한 판 전체를 망치고 말지요. (중략) 내가 늘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기묘년에 영수로 있던 사람이 도를 배워 미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레 큰 이름을 얻자 갑자기 경제(經濟)로 자임하였지요. 임금께서 그 명성을 좋아하고 나무람을 후하게 했으니, 이것이 이미 헛수를 두어 패배를 취한(虛著取敗·허착취패) 길이었던 셈입니다. 게다가 신진 중에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어지러이 부추기는 통에 실패 형세를 재촉하고 말았지요." 바둑에서 한 수의 실착은 치명적이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려 했다가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괜찮겠지 방심..

[정민의 世說新語] [287] 종풍지료 (縱風止燎)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졸수재(拙守齋) 조성기(趙聖期·1638~1689)가 김창협(金昌協·1651~1708)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통폐를 이렇게 질타했다. "선비의 공부가 어느 한 곳도 실처(實處)에 맞는 법이 없고 어느 한 가지 일조차 박자를 맞추지 못한다. 억지로 꾸미다가 어지러이 무너져 온 세상을 하나의 물거품 같은 경계로 만들고 만다. 그런데도 앞서 선왕의 도리와 정주(程朱)의 학문을 향한다는 자들은 여기에 이르러 물결을 밀쳐 파도를 조장하고(推波助瀾·추파조란), 바람을 놓아 횃불을 끄려는(縱風止燎·종풍지료) 데로 돌아가는 모습만 보여준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고 뭇 맹인이 구덩이 속을 헤매는 것 같다. 캄캄한 길을 가다 진흙탕을 만나 혼미하여 헤매는 모습이 처음 볼 때는 나도 몰..

[정민의 世說新語] [286] 은환위목(銀還爲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도루묵의 산란철이 가까워 온다. 굵직한 알이 입안에서 씹히는 식감이 생각난다. 도루묵이란 생선은 원래 이름이 목어(木魚)였다.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란길에 처음 먹고 그 맛이 별미여서 이름을 은어(銀魚)로 고쳐 격상시켜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선조가 대궐로 돌아와 그 맛이 생각나 다시 들이게 했다. 한데 영 입에 맞지 않았다. 이걸 맛이라고 내가 그때 감동을 했었나 싶어 "생선 이름을 도로 목어라고 해라" 했대서 '도로목'이 되고 나중에 음이 변해 '도루묵'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은어를 도로 목어라 한 은환위목(銀還爲木)의 사연이다. 허균(許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도 이 생선 얘기가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은어(銀魚)는 동해에서 난다. 처음 이름은 목어(木魚)였다. ..

[정민의 世說新語] [285] 도문대작 (屠門大嚼)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허균(許筠·1569~1618)은 미식가였다. 어려서부터 사방의 별미를 많이 먹었고 커서도 갖가지 산해진미를 찾아다니며 맛봤다. 그는 1610년 과거 시험 채점 부정에 연루되어 전라도 함열 땅에 유배 갔다. 유배지의 밥상에는 상한 생선 아니면 감자나 들미나리가 올라왔다. 그마저도 귀해 주린 배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런 밤이면 그는 책상에 오도카니 앉아서 지난날 물리도록 먹었던 귀한 음식에 관한 기억을 하나씩 떠올렸다. 떡과 과실, 고기와 수산물, 그리고 채소에 이르기까지 종류별로 적어 나갔다. 그것이 맛있었지. 이건 더 기가 막혔어. 이렇게 하나하나 적어가는 동안 무려 125항목이 채워졌다. 입맛에 대한 기억을 호명하는 사이 그는 시장기를 잊었고 책이 완성되자 유배에서 풀..